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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가 경제개발이라는 감옥에 갇힌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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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가 경제개발이라는 감옥에 갇힌 게 아닌가

[제주도가 환경부 장관에게] 14

제주도는 한국에서 자연생태의 원형이 그나마 남아있는 드문 땅입니다. 그리고 현재 난개발에 따른 갈등의 섬, 지구온난화로 인한 위기의 섬입니다. 살아야하고 살려야한다는 절박감에 동료 시민에게 메시지를 보냅니다. 그리고 이 메시지가 환경부 장관에게 가 닿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인류가 뭇 생명과 더불어 생존하기 위해서는 시민의 노력만이 아니라 정책과 노선의 전환이 절실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제주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가 임박해 위기의식 가운데 연재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환경부가 동의하고 국토부가 기본계획을 고시하면 제주 제2공항 사업은 법적 지위를 갖게 됩니다. 전략환경영향평가에 대한 환경부의 판단이 나올 때까지 우리는 매일 글을 이어갈 것입니다. 제주 제2공항 사업만이 시대와 지역의 문제는 아니지만, 이 구체적인 사안을 배경으로 우리의 제주발 문제의식은 펼쳐질 것입니다.

제주도가 환경부 장관에게 연재 바로가기

당연한 것

나는 마을 사람들이 앞동산이라고 부르던 동네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네 군데의 올레길 중앙에는 제주말로 ‘폭낭’이라고 하는 팽나무가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터를 잡고 있었다. 눈을 뜨면 하늘이 보이고 집에서 조금 걸어서 내려가면 바다가 있는 게 당연하듯, 우리 마을의 팽나무는 나에게 당연한 풍경이었다. 그 나무는 나보다 먼저 이 세상에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 그 자리에 있는 것이 당연했다. 하늘이나 바다가 변하지 않듯이.

내가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우리 집은 이사를 했다. 이사라고 해 봐야 3반이던 소속이 2반에 속하게 된 것으로, 새집에서 할머니 집이 있는 3반까지는 걸어서 10분도 채 안 걸리는 거리였다. 결혼한 다음에는 시내로 나와 살았는데, 친정집에 갈 때면 가끔은 옛집이 있는 앞동산으로 차를 몰고 가보았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지만, 내 몸이 자라는 동안 다니던 올레길이 그곳에 있었고, 공기놀이나 숨바꼭질을 하던 친구들의 옛집도 그곳에 있어 길을 지나는 것만으로라도 고향을 숨 쉬고 싶었던 것일까.

그런데 지난해 봄에 그곳을 지나가다가 내 눈을 의심했다. 당연히 있어야 할 나무의 자리가 비어 있었다. 폭낭이 잘려나갔다는 사실에 놀랐다기보다 일이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안 돼! 라고 내 안에서 커다란 목소리가 울렸다.

나무를 지키는 사람

아이들은 내 고모할아버지를 무서워했다. 고모할아버지가 지팡이를 짚고 집을 나서 올레길을 천천히 걸어오는 것을 발견하는 즉시, 나무에 올라가 놀던 아이가 적병이 오는 걸 발견한 아군의 감시병처럼 다른 애들에게 알려 주었다. ‘빨리! 내려가 빨리!’ 아이들은 미끄럼을 타듯이 나무 아래로 내려와 고무신을 신고 달아났다. 고모할아버지가 나무 근처에까지 와 있어서 미처 도망가지 못한 아이들은 허둥대다가 무성한 잎 속으로 몸을 숨기기도 하였다. 할아버지는 지팡이를 탕탕 치며 나무에 오르면 안 된다고 야단을 쳤다. 노여움이 가득하여 흰 수염이 떨렸다. 그러나 할아버지와 아이들의 실랑이를 나는 별로 오래 보지 못했다. 그 나무 아래서 할아버지의 상여가 올레길을 나가는 모습을 보았다.

어른들은 팽나무 아래서 여름을 보냈다. 밭에서 돌아오다 잠시 쉬기도 하고 일을 하기 힘든 한낮에는 나무 아래서 장기를 두거나 아이를 구덕에 눕혀 재우며 농사일을 이야기했다. 나는 그곳에서 어린 동생을 데리고 놀았다. 똥꼬 바지를 입고 있던 동생이 쉼터 아무 데나 오줌을 싸면 나는 무척 곤란했다. 그럴 때는 근처에 있던 어른이 걸레로 오줌을 닦아 주었다. 어른들은 그 커다란 팽나무 아래서 쉬며 가을 농사를 위한 힘을 키웠고 아이들은 방학 동안 매미처럼 나무에 붙어 놀다가 어느 틈엔가 부쩍 자랐다. 해가 갈수록 나무가 줄기를 뻗어 나가는 것처럼 아이들의 팔과 다리가 길어지고 튼튼해져서 이듬해에는 나무 타는 실력이 늘었다. 여름의 이 풍경은 내 마음에 남아 이후 어떤 사람이나 어떤 일에 힘들어졌을 때 내가 행복한 공간과 시간을 가진 사람이었을 일깨워주었다.

