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9월 19일이면 남과 북이 평양공동선언과 판문점선언의 군사 분야 합의서를 채택한 지 2년을 맞는다. 2년 전 9월 한반도는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하지만 손에 잡힐 듯 다가온 한반도 종전 평화에 대한 기대로 일렁이고 있었다. 당시에는 평창올림픽 단일팀 구성과 판문점선언으로 시작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6·12 북미 싱가포르 공동성명을 거쳐 한창 탄력을 받던 시기였다.
멈춰 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그러나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합의 이행의 순서와 상응 조치에 대한 이견을 이유로 합의 없이 끝난 이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사실상 멈춰 섰다. 협상은 교착되는 반면 미국 주도의 대북제재는 더 촘촘해졌고, 최소한의 교류 협력조차 가로막히는 일이 잦아지자 남북관계에도 점점 불협화음이 심해졌다. 급기야 지난 6월에는 일부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계기로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고 군사 분야 합의의 효력마저도 위태로워지는 위기상황이 초래되었고 북한은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해버렸다. 이 일은 당국 간 관계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마음도 얼어붙게 했다.
이대로 상황을 방치한다면 합의 이전 상황으로 돌아갈 것이 불 보듯 뻔하다. 단순히 과거로 회귀하는 수준을 넘어서 새로운 차원의 핵 군비 경쟁과 위기가 일상화할 것이다. 한반도는 갈수록 심화되는 미중 패권 경쟁의 대리 전장으로 동원되고 휘둘릴 수 있다. 결국 지난 70여 년간 열망해온 평화 대신, 더 엉클어지고 고약해진 방식으로 '일상화한 예외상태'가 가뜩이나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분단국가 주민들의 삶을 흔들고 쥐어짤 것이다.
2018년 남북합의의 핵심은 한반도의 미래를 이 터전 위에서 살아가야 할 주인들이 결정하겠다는 것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표현으로는 '한반도 운전대 잡기'다. 남과 북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평화체제와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남·북·미 혹은 남·북·미·중 사이의 협상이 필수 불가결하다는 점을 전제하되 남북이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대로 해나가자고 합의한 것에 주인다움의 진정한 의미가 있다. 적어도 군사적 긴장 완화와 군비 축소, 다방면의 교류 협력만큼은 스스로의 의지와 합의로 전진시켜나가자는 것이다.
무엇을 위한 워킹인가
그런데 그 정신과 합의가 희미해지고 있다. 남북 교류와 협력은 우리 정부와 시민의 판단보다는 '한미워킹그룹'을 통해 전달되는 미국의 제재 위주 처방에 묶여 있다. 한미워킹그룹은 정작 미국 조야에 만연한 북한에 대한 강퍅하고 고압적인 일방주의를 완화하여 '최대의 압박'에 버금가는 '최대의 관여' 전략을 발전시키는 데는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군은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규모만 축소한 채 지속하고 있고, 북한의 총 GDP를 뛰어넘은 지 오래된 군사비를 매년 늘리면서 미국으로부터 공격적 신무기를 연이어 도입하고 있다. 뜻한 대로 대미 협상이 풀리지 않고 제재가 강화되는 것에 대한 불만을 온통 남한에 쏟아붓고 일체의 협력을 거부하는 북의 거친 반응이 공동선언의 정신에 부합한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이 남북 간의 불신을 해결하기 위한 실질적 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않은 우리의 변명거리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8.15 경축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과의 체제 경쟁은 오래전에 끝났다고 선언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우리가 과연 북한의 50배가 넘는 GDP만큼의 역지사지와 포용력을 발휘하고 민주국가다운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고 있는지에 대해 자문해야 옳다.
정부의 접근법과 정책이 달라져야 한다. 한반도 문제를 우리가 주인이 되어 해결하겠다는 초심을 더욱 분명히 다지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남북 대화와 협력을 능동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대미 협상이 교착에 빠지고 제재가 깊어지는 상황에서 북한의 성마르고 험악한 반응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럴수록 우리 스스로 좌표를 잃거나 일방주의에 포획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선제적으로 군비를 축소하고 공격적인 작전 개념을 방어적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이미 과도한 국방비는 감축하여 코로나19와 경제위기 대응을 위한 재원으로 사용해야 마땅하다. 미국의 논리를 관성적으로 따르기보다 불가피한 차이는 촛불혁명의 계승을 자처한 정부답게 국민 앞에 과감히 드러내고 민주적 방식으로 해결해나가야 한다.
