안녕하세요. 동네 의사 야옹 선생입니다. 저는 대전에서 가정의학과 의사로 일하며 진료실 안팎에서 환자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혹시 주치의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나를 도맡아 진료하고, 평생에 걸쳐 건강관리를 해주는 의사를 주치의라고 하는데요. 주치의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대표적인 나라가 바로 영국입니다. 영국은 국가보건의료체계(National Health Service)를 통해 담당 주치의가 정해져 있으며, 이 주치의와 오랜 기간 관계를 맺습니다. 우리나라는 주치의 제도가 아직 도입되지 않았죠. 그래서 이 병원 저 병원을 옮겨 다니며 비교해서 진료를 볼 수 있고, 이 질병은 이 병원에서, 저 질병은 저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도 있지요. 검사는 저쪽에서 치료는 이쪽에서 할 수도 있습니다.
제도마다 장단점이 있겠지만, 오늘은 '장애인 건강주치의 시범사업'을 진행하며 느낀 '주치의 제도가 의사인 저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 좀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제가 장애인 건강 주치의로서 방문 중인 50대 남자 환자분이 있습니다. 그 분은 3년 전 근무 현장에서 떨어져 경수 골절이 생겼고, 이로 인해 사지가 마비된 뇌척수장애인입니다.
올해 3월 보호자로부터 첫 연락이 왔습니다. 환자가 며칠 전부터 식사를 못 하시고 기력이 없어 걱정된다는 전화였습니다. 사지 마비 상태라 병원에 모시고 오기 힘들어 왕진이 가능한 병원을 찾던 중 민들레 의료사협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연락을 받은 다음 날, 그분을 뵈러 왕진을 나갔습니다. 환자분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상가주택 2층에 가족들과 거주하고 계셨습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목련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어 눈이 부셨습니다.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것은 제가 이 환자를 통해 방문 진료가 진짜 절실히 필요한 분들이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실감했기 때문입니다.
집에는 십 년 전 베트남에서 오셔서 부부의 연을 맺은 배우자분과 연로하신 어머님, 아이들 셋이 있습니다. 4학년, 2학년, 6살. 올망졸망 귀엽습니다. 환자분은 거실 한 편에 놓인 환자용 침대에 누워계십니다. 원래 현장에서 일하시던 분이라 체구도 건장하십니다. 진찰을 해보니 목만 겨우 움직이고, 어깨, 팔꿈치, 손가락 관절은 굳어서 뻣뻣하며, 다리도 많이 부어있었습니다. 작년까지 몇 군데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은 뒤 소변줄을 낀 채로 퇴원을 했는데, 한 달에 한 번 소변줄 교체를 위해 온 가족이 매달려 환자를 2층에서 1층으로 내려 병원으로 모시고 갔다고 합니다.
이렇게 혼자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분들은 2시간마다 몸의 위치를 바꿔 주어야 혈액 순환이 원활하게 되는데, 초기에 이것을 제대로 못 하여 엉덩이 부위에 욕창이 크게 생겼고, 피부 이식까지 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에어매트도 쓰고 배우자 분이 체위 변경에 신경을 쓰고 있어 욕창은 전혀 없었습니다.
다행히 배우자분이 환자를 위해 노력도 많이 하시고 지지도 많이 해 주십니다. 아이들도 아빠가 혼자 거실에 자면 안 된다고, 같이 거실에서 잘 만큼 아빠를 사랑하고 응원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예쁜 아이들도 있고, 지지적인 배우자도 있는데, 환자분의 표정이나 말씀하는 모습이 무척 우울하고 기운이 없어 보였습니다. 혹시나 이런 상황 때문에 삶의 의지를 잃은 것은 아닌지, 스스로 가족들에게 짐이 된다고 생각하시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던 저에게 보호자분이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말은 했지만 제가 어떻게 도와 드려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이분의 '주치의'가 되었고, 이분은 '내 환자'가 되었습니다.
먼저 가정 간호 서비스를 연결하여 소변줄 하나 때문에 위험한 계단으로 내려오는 것은 면했습니다. 멀리 대학병원에서 받던 약 처방을 우리 병원으로 옮겨서 급할 때 약 조절이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척수장애인에 대해 공부도 하고, 멀리서 재활의학과 선배를 모시고 와 같이 방문하여 의견을 들었습니다. 열이 나거나, 다리가 아프거나, 불편한 곳이 생길 때마다 방문하여 진찰을 하고, 검사도 하고 처방도 냈습니다. 배우자분이 지치지 않도록 어떻게 지내시는지, 마음이 힘들지는 않으신지 확인하고, 어머님이 아프실 때도 가서 진료를 해드렸습니다.
우리 작업치료사와 이분의 상태를 호전시킬 방법들을 찾아보고, 도와줄 활동지원사도 여기저기 수소문해 보았습니다. 워낙 상태가 중하고 거구의 남성이라 섣불리 나서는 활동지원사가 아직 없습니다. 활동지원사를 구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른 활동지원사들에게 문의도 해보았습니다.
그러다 바로 지난주 토요일 이분의 큰딸 이야기가 KBS TV의 다큐에 방송된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이제 겨우 열한 살 아이가 일하러 나간 엄마의 빈자리를 채우려 집안일을 돕고, 동생들을 돌보고, 아빠의 식사를 준비하는 모습이 얼마나 기특하던지요. 친구들과 축구부 활동도 씩씩하게 하지만 아빠가 다시 일어나지 못 할까봐 슬퍼하는 모습에 한바탕 눈물 바람도 했습니다. 환자분도 재활 치료를 잘 받아서 아이 학교에 축구시합을 보러 가겠다고 하실 때는 얼마나 뭉클하던지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지만, 제가 이렇게까지 그분과 가족들에게 공감 하고, 행동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가만히 생각해 보니 '주치의'라는 그 말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의사와 '주치의', 그냥 환자와 '내 환자'의 차이는 인식론적인 차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단순한 인식변화가 큰 결과적 차이를 만들 수도 있지요. ‘내 환자’라는 생각이 이 분을 건강하게 만들기 위한 여러 가지 노력으로 이어진 것 처럼요.
제가 좋아하는 나태주 시인의 <풀꽃 2>를 읊조려봅니다.
이름을 알고 나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
모양까지 알고 나면
연인이 된다
아, 이것은 비밀
제가 건강주치의로 관계 맺은 '내 환자들'을 만나고, 알게 되고, 애정과 책임감이 생기면서 결국 행동과 선택으로 이어지고, 그들을 위해 슬퍼하고 싸울 수도 있게 됩니다. 그런데 걱정도 됩니다. 과연 우리는 서로를 알고,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나는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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