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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 성착취 재판방청연대의 방청기 "참 기괴하고 불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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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 성착취 재판방청연대의 방청기 "참 기괴하고 불쾌했다"

[인터뷰] 디지털성범죄 재판방청연대하는 eNd 팀

지난달 26일 텔레그램 '박사방' 공범들의 1심 재판이 있던 날. 영하로 떨어진 날씨였지만 재판 시작 한 시간 전부터 법정 밖에는 방청권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대부분 검은 옷을 입은 젊은 여성들이었다. 재판동행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재판방청연대'를 하고 있는 'eNd팀'이다. 매 재판 시작 전에는 법원 앞에서 '강력처벌촉구' 기자회견도 개최한다.

이날도 한 시간여를 기다린 끝에 방청권을 얻은 이들은 재판정으로 속속 들어갔다. 재판 내내 가져온 노트에 재판 내용을 꼼꼼히 기록했다. 이날은 선고일이라 금방 끝났지만 보통 공판은 수시간 진행되며 중간에 쉬는 시간을 가지기도 한다. 그럴 때면 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각자 기록한 내용들을 다른 이들과 공유하고 그날 재판에 관한 의견을 나눈다.

이러한 모습은 텔레그램 성 착취 재판이 시작된 후 매 재판마다 볼 수 있다. 수년 전부터 전국 각지의 성범죄 재판을 연대방청하는 '마녀'(활동명)부터, 텔레그램 N번방 디지털 성착취 강력처벌 촉구시위 eNd팀, N번방에 분노한 사람들, 등 활동가가 아닌 일반 시민으로 구성된 모임들이 텔레그램 성 착취방 재판이 시작된 뒤 함께 재판을 방청하고 있다.

그 중 eNd팀은 지난 3월31일, '로리대장태범' 배모 씨와 '슬픈고양이' 류모 씨의 공판을 시작으로 방청연대를 이어오고 있는 연대체다. eNd팀은 "첫 방청 후 소셜미디어에 재판의 내용과 쟁점을 알기 쉽게 설명해 올린 글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과 응원을 보내줬다"면서 "재판 방청에 동행할 수는 없어도 재판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고 전했다.

▲26일 텔레그램 성 착취 '박사방'의 1심 선고를 앞두고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텔레그램 N번방 디지털 성착취 강력처벌 촉구시위 eNd 팀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프레시안(조성은)

활동가 아닌 시민으로써 할 수 있는 일

eNd팀은 "코로나19로 인해 시위가 계속 미뤄지며 할 수 있는 활동이 뭘까 고민하다 재판방청연대라는 것을 알게 됐다"며 "매 재판을 방청하고 후기를 소셜미디어에 공유하고, 엄벌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재판방청연대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은 20대 학생부터 30대 직장인까지 다양하다. 재판이 있는 날이면 검은색 혹은 무채색 옷을 입고 재판을 방청한다. 피고인 측으로부터 위협을 받는 경우가 있어 철저히 익명으로 소통하며 신상이 특정될 수 있는 소품은 빼고 최대한 모여 있는다.

재판방청연대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관심'과 '감시'를 언급했다. 지난 4월부터 배판 방청연대에 참여하고 있는 멸균(가명) 씨는 "텔레그램 성 착취 사건 기사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는데, 심각성에 비해 언론의 관심이 적은 것 같아 나라도 관심을 보여야겠다고 생각했다"며 방청연대를 시작한 이유를 설명했다.

과거 충격적인 성범죄에 내려진 솜방망이 처벌도 이들을 재판방청연대에 이끌었다. 두부(가명) 씨는 "n번방 보도가 처음 나왔을 때 너무 분노했지만 청원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며 "웹하드 카르텔, 버닝썬 사건이 묻힌 것처럼 n번방도 묻힐 게 뻔해서" 노력을 보태고 싶었다고 했다.

