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노동자들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이 71.3시간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른 과로사 인정 기준은 '직전 3개월 주 60시간 이상 노동' 혹은 '직전 1개월 주 64시간 이상 노동'이다. 택배노동자가 과로사 인정 기준보다 긴 시간 일하고 있는 셈이다. 반면, 이들이 버는 돈은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했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와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가 주최하고, 10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린 '택배 노동자 과로사 실태조사 발표 및 대책 마련 토론회'에서 한인임 일과건강 사무처장은 위와 같은 내용의 '택배 노동자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택배노동자 800여 명을 대상으로 수행했다.
결과 발표에 앞서 한 사무처장은 "이번 조사는 주로 노동조합에 가입해있는 택배노동자를 대상으로 이뤄졌다"며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않은 택배노동자는 상황이 더 안 좋을 것이라고 가정하고 조사 결과를 봐야 할 것"이라고 전제했다.
특수고용노동자인 택배노동자, 노동시간도 임금도 근로기준법 미달
실태조사를 보면, 택배노동자는 평균적으로 주 6일 71.3시간 일한다. 2019년 한국인의 주 평균 노동시간은 41.5시간이었다.
택배노동자의 일별 근무시간을 보면, 상대적으로 배달량이 많은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평균 12.7시간 일한다. 월요일에는 평균 9.5시간 일하고 토요일에도 평균 10.9시간을 일한다.
택배노동자에게는 일하는 중 쉴 시간은 물론 식사시간도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 택배노동자 점심시간은 평균 12분으로 나타났다. 응답자 중 22.2%(207명)는 그마저도 '빵이나 김밥 등을 차에서 먹는다'고 답했다. '끼니를 거를 때가 많다'고 답한 비율도 36.7%(342명)에 달했다.
장시간 노동은 실제 과로사로 이어지기도 한다. 올해 들어 7명의 택배노동자가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재 과로사 인정을 받았다. 그중 한 명은 사망 전 일주일 동안 79시간 30분 일했다.
실제 과로사한 택배노동자의 수는 드러난 것보다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 택배노동자 5만여 명 중 7000여 명만 산재보험에 가입해있기 때문이다.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 80.4%(633명)는 과로사에 대해 "나도 겪을 수 있는 일이므로 많이 두렵다"고 답했다.
일하는 시간은 길지만 월급은 적다. 택배노동자 월급은 평균 234만 6000원이다. 이는 택배노동자의 월 평균 매출 458만 7000원에서 △ 대리점에 내는 수수료 △ 차량 관리비 △ 운송장, 테이프 등 소모품 경비 △ 택배업무를 위한 통신비 등을 제한 것이다.
연장노동 가산수당을 적용해 주 71.3시간 일하는 노동자가 받아야 할 월급을 2020년 최저시급인 8590원으로 계산하면 324만 원가량이다. 택배노동자의 월급과는 90만 원 정도 차이가 난다.
택배노동자가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는 노동자였다면, 주 52시간이 넘는 노동시간, 12시간 노동에 12분 휴게시간, 최저임금에 미달한 수입은 모두 불법이다. 그러나 택배노동자는 법적으로 개인 사업자이기 때문에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 택배노동자의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을 막기 위한 별도 법체계도 없다.
택배사가 분류작업에 별도 인력 투입하면 과로사 문제 해결 가능
전경호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은 단기적으로는 택배사가 현재 택배노동자가 담당하고 있는 '분류작업'에 별도 인력을 투입하면 과로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분류작업은 지역별 물류센터로 배송된 택배물건을 다시 세부 지역별로 구분해 택배차량에 싣는 작업을 말한다. 이번 조사에서 택배 노동자들은 분류작업이 전체 일의 40% 정도를 차지한다고 답했다. 배달작업과 달리 분류작업에는 별도 수수료가 책정되어 있지 않다. 이 때문에 택배 노동자들은 이를 '공짜 노동'이라고 부른다.
전 위원장은 "'배달작업'이야 당연히 택배 노동자의 고유업무라고 할 때 분류작업 시간을 줄이는 것이 택배노동자의 과로를 줄이는 유일한 대안"이라며 "특히 이번 추석, 코로나19 물량과 명절 물량이 겹쳐 평시보다 50% 이상 택배 물량 증가가 예상되는 상황에서는 추석 전 분류작업에 추가 인력을 투입하는 일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전했다.
전 위원장은 이와 관련해 "여기에 드는 비용은 당연히 택배사가 책임질 부분이지만 이에 대한 갑론을박으로추석 전 분류작업 추가 인력 투입이 지연되어서는 안 된다"며 "택배노동자가 여기에 필요한 금액을 일정 부분 분담하는 것도 검토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장기적으로는 택배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법률 제정과 노동권 보장이 필요하다는 제안이 나왔다. 이조은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선임간사는 "고용관계 안정, 휴식보장 및 안전 조치 강화 등을 내용으로 하는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을 조속히 제정해야 한다"며 "자신의 힘으로 노동환경을 개선할 수 있도록 특수고용노동자인 택배노동자의 노동3권을 온전히 보장하기 위한 대책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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