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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국책사업의 이름은 제2공항이 아니라 기후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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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 국책사업의 이름은 제2공항이 아니라 기후위기입니다"

[제주도가 환경부 장관에게]

제주도는 한국에서 자연생태의 원형이 그나마 남아있는 드문 땅입니다. 그리고 현재 난개발에 따른 갈등의 섬, 지구온난화로 인한 위기의 섬입니다. 살아야하고 살려야한다는 절박감에 동료 시민에게 메시지를 보냅니다. 그리고 이 메시지가 환경부 장관에게 가 닿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인류가 뭇 생명과 더불어 생존하기 위해서는 시민의 노력만이 아니라 정책과 노선의 전환이 절실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제주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가 임박해 위기의식 가운데 연재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환경부가 동의하고 국토부가 기본계획을 고시하면 제주 제2공항 사업은 법적 지위를 갖게 됩니다. 전략환경영향평가에 대한 환경부의 판단이 나올 때까지 우리는 매일 글을 이어갈 것입니다. 제주 제2공항 사업만이 시대와 지역의 문제는 아니지만, 이 구체적인 사안을 배경으로 우리의 제주발 문제의식은 펼쳐질 것입니다.

제주도가 환경부 장관에게 연재 바로가기

쫓겨난 이들이 있습니다. 2003년 경부고속철도 공사 중지 가처분 신청을 낸 '천성산 도롱뇽', 먹고살 방도를 찾으려고 제주로 온 예멘 난민, 인도 벵갈루루 밤거리에 나타난 짧은코인도과일박쥐(Greater Short-nosed Fruit Bat)가 그렇습니다. '서식지 파괴'의 결과는 이토록 혹독합니다.

쫓겨나는 이들이 있습니다. 해수면 상승으로 뿌리째 흔들리는 라이베리아 해안 공동체, 빠른 속도로 하얗게 말라가는 한라산 구상나무, 이스타항공 매각으로 구조조정 대상이 된 항공 노동자 700여 명이 그렇습니다. '기후위기'가 초래한 참사라 할 만합니다.

기후위기란 말이 나왔으니, 지난여름 역대 최장 장마를 언급해야겠습니다. 식탁 물가가 이리 올랐던 적이 있던가요. 좋아하던 토마토를 매일 먹기가 부담스러워졌습니다. 먼 미래에는 부자들만 채소를 먹을 것이라고 염려하던 먹거리 활동가의 말이 현실이 될까 두렵습니다. 그렇다고 투정할 수는 없겠습니다. 54일 계속된 장마 때문에 생존에서 쫓겨난 분들도 있으니까요.

쫓겨날 이들이 있습니다. 성산 앞바다에서 발견된 비바리뱀(멸종위기종1급+천연기념물), 빗물을 지하수로 흡수하는 수백 개의 숨골, 여름 희귀 철새인 장다리물떼새우리…. 무엇보다 난산리에 사는 김경배 씨가 그렇습니다. 어떤 이는 '제주 제2공항 사태'라고까지 말합니다.

제주도 동부에 위치한 성산읍 일대에 신공항을 짓겠다고 발표한 것이 2015년 11월. 당시 제2공항 건설 예정지로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 △서귀포시 대정읍 신도리 △남원읍 위미리 앞바다가 유력하게 거론됐습니다. 다만 제주도가 단일 후보지를 선정하겠다고 예고해 대정읍으로 점치는 이가 많았습니다. '제주권 신공항개발 타당성 조사'(1990)와 '제주 신공항 개발 구상 연구용역'(2011)에서 중복 거론된 지역이기도 했고, 그쪽에 있는 '알뜨르비행장' 활주로 이용 방안도 돌았으니까요.

서귀포시 성산읍 일대에 제2공항을 지을 예정이라는 정부 발표는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오죽하면 "제주 부동산 업계도 예상 못 한 결과"라는 보도까지 나왔습니다. 사실 공항 예정지 발표 한 달 전부터 부동산 브로커들이 성산읍에서 주민들과 만나 땅을 거래했다는 목격담이 돌았으니 거짓 보도이긴 합니다만.

그날 아침 소식을 전해 듣고 부랴부랴 제주도청으로 달려온 도민들의 벙벙한 표정이 훤합니다. 그들은 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을까요.

'느닷없다.' 아주 뜻밖이고 갑작스럽다는 의미죠. 갑작스럽다는 건 미처 생각할 겨를도 없이 급하게 일어났단 소리고요. 지금은 찬반으로 입장이 갈라졌지만 당시 당사자들은 "협의 없는 일방적 결정"이라면서 함께 격분했습니다.