피해자들에게 연대하고 싶었다는 마음만으로 재판방청연대에 참여하는 이도 있다. 안개(가명) 씨는 "피해자들에게 우리가 사건을 잊지 않고 끝까지 연대하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서" 방청연대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피해자 혼자 두지 않겠다' 연대의 시작

시민이 참여하는 '재판방청연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건 안희정 성폭력 사건 때부터다. 그러나 재판방청연대는 이전부터 반 성폭력 운동의 중요한 부분으로 전개됐다. 당시에는 피해자 지원단체 활동가들 중심으로 이뤄졌다. 한국여성민우회의 경우 2010년부터 '성폭력피해에공감하는 첫사람' 운동을 전개했다.

당시만 해도 성폭력 피해자 지원 단체들이 피해자 지원 활동을 하다 보면 재판 방청을 하지 않고는 재판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성폭력 피해자 또한 재판의 당사자가 아니어서 방청을 해야만 전체 재판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재판부의 낮은 성인지감수성과 가해자 중심으로 이뤄지는 재판 과정에 2차 가해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재판에 대한 정보도 불균형했다. 피해자는 증인으로 재판에 한두 번 출석하는 반면 가해자는 매일 반성문을 내고 매번 출석해 자기 위주로 변론을 전개해나가며 재판을 자기 위주로 끌어 나갈 수 있었다. 법과 제도 또한 '폭행·협박'을 반드시 수반해야 하는 강간죄의 구성요건처럼 가해자 중심적이었다.

'첫사람' 운동은 피해자와 함께, 때로는 피해자를 대신해 재판을 방청하면서 검사와 재판부에 적극적으로 의견서를 전달하며 피해자를 보호하고 도왔다. 이런 과정 속에서 가해자 중심으로 진행되는 재판에도 변화가 생겼다. 피해자 변호사 제도가 생기고 피해자에게 재판 진행과정을 안내하는 시스템이 생겼다.

이런 변화는 텔레그램 성 착취 재판에서도 조금씩 이뤄지고 있다. 재판부는 '야동'이나 '음란물'로 언급되던 성 착취 동영상을 '성 착취물'이라고 표현하기 시작했다. 2차 가해가 일어날 수 있는 영상 증거 조사 시에는 최소한의 인원만을 남겨두고 퇴정시키고 있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게 방청연대자들의 설명이다. 안개 씨는 "최근 조주빈 변론재개 공판에서 추가 증거 동영상을 조사하는데 피고인들을 퇴정시키지 않았다"며서 "피해자에게는 2차 가해가 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짚었다.

"성범죄 재판, 기괴하고 불쾌했다"

eNd팀은 그간 재판을 지켜보며 언론에는 보도되지 않은 장면들도 꼼꼼하게 기록했다. 특히 가해자들의 반성 없는 태도에 화가 난 적이 많았다.

다른 성범죄 재판도 방청한 적이 있다는 두부 씨는 첫 방청에서 '너무 평범한 모습의 가해자'에 놀랐다고 했다. 성범죄는 가해자도, 재판도 흔했다. 디지털성범죄는 처음엔 양형기준도 마련돼지 않아 판사가 임의로 구형의 60%를 줄이는 일도 흔했다. 재판부가 검사에게 다른 재판부의 판결문을 요구하기도 했다. 한 재판부의 감형이 다른 재판부의 감형으로 이어지고 솜방망이 처벌이 관례가 됐다.

두부 씨는 "성범죄 재판은 정해진 모양대로 흘러간다. 변호사들도 똑같은 변론을 하고 가해자들은 죄송하다,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다"며 "재판은 마치 판결문을 찍어내는 공장 같다. 재판은 일상적인데 정작 피해자들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지 모르겠다"며 괴로움을 나타냈다.

뽀또(가명) 씨도 성범죄 재판은 어떤 틀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성범죄 재판을 보면 남성 가해자의 여성 가족이 대신 나서서 사과하고 선처를 구하는 모습을 쉽게 본다"면서 "텔레그램 성 착취 재판에서도 가해자의 어머니가 증인으로 출석해 '죄송하다'고 비는 모습이 기괴하고 불쾌했다"고 꼬집었다.

