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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저평가된 3D·3C의 중요성을 부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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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저평가된 3D·3C의 중요성을 부각하다

[창비 주간 논평] 필수노동, 제대로 하면 급진적인 개념

코로나19 사태가 9개월을 넘어가고 있는 지금, 필수노동자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필수노동자는 감염병 위기 상황에서도 대면노동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보건의료, 사회복지 및 돌봄 노동 종사자, 배달업과 공동주택 경비, 청소 노동자 등을 지칭한다. 올 초까지만 해도 필수노동자라는 용어는 없어서는 안 될 노동자라는 의미 정도로 개별 부문에서 제한적으로 사용되었을 뿐이지만, 코로나19 사태 이후 해외 사례를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캐나다, 영국, 미국 등 국가는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봉쇄(lock-down)를 시행했으며, 봉쇄 상황에서도 비대면 노동을 멈출 수 없는 노동자들이 사회의 유지와 존속을 위해서 필수적임을 인정하고 지원책을 내놓았다.

한국의 경우, 코로나19 초기부터 콜센터 집단감염이나 택배노동자들의 과로사 등으로 대면노동을 피하기 어려운 노동자들의 문제가 터져나왔음에도 불구하고 필수노동자에 대한 지원 논의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지난 5월 '의료진 덕분에 챌린지'가 있기는 했지만, 이것이 필수노동 전반에 대한 사회적 인정으로 이어졌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분위기가 바뀐 것은 9월 초 서울 성동구가 지자체로는 처음으로 '필수노동자 보호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고, 정부가 이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9월 22일 대통령이 “코로나 감염의 위험에 가장 많이 노출돼 있고,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저임금과 불안정한 고용형태에 놓여 있는 필수노동자들에 대해 각별히 신경 쓰고 챙겨주기 바란다”라고 발언한 이후 10월 6일 '필수노동자 안전 및 보호강화 TF'가 결성되었다. 또한 이제 각 지자체는 앞 다투어 '고맙습니다, 필수노동자' 캠페인을 진행하는 중이다.

대면노동자들에게 필요한 방역물품을 지원한다든가, 필수노동자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택배노동자나 플랫폼노동자 같은 '특수근로종사자'의 산재보험 적용 제외 신청 사유 제한, 그리고 전속성 기준 개편 계획을 내놓는 것 등의 조치는 너무 늦은 감이 있을 뿐 반대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총알택배'니 '새벽배송'이니 필수적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노동 현실을 단지 노동 조건을 조금 개선해서 유지한다거나, 돌봄노동자들에게 '영웅'이나 '천사'라는 호칭을 더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노동환경 개선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짚어볼 지점도 많다.

제일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은 필수노동의 정의와 선별에 대한 문제다. 이미 구체적으로 업종을 지정하기에는 문제가 많고, 해외 사례도 통일되지 않아서 필수노동자 지원 정책을 구체적으로 입안하는 데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런가 하면 비대면 생활로 배달과 일회용 제품의 사용이 늘면서 쓰레기 대란이 예상되는 가운데, 재활용을 담당하고 자원을 분류하는 노동자들도 필수노동에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필수노동자에 대한 지원책이 강화될수록 어떤 노동이 사회의 유지와 존속에 필수적인가를 둘러싼 논란은 격화될 수밖에 없다. 돌봄노동자나 보육교사가 필수노동자라면 교사는 왜 아니란 말인가. 돌봄노동자를 지원한다면 코로나19 속에서 실직을 하고 가족을 돌보게 된 여성노동자는 어떻게 할 것인가.

만약 대면노동을 선택할 수 없는 교사나 대학강사 같은 이들이 스스로를 필수노동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현재 필수노동자를 이야기하는 방식이 지나치게 그들의 '어려운 처지'를 부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수노동자 지원을 강조하는 대통령과 총리는 거듭 필수노동자들을 '보호'하고 '도와드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감사와 지원도 물론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저임금과 불안정한 고용형태에 놓인 그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것이다. 남성의 택배노동이건 여성의 돌봄노동이건 바로 얼마 전까지 특별한 자격증 없이도 가능한 비숙련노동이라며 그 가치를 평가절하하고 저임금을 당연시하던 사회가 변화하기 위해서는 훨씬 더 근본적인 전환의 조치들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코로나19 위기가 알려준 것은 자본주의체제 내에서 저평가되던 많은 일들이 실제로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는 점이다. '3D'(Difficult·Dirty·Dangerous, 어렵고 더럽고 위험한 일), 나아가 '3C'(Cook·Clean·Care, 요리하고 청소하고 돌보는 일)라 불리는 영역에서 임금 수준이 낮았던 것은 사실 숙련도 때문이 아니라 많은 이윤이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노동력이 부족할 때 여성이든 이주자든 떠맡길 사람들을 찾는 방식으로 해결해왔기 때문이다. 반면에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가 이야기했듯이, 점점 사무실에 앉아서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의미 없는 일'을 하면서 고액의 연봉을 받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갔다.

실제로 노동에 대한 보상은 무엇을 하느냐보다는 누가 하느냐를 중심으로 결정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수노동으로 인정받는 노동과, 한 사회가 살아남기 위해 필수적인 노동 사이에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20세기 미국의 노동사를 연구한 제니퍼 클라인은 1차대전 시기 광부와 운송노동자는 전쟁 수행 시 필수노동자로 인정받았지만, 군복을 만들고 전투식량을 생산하던 이들은 인정받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후자를 수행하던 이들이 주로 여성과 유색인종이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무엇이 한 사회에 필수적인 노동이며, 그것을 수행하는 사람은 누구이며, 사회는 그중에서도 누구를 인정하고 누구를 배제하고 있는지를 따져 묻는 것은 알고 보면 매우 급진적인 행위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코로나19 이후의 탈성장과 돌봄사회로의 전환을 그저 이상적인 이야기쯤으로 치부할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19를 견뎌내고 사회와 생명의 재생산을 위한 필수적인 노동에 그에 걸맞은 인정과 보수를 책정하는 일이 그 시작이라면 그리 막연할 것도 없다. 지구에도, 일하는 자기 자신에게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노동임에도 불구하고 초과 이윤이 창출된다는 이유만으로 높은 보수를 받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이들의 생산성이 높다고 평가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한국의 필수노동자 논의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점은 농업이나 먹거리와 관련된 분야가 빠져 있다는 사실이다. 나라마다 차이가 있지만 안정적인 먹거리 사슬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노동은 대개 필수노동에 포함된다. 그리고 먹거리 사슬은 당연히 먹거리를 생산하는 데서 시작한다. 미국에서는 재배와 수확을 담당하는 노동자뿐 아니라 육류 도축과 가공을 하는 공장의 노동자까지 필수노동자로 지정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그에 비해 한국은 오로지 배송 분야에만 골몰하는 것 같다. 배송은 물론 중요하지만, 이는 한국의 필수노동자 논의의 초점이 '소비하는' 도시 지역의 삶이나 산업의 유지·존속에 있지, 사회와 생명의 보전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시켜주는 것이다. 무엇이 '필수'인지 끊임없이 물을 때 무엇이 우리 사회를 유지해왔는지 비로소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한 지평의 확장이 필수노동 논의를 제대로, 또한 급진적인 개념으로 바꾸어놓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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