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으뜸, 물의 하늘에서
후드둑 탁! 굵직한 참나무 우듬지들이 하늘을 메운 숲속에서 도토리가 떨어진다. 도토리 하나 떨어지는 소리에 덜컥 놀랄 정도로 숲속은 고요하다. 도토리를 떨군 나무들이 황이 들고 잎사귀마저 떨구면 또 계절이 바뀔 것이다. 가을이 깊어 가고 있다.
여기는 전라북도의 첩첩 산골, 남덕유를 지난 백두대간이 지리산을 향하면서 동쪽으로 한 번 굽이치며 서쪽으로 풀어놓은 산자락들 가운데에 자리 잡은 고장, 장수이다. '물의 으뜸'이라는 뜻을 가진 '장수(長水)'는, 말 그대로 물이 시작되는 고원, 금강과 섬진강의 발원지를 품은 고장이다.
여기에 '물의 하늘', '천천(天川)'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얻은 곳이 있다. 뜬봉샘에서 시작된 물줄기가 장수읍을 거쳐 덕유산에서 내리는 물줄기들을 아우르며 흘러 금강이 시작되는 곳이다.
천천은 강을 따라 양쪽으로 펼쳐진 산자락들에 하나씩 깃들어 있는 작은 마을들로 이루어진 면이다. 이것은 그 작은 마을들 가운데 하나인 양명동의 한 골짜기, '지풍골'에서 시작되는 이야기이다.
읍에서 일자로 편안하게 흘러온 강이 산을 만나 동쪽으로 크게 에도는 굽인돌이가 지풍골의 초입이다. 오래된 시멘트 포장길을 오르면 잠깐 사이에 눈이 확 트이는 이색적인 풍경을 맞이하게 된다. 사방이 능선으로 둘러싸인 너른 골 안은 온통 사과밭이다. 특이하게 눈에 띄는 것은 남쪽 산 능선 아래 경사지에 넓게 조성된 방목용 초지이다.
지풍골의 청년농부
이 지풍골 안에 들어선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궁금증이 생겨난다. 이 특이한 지형의 골 안에서 사과농사를 지으며 소를 방목하며 키우는 사람은 누구일까?
시간을 좀 되돌려 보자. 14년 전, 아직도 돌아오는 사람보다 떠나가는 사람들이 많고, 보잘 것도 없고 미래도 없어 보이는 지풍골 골짜기를 찾아든 한 청년이 있었다. 우연히 찾아보고 그 자리에서 들어올 결심을 했다던가? 소를 방목으로 키우겠다는 꿈을 갖고 있던 그에게 그곳은 아주 괜찮은 장소였던 모양이다.
스물여섯이라 했다. 소를 방목하려는 어떤 사람이 그 골짜기에 마음이 붙들리는 것은 그럴 법한 일이다. 하지만 스물여섯 청년이, 세상과 동떨어져 있는 듯한 무인지경의 골짜기에 마음이 붙들리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소를 키우는 것도, 사과농사를 짓는 것도 요즈음의 스물여섯 청년에게 흔하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열네 번의 해가 바뀌었다. 그의 20대와 30대가 그 골 안에서 흘러갔고, 그의 청춘은 사과농사와 소 방목에 바쳐졌다. 스물여섯 청년이 14년 동안 사계절을 홀로 일하며 감당해야 했던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그가 14년을 일군 농장을 보노라면 그가 바친 노고가 어떠한 것이었겠는지 묻지 않고도 알 수 있다.
청년농부의 추석
그는 야트막한 산 하나와 작은 계곡을 사이에 둔 내 이웃이다. 그는 올 추석을 길거리에서 보냈다. 추석을 앞두고 아무 통보 없이 기습적으로 들이닥친 태양광발전 사업자의 굴삭기와 트럭을 막아내야 했기 때문이다.
1년 전, 2019년 10월 16일, 그의 농장 바로 아래 방치된 밭 1만 평에 태양광발전시설 개발이 허가되었다는 소식은 청년농부의 가슴에 꺼먼 먹장구름을 몰고 왔다. 그는 사업철회를 위해 지난 1년간 발이 닳고 입이 부르트도록 여기저기로 뛰어다니며 민원을 제기하고, 반대이유서와 진정서를 제출하며 군과 의회에 간곡하게 호소했다.
2020년 1월, 그가 제출한 위 진정서의 내용이 사건의 전말을 압축해 보여준다. 태양광발전시설에 의해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청년농부는 설명회의 통보조차 받지 못했고, 사업자는 취지에 맞지 않는 설명회를 허가요건으로 사용한 것이다. 이 일은 결국 마을주민들 간의 의심과 불화를 야기하고 말았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시작된 공사강행과 절박한 청년농부의 긴급한 호소에 마을 주민들과 지역의 뜻있는 사람들이 힘을 합해 나섰다. 그들은 현수막을 걸고 새벽부터 쳐들어오는 굴삭기를 막아가며, 우리가 왜 지풍골의 대규모 태양광 발전시설을 저지하는가를 이야기하면서 사업 철회를 호소하고 있다.
