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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인권은 언제까지 비주류 언어 취급 받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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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인권은 언제까지 비주류 언어 취급 받을까

[휴먼 라이츠 브리핑] 학생인권 고민 없는 미래교육은 허구

학생인권이 제도권 안의 언어가 된지는 벌써 10년이 됐다. 2010년 경기도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면서 교육행정의 공식적인 업무영역으로 들어왔다. 그 이전에는 인권운동 또는 청소년운동의 영역에서 발화될 뿐 제도 안에서 다루어지는 영역은 아니었다. 교육행정의 업무영역으로써 학생인권은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는 지역이 늘면서 점차 확장되었다. 2011년 광주, 2012년 서울, 2013년 전북, 2020년 충남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었고, 이제는 조례의 유무와는 크게 상관없이 교육행정에서 학생인권이 다루어지고 있다.

그동안 학생인권의 구체적인 현실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학생인권의 단골메뉴였던 체벌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사랑의 매'라는 말 자체가 고어가 되어가고 있다. 두발이나 복장 단속도 지역별 편차가 있지만 많이 완화되었다. 최근에는 두발 단속으로 머리 한가운데 소위 '고속도로'가 났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방과후 프로그램과 자율학습에 대한 선택권 보장도 나아지고 있다. 무조건 남도록 하는 강제는 거의 사라졌고, 10시 이후 심야시간까지 운영도 대부분 금지하고 있다. 인권교육도 거의 모든 지역에서 시도하고 있다. 10년 전 중, 고등학교를 다녔던 사람이라면 격세지감을 느낄만한 변화다.

그런데 학생인권이라는 말은 여전히 비주류의 언어이다. 교육행정의 업무 내에서 학생인권과 관련한 사업의 외연은 확장된 것이 분명하다. 각 지역교육청의 주요업무를 살펴봐도 학생인권과 관련한 사업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특히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되고 있는 지역은 학생인권 관련 부서를 두고 있고, 학생인권 침해에 대해 상담하고 조사하는 적극적인 기능까지 수행하고 있다. 경남의 경우에는 학생인권조례가 없음에도 교육인권경영센터를 두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왜 학생인권은 여전히 비주류의 언어인가? 그것은 중요한 교육정책이 논의될 때마다 학생인권이 호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학생인권은 여전히 비주류의 언어

올해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 18세 청소년들이 처음으로 투표에 참여했다. 2002년 선거권 연령이 20세일 당시 "군대 YES, 세금 YES, 결혼 YES, 투표는 NO?"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작된 18세 선거권 운동이 18년 만에 결실을 맺은 것이다. "학교 다니는 학생은 투표할 수 없다."는 반대를 딛고 얻어낸 성과는 많은 청소년들로부터 환영을 받았다. 교복을 입고 단체로 투표를 하러 가고, '인증샷'을 찍어 SNS에 공유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정치사에서도 중요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2019년 말 공직선거법이 개정되자 교육계도 분주했다. 학생들에게 참정권 교육을 어떻게 시킬지가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정작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되면서 제대로 진행되지는 못했지만 교육 당국과 선거관리위원회는 대책 마련에 호들갑이었다. 그런데 이때도 학생들은 시민권을 가진 인간으로 호명된 것이 아니라 교육의 대상으로만 호출되었다. 이미 학교에서 대표를 뽑는 선거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학생들에게 투표를 어떻게 하는지, 또 어떤 행위가 선거법을 위반하는지에 대한 것이 전부였다. 그나마 모의선거조차 선거법 위반이라는 이유로 가로막혔다. 18세 청소년의 정치적 기본권이라는 차원에서의 논의는 전혀 없었다. 학교 안에서 18세 학생들의 정치적 기본권을 어떻게 보장하고 확장할 것인지는 감히 생각지도 못했다. 학생은 18세 선거권의 주체들이지만, 권리의 주체로 초대받지 않은 것이다.

