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가 화두였던 시절에도,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는 관계에서 발생하는 성희롱·성폭력 사건은 끊이지 않는다. 그 많은 사건들 중 똑같은 사건이 없고 각양각색의 내용이지만, 직장내성폭력 사건들 대게가 직장에 튼실하게 뿌리내리지 못한 상태에서 같은 부서의 상급자나 선배로부터 성희롱·성폭력 피해를 입었다는 비중이 단연 높다.
각기 다른 직장의, 다른 사람들의, 다른 사건사고 이야기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각각의 사연이 그저 낯설기만 하지 않을 것이고, 각각의 사연이 전혀 다르게 느껴지지도 않을 것이다. 사람들의 직급이나 연차, 연령, 고용 형태 등이 차이 나는 직장 안에서 정보와 힘의 불균형은 당연한 현상이다. 갓 입사하여 사회생활 경험이 부족하거나, 고용이 불안정해서 주변에서 듣는 평가에 취약하거나, 직장에서 아직 튼실하게 뿌리내리지 못해 노력하는 과정에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자기가 모르는 것을 알고 있거나 갖지 못한 권한을 갖고 있는 사람 앞에서 한없이 연약해진다. 특히 사회생활 자체의 경험이 부족할수록 내게 없는 경험으로 압도하는 상대에게 '나는 네 편'임을 어필하거나 사랑스러운 후배로 여겨질 만한 노력을 하게 된다.
"일 잘하고 사회성도 좋다는 평가를 받고 싶었어요"
적자생존의 정글 안에서 당연한 선택이고 선임들을 향해 갖는 겸손과 존경일 수도 있지만, 문제는 나쁜 상대를 만나면 나쁘게 왜곡된다는 데 있다. 존경의 표현은 연심으로 오독 되고, 겸손하게 낮춘 자세는 만만함으로 오해된다.
일도 잘하고 사회성도 좋다는 평가를 받고 싶었을 뿐인데, 못된 상대에게 선의가 제멋대로 오독 되면서 뜻하지 않은 회사 외부에서 당하는 성폭력으로 이어지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피해가 일어나면 더 당황하게 되고, 어떻게든 문제를 크게 만들지 않고 사과받고 재발 방지 약속을 받으면서 끝내려던 노력들이 다음 순번 피해로 이어지는 일이 왕왕 일어난다. 원만하게, 조용히 해결하고 지내려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을 즈음엔 외관상 보이는 가해자와의 관계나 사건의 성질이 잔뜩 꼬인 실타래처럼 엉망이 되어버린 경우가 적지 않다. 상황이 그쯤 되면 피해로 규명되기 어려워지는 것은 물론이고 치정에 의한 복수, 금전을 노린 계획으로 몰리기에 십상이다. 말에 의해 상처받고, 무고라고 고소를 당하기도 한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그런 건 없어!"
이런 사건의 많은 피해자들과 상담을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때 알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라는 말을 많이 한다. '성폭력 등 피해가 발생한 다음에라도 자신에게 유리하게 조치할 수 있었으면, 성폭력 피해를 안 입을 수 있었다면, 가해자가 성폭력 피해를 줄 만한 엄두를 덜 낼 만한 관계 매김을 할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아쉬움을 토로한다. 사실 나쁜 사람이 나쁜 짓을 도발해오는 것을 피해자가 100% 예방할 수 있는 방법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애초에 피해는 가해자가 그런 사람인 탓이지 피해자가 그런 사람인 탓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교에, 사회에 첫 발을 딛고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을의 입장에서 나쁜 갑이 그 을을 경계하게 되면 그나마 예방이 된다. 나쁜 갑이 을에게 경계심을 갖게 하거나 나쁜 갑이 저지른 가해를 차단시키는 가장 첫 번째 단계는 친밀한 관계에 기반해서 의존하는 관계를 만들지 않는 것이다. 처음엔 불편하지만 시간의 흐름과 노력 속에 어차피 채워질 것들이니, 상대와의 '좋은 관계'로 먼저 채우거나 더 채울 것이라 기대하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좋은 관계라서 '그냥' 더 주는 것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정글 같은 사회생활에서 '그런 건 없다'라고 단호하게 알려줄 언니들이 당장에 옆에 없을 수 있지만, 젊은 우리는 그걸 믿고 서로 그런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나눌 필요가 있다.
* 이은의 변호사의 칼럼 '이변의 예민한 상담소'가 시즌2로 돌아왔습니다. 일상생활 속 성희롱·성폭력 사례를 중심으로,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언제든, 어떤 사연이든 언니에게 털어놔! 털어놓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이은의 변호사 메일(ppjasmine@nate.com)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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