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안보 라인이 정리돼가고 있다. 외교안보의 투톱 국무장관과 국가안보보좌관에 각각 토니 블링컨과 제이크 설리번이 지명됐다. 그동안 미국언론에서 예상했던 범위 내의 인사이다. 예측가능성 측면에서 안정감을 주는 인사로도 볼 수 있겠다. 한반도 문제에 직접 연결된 인사이니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북한과의 협상 가능성을 말하고 동맹 중시, 제도 중시를 얘기해온 인물들이어서 기대되는 바도 있다.
하지만 좀 더 들어가 보면 걱정이 되기도 한다. 외교안보 투톱에 기용된 이들을 포함해 바이든 주변인물들 가운데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를 강조하지 않는 인물은 찾아보기 어렵다. 제재를 강조하면서 협상국면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블링컨은 '중국을 압박해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나오도록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북중관계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며, 북한의 정책 결정과 실행이 누구에게 휘둘리는 성질이 아님을 잘 알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제재 위주의 사고, 강대국 중심의 인식이 민주당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음을 한동안 경험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까지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그보다 더 큰 걱정은 미중패권경쟁이라는 큰 지붕이 동북아의 많은 이슈들을 가려버리는 상황이 계속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미중경쟁은 이미 심화되어 있고 하루 이틀 사이 정리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큰 흐름에 대응하는 미국의 방안은 공화당이나 민주당이 크게 다르지 않다. 도전국 중국의 상승세를 저지하는 것이다.
특히 워싱턴의 외교정책기득권층(FPE. Foreign Policy Establishment)은 이러한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이 세력은 정부, 의회, 언론, 학계 등에 광범위하게 형성되어 있고, 공화당, 민주당을 모두 아우른다. 이들의 관심은 미국의 지속적인 성장과 지속적인 최대 국익 확보다.
중국을 포위하고 봉쇄하는 전략은 이 FPE의 컨센서스 속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구조 속에서 대북정책은 대중정책을 효율적으로 추진하는 수단적 성격을 가지기 십상이다. 북한은 중국을 다루기 위한 구실로 계속 활용될 수 있는 것이다. 핵을 개발하고 장거리미사일을 만드는 북한을 구실 삼아 동북아에 미사일방어체제(MD)를 갖추고 군비를 강화하면서 동맹관계를 증진시킬 수 있다. 실제로는 중국을 타깃으로 하면서 북한을 핑계 삼을 수 있다면 미국으로서는 더없이 좋은 것이다.
오랫동안 워싱턴에서 외교안보 이슈를 다뤄온 블링컨, 설리번, 그리고 앞으로 임명될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안보 고위관료들도 워싱턴 FPE의 주요 구성원 또는 이와 유리되기 어려운 인물들일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바이든 행정부도 중국에 집중하면서 북한은 그냥 적으로 남겨둘 공산이 없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먼 산 불구경하듯 바라만 보고 미국의 처분만 기다려야 하나? 그러기에는 우리가 처한 상황이 너무 엄중하다. 한반도 문제가 풀려가기 위해서는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그 다음 남북교류도 활성화될 수 있다. 그 전엔 북한이 남한과 뭘 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국가발전전략을 경제건설총력전략으로 설정해놓은 북한은 <핵협상-경제제재 해제/체제안전 보장>의 루트를 통해 크게 성장하는 길을 가려하는 것 같다. 이게 되어가기 전에는 다른 것은 별 의미가 없는 걸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그런 북한에 '남북교류 먼저'를 주문하는 것은 메아리 없는 외침이다.
그러니 미국의 접근 방향을 완전히 바꿔주는 게 중요하다. 미중전략경쟁의 상황에서 '북한을 적으로 남겨두는 전략'을 '북한을 미국 쪽으로 끌어당기는 전략'으로 바꿔주는 것이다. 미국이 그동안 북한을 구실로 중국을 견제하는 전략을 써왔다면, 이제 이를 180도 전환해 북한과 핵협상을 타결하고 이를 통해 미국이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는 전략을 쓰도록 하자는 설명이다.
미중경쟁이 특히 첨예하게 나타나는 지역이 동북아이다. 북한은 중국의 유일한 동맹으로, 전략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입지를 확보하고 있다. 중국이 많은 지원을 하면서 북한을 곁에 두려 하는 이유도 그런 전략적 이유 때문이다.
1995년 미국은 과거 교전국 베트남과 수교하면서 관계를 개선해 지금은 전략적 협력관계로까지 발전시켰다. 이는 동남아에서 미국의 입지를 넓히고 대중견제를 전개해 나가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되고 있다.
물론 이렇게 되면 중국의 반발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북한에 맡기면 된다. 미국이 진정성 있는 협상에 나서고 북한이 '북핵협상-북미관계 개선-북미수교'의 길을 결심한다면, 북한은 중국에 설명할 것이다. 설명하면 중국도 이해할 것이다. 그게 북중의 역사이다. 1992년 한중수교 당시 북한은 중국의 설명을 듣고 배신감을 삭인 적이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새로운 4년을 위한 외교안보전략을 정리해나가고 있는 지금이 미국의 생각을 바꿔주는 데 적기이다. 막연하게 "북한과 협상하라"하면 미국이 들을 리가 있겠는가. "그렇게 하면 미국에 좋다", "구체적으로는 이것부터 하면 된다" 이런 것들이 디테일하게 제시되면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지만, 특히 미국은 국익이 있으면 움직인다. 지금 미국의 사활적 국가이익은 미중경쟁에서 우위를 견지하는 것이다. 그 속에서 북핵문제, 한반도문제를 풀어가는 길을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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