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가 시행됐다.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는 한 사업 또는 사업장에 복수노조가 있을 시 일차적으로 과반수노조에 교섭권을 부여하고 소수노조와의 교섭 여부는 회사가 정하게 하는 제도다.
제도가 이와 같다면, 회사는 자신의 말을 잘 듣는 노조를 과반수노조로 만들려는 생각을 갖기 마련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노조가 소수노조가 되면 '소수노조와 교섭하지 않는다'는 간단한 의사 표시로 해당 노조의 교섭권을 박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상 속 가정이 아니다.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 시행 10년을 돌아보면, 삼성, 유성기업 등에서 실제로 위와 같은 일이 발생해왔다. 소수·미조직 노동자의 대표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된 복수노조 제도가 소수노조의 교섭권을 제약하는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와 결합해 왜곡된 결과를 가져온 셈이다.
민주노총은 지난 5월 회사 입맛에 따라 소수노조의 교섭권을 박탈할 수 있게 한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는 위헌이라며 헌법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했다. 9월부터는 헌법재판소 앞 1인 시위도 매일 진행 중이다.
<프레시안>은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가 일터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민주노조'를 어떻게 억압하는지, 왜 폐기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민주노총의 법률적 검토 및 주장을 담은 글을 싣는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019년 말부터 2020년 초까지 이어진 일련의 판결 선고로, 삼성그룹 차원의 노조파괴 범죄의 실체를 인정하면서 범죄를 공모·가담한 삼성 계열사 및 임직원과 다양한 공범들에 대하여 유죄 판결을 하였다. 삼성의 범죄에 공모·가담한 혐의로 형사처벌을 받은 이들 중 경찰,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교섭 담당 임원, 노조파괴 자문을 제공한 전 노동부 장관 보좌관과 함께 에버랜드 노동조합 전·현직 위원장이 포함되어 있다. 에버랜드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이 주체가 되어 자주적으로 단결하여 설립한 금속노조 삼성지회에 '대항'하기 위한 주요 수단으로서 삼성이 직접 설립한 노동조합인데, 삼성은 해당 노조를 '대항노조(DH)' 내지 '페이퍼노조(PU)'라 불렀다.
위 사건 범죄는 그 규모와 파급력에서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웠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대항노조에 대한 부분은 주목을 덜 받았지만, 복수노조 사업장에서 하나의 노동조합에 대한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다른 하나의 노동조합이 사용자의 공범으로 처벌을 받은 사례(대항노조 설립 및 운영으로 인한 부당노동행위 공모 공동정범으로 인정됨)는 현행 복수노조 창구단일화제도를 평가하는데 있어 무겁게 짚어보아야 할 사례로 보인다.
삼성 노조파괴 전략의 중요한 축,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 활용한 '어용노조'
헌법은 노동자의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기본권으로 정하고 있다. 이를 '노동3권'이라 부르는데, 노동3권은 사용자와 노동자 간의 실질적인 대등성을 단체적 노사관계의 확립을 통하여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 마련된 기본권이다. 헌법재판소는 노동3권의 주된 헌법적 의미는 근로자단체, 즉 노동조합이라는 사회적 반대세력의 창출을 가능케 함으로써 노사관계의 형성에 있어서 사회적 균형을 이루어 근로조건에 관한 노사간의 실질적인 자치를 보장하려는데 있다고 밝혔다. 경제적 약자인 노동자가 사용자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과 같은 결사체가 필요하고 단결된 힘에 의해서 비로소 노사관계의 실질적 평등이 실현된다는 것이다(헌법재판소 1998. 2. 27. 선고 94헌바13·26, 95헌바44(병합) 전원재판부 결정).
그러나 삼성은 "노조는 경영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는 방해물"이라는 인식 하에 노동조합 설립을 "악성 바이러스 침투"라 칭하며 노동3권을 무력화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전략을 동원했다. 삼성은 노동3권 실현을 통해 사용자와 노동자가 실질적으로 대등한 관계를 확립하고 노사관계가 사회적 균형을 이루는 헌법적 의미를 달성하는 대신, 회사가 완벽히 통제하고 관여할 수 있는 '안정화된' 혹은 '그린화된' 노사관계를 꿈꾸었다. 그 꿈이 현실화된 것이 '교섭창구단일화제도'와 이를 위한 '대항노조'의 설립이었다.
