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한 표정으로 눈이 게슴츠레" 하다는 외모를 품평과 더불어 "채용 불가"라는 평가를 받은 지원자를 "지방대 자원"으로 조작해 정규직으로 받아들이는 건 신한은행에겐 일도 아니었다.
신한은행은 이미 이규성 전 재정경제부 장관 조카를 부정 채용한 경험이 있다. 지원자 신아무개의 부모가 누구길래, 신한은행은 면접 점수 등을 조작해 그 사람을 채용했을까.
신 씨의 아버지는 국립 안동대학교 행정직원(현재는 정년퇴직)이다. 신 씨의 모교이자, 그의 아버지의 직장인 안동대에는 신한은행이 입점해 있다.
행정직원 아들이 부정 채용되는 데에, 학교의 수장인 총장 내정자도 나섰다.
신한은행 내부 문서에 따르면, 2015년 당시 권아무개 안동대 총장 내정자는 신한은행에 신 씨의 채용을 요청했다. 신한은행은 점수 조작 수법을 사용했고, 신 씨는 그해 6월 신한은행 정규직으로 입사했다.
비슷한 시기, 총장 내정자였던 권 씨는 안동대 신임 총장이 됐다. 대학교 교직원인 부모와 총장 내정자의 '시너지 효과' 덕에 부정입사한 신 씨. 이 둘의 관계를 이용해 고액거래처 관리에 나선 신한은행.
노력으로는 가질 수 없는 '가족 스펙'과 그 가족의 연까지 동원해 신한은행을 부정입사한 신 씨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신한은행은 2015년 상반기 신규 행원 채용공고를 그해 4월 15일에 게시했다. 일반직은 120명 선발을 예고했다. 연령, 학력, 전공 제한 없는 이 공채에 약 1만1200여명이 지원했다.
신한은행이 은행 입사를 준비하는 취업준비생에게 꽁꽁 숨겨왔던 비밀이 있다.
신한은행은 '특이자 및 임직원 자녀' 명단을 엑셀 파일로 만들로 관리했다. '공채에도 내정자가 있다'는 풍문이 신한은행에선 팩트였다.
인사팀은 지원자의 자기소개서 평가가 완료될 무렵 ‘특이자 및 임직원 자녀’ 명단을 정리해 인사부장에게 보고했다. 김인기 당시 인사부장은 서류전형 합격자 발표가 진행되기 전부터 명단을 파악했다.
안동대 재무과장의 아들 신 씨도 '특이자'로 분류됐다. 국회의원, 유력 재력가 등 신한은행 영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집 자녀가 여기에 해당한다. 신한은행이 작성한 '2015년 상반기 신입행원 특이자'에 따르면, 문서 속 신○○ 이름 옆에 이런 메모가 적혀 있다.
해석하자면, 신한은행이 파악한 신 씨의 아버지는 "안동대 재무과장"이고, 신 씨를 추천한 사람은 "국립 안동대 총장 내정자 권아무개"이며, 신한은행에게 안동대는 중요한 "거래처"라는 이야기다.
김 인사부장은 해당 내용이 적힌 특이자 리스트를 윤승욱 부행장에게 보고했다.
서류전형을 통과한 특이자 신 씨는 2015년 5월 29일 실무자 면접을 봤다. 면접위원들은 신 씨에게 CC 등급을 점수로 줬다. A가 최고점, D가 최하점인 것을 고려하면 탈락위기 점수다.
면접위원들은 신 씨에게 이런 평가의견을 남겼다.
신한은행 면접위원은 눈빛 평가를 시작으로, 신○○를 채용하면 안 된다고 판단했다. 특이자로 분류된 지원자 신 씨가 실무자 면접에서 탈락에 처하자, 신한은행은 빠르게 움직였다.
면접 의견은 긍정적으로 바뀌었고, 면접 점수는 단숨에 C에서 B로 상향 조작됐다.
"맹한 표정으로 눈이 게슴츠레하다"던 신 씨에 대한 인권침해 평가는 사라졌다. "발표력이 부족해 제대로 의사 전달이 안 된다"던 평가는 180도 달라졌다. 김인기 인사부장이 인사팀에 조작을 지시한 결과다.
결국, 특이자 신OO 씨는 그해 상반기 신한은행 정규직으로 입사했다. 부정입사자 신 씨가 실무자 면접을 한창 보던 2015년 5월 말경, 특이자 리스트 메모에 등장한 권 총장 내정자도 안동대 총장으로 선임됐다. 그는 2015년 5월부터 2019년 5월까지 안동대 총장을 지냈다.
