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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천주교인입니다. 낙태죄 폐지를 찬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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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천주교인입니다. 낙태죄 폐지를 찬성합니다"

천주교 내에서도 '낙태죄 폐지' 목소리

"천주교 예비 부부 교리에서 콘돔, 피임약은 자연스러운 방법이 아니라고, 주기에 따라 여성의 몸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펴서 임신을 준비해야 한다고 교육하는 걸 듣고 너무 불편했습니다. 모두가 부모가 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부모가 되지 않는 편이 나은 사람도 있는데 피임도 안 되고 중절도 안 된다니 교육을 받는 내내 숨이 막혔습니다.

미사 후 성당 마당에서 신자들에게 볼펜을 손에 쥐어 주다시피 낙태죄 폐지 반대 서명을 권하는데 그중 얼마나 많은 신자들이 이미 얼마나 여러 번 중절을 경험했을지, 그 신자들 마음이 어떨지 전혀 헤아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참담했습니다.

오랫동안 쉬다가 미사에 간 날이었는데 그날 이후 다시 성당에 가지 않습니다. 여성을 존중하지 않고 여성의 삶에 관심이 없는 종교에 저도 마음을 닫았습니다." (천주교 신자 리따)

정부가 인공 임신중지(낙태)를 14주까지만 허용한 형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가운데 여성 천주교 신자들이 보수적인 종교계와 이런 종교계 눈치를 보는 정부를 비판하며 낙태죄 전면 폐지를 촉구했다.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모낙폐)이 14일 서울 중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낙태죄 전면 폐지를 촉구하는 천주교 신자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천주교 신자 1015명의 의견을 전했다.

모낙폐는 "종교 안에도 다양한 목소리가 있다"며 "여성 인권을 제쳐두고 '태아 생명'만 부르짖는 교회와 천주교에 실망과 분노를 전한다"고 밝혔다.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모낙폐)이 14일 서울 중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낙태죄 전면 폐지를 촉구하는 천주교 신자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천주교 신자 1015명의 의견을 전했다.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이들은 "낙태죄는 여성이 겪는 문제"라며 "교회·정부·국회는 무엇보다도 (이 문제의 당사자인) 여성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종교계는 성차별에 침묵하고 일조하는 대신 교회 내 성차별 문제에도 소리 높이는 등 여성의 삶과 인권에 더 큰 관심을 기울여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춰야 한다"고 했다.

자신을 '서울에 사는 41세 신자 마리아'라고 밝힌 글은 "천주교회에서는 태아도 생명이니 낙태는 살인이라며 낙태를 반대한다. 심지어는 산모가 죽을 병에 걸려 시한부 인생이라 할지라도 낙태 반대하며 태아먼저 살리라고 할 정도"라며 "그런 교회이니 여자들이 어떤 이유로, 어떤 마음으로 임신중단을 결정하는지는 전혀 생각도 안하고 안중에도 없다. 오히려 임신중단하는 여성들을 죄인으로 몰아가고 교회 공동체에서 내쫒으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모든 혼외임신, 심지어는 성범죄 피해를 당한 책임도 여자에게 묻는 게 지금 한국 천주교회"라며 "피눈물을 흘리며 임신 중단을 선택하는 여자들보다 임신중단을 살인이라며 여자들을 죄인으로 몰아가는 한국 천주교회 성직자들과 수도자, 신자들이 더 반생명적"이라고 했다.

정부가 종교계의 눈치를 본다는 비판도 잇따랐다. 천주교 신자 크리스티나는 "대한민국은 정교분리의 나라인데 왜 이렇게 종교 집단의 눈치를 보느냐"며 "종교는 국민을 대변하지 않는다. 당신(정치인)들이 국민의 의견을 대변해야 하고 많은 사람들이 낙태죄 폐지에 내는 목소리를 들어 달라"고 했다.

세례명 엘리사벳은 "이미 헌법불합치 판정이 나온 낙태죄 폐지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정부에 실망을 금할 수 없다"며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에 대해서는 그렇게 애틋하고 소중하게 여기면서 이미 태어난 아이들에 대한 복지는 어떤지 먼저 되돌아보기를 바란다. 아동보호법이 개정되었어도 여전히 많은 아이들이 학대당하고 방치당하고, 여전히 많은 아이들이 수많은 병원비 앞에 놓여 있고, 여전히 많은 아이들이 입양시설 앞에 버려진다"고 지적했다.

박은주 모낙폐 집행위원은 "여성들이 생명이 소중하지 않아서 임신중지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왜 여성이 출산을 선택할 수 없는지 정부는 고민해야 한다"며 "아일랜드는 천주교 신자가 많지만 그들은 낙태죄 폐지를 이끌어 냈다. 개인의 종교적 신념이 타인의 삶을 침해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모낙폐는 지난 9월 말부터 2주 동안 천주교 및 일부 개신교 신자로부터 자신의 세례명과 함께 낙태죄 폐지 의견을 받았다. 이들은 이 의견서를 청와대와 국회·법무부·보건복지부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모낙폐는 정부안의 입법 예고 기간이 만료되는 11월 6일까지 매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며 각 지역과 온라인에서도 '낙태죄 전면 폐지' 운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한편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지난 8월 성명에서 "가톨릭 교회는 인간 생명은 수정되는 순간부터 인간이며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중받아야 함을 일관되게 천명하고 있다"며 천주교 교단 차원에서 낙태죄 폐지 반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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