삼성은 일찌감치 복수노조 허용 시기에 맞추어 교섭창구단일화제도가 함께 도입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삼성그룹은 '비노조 경영'을 기본 방침으로 삼아 그룹 내 노사 업무를 총괄하는 미래전략실(미전실)을 중심으로 노조 설립을 차단하고 설립된 노조를 와해·고사화시킨다는 내용이 포함된 '그룹 노사전략'을 수립하였는데(명칭은 '그룹 노사안정화 대책' 등으로 변주됨), 현재 확인된 것만 해도 최소 2006년 '그룹 노사전략'에서부터 삼성이 노조 대응 전략으로서 교섭창구단일화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특히 긴 유예기간을 거쳐 복수노조 제도가 시행되던 2011년 '그룹 노사전략'에는 교섭창구단일화제도의 구석구석을 활용하여 어떻게 '진짜' 노동조합의 교섭을 차단 내지 지연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전략이 포함되어 있다. 가령 교섭창구단일화제도의 각 단계별 기한을 최대한 활용할 때 며칠 동안 교섭을 지연할 수 있는지 방안을 수립하고(삼성은 최대 137일 지연이 가능하다고 판단함), 대항노조를 설립하여 활용하기 위해 사전에 조합원 명단을 준비하고 집행부를 선정·구성해서 교섭창구단일화제도 도입 2개월 전까지 기본 교육을 실시하며, 대항노조 조합원이 다른 노조 조합원보다 1명 이상이 많도록 상시 인원을 확보하고 유지하는 대책을 마련하는 식이다.
이는 비단 삼성만이 활용했던 전략은 아니다. 경총이 2004년 9월 15일경 작성하여 공개까지 한 '복수노조의 문제점과 대응방안' 문건을 보면 기업들은 복수노조가 허용될 경우 "노노 갈등과 분열 활용", "사측에 우호적인 노조와 그렇지 않은 노조를 분리하여 차별적으로 대응함으로써 사측에 우호적인 노조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함", "강한 적은 소모전이 최고", "전략적 제3노조 설립", "교섭창구 단일화방안 활용" 등의 전략을 수립해 공유해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삼성의 2007년 '그룹 노사전략' 등을 보더라도 삼성이 경총 및 타그룹과 연계하여 국회, 노동부, 노사정위, 국가정보원 등을 통해 복수노조 시행시 경영계에 유리한 법제도 개선이 이루어지도록 어떻게 노력했는지 상세히 알 수 있다.
다시 삼성의 사례로 돌아와 살펴보면, 삼성에버랜드(현재 삼성물산) 인사팀 등에 소속되어 있던 임직원들은 '그룹 노사전략'에 따라 삼성지회 설립 직전 용인시청 공무원을 '섭외'하여 은밀하게 신고필증을 받는 식으로 대항노조인 에버랜드 노동조합을 설립하였다. 이들은 대항노조 설립, 설립신고서 제출, 신고필증 교부, 단체교섭, 임금·단체협약 체결 등의 구체적 일정과 각 단계별 할 일 및 체크리스트를 준비한 후, '직접' 대항노조 직인, 설립신고서, 총회 회의록, 규약 등 설립신고 서류를 만들었고, 미리 '섭외'한 공무원을 통해 대항노조 설립신고서 접수까지 '직접' 하였다. 삼성은 대항노조 설립 전부터 노조 교섭요구서와 사측 답변 공문, 노조와 회사 양측의 최초 제시안, 최종합의안, 교섭회의록, 조인식 등에 대한 내용과 계획을 모두 마련해 두었는데, 대항노조가 채 설립되기도 전에 노사간 최종합의안을 먼저 작성해 놓고 그 틀에 맞춰 역순으로 대항노조 및 사측 제시안을 작성한 것이다. 심지어 미전실은 대항노조가 어용노조라고 이슈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대항노조를 한국노총에 가입시킬 것을 지시하였고 그 지시대로 모두 실행되었다.