재판의 과정을 꼼꼼히 기록한다. 잊지 않으려고.

방청연대인들의 노트에는 그날그날 재판의 내용이 빼곡이 적혀있다. 검사와 변호사가 하는 말부터 가해자들의 표정도 묘사한다. 검사가 조주빈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던 날에는 '헐'이라고 쓰여 있었다.

멸균 씨는 재판방청을 하다보면 언론 보도에는 보이지 않는 점을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언론 보도를 통해 조주빈을 비롯한 공범들이 매일 반성문을 제출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면서 "재판에서의 말과 행동을 보면 전혀 반성하고 있지 않다"고 단언했다.

그는 "강훈의 변호인은 성 착취물을 '야동'이라고 표현했다. 범죄의 심각성을 알았다면 절대 쓸 수 없는 표현이다. 또 다른 가해자 강모 씨는 자신에게 엄벌을 촉구하는 사람들을 '악플러'라고 표현했다. 억울하다는 거다. 또 다른 텔레그램 성 착취방인 '완장방'의 운영자는 증인으로 나와 '완장방은 박사방보다 낫다'는 식의 발언을 했다. 성 착취에 더 낫고 말고 할 게 뭐가 있나. 대체로 범죄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유진 씨도 멸균 씨의 말에 동의했다. 유진 씨는 "어떤 가해자는 '가족들에게 괴로움을 주는 이들을 참을 수 없다'고 발언했다. 정말 뻔뻔하다고 생각했다. 타인의 삶을 파괴한 데에 전혀 반성이 없어 보였다"고 했다.

판결에 영향? 2차 가해 막는 데 의의

시민의 방청이 판결에 영향을 줄 수 있을까. 재판방청연대에 참여하는 이들은 "판사도 사람이니까 법정 안의 연대자들을 의식할거라 생각한다"면서도 "판결 자체에 영향을 주는 지는 잘 모르겠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은 판결 자체보다 판결이 이뤄지는 과정에 더 관심이 크다. 재판부가 사건의 심각성을 얼마나 파악하고 있는지, 얼마나 성의껏 자료를 검토하는지, 그리고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2차 가해가 일어나지 않는지 등이다.

안개 씨는 "경각심을 주고 싶다"며 "사법부에 '우리가 아직까지 잊지 않고 있다, 너희가 제대로 일을 하는지 감시할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고 했다.

이날 박사방의 주범 조주빈은 징역 40년을 선고받았다. 범죄단체조직죄로 함께 기소된 공범들도 중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멸균 씨는 "다른 범죄자에 비해 많이 나왔지만 검사가 구형한 무기징역에서 징역 40년으로 감형한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타당한 감형 사유도 없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조주빈은 이날 선고 이후 항소했다. eNd팀은 앞으로도 재판방청연대를 꾸준히 하겠다고 밝혔다. 이 사건이 기록되고 기억되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게 이들의 목표다.

멸균 씨는 "재판에 꾸준히 관심을 가진다는 것으로 피해자에게 연대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며 "웹하드카르텔, 소라넷 등 디지털성범죄 사건에 우리가 계속 목소리를 냈지만 무시당했고 새로운 범죄들이 생겨났다. 텔레그램 성 착취 사건을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방청에 임하고 있다"고 했다.

두부 씨는 "조주빈 외에도 조주빈처럼 적극적으로 디지털성범죄로 사업을 하려던 가해자들이 있다. 이들이 모두 제대로 처벌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법정에서의 일이 시민사회에 알려지고 평가가 이뤄진다면 사법부가 지금보다 훨씬 높은 성인지감수성을 갖게 되지 않을까"라며 "피해 사실도 쉽게 말하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방청연대가 든든하게 느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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