국토교통부는 공청회 한 번 열지 않고 신공항 건설 부지를 결정했습니다. 현재 환경부 앞에서 네 번째 단식농성을 벌이는 김경배씨 입장에선 '서식지 파괴'죠. 그는 쫓겨나지 않으려고 42일(2017년 10월10일~11월20일), 38일(2018년 12월19일~지난 1월20일), 10일(2019년 12월11일~21일) 총 90일을 단식한 바 있습니다. 활주로로 뒤덮일 제 집을 지켜보겠노라고 그는 석 달을 굶고도 또 굶어야 합니다. 22일 현재 단식농성 13일 차입니다.

제2공항 부지는 약 4.95제곱킬로미터(150만 평)로 온평·신산·난산·고성·수산 총 5개 마을에 걸쳐 있습니다. 당초 '신산리 지역'이라고 발표했지만, 온평리 일대가 76% 면적을 차지합니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당시 주민간담회에서 "환경·소음 피해가 가장 적어 최적지로 선택했다"고 말해 공분을 키웠습니다. "소음 피해가 가장 적다"는 무슨 의미일까요? 비행음 데시벨이 지형 조건에 따라 달라지던가요?

온평리 핵심 경제활동은 농업입니다. 주민 수가 적은 데 반해 평균적으로 소유한 토지가 넓습니다. 이 때문에 토지매입, 지장물, 영농손실, 주거이전, 소음피해 등 보상해야 하는 가구가 가장 적은 지역을 선택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습니다. 적은 가구를 설득해 넓은 토지를 매입하려 했다는 합리적인 의심입니다. 원 지사에게 "우리는 제주도민 아니냐"고 외치던 한 도민의 울분이 또렷합니다.

기자들 사이에 예정 부지 소식이 먼저 돌았던 듯합니다. 발표가 있기 전 한 방송국 국장이 제 지인에게 "제2공항 건설로 대천동에 환승센터가 생길 테니 여유가 있으면 그쪽 땅을 사 놓으라"고 언질해 줬다고 합니다.

물론 여윳돈이 없어 땅을 사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3400억 원 규모의 환승센터 건립은 경제성·재무성 측면에서 사업 타당성이 없다"는 분석 결과가 최근 나왔더군요.

그럼에도 제주도는 제2공항 건설사업과 연계한 환승센터에 대해 "장기적으로 건립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신공항 연계도로인 비자림로 확장 공사는 오는 12월 재개하고요. 국토부는 내년도 제2공항 기본 실시설계비로 예산 470억 원을 배정한 상태입니다. 환경부의 전략환경영향평가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는데 벌써 기본계획 고시가 난 것 같은 추진력입니다. "제2공항은 그대로 추진할 수도 있지만 주민 의견을 듣는 중"이라던 취지의 2017년 김현미 국토부 장관의 말을 계속 곱씹게 됩니다.

제주도는 자연원형이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지역입니다. 이 때문에 2002년 생물권보전지역 지정, 2007년 세계자연유산 지정, 2010년 세계지질공원 인증을 통해 유네스코 3관왕을 얻기도 했지요.

세계유산은 크게 문화유산, 자연유산, 복합유산(문화+자연)으로 나뉩니다. 한라산, 성산 일출봉, 거문오름용암동굴계 세 곳이 자연유산으로 지정됐고요. 국내에서 자연유산으로 선정된 곳은 제주도가 유일합니다.

제주도는 섬 전체가 한라산입니다. 해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이 한라산에 모여 산다고 해도 비약은 아닙니다.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 따르면 제주도는 한라산을 중심으로 2000여 종의 식물과 5000여 종의 동물이 서식하는 생물자원의 보고입니다. 섬 전체가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되기도 했고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2007년 제31차 세계유산위원회 등재 심사에 앞서 제주도에 △지정구역 내 많은 관광객 및 사업 활동 효율적 관리 △생물다양성 유지 관리 노력 등을 권고했습니다.

'세계 보편적 가치'로 인정된 성산 일출봉은 성산읍에 있습니다. 성산 일출봉 일대 경관은 상업 건물들이 우후죽순 들어서며 훼손된 지 오래됐습니다. 한 여행객이 최근 제주도에 방문한 정재숙 문화재청장에게 "세계자연유산을 저렇게 방치해도 되느냐"라고 호소한 일도 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건설 예정지 발표 이후 5년이 지난 지금 동부 쪽 중산간엔 타운하우스가 많이도 생겼습니다. 중산간 대규모 개발 방지가 담긴 '제주도 도시계획조례 일부개정 조례안'이 2015년 도의회를 통과했는데도 그렇습니다. 공교롭게도 동부 쪽 중산간은 제주시와 제2공항을 연결하는 번영로가 지납니다.

