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3불 입장'을 둘러싼 해석의 차이가 불거지고 있다. 2017년 9월 7일 문재인 정부는 미국의 요구를 수용해 경북 성주 소성리에 사드 임시배치를 강행했었다. 이는 "사드 배치 재검토"를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고 중국에겐 신중한 처리 입장을 전달했던 것과는 배치된 행보였다. 이로 인해 한중 관계는 더욱 경색되고 말았다.
한중간의 갈등이 격화되던 와중에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2017년 10월 30일 국회에서 '3불(不) 입장'을 밝혔다. "대한민국 정부는 사드 추가 배치를 검토하지 않고 있고, 미국의 미사일방어체제(MD)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기존 입장에 변함이 없으며, 한·미·일 3국 간의 안보 협력이 3국 간의 군사동맹으로 발전하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이 그것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한중 관계 개선 관련 양국 간 협의 결과'가 나왔다. 이 협의 결과에서 문재인 정부는 "사드 문제와 관련한 중국의 입장과 우려를 인식한다"며, "(사드가) 중국의 전략적 안보 이익을 해치지 않는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와 관련해 "한국 측은 그간 한국 정부가 공개적으로 밝혀온 관련 입장을 다시 설명하였다"는 내용이 담겼는데, 이는 강경화 장관이 밝힌 '3불 입장'을 의미한 것이었다.
이에 대해 중국 정부는 "중국의 국가안보를 지키기 위해 한국에 배치된 사드 체계를 반대한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그러면서도 양국은 "한중 간 교류협력 강화가 양측의 공동 이익에 부합된다는 데 공감하고 모든 분야의 교류 협력을 정상적인 발전 궤도로 조속히 회복시켜나가기로 합의"했다. 그리고 10.31 협의 결과 이후 양국 관계는 일정 부분 정상화됐다.
그로부터 3년 가까이 지난 최근, 10.31 협의 결과에 대한 한중 양측의 해석이 충돌하고 있다. 발단은 10.31 협의 결과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으로 이를 주도한 남관표 주일대사의 발언에서 비롯됐다.
남 대사는 21일 국정감사에서 "중국에 당시 언급한 세 가지는 약속도 합의도 아니다"라며, 3불 입장을 번복해도 "그런 약속이 없기에 약속 위반이라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3불 입장은 한국 정부의 자체적인 입장으로 중국에 설명한 것이지 중국에 약속한 것이거나 중국과 합의한 것이 아니라는 취지이다.
그러자 다음날 중국 외교부가 반박에 나섰다. "중한 양국은 2017년 10월에 사드 문제의 단계적인 처리에 대해 합의를 달성했다"는 것이다. "중국은 미국이 한국에 사드를 배치한 것에 단호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거듭 확인하면서 "중국과 한국이 도달한 합의에 따라 한국이 이 문제를 적절하게 다루기를 희망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한중간의 입장 차이가 드러나자 26일 국감에선 국민의힘 정진석 의원이 이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대해 강경화 장관은 "남관표 대사가 우리 정부 대표로 중국 측과 협의했다"며 "합의도 약속도 아닌 협의의 결과"라고 밝혔다. 또한 '중국이 자꾸 사드 3불 합의가 달성됐다고 하는데, 그 논평이 잘못된 것 아니냐'는 정 의원의 추가 질의에 "네"라고 답했다.
이러한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데에는 한중이 '협의(協議)'라는 같은 한자를 쓰면서도 중국에선 '협의'가 협의와 합의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는 차이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실제로 중국 외교부는 사드 3불 입장과 관련해 "달성협의(达成协议)"라고 밝혔는데, 이는 "합의를 달성했다"는 취지로 쓴 것이다.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영문판에도 "reached agreement(합의를 달성했다)"라고 나와 있다.
문제는 해석상의 차이로 끝나지 않는다. 자칫 또다시 사드 문제로 인해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할 위험도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14일 한미안보협의회의(SCM) 공동성명에서 "양 장관은 성주기지 사드 포대의 안정적인 주둔 여건을 마련하기 위해 장기적인 계획을 구축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다음날 성주 사드기지에는 시설 개선공사를 위한 물자가 주민들의 반대를 뚫고 반입되었다. 문재인 정부가 '3불 입장'이 약속이나 합의가 아니라 협의이며 번복 가능하다고 밝힌 것도 사드 정식 배치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을 가능케 하는 대목이다.
한중이 10.31 협의 결과를 통해 양국 관계를 순차적으로 개선하기로 한 데에는 '사드 현상 유지'가 주효했다. 그런데 임시 배치 상태에 있는 사드가 정식 배치 수순을 밝는다는 것은 '현상 변경'이 되고 만다. 시진핑 주석의 방한이 추진될 정도로 정상화되어가던 한중 관계가 또다시 악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중간의 전략 경쟁이 첨예해지고 있기에 그 후폭풍이 과거보다 더 거세게 몰아칠 수도 있다. 미국이 다음 카드로 중거리 미사일의 한국 배치를 꺼내들 수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해볼 때, 사드 정식배치에 따른 국익의 손실은 경제부터 외교에 이르기까지 다른 문제들과 악순환을 형성하면서 장기화될 공산이 크다. 반면 현 상태를 유지하거나 사드 철수를 도모할 경우 한미관계의 갈등과 국내에서의 논란은 커질 수 있지만, 이는 일시적으로 끝낼 수 있다.
이는 결코 친중반미의 선택이 아니다. 오히려 사드 배치가 중국-러시아 간의 전략적 결속을 강화시켜왔고, 미국의 전통적인 대전략 가운데 하나가 중러 결속을 차단하는 데에 있다는 점에서 미국에게도 이로운 측면이 있다. 문재인 정부의 현명한 판단을 촉구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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