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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공항, 반대를 위한 반대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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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공항, 반대를 위한 반대를 위하여

[제주도가 환경부 장관에게] 29

제주도는 한국에서 자연생태의 원형이 그나마 남아있는 드문 땅입니다. 그리고 현재 난개발에 따른 갈등의 섬, 지구온난화로 인한 위기의 섬입니다. 살아야하고 살려야한다는 절박감에 동료 시민에게 메시지를 보냅니다. 그리고 이 메시지가 환경부 장관에게 가 닿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인류가 뭇 생명과 더불어 생존하기 위해서는 시민의 노력만이 아니라 정책과 노선의 전환이 절실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제주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가 임박해 위기의식 가운데 연재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환경부가 동의하고 국토부가 기본계획을 고시하면 제주 제2공항 사업은 법적 지위를 갖게 됩니다. 전략환경영향평가에 대한 환경부의 판단이 나올 때까지 우리는 매일 글을 이어갈 것입니다. 제주 제2공항 사업만이 시대와 지역의 문제는 아니지만, 이 구체적인 사안을 배경으로 우리의 제주발 문제의식은 펼쳐질 것입니다.

제주도가 환경부 장관에게 연재 바로가기

‘반대를 위한 반대’라는 비난

제2공항을 반대하는 도민여론이 60%에 육박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주요 포털사이트에서는 ‘반대를 위한 반대’를 멈추라는 댓글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댓글들의 주장은 소위 ‘전문데모꾼’들이 공항 반대여론을 선동하고 있으며 이들은 사안에 대한 구체적인 판단을 하지 않은 채 오직 국가가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반대만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백인백배. 2019년 2월 25일. 제주도민 120여명이 제주도청 마당에서 난개발로 인한 제주의 파괴를 막자는 염원으로 백배를 했다. ⓒ김수오

‘반대를 위한 반대’라는 비난은 비단 제2공항 문제뿐만이 아니라 시민들이 부당한 권력에 저항할 경우에 그들에게 가장 쉽게 가해지는 비난 중 하나이다. 이 표현은 겉으로 보기에는 무조건적인 반대가 아닌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판단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지만, 실제로는 전혀 객관적이고 중립적이라고 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주장을 담고 있다.

제2공항 문제로 예를 들자면, ‘반대를 위한 반대’라는 비난은 반대세력의 출신을 문제 삼는 방식으로 제기된다. 흔히 “육지 사람이 왜 제주 문제에 간섭하느냐”는 식으로 표현되는 이러한 주장은 자의적인 방식으로 남발되곤 한다. 왜냐하면 이는 근본적으로 공항은 제주도민만이 아닌 모든 국민이 이용하는 시설이라는 국토부의 주장과 상충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육지 사람들은 간섭하지 말라는 식의 주장은 제주도민의 반대여론이 과반을 넘어서는 현재 슬그머니 “공항건설을 여론조사로 결정할 수는 없다”거나 “육지에서 내려온 데모꾼들이 물을 흐리고 있다”는 식의 주장으로 변하곤 한다.

또한 ‘반대를 위한 반대’라는 비난은 제2공항 반대운동에 참여하는 몇몇 이들의 진의를 문제 삼는 방식으로 제기되기도 한다. 저들은 강정마을과 비자림로에서도 똑같이 반대했으며, 장소를 옮겨다니면서 반대만 일삼으며 여론을 호도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오히려 제2공항 문제가 단순히 공항 건설여부를 결정하는 문제가 아닌 강정마을, 비자림로 그리고 길게는 30여년간의 개발반대투쟁의 연장선상에 있는 문제임을 드러내준다. 제2공항을 그 연장선상에서 바라볼 때 우리가 만나는 것은 경제논리를 앞세운 무조건적인 개발로 얼룩졌던 제주 개발의 역사이다. 역사적 과오를 잊은 이러한 비난은 제주도민의 과반수가 공항 건설에 반대하는 이유를 단순히 ‘전문데모꾼’들의 선동으로 돌릴 뿐이다.