신한은행은 왜 면접 평가를 조작하면서까지 안동대 행정직원 자녀를 뽑았을까?
대학 입점제도는 은행에 많은 이득을 준다. 등록금 등 대규모 운영 자금을 관리하게 돼 안정된 수익을 확보할 수 있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대학생들을 고객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학교가 병원이라도 갖고 있다면, 더 다양한 고객층까지 기대할 수 있다. 실제 재학생이 8000여명인 안동대는 식물종합병원도 소유하고 있다. 신한은행에겐 좋은 거래처다.
기자는 신 씨를 추천한 인물로 지목된 권 전 총장에게서 더 단서를 찾고 싶었다. 지난 7월 초, 경상북도 안동시에 위치한 안동대학교를 찾아갔다.
권 전 총장은 현재 안동대 회계학과 연구교수로 근무 중이다. 그를 만나기 위해 연구실 앞에서 반나절을 기다렸지만, 만날 수 없었다. 안동대를 한 바퀴 둘러보니, 역시 신한은행이 입점해 있었다.
권 전 총장에게 전화 인터뷰를 요청했다. 지난 8월 11일, 어렵게 그와 전화 연결이 됐다. 권 전 총장은 "2015년, 신한은행에 안동대 재무과장 아들 신OO 씨의 채용을 청탁한 사실이 있느냐" 묻는 기자의 질문을 완강히 부인했다.
회계학과 교수인 권 전 총장은 경영학과 출신이자, 5년 전 졸업한 신 씨를 어떻게 그렇게 잘 기억할까? 2015년 이후 두 학과 출신 안동대 졸업생은 최소 수백 명이다.
권 전 총장은 채용 청탁 의혹을 부정했지만, 점차 입을 열수록 애매하게 말했다.
권 전 총장은 "신 씨가 신OO 안동대 재무과장의 아들이 맞느냐"는 질문에도 모호하게 대답했다.
채용 청탁 의심자로 보이는 권 전 총장의 반론은 여기까지. 부정입사자인 신 씨의 반론도 궁금했다. 기자는 같은날 오전, 신한은행 서울 종로구 모 지점에서 일하는 신 씨를 찾아갔다.
그가 일하는 지점은 빌딩숲에 둘러싸여 있다. 고객 없는 은행은 고요했다. 행원 5명 중 오른쪽 끝자락 ‘종합상담창구’에서 일하는 신 씨가 보였다. 신원을 확인한 후 은행 밖에서 그를 기다렸다.
오전 업무를 마친 신 씨는 낮 12시 30분께, 은행 밖으로 나왔다. 동료 직원 2명과 함께 식당으로 향했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신 씨에게 다가가 판결문을 보여주며 물었다.
신 씨는 가던 길을 멈추고 판결문을 유심히 바라봤다. 함께 길을 겄던 동료 직원들은 먼저 앞서갔다. 판결문을 확인한 신 씨는 짧게 대답했다.
그에게 "안동대 재무과장 신OO 씨가 아버지가 맞느냐"고 묻자, 그는 "모르는 사람"이라고 부정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상황… 채용비리가 이렇게 무섭다.
신 씨는 5년 전 졸업생을 기억하는 권 전 총장과 달리 그를 알지 못했다.
그는 연이어 질문하는 기자를 뒤로하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권 전 총장의 추천은 과연 청탁이 아닐까? 신한은행은 누구의 청탁과 상관없이 고액 거래처 관리 차원에서 안동대 학생을 선발한 걸까?
해당 채용비리 사건을 수사한 검찰의 공소장, 점수 조작을 인정한 법원 판결문에도 신 씨의 부정 채용 방법까지는 자세하게 나오지는 않는다.
하나는 분명하다. 법원은 신 씨를 "지원자 개인의 능력이나 자격 외 '특이자' 명단에 있는 인적관계에 관한 정보가 반영돼 합격 여부가 결정"된 인물로 판단했다.
신 씨의 인적 관계 정보가 그의 조작된 입사에 큰 영향을 줬다. 노력으로는 가질 수 없는 '개인의 능력과 자격 외 스펙'을 요구하는 신한은행 앞에서, 취업준비생들은 오늘도 밤낮 가리지 않고 노력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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