태양광발전사업이, 잘 살지는 못해도 평화롭고 정이 있던 시골 마을들을 온통 벌집을 쑤셔놓은 듯 어지럽히고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허가를 따내려는 업자들에 의해 사람들이 반목하고 마을 공동체가 파괴되고 있다.
한 해 사이에 강을 따라 논과 밭을 적셔주며 고즈넉이 펼쳐져 있는 산등성이에 흉물스러운 검정 패널들이 여기저기 들어섰다. 올해 무섭게 퍼붓던 장마에 태양광 시설들이 곳곳에 사태를 일으켰지만, 이 곳의 사례는 언론에서도 다루지 않았다. 언론에서 인용하는 산림청의 태양광시설로 인한 산사태의 통계에는 들어가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왜 태양광에 맞서는가?
지풍골의 청년농부와 마을 사람들이 태양광발전사업을 막으려 하는 주요한 이유는 대체로 세 가지다. 하나는 바로 앞에 들어서는 시설이 농장에 미칠 직접적인 피해에 대한 위기감이다. 또 하나는 지풍골이 '장수가야'의 역사를 고증하는 문화재적 가치를 지닌 장소이기 때문이며, 마지막 하나는 가파르게 사라지는 농토에 대한 깊은 우려 때문이다.
지풍골 청년농부의 농사는 과수와 가축이다. 과수와 가축은 환경변화에 민감한 편에 속한다. 산 능선으로 둘러싸여 대기의 확산이 원활하지 않은 지풍골의 독특한 지형에서, 바로 앞 1만 평의 땅을 뒤덮은 태양광 패널이 필연코 야기할 온도 변화와 빛 반사, 소음과 화학물질 오염 등은 거의 재난에 가까운 생태계 교란일지도 모른다.
태양광업자들은 어떤 피해도 검증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생태계 교란에 의한 피해란 한두 해 사이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대규모 태양광시설이 농촌에 들어서기 시작한 것이 불과 3~4년간의 일이고, 그것은 농업에 미치는 영향을 과학적으로 검증할 만큼의 시간이라고는 할 수 없다.
2008년에 시작된 '4대강 정비사업'의 영향이 10여 년이 지난 최근에 와서야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그 영향에 대한 부정과 긍정의 논쟁이 계속되고 있는 현실과 닮은 사례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온 나라를 통틀어 태양광 발전시설로 인한 피해에 대해 확인하고 검증할 만큼의 시간을 확보한 적이 없고, 따라서 결론을 확인할 만큼의 충분한 데이터를 축적하지 못한 상태다.
1만 평의 땅을 뒤덮은 태양광 패널 앞에서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며 살아가는 일이 어떤 고통을 수반할지, 농사짓는 사람들은 다 안다. 지금은 아니지만, 그 고통이 언제 나에게도 닥쳐올지 알 수 없다는 예측은 현실적인 두려움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선 것이다.
고대 가야왕국의 유산을 지키기 위하여
두 번째 이유는 좀 더 심각하다. 지풍골 농장을 지나 200m 가량을 더 올라가면 '방아재'라는 옛 고갯마루에 닿는다. 방아재는 '장수가야'의 존재를 드러내는 침령산성에서 이어지는 가장 큰 고갯길로, 얼마 전 고대 가야의 봉수시설과 집수시설, 그리고 시루편와 토기편 등 다량의 유물이 발굴된 역사적 장소이다.
2017년,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에 오르면서 본격화된 전북 동부지역 가야왕국에 대한 고고학적 연구는 한국 고대사의 한 획을 그을 큰 사건을 예고한다. 장수 지역 곳곳에서 발굴되는 고분군과 봉수시설들은, 이곳이 바로 수수께끼의 왕국으로 불리는 가야문화의 중심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드러내고 있다.
이제까지 발굴된 240기에 달하는 고분군과 60개소의 철 생산 관련 유적은 장수가 고대 가야왕국의 문화적 중심이며 경제적 중심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21개소에 이르는 봉수대의 존재는 장수가 가야왕국을 대표하는 통신의 중심, 봉수의 최종 집결지였음을 고증하고 있다.
그리하여 장수는 무덤의 왕국, 철의 왕국, 봉수의 왕국으로 일컫는 고대 가야사의 복원이라는 시대적 사명을 가진 지역이 되었다. 가야사 복원과 발굴되는 유적은 문화재의 불모지로 남아있는 장수를 고대문화 탐방의 주요한 지역으로 등극시킬 가치 있는 자원이다. 지풍골 사람들은, 방아재 봉수대와 그 주변을 훼손으로부터 지켜야 할 필연적인 이유를 거기에서 발견하는 것이다.
사라지는 농토를 지키기 위하여
마지막 이유는 사라지는 농토에 대한 현실적인 우려이다. 태양광발전사업은 최근 몇 년 사이에 빠르게 숲과 농토를 집어 삼키고 있다. 물론 농토가 사라지는 것이 어제오늘 일인 것은 아니다. 1975년에 220만ha를 넘어섰던 농토가 2018년 160만ha를 하향 돌파함으로써, 30%에 달하는 농토가 사라져버렸다. 무려 64만ha가 넘는, 서울시의 10배에 해당하는 면적이다. 비례하여 식량자급률은 80%에서 23%로 수직 낙하했다.