현실주의의 비현실적 귀결
그런데 이런 요구를 말하면 여지없이 '현실에 무지하다'라는 비난이 돌아오곤 한다. 중국 편이 되거나 북한 편이 되자는 소리냐는 비난에서부터, 요지부동인 미국과 북한에 대해 정부더러 뭘 더 얼마나 하라는 얘기냐, '레버리지(지렛대)'가 없지 않느냐는 항변에 이르기까지, 소위 '현실주의' 반론들이 그것이다. 그런데 그 현실주의를 실천한 결과가 "타미플루는 지원할 수 있지만 차로 운반해서는 안 된다" "주사약을 지원할 수는 있지만 바늘은 안 된다" "수해 지원은 가능한데 물 펌프는 안 된다"라는 식이라면 그런 것이야말로 비현실적이지 않은가.
미국으로선 제재와 봉쇄가 작동하게 하는 것이 현실적인 목표일 수 있지만, 이 땅에 사는 우리들에게 현실적으로 절실한 것은 평화와 협력이다. 이제 진정한 당사자들의 절실한 목소리를 모아내고 드러내야 한다. '협상의 지렛대'는 톱다운의 협상장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성숙한 의지에서 나온다.
정부에 촉구하고만 있을 일이 아니다. 시민 스스로 평화 만들기에 나서야 한다. 한반도의 평화를 원하는 시민의 힘으로 국제 여론을 움직여 난관에 부딪힌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제 길을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런 해빙의 기회가 언제 다시 올지 모르고,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수 있다. 75년 전, 한반도 문제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열강들 사이에서 '국제화'되어 분단과 전쟁, 그리고 불안정한 긴 휴전 상태로 이어졌다. 이제는 소수의 외교관이나 군인들의 결정이 아니라, 지금껏 살아보지 못한 평화를 원하는 이 땅 주민들의 열망이 '국제화'되고 그들이 여기에 답하게 해야 한다. 70년간 끝나지 않은 전쟁, 70년간 만나지 못한 가족들, 너비 4킬로미터의 아무도 통과할 수 없는 DMZ, 155마일에 불과한 그곳을 두고 집중된 150만의 군대와 무기들, 독일 통일 이후에도 30년이나 더 지속된 분단, 이제는 전 세계 시민의 힘으로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70년이면 충분하다: 한반도 종전 평화 국제캠페인
한국전쟁 70주년을 앞둔 지난 6월 24일 제안되고, 7월 27일 발족한 한반도 종전 평화 캠페인은 '한국전쟁 종식과 평화협정 체결', '핵무기도 핵 위협도 없는 한반도와 세계'를 촉구하는 국제 평화행동이다. 한국전쟁 발발 70년이 되는 올해부터 정전협정 70년이 되는 2023년까지 3년간, 시민사회 공동의 요구를 담은 한반도 평화선언(Korea Peace Appeal)에 대한 전 세계 1억 명 시민 서명과 각계 지지 선언을 확산하여 한국전쟁을 끝내고 한반도 평화를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이 캠페인에는 7대 종단을 비롯한 350여 개 국내 시민사회-종교 단체, 40여 개의 전 세계 국제 파트너 단체가 참여하고 있으며 앞으로 종교와 시민사회, 국제기구와 정부의 전 세계 평화 네트워크를 구축한다는 대범한 구상을 품고 있다. 이렇게 모이는 서명과 선언, 국제적으로 연결되는 역량을 남·북·미·중 등 한국전쟁 관련국과 유엔에 전달하여, 관련국들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방안에 합의하고 차질 없이 이행하도록 모든 계기를 통해 요구하고 압박하는 데 활용할 계획이다.
왜 전쟁은 70년간 끝나지 않았는가? 이 캠페인의 제안자이자 공동대표의 한 명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모든 탓을 외세로 돌리는 것도 현실을 단순화하는 얘기고, 정부의 무능력과 수동성만 탓하는 것도 일면을 지적하는 데 불과하다. 북핵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주장도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고 왜곡하는 인식이다. 전쟁 위협이 끊임없이 남아 있는 세상을 좋아하고 즐기는 소수와 이런 현실을 썩 좋아하지는 않지만 현실에 길들어서 다른 생각을 하지 않으려는 다수 사람들이 합작한 결과다. 이런 삶을 근본적으로 바꿀 전환과 공부가 필요하다"라고 말한다.
이제 그 다수의 사람들도 전쟁에 대한 공포가 일상화되고 그것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에 결별을 고해야 한다.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평화를 향한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 '우리가 전쟁을 끝내기로 했어'라고 선포하고 '힘없이 서 있는 철조망'을 향해 손잡고 걸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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