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의 수단분담률(사람들이 통행할 때 하루 중 이용하는 교통수단의 분포를 비율로 나타낸 것)은 최근 수년간 채 2%를 넘지 못한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자전거 수단분담률은 40% 이상이니 시민들이 자전거를 당당한 교통수단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다. 레저로 자전거를 즐기는 인구는 갈수록 늘어나는데 왜 도심에서 자전거는 교통수단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것일까? 서울환경연합이 그 이유를 조사해보니 도심의 '자전거 도로'가 문제투성이였음이 드러났다.
서울환경운동연합은 서울시 자전거 도로 실태조사('서울, 이곳만은 고치자' 프로젝트)를 실시하여 우리나라의 대표적 대도심에 설치된 자전거 도로의 실상을 파악했다. 조사단에 참가한 시민들은 6월 1일~6월 30일 사이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6개 구를 제외(관악·구로·금천·강북·도봉·성동)한 19개 구의 도심을 직접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자전거길 문제를 조사했다. 45명으로 구성된 시민 조사단은 총 476건의 자전거 도로 불편 사항을 찾아내 제보했다.
문제는 길
문제가 있다는 시민 조사단의 제보가 가장 많이 들어온 곳은 강서구였다. 90건으로 1위였고, 광진구가 89건으로 뒤를 바짝 쫓았다. 이후 종로구(42건), 성북구(34건), 마포구(32건)가 3, 4, 5위를 차지했다. 그렇지만 제보 내용을 잘 살펴보면 이들 지역이 단순히 자전거가 타기 힘든 문제 지역이라기보다는 그만큼 자전거 이용자도 많은 곳으로 보는 게 맞다. 영등포구 여의도와 강서구 마곡의 제보 중에는 공통적으로 '자전거 타기 좋다'는 내용이 많았다. 이런 호평의 이유에 자전거 도로가 있었다. '2019 서울시 자전거 지도'를 보면, 마곡에는 자전거 전용도로가, 여의도에는 자전거 전용차로가 많다. 자전거만 다닐 수 있는 길이 많을수록 이용자는 안전한 이동을 보장받고 그만큼 이용률도 높아진다.
자전거 이용자들이 가장 불편하게 여긴 건 무엇이었을까? '자전거 도로 없음'이 최다 불편 사항(111건) 1위였다. 자전거는 도로교통법상 차로 분리되기 때문에, 자전거 도로가 없으면 인도가 아닌 도로의 갓길로 달려야 한다. 하지만 분리되어 있지 않은 좁은 도로에서 자동차, 버스, 오토바이와 함께 달린다는 건 사실상 어려운 일이다. 대부분은 위협을 느껴 인도로 올라가고 만다. 그런 탓에 인도의 보행자 안전도 연쇄적으로 위협받는다. 그러니 자전거를 타는 건 민폐가 되는 구조다. 사람과도 차량과도 분리되는 자전거 전용도로가 더 많이 필요한 까닭이다.
'전용도로 없음'에 이어 2위에 오른 불편 사항은 '불법 주정차(95건)'이다. 자동차, 오토바이, 트럭, 택시, 리어카까지 다양한 종류의 차량이 자전거 도로를 이용하고 있다. 현재 자전거 도로는 인도와 자전거 도로가 함께 있는 자전거 겸용 도로와 차량과 함께 이용하는 자전거 우선 도로의 비율이 80%를 넘는다. 겸용 도로는 대부분 인도 위에 자전거 도로를 보도블록으로 표시하거나, 우레탄으로 깐다. 단차나 경계석 등으로 구분돼 있진 않다. 보행자는 자기도 모르게 자전거 도로로 지나기 쉽고, 자전거 이용자도 보행자를 계속 신경 쓰며 이동할 수밖에 없다. 이러니 이륜차, 차량의 불법 주정차 문제는 높은 비율로 '자전거 도로의 불편 사항 2위'로 지적됐다. 겸용 도로나 우선도로만이 아니라 자전거 전용차로 또한 상황은 다르지 않다. 전용차로는 대부분 도로 일정 부분에 페인트로 공간을 구획할 뿐이라 차량과 이륜차가 빈번하게 침범하거나 불법 주정차를 하는 경우가 잦은 현실이다.
3위의 불편 사항은 도로 파손(46건), 4위는 도로가 울퉁불퉁함(24건), 5위는 도로 끊김(22건), 6위는 자전거 도로 종점 안내 없음(23건), 7위는 자전거 횡단도 없음(18건)으로 나왔다.
이밖에 자전거 도로 안내 표시가 있다는 응답은 54건이었는데, 그중 24건은 표시가 지워지거나 희미해 자전거 도로 식별이 어렵다는 의견도 있었다. 자전거 횡단도 없음이 43건, 있음이 23건이었고, 턱 때문에 이용이 불편한 곳(2곳)도 있었다. 자전거 거치대가 있는 경우는 8건, 없어서 불편했다는 경우도 4건 있었다. 이상의 여러 자전거 도로를 비롯한 자전거 이용 시설들의 문제 전반들은 '도심에서 자전거가 교통수단으로 선택받지 못하는 까닭'을 설명하고 있다.
자전거 도로 키워 미래 도로교통정책 기초 삼아야
서울시는 '자전거 1시간 생활권'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내놓았지만, 자전거 도로는 강변과 천변을 따라 만들어져 정작 필요한 생활권에는 없는 실정이다. 또한 도로교통법이 개정되어 오는 12월 10일부터 전동 킥보드를 포함한 개인형 이동장치 PM(Personal Mobility)도 자전거도로를 달릴 수 있게 됐다. 국가에너지계획의 하나로 수립된 에너지효율혁신전략 아래 구축되는 지능형교통시스템(ITS)과 연계된 '대중교통에 연결되기 전후의 이동을 전동식 이동기구 사용으로 담보하겠다'는 통합모빌리티서비스(MaaS)의 추진은 이러한 개정법을 뒷받침하는 일이다. 그러나 전기자동차를 중심에 둔 교통의 전동화는 도로교통의 지능화와 함께 필요한 일이지만 보행과 핵심적인 친환경 무동력 이동기구(자전거)까지 전동기구로 대체하려는 것은 저탄소 미세먼지 저감을 추구하는 기후에너지 정책과 명백히 충돌한다.
자전거가 교통수단으로서 제 역할을 하려면 상위 정책에서 이러한 정책충돌을 없애야 한다. 불행하게도 이런 일이 현실화되고 있기 때문에 남은 것은 자전거가 전동식 이동기구들과 경쟁하여 역할을 입증하여 기후에너지 정책은 물론 교통정책에도 보탬이 된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자전거가 전동식 이동기구들과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하려면 자전거 도로부터 제대로 정비돼야 한다. 자전거가 차량을 비롯한 일체의 동력기구가 진입하지 못하는 길을 가져야 한다. 미세먼지와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최선의 친환경 수송 정책은 자전거 도로를 제대로 기능하도록 손보는 데서 시작한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