의회가 정부의 국정 수행을 감시하고 견제하기 위해 실시하는 국정감사에서도 학생인권은 호명되지 않는다. 국정감사 시기가 되면 행정기관은 국회의 요구 자료를 준비하고 작성하느라 정신이 없다. 자료가 부실할 경우에는 국회로부터 심한 질책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긴장되는 일이다. 때로는 생각지도 못한 자료를 요구하거나 날카로운 지적이 있기도 해 당황할 때도 있다. 정말 갖가지 자료를 요구하기 때문에 '자료 폭탄'이라는 부정적인 표현도 하고 대체로 공무원들에게 환영받지는 못한다.

그런데 유독 학생인권과 관련한 자료의 요구는 드물다. 그래서 어떤 의원이 학생인권 관련 자료를 요구했다고 하면 반가운 마음마저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학생과 관련한 자료의 요구가 없다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 교육의 수혜자, 보호의 대상으로서 학생과 관련한 자료의 요구가 있을 뿐, 학생이 학교에서 자신의 권리를 어떻게 보장받고 행사하고 있는지에 대한 자료는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에 비하면 교권 또는 교원의 교육활동과 관련한 자료의 요구는 거의 모든 의원이 관심을 갖는 영역이다. 자료의 요구량에서도 압도적으로 차이가 있다. 이는 국정감사장의 상황으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국정감사 현장에서 교권은 호명되어도 학생이 호명되는 일은 거의 없다.

학교 현장을 들여다봐도 마찬가지다. 학교의 공식 업무에 학생인권은 따로 있지 않다. 물론 학교마다 약간의 편차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학교에서 학생인권은 그저 인권교육 담당자의 일일 뿐이다. 학교폭력과 교권보호가 학교 업무의 중요한 영역으로 자리를 잡았지만, 학생인권은 공식적인 경로조차 없다. 말하자면 학교 내에는 학생인권 침해가 발생해도 이를 구제할 마땅한 기구가 없는 것이다. 물론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들이 학생인권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생활규칙이나 학생 자치는 특히 그렇다. 하지만 그것이 학생인권이라는 말로 호명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차이가 크다.

주요 교육정책 논의에서 호명되지 않는 학생인권

최근 교육계는 '미래교육'이 화두다. '4·16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교육적 성찰, 4차 산업혁명으로 일컬어지는 전환적 사회변화와 함께 코로나19가 몰고 온 대혼란이 결정적 이유다. 2019년 경기도가 '2030 경기미래교육'을 수립하면서 선도했다. 이후 코로나-19의 급속한 확산으로 학생들이 등교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교육계 전체가 분주해졌다.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대비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들이 포럼이나 연구 등을 통해 고민되고 있다. 각 교육청별로 미래교육의 방향과 상을 그리는 구체적인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이런 흐름 속에서 최근 교육부는 '코로나 이후, 미래교육 전환을 위한 10대 정책과제 시안'을 발표했다. 10대 정책과제(안) 중 '유·초·중등 교육' 분야는 ▲미래형 교육과정 마련 ▲새로운 교원제도 논의 추진 ▲학생이 주인이 되는 미래형 학교 조성 ▲학생 성장을 지원하는 교육안전망 구축 등 4개가 해당한다. 학생이 주인이 되는 학교를 만들겠다고 하니 반가운 마음이지만, 내용을 보면 실망스럽다. 학생회의 법적 근거 마련, 학교운영위원회 참여, 학생회실 환경 개선, 학생 참여 예산제 실시, 시민교육 강화 등 새로울 것이 없는 내용이다. 학생인권은 언급조차 되지 않았고, 학생을 학교 안의 '예비시민'으로만 설정하고 있을 뿐 '시민인 학생'은 무시되고 있다.

인류가 근대사회로의 전환을 선택했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인간의 존엄을 어떻게 하면 잘 보장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연결된다. 미래교육의 설계가 기존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혁신적인 정책 몇 가지를 제시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더구나 4·16에 대한 성찰을 얘기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적어도 학생의 인권과 존엄이 교육의 복판에서 호명되는 전환을 꿈꾸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에 대한 고민 없이 미래교육을 얘기하는 것은 허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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