삼성은 대항노조 위원장 등 간부들을 선정한 후 이들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였다. 회사의 인사·노무 담당 임직원들이 노조 임원에게 해당 노조의 설립 이유 및 경과, 향후 계획을 정리해서 알려주고, 단체협약과 임금협약의 내용을 설명해주며, 대내외 행동지침, 단체교섭 시뮬레이션, 모의 카메라 인터뷰 교육, 언론 인터뷰 Q&A교육, 어용노조, 알박기 노조 비난시 대응에 대한 교육 등을 실시하였다. 노조 설립 및 최초 교섭 단계 이후에도 삼성은 대항노조의 "휴먼·어용노조 시비 차단"을 위해 활동내역, 교섭내역 등에 대한 증빙 자료를 만들어주고, 노(대항노조)사가 함께 모여 노동조합 정기총회, 회계감사 실시, 조합비 징수, 카페활동, 한국노총 및 노동청 등 외부 기관과의 회의 등 운영방안을 논의하였다. 또한 삼성은 검찰의 압수·수색이 있을 것을 대비하여 대항노조 위원장의 통화내역 및 관련 파일 삭제, 담당자 하드디스크 정리 등 증거 은폐 작업도 실시하는 등 지속적으로 개입·관여하였다.
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을 거쳐 삼성은 애초 계획대로 에버랜드 노동조합과 최초 단체교섭을 체결한 후 현재까지도 계속적으로 대항노조에 교섭대표 노조로서의 지위를 부여하면서 삼성지회의 교섭권을 봉쇄해오고 있다. 이에 노동자들의 자주적 결사체인 금속노조 삼성지회는 2011년 노동조합 설립 이후로 9년이 넘도록 단체교섭권을 박탈당한 상태이다. 부당노동행위 공범으로 기소되어 함께 유죄판결을 선고받은 삼성(인사팀 임원등)과 대항노조 위원장이 현재도 여전히 교섭의 상대방으로서 단체교섭을 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있는 것이다.
'어용노조' 설립 유도하는 교섭창구단일화제도, 이제는 폐기해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은 '노동조합'의 요건으로 주체성과 자주성, 목적성 등을 정하고 있다. 그런데 삼성이 만든 대항노조는 노동자들이 설립할 것으로 예상되던 노동조합(현재 금속노조 삼성지회)의 교섭과 활동을 저지하고 와해하기 위한 목적에서 사용자가 주체가 되어 간부 및 조합원을 섭외하여 조직하였다는 점에서 노동조합으로서의 요건을 일체 결여하였고, 부당노동행위 등 범죄의 수단으로서 기능하고 있는 임의적 기구에 불과하다는 것 외에 다른 법률적 평가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은 노동조합을 설립하려는 직원들이 회사 노사업무 담당자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이를 '지원'한 것일 뿐이므로 대항노조 설립 및 운영은 부당노동행위가 아니라는 식의 주장을 항소심에서까지 유지하고 있다.
삼성의 사례는 현행 복수노조 창구단일화제도가 현장에서 어떤 기능과 역할을 부여받고 있는지, 그 실태를 확인하고 평가하기에 가장 대표적인 사례이다. 대항노조 설립 및 지원, 교섭창구단일화제도를 활용한 교섭 지연은 물론이고, 대항노조를 교섭대표 노동조합이 되도록 지원하여 '진짜노조'의 교섭권과 쟁의권을 원천적으로 박탈하고 있다. 혹시라도 '진짜노조'가 다수노조가 된 경우에도 개별교섭에 동의하여 대항노조를 우대하고 '진짜노조'의 진을 빼는, 이미 검증된 전략을 활용할 수 있다.
삼성만 이런 것이 아니다. 노조파괴 사건에서는 이례적으로 검찰의 적극적인 수사가 진행된 덕에 다량의 회사 문건이 확인됨으로써 삼성 내부의 의사와 전략이 세세히 드러났을 뿐이지, 이미 교섭창구단일화제도는 합법적인 어용노조 육성방안 내지 민주노조 파괴전략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제도 시행 10년차에 접어든 현재, 사용자의 교섭창구단일화제도 '악용'이 문제가 아니라 제도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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