반세기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일어난 농토와 식량 생산의 극단적 감소 앞에서 막연하게나마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은 없다. 특히 농토의 상실은, 그것이 돌이킬 수 없다는 성격으로 해서, 또한 최근 10여 년간에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 것으로 해서, 생각 있는 여러 사람들의 심각한 우려를 불러일으킨다. 농토가 사라지는 것은 농사짓는 사람들이 기대어 사는 터전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주저앉아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오늘은 지풍골 청년농부가 직격탄을 맞았고, 내일은 누구 차례가 될지 알 수 없다. 값싼 농토로 인해, 값싼 농산물로 인해 태양광의 표적이 되어버린 시골은 뒤숭숭하다. 태양광으로 불로소득을 꿈꾸는 소수의 지주들과, 일확천금을 노리고 시설사업에 뛰어든 부나비 같은 업자들을 제외하곤 태양광발전을 환영하는 사람들은 없다. 태양광 패널로 인해 바야흐로 시골풍경이 뒤집어지는 중이다.
우리 땅이 품은 풍경을 지어낸 사람들
우리 땅에는 예로부터 간직한 고유한 풍경이 있다. 마을을 이룬 어디를 가나 평탄한 들을 제쳐두고 비좁고 가파른 산자락들에 옹색하게 붙들려 있는 집들의 모습이다. 요즘 사람들 눈에는 전망을 확보하려는 의도로 보이겠지만 천만에다.
옛 사람들은 농토를 가장 귀중하게 여겼다. 그것은 가장 좋은 땅은 우선하여 농토로 내고, 집 자리는 농사짓기 어려운 비탈에 올라붙은 것이 만들어낸 풍경인 것이다. 우리가 자연이라고 여기는 시골의 경관과 풍경도 이렇게 사람의 생각과 가치관이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하여 가치관이 바뀌면서 풍경도 따라 변한다. 크게 넓지는 않아도 강을 따라 양쪽으로 가지런히 펼쳐져, 산과 들과 강이 아름다운 비례로 어우러져 사계절 다른 빛깔로 사람들 마음에 유다른 애착을 불러일으키던 풍경이 사라지고 있다.
풍경이 밥 먹여주냐고? 글쎄다. 풍경이 밥 먹여주는 것이 아니라면 행정관청은 어째서 몇 년 전부터 관광을 입에 달고 있는 걸까? 그들은 일찌감치 '농사로는 가망이 없으니 체험 휴양 치유 관광이나 해라'라고 나팔을 불어 대고 있지 않은가?
독보적인 문화재나 유명한 관광지를 갖지 못한 평범한 시골 지역에서 관광이 될 자원은 그야말로 시골다운 풍경뿐이다. 시골의 풍경은 농부들의 생각과 가치관이 만들어내는 것, 그것은 곧 그들이 재배하는 작물이요, 그들이 키우는 가축들이다. 따라서 농사가 가망 없으면 관광도 가망 있는 일이 아니다.
가장 낮은 들에는 벼가 자라고, 논둑과 야트막한 구릉지와 산자락에 갖가지 잡곡과 채소들이 빼곡히 자리 잡고, 사람 사는 집들이 들어선 뒤쪽으론 여러 산업의 원료를 제공하는 나무들이 이룬 숲이 둘러진 풍경, 그것이 우리가 익숙하게 보아왔던 우리 시골의 고유한 모습이다.
그것은 우리가 무엇을 먹고사는 사람들인가를 보여주는 풍경이고, 우리가 무엇을 귀중히 여기는가를 드러내는 풍경이며, 우리 삶의 질서와 조화, 정체와 가치를 말해주는 풍경이었던 것이다.
사과나무와 소와 청년농부의 미래는?
'농토'와 '사람'은 소멸 위기에 다가가고 있는 시골의 가장 소중한 자원이다. 행정 절차에 따라 태양광발전시설 허가장에 기계적으로 도장을 눌러대는 주무관들에게 묻고 싶어진다.
스물여섯 살 청년이 열정을 다해 바친 14년 세월을 도장 하나로 바꾸면서 '우리는 법대로 한다'고 말하는 그 입이 떨리지 않던가를. 스물여섯 청년이 14년 동안 농토에 바친 땀과 인내를 무지르며 도장을 누르는 그 손이 떨리지 않던가를.
농토가 사라지면 사람도 사라진다. 먹을 것을 생산하지 못하는 땅에 남아있을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방아재에서 내려다보이는 저녁노을이 좋아 이곳에서 살다가 죽어야겠다고 다짐했던 청년, 환경을 생각하고 지속 가능한 농업을 지향하며, 여름에는 풀을 깎고 겨울에는 눈을 치우며 그렇게 14년을 하루 같이 농장을 지켜온 청년, 그는 자기의 농토를 지켜낼 수 있을까? 그가 과연 자기의 청춘을 바친 사과나무와 소들을 지켜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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