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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리, '정상가족' 신화에 돌을 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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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리, '정상가족' 신화에 돌을 던지다

비혼 여성의 재생산권·다양한 가족구성권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

"요즘 낙태를 인정하라고 하잖아요. 거꾸로 생각하면 아기를 낳는 것을 인정해라,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낙태만이 아니라 아기 낳는 것도 인정했으면 좋겠어요."

일본 출신 방송인 사유리(후지타 사유리) 씨가 자발적 비혼모가 됐음을 밝히며 이같이 전했다. 사유리 씨는 16일 KBS <뉴스9>를 통해 일본의 정자은행에서 정자를 기증받아 지난 4일 남자아이를 출산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산부인과에서 자연임신이 어렵다는 진단을 받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급하게 찾아 결혼하는 게 어려워" 비혼 상태에서 임신을 결심했다는 것.

사유리 씨의 '배우자 없는 출산' 소식은 한국사회에 많은 화두를 던졌다. 우선 비혼 여성의 재생산권부터 비혼모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 구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로 이어졌다.

"결혼은 됐고 아이는 낳고 싶어요"

사유리 씨는 일본에서의 출산 소식을 알리며 "한국에서는 결혼한 사람만 시험관이 가능하고 모든 게 불법이었다"고 언급했다.

사유리 씨의 말대로 그가 일본에서 받은 시험관 시술은 한국에서는 사실상 부부만 가능하다.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생명윤리법)에는 정자 기증에 대해 '배우자가 있을 경우 그 배우자의 서면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돼 있고 배우자가 없는 경우는 아예 언급을 안 하고 있다. 원칙적으로는 비혼 여성도 시술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난임 지원을 규정한 모자보건법에는 지원 대상을 '난임 부부'로 정해놨다. 비혼 여성은 비급여 진료 형식으로 시술을 받아야 한다. 또 대한산부인과의 가이드라인은 체외수정 및 배아이식은 원칙적으로 법적인 혼인관계에서 시행돼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비혼 여성은 현실적으로 시술을 받기 어렵다.

이에 따라 한국에서 법적 부부사이에서 태어나지 않은 혼외 출산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저 수준이다. 2018년 OECD 혼외 출산율 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2.2%에 불과했다. OECD 평균 40.7%, 스웨덴의 경우 50%대다.

김도경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대표는 사유리 씨의 비혼모 선언에 대해 "너무 멋지다"면서 "앞으로 시대가 변하면서 비혼모가 많이 늘어날 것이다. 지금까지 '사회 문제'로 여겨졌던 비혼모가 '사회 현상'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KBS <뉴스9> 갈무리

비혼 출산 지원? 비혼모 가정 실태부터

사유리 씨의 '비혼모 선언'은 정치권에도 파장을 일으켰다. 사유리 씨의 발표 다음날인 18일,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정책위원회 의장이 비혼 임신 합법화를 위한 법률적 검토에 착수할 계획이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러나 비혼모 등 한부모들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김 대표는 비혼 여성의 시험관 시술 허용에 앞서 비혼모 가정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2019년 기준 국내 미혼모 가정은 2만 761가구, 미혼부 가정은 7082가구다. 김 대표는 '자발적 비혼모'라는 표현에 회의적이었다. 그는 "모든 비혼모(부) 가정은 자발적"이라며 "입양을 보낼 수도 있고 불법이지만 낙태를 할 수도 있었는데 출산과 양육을 선택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한국은 비혼모에게 양육보다 입양을 권하던 사회다. 김 대표는 "아직도 포털 검색창에 '미혼모'를 검색하면 입양기관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양육을 결심했다가도 입양을 보내는 경우도 있다. 김 대표는 "비혼모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 부족한 지원 체계, 위기상황에도 도움을 받을 수 없으니 양육을 결심했더라도 입양으로 돌아서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오늘날 해외 입양되는 아이들은 전부 비혼모 자녀다. 국내 입양되는 아이들의 90%도 비혼모 자녀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벗어나 다양한 가족 구성 인정해야

김 대표는 "국가는 저출산이 위기라며 출산을 장려하지만 이 때의 출산은 '정상가족'의 틀 안에서의 출산을 말한다"고 짚었다.

비혼모(부)를 위한 지원 제도가 있어도 종류가 복잡한데다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한다. 한국의 각종 법과 제도, 복지 서비스는 '정상가족'을 전제로 만들어졌다.

'정상가족'이란 법률혼으로 맺어진 이성애자 남녀와 이들이 낳은 미혼의 자녀로 이루어진 핵가족 형태의 가족을 말한다. 정상가족은 '부양자 남성'과 '가사와 돌봄을 전담한 여성'이라는 뚜렷한 성 역할을 전제로 구성된다. 이에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가부장제와 성차별의 근간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한국의 법과 제도, 각종 복지 서비스는 '정상가족'을 전제로 만들어졌다. 건강보험 피부양자 제도부터 각종 금융 대출, 청약 등 부동산 정책도 정상가족을 우선순위에 놓고 설계돼 있다. 때문에 비혼모(부) 가정에 대한 지원은 '예외적인 경우'로, 또 권리가 아닌 시혜로 여겨진다.

김 대표는 "사회가 점점 출산과 양육에 대해 공동체의 책임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데 유독 비혼모에게는 '개인의 선택이니 스스로 짊어져야 할 일'이라는 잣대를 들이댄다"고 했다.

이어 비혼모에게 가장 필요한 지원 제도로 '주거'를 꼽았다. 김 대표는 "아기를 키우는 집이니까 제일 중요한 게 주거"라면서도 "청약이나 임대주택도 정상가족을 위주로 설계됐다"고 아쉬움을 나타났다.

특히 "비혼모는 혼자 고립된 경우가 많은데 아기를 낳고 일하지 못하는 몇 달이 가장 취약한 상황"이라며 "아기가 어릴수록 적절한 도움을 준다면 자립율이 높아진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나라가 저출산 대책으로 막대한 예산을 투자하고 있다"며 "혼자서라도 아이를 낳고 키우려는 사람들에게 적절한 지원과 보호가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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