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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후에도 마드리드의 '15분 도시'는 유효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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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후에도 마드리드의 '15분 도시'는 유효할까?

[좋은 도시를 위하여] 마드리드

어느덧 날이 제법 쌀쌀하다. 찬 기운을 느끼며 산책하다보니 2년여 전, 그러니까 2018년 이맘때 스페인 마드리드 거리를 열심히 돌아다니던 때가 문득 떠오른다. 여행은 꿈도 꿀 수 없는 오늘날의 형편으로 보면 그때 그 시절은 어느덧 꿈만 같다. 뉴스를 통해 들려오는 마드리드의 현실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아, 이 순간에도 코로나19 확진자가 계속 늘어나는 비상 상황이다.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는 아니지만 가장 큰 도시이자 수도인 마드리드는 역사적으로 많은 부침을 겪어왔다. 1492년 카스티야 왕국과 아라곤 왕국의 통합으로 탄생한 국가 스페인의 최초 수도 역할은 카스티야 왕국의 수도 바야돌리드가 맡았다. 그러다 1561년 펠리페 2세가 마드리드로 수도를 옮긴 이래 그 위상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이 당시 유럽의 강대국으로 급속히 부상, 아메리카 대륙을 침략하면서 거대한 제국을 형성한 스페인의 수도답게 마드리드는 유사한 제국주의 국가의 수도였던 런던이나 파리와 비슷한 위상을 가지기도 했다.

하지만 17세기 접어들면서 스페인이 급격히 쇠퇴하자, 마드리드 역시 한동안 변방의 수도로 전락했다. 20세기 들어 마드리드는 또다시 그 위상이 달라졌다. 스페인 내전과 프랑코 독재 정권을 겪은 뒤 경제적인 성장과 1976년 민주화 시대로의 진입이 맞물리면서 다시 한 번 유럽의 주요 도시로 부상한 마드리드는, 오늘날 인구 수로만 놓고 보자면 모스크바, 이스탄불, 런던, 파리 다음으로 큰 도시로 꼽힌다.

▲인구 밀도가 높은 마드리드 도심. ⓒ로버트 파우저

2018년 내가 마드리드를 찾은 이유는 사실 좀 단순하다. 고교 시절부터 대학교 시절까지 배운 스페인어를 다시 한 번 공부하고 싶어서였다. 현지에서 예전에 배운 언어를 다시 익숙하게 사용하려면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약 보름 남짓의 일정을 예정했다. 숙소는 유명 관광지가 아닌, 마드리드 시내에서 지하철로 약 20분 정도 거리의 동네 시우다드리네알(Ciudad Lineal)의 저렴한 에어비앤비를 선택했다. 관광객이 아닌 마드리드 사람들과 섞여 지내고 싶은 것이 그 이유였다.

거의 매일 숙소와 도심을 오가면서 겉에서 바라보는 마드리드가 아닌 일상적인 동네의 다양한 모습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지하철역 인근 도로에 슈퍼, 빵집, 약국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는 상가가 즐비해서, 며칠 지나지 않아 지하철에서 내려 간단히 장을 봐서 숙소로 돌아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자주 가던 빵집은 세 번 정도 빵을 살 때부터 마치 오래된 단골손님처럼 대해줬다. 비록 도심 인근이긴 하지만, 마치 공동체 의식이 강한 마을 같은 느낌이었다.

이 지역은 인구 밀도가 꽤 높은데, 상당수가 이민자였다. 스페인에 이민자가 많을 거라는 생각을 대부분 하지 않지만, 마드리드만 해도 총 인구 중 약 24퍼센트가 이민자라는 통계가 있다. 그 중에 남미에서 온 사람들이 가장 많다. 그런 까닭에 가게나 거리에서 남미 출신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겉모습보다는 그들이 사용하는 남미 스페인어의 발음이 마드리드 사람들과 확연히 다르기 때문에 알아볼 수 있었다.

▲지하철 시우다드리네알 역 주변. ⓒ로버트 파우저

마드리드 도심 역시 인구 밀도가 꽤 높은데, 일부 상업 지역을 제외하면 주거와 상업 공간이 분리되어 있지 않고, 섞여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숙소가 있던 시우다드리네알만 해도 슈퍼나 빵집 같은 근린 상업 공간은 주로 지하철역을 중심으로 모여 있는데, 마드리드 도심에서는 '시장 건물'(mercado)에 이런 가게들이 모여 있는 경우가 많다. 시장 건물은 보통 슈퍼가 들어선 지하층을 포함, 4층인데 위층에는 다양한 물건을 파는 곳과 음식점이 있다. 경우에 따라 도서관과 같은 공공 시설도 있다.