나무의 시작과 끝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누가 그 나무를 심었는지를 아는 마을 어른은 없었다. 다만 90세에 가까워진 원로 한 분이 당신이 어릴 때도 그 나무가 아주 컸었다고 알려주셨다. 그렇다면 나무는 100년 이상, 아니 더 오래전인 200년 전부터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것일까. 폭낭 아래서 놀다 보면 나무 밑둥 부분에 둥그렇게 파인 곳이 신경이 쓰였다. 나무의 속살이 보이는 곳이라 어떤 때는 가슴 속을 후벼낸 것 같고 어떤 때는 나무의 얼굴로 보일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나무가 어떻게 그곳에서 자라게 되었는지 나무의 나이는 얼마나 되었는지 이제야 궁금해졌지만 내가 열 살 무렵에 돌아가신 고모할아버지에게 물었어야 할 일이었다. 다만 내 아버지가 이십 대였을 때 마을 청년들이 모두 나와 나무 둘레에 돌을 쌓고 시멘트를 하여 쉼터를 만들었다는 것은 들어 알게 되었다. 부서진 쉼터의 한쪽에 1967년 9월 1일이라고 적혀 있는 게 아직 남아 있었다. 내가 그곳에서 놀던 때는 더 선명했을 글자였겠다.

올레길의 커다란 나무 아래는 동네 사람들이 십시일반 걷은 시멘트 값과 크고 작은 돌을 모아 날라 집 한 채 정도의 넓이로 평평하고 반질반질한 자리가 생겼다. 그렇게 마을 공유지가 되었다. 하지만 동네 사람 그 누구도 나무와 쉼터가 마을 공유재산이니 법으로 분명하게 등기를 해두어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누군가는 땅을 내놓고 누군가는 노동을 내놓았고, 시멘트 값은 함께 걷어 만든 곳인데 이것이 동네 사람 모두의 것이라고 하는 것은 자명한 것이 아닌가.

나무가 베어진 후에야 마을 사람들에게 이 사실이 알려졌다. 어떻게 된 일인가. 원로 한 분이 마을에 의논도 하지 않고 나무를 베어도 되는 것이냐 마을 이장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3년 전 어느 날, 마을에 땅을 사고 와서 집을 지은 외지인이 이장을 찾아왔다. 그는 “나는 집을 지으려고 이곳의 땅을 샀소. 그런데 등기부를 측량해 보니 팽나무가 있는 쉼터까지 원래는 내 집터와 붙은 땅이었소. 쉼터에 있는 나무도 내 땅 안에 있는 것이나 나무를 베는 것도 내 권리요.”라고 말했다. 이장은 이 말을 마을 원로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가져가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땅의 새 주인이 법을 옆에 끼고 와서 말을 했기 때문이었다. 나무는 줄기부터 베어지다가 밑둥만 남았다. 밑둥은 너무 커서 웬만한 톱으로는 베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잘려진 폭낭 ⓒ김미정

경제개발이라는 감옥

제주도가 경제개발이라는 감옥에 갇힌 게 아닌가 싶어질 때가 있다.

강정해군기지 건설 반대 운동이 한창일 때 일부에서는 그 기지가 제주도에 가져다 줄 경제 이익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 해군기지 건설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해녀들은 마을이 보상금을 받을 것이고 이것은 마을에 이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던 사람들은 강정 바닷가의 구럼비 바위를 지키자고 했지만, 바위는 폭파되었고 해군기지가 들어섰다. 해군기지가 만들어진 지금 어떤 일자리가 만들어져서 제주도의 경제에 도움이 되고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마을 주민들은 반대파와 찬성파로 갈라졌고, 해군은 나라를 지킨다면서 강정 바닷가에 자기들이 살 집을 지었다.

다시 경제적 이익을 들어 제2공항 건설을 강행하려는 이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앞으로 더 많은 관광객이 제주로 몰려올 것이니 공항을 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코로나 사태로 관광객이 줄어들고 있지만 국토건설부는 공항건설 계획을 재검토하려 하지 않는다. 그런데 공군참모총장은 제주에 공군 기지를 짓고 싶다고 발표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반대하는 사람들은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마을의 길과 나무와 밭과 집과 학교 건물을 대신하여 제2공항 건설의 부당함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도 법은 힘이 센 사람 편에 서 있고, 이를 관철시키려는 도지사는 반대하는 사람들의 말을 귀에 담지 않는다. 제주도를 이용하여 힘을 키우는 세력들은 법을 잘 알고 이용하는 사람들이니 제주도의 발전을 위한다며 공항 활주로를 밀어붙이려 한다. 공항이 새로 생기면 활주로 아래에는 말 못하는 것들이 쓰러져 묻힐 것이다. 마을의 길과 숲과 학교의 운동장과 우리의 부모들이 엎드려 땀 흘리던 밭들이, 그리고 우리가 고향으로 기억하던 풍경들이.

묻고 싶다. 이 사업을 강행하여야만 한다고 말하는 당신께. 당신이 추진하는 사업으로 마을이 없어지고 오래된 나무가 베어지고, 사람들을 마을에서 쫒아 내고도 당신은 태연하게 잘 살 수 있는지를. 당신에게 쓰러진 후에는 형체는 없어질지언정 사람들의 가슴 속에는 커다란 슬픔으로 남을 것인데도 당신은 안녕하실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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