환경부가 지난 6월 전략환경영향평가 추가 재보완을 국토부에 요청했다고 들었습니다. "이번에도 제대로 보완하지 않으면 반려하거나 부동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더군요. 이로써 환경부는 세 번의 기회를 국토부에 주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에서 누락됐던 칠낭궤동굴의 입장에서 "환경 영향을 최소화해서 제2공항을 건설하겠다"는 국토부의 약속 믿을 수 있을까요. 늘어난 타운하우스, 성산 일출봉 일대 경관 훼손 모두 제2공항이 들어서기도 전에 펼쳐진 풍경입니다. 환경수용력 충분히 반영하겠다? 1500만 관광객 시대에도 제주도 쓰레기 매립장은 임계상황을 넘었습니다.

제2공항 건설은 '항공 수요 4000만 명 이상'이란 예측 결과로 필요성을 확보했습니다. 그러나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4000만이라는 수요 예측이 여전히 타당한지도 묻고 싶습니다. 항공산업은 코로나19로 전례 없는 국제적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코로나19는 인류의 2020년을 통째로 앗아갔습니다. 그런데 인류가 직면한 코로나 사회가 기후위기 예고편이랍니다. '#이 비의 이름은 장마가 아니라 기후위기입니다.' 기록적 폭우에 등장한 해시태그입니다. 코로나 사회를 경험한 저는 '회복과 위험 절감'을 경시하던 '효율과 비용 절감' 사회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계획할 권리를 박탈한 코로나 사회를 저는 거부합니다.

현재의 항공산업 모델은 불 꺼진 회색시대의 산물입니다. 코로나19가 쏘아 올린 질문 '이대로 괜찮은가'는 기후위기 대응으로 이어졌고 이제 항공산업은 탄소배출량 규제를 피해갈 수 없습니다. 기후변화에 최적화해야 하지만 공항과 항공기를 재설비하더라도 약 40~50년 후에나 운행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세계 질서가 기후위기라는 전 지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재편되고 있습니다. 미래 항공산업의 적정 규모를 논의해야 하는 이때, 신공항이라니요.

설마 작금의 사태를 정부나 지자체가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2공항을 일각에선 군공항이라고 합니다. 정의당은 21대 총선 당시 아예 '제주 군공항 건설 반대'라는 공약을 내걸기도 했지요. 국토부가 전면에 내세운 건 아니지만 제2공항 건설이 군공항을 전제로 한다면, 그래서 불가역적으로 강행하는 거라면 이 역시 현재 시점에서 다시 숙의할 사안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생존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하는 경성 안보(hard security) 중심에서 생명을 우선시하는 인간 안보(human security) 중심으로 인식 전환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군사 안보보다 환경·식량·보건·에너지·산업 안보가 중요하다는 점을 인류가 깨달았으니까요.

정부 책임을 요구하던 활동가가 책임지는 행정부로 가면 형편없는 실무능력으로 놀라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 4대강 보 개방이 늦어지는 이유에 대해 "지방자치 단체의 비협조 때문"이라고 말해 책임 회피 논란이 일었지요. 조명래 환경부 장관 발언 이후 협조 요청을 받은 적 없던 관련 지자체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국가물관리위원회 위원들은 조 장관에게 사실상 4대강 보 개방에 대한 의지가 없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래서 염려가 됩니다. 제주 제2공항 건설 기본계획 고시에 앞서 이제 환경부 의지만 남았으니까요.

이대로라면 전 세계 항공사들의 절반이 파산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오고 있습니다. 항공업 종사자들의 고용불안도 심각하고요. 이스터 항공 매각으로 인해 누가 가장 많은 수혜와 피해를 입었습니까? 창업주인 이상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스타항공 매각으로 지분이익을 챙겼고, 노동자는 해고 위기에 놓이지 않았습니까. 자연이든 사회든 서식지 파괴로 인해 먼저 쫓겨나는 건 제일 약한 존재입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편리를 추구한 결과 이미 쫓겨났거나, 현재 쫓겨나는 중이거나, 앞으로 쫓겨날 존재가 너무 많습니다. '제주 제2공항 사태'는 '서식지 파괴'이자 '기후위기'를 앞당기는 '환경 부정의'입니다.

낙동강 수질 오염 주범으로 꼽히는 경북 영풍 석포제련소 공장에 비공개로 방문했던 지난해 초를 기억하십니까? 당시 조 장관이 했던 말을 마지막으로 빌려 써야겠습니다. 기후위기 시대에 공항을 더 짓는 건 환경부 입장에서 "찝찝하지 않겠습니까"? #이 국책사업의 이름은 제2공항이 아니라 기후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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