▲2019년10월14일. 제주도를상대로 한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의 국정감사 날, 제주도청과 제주도교육청 앞에 시민들의 목소리가 걸렸다 ⓒ엄문희

‘반대를 위한 반대’라는 물음

그러나 ‘반대를 위한 반대’라는 프레임이 여전히 작동하는 것은 단지 공항 찬성론자들의 무조건적인 비난 때문만은 아니다. ‘반대를 위한 반대’라는 비난은 때로 합리성과 전략의 이름으로 공항을 반대하는 사람들 내부에서 제기되기도 한다. 그것은 더 이상 낡은 운동방식을 답습해서는 안되며, 반대여론을 이끌기 위해서는 합리적이고 전략적인 운동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도 그런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사람들이 도청 앞에서 천막을 치고 무기한 농성을 진행했을 때, 목숨을 걸고 단식투쟁을 진행했을 때, 나는 그것이 너무나 생경해서 그들이 나와는 다른 세계에 있는 것처럼 여기곤 했다.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라는 물음은 합리성의 외피를 쓰고 “그래서 될 일인가?”라는 물음으로 쉽게 바뀌었다. 나는 그들 중 누구와도 대화를 나누어 본적도 없고, 그들이 왜 삶을 걸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지만 이상하게도 결론은 쉽게 내려졌다.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은 금세 그래서는 안된다는 규범적인 판단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 판단은 왠지 모르게 당연한 것처럼 느껴졌다.

생각이 조금씩 바뀌게 되었던 것은 제2공항 공개토론회를 지켜보면서 우리 사회의 공론장이 최소한의 합리성조차 결여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면서이다. 공론은 오히려 때로는 합리성이라는 함정에 갇힌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정당한 문제제기가 교묘한 방식으로 무마되는 것을 수도 없이 보았다. 국토부는 찬성과 반대 의견을 수렴해서 정책결정을 내리는 중립적인 기관이 아니라 명백한 전략과 입장을 갖고 반대의견을 무마시키려는 하나의 세력이었다.

그 순간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나는 내가 믿었던 합리성의 기준을 다시 의심해볼 수밖에 없었다. 그 때 나는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어쩌면 이것이 ‘반대를 위한 반대’라는 프레임이 작동하는 방식은 아닐까. 나는 어쩌면 그들과 함께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공감하고 싶고, 공감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공감할 수도, 공감받을 수도 없을 거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고, 협소한 합리성에 기대어 그 두려움을 떨쳐내려 했는지도 모른다.

▲매해 여름이면 제주도민들이 제주 섬 전체를 한 바퀴 돌며 난개발 군사기지화 반대를 외치는 평화행진을 갖는다. 행진 마지막날 시청에 모여 춤을 추는 시민들 ⓒ엄문희

‘반대를 위한 반대’를 위하여

단지 각자의 가치관과 태도를 존중하자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때로는 존중 그 자체가 두려움을 벗어나기 위한 협소한 합리성에 지나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존중이 아니라 존중을 넘어서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이다. 나에게 이번 '제주도가 환경부장관에게' 기획은 그런 장이었다. 여러 사람들의 글을 읽으며 각기 다른 방식으로 치열하게 삶의 문제를 다루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함께하는 이들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보낸다.

한편으로 ‘반대를 위한 반대’라는 비난은 과도한 정치를 문제 삼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치이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반대를 위한 반대’를 거부하는 과정이 아닌 새로운 의미의 반대를 위한 반대를 구성해 나가는 과정일 것이다. 그것은 제2공항 문제를 단순히 공항건설 여부에 대한 문제로 한정시키지 않고 도민의 삶을 지속적으로 짓눌러 왔던 개발체제에 대한 문제와 연결시키는, 반대라는 이름으로 모일 수 있었던 공통의 지반을 묻는 실천이다. 제2공항에 대한 반대여론이 60%에 육박하고 있다는 사실은 단순히 도민 대다수가 제2공항 건설에 반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반대를 위한 반대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것들이 점차 ‘우리’가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현우식은 제주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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