물론 이런 건물은 서울의 아파트 밀집 지역을 비롯해 세계 여러 대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마드리드는 도심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 때문에 마드리드 시민은 굳이 멀리까지 나가지 않아도 주거지 근처에서 편하게 장을 보거나 쇼핑을 할 수 있다.

▲마드리드 도심에 있는 큰 시장 건물. ⓒ로버트 파우저

나는 마드리드와 시우다드리네알에 머물면서 '15분 도시'의 편리함을 맛봤다. 15분 도시란 집에서 걸어서 15분 이내 거리에 편의 시설이 거의 다 갖춰진 도시를 뜻한다. 일상적인 쇼핑 시설은 물론, 학교, 공공시설, 종교 시설 등도 여기에 포함한다. 이런 도시의 장점은 이웃과 친밀감, 연대감이 크다는 데 있다. 비교적 비슷한 행동 반경 안에서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이웃끼리의 소속감이 형성되기 쉽고, 민주주의를 지원하는 공동체 의식 또한 커지게 마련이다. 삭막한 대도시의 삶과는 조금 다른, 각각의 개인이 '우리 동네'에 대한 소속감이 강해진다는 의미다. 이런 소속감은 지역 정치 참여로 확장할 가능성이 크고, 나아가 풀뿌리 민주주의의 심화를 기대할 수 있다.

돌이켜 보면 20세기 말까지만 해도 많은 대도시가 15분 도시였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경제 구조가 변화하고, 근린상업공간이 점차 주거지 밖으로 이동하면서 집 근처에서의 활동은 주춤해졌다. 여기에 더해 21세기에 들어오면서 사람들이 집 근처 가게 대신 온라인 쇼핑에 익숙해지자 지역 근린 상업은 대부분 큰 타격을 입었다. 인구의 고령화로 인해 학교의 통합이 이루어지면서 도시 공동체가 와해되는 사례는 일본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2020년 초 시작한 세계적인 유행병 코로나19로 온라인 쇼핑은 이제 대체 불가의 수준에 이르렀다. 언젠가 백신이 개발되고 보급되면 코로나19는 사라지겠지만, 현재의 생활 습관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코로나19 이전의 삶으로 쉽게 돌아가기 어려울 거라는 게 대부분의 전망이다. 배달의 편리함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앞으로 모든 걸 배달에 의존하게 될 것이고, 온라인 쇼핑은 점점 더 우리 일상 생활 깊숙이 들어올 것이다. 어쩌면 지하철역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사이 일상의 대부분의 필요를 해결했던 시우다드리네알 사람들도 코로나19로 인해 대부분 모든 걸 배달시키는 문화에 익숙해졌는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이 도시는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까 문득 궁금하다. 배달에 익숙해져 사람들로 붐비던 그 많은 가게들은 사라질까? 아니면 다른 업종으로 변화할까? 오프라인 가게들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도시의 시민은 이런 변화의 물결에 맞게 과연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이렇게 변화한 도시는 풀뿌리 민주주의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코로나19로 세계 거의 모든 인류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2년 전 점점 익숙해져가는 스페인어 발음을 만끽하며 하염없이 걸어다녔던 그 도시, 마드리드는 이런 어려움을 통과하고 난 뒤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 것인가. 이상적인 15분의 도시로 내 머리에 선명한 그 도시가 어떤 해답을 내놓을지 기다려본다.

필자 소개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를 역임하고, 지금은 미국에서 독립학자로 활동하고 있는 로버트 파우저가 <프레시안>에 '좋은 도시를 위하여'라는 연재를 시작한다. 그는 <미래 시민의 조건>, <서촌 홀릭>, <외국어 전파담>, <로버트 파우저의 도시탐구기> 등 인문사회 분야 베스트셀러를 쓴 작가이기도 하다. 현재는 외국어 학습에 대한 책을 집필 중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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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파우저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를 역임하고, 지금은 미국에서 독립학자로 활동하고 있는 로버트 파우저가 <프레시안>에 '좋은 도시를 위하여'라는 연재를 시작한다. 그는 <미래 시민의 조건>, <서촌 홀릭>, <외국어 전파담>과 <외국어 전파담 개정판>, <로버트 파우저의 도시탐구기>, <외국어 학습담> 등 인문사회 분야 베스트셀러를 쓴 작가이기도 하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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