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의협)가 2주 넘게 파업한 끝에 더불어민주당과 "의대 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신설 추진 원점 재논의" 합의안을 이끌어낸 데에 시민사회가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참여연대 등 177개 노동·시민단체는 4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공공의료를 포기한 당정과 의협의 밀실거래"라고 민주당과 의협을 규탄했다.
앞서 민주당과 의협은 밤샘 협상 끝에 5개 조항으로 이루어진 합의안을 도출해 이날 오전 서명했다.
시민단체가 문제 삼은 부분은 첫 번째 조항이다. "의대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신설 추진은 코로나19 확산이 안정화 될 때까지 관련 논의를 중단하며, 코로나19 안정화 이후 협의체를 구성해 법안을 중심으로 원점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재논의하기로 한다. 또한, 논의 중에는 관련 입법 추진을 강행하지 않는다"라고 돼 있다.
이 조항에 따르면 정부가 추진한 의대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신설 추진은 코로나19 이후 원점에서 재논의되며 재논의 때는 의협과 정부가 협의체를 구성해 의협이 협상 당사자로 참여하게 된다. 시민단체는 "공공의료 확대 폐기도 모자라 민간의료를 강화해 주겠다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에서 "정부여당과 의협이 공공의료 정책의 진퇴를 놓고 협상을 벌인 끝에 사실상 공공의료 개혁 포기를 선언했다"며 "정부와 여당이 의사들의 환자 인질극에 결국 뒷걸음질 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초유의 감염병 사태로 시민의 안위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고 의료인력 확대와 공공의료 개혁이 어느 때보다도 절박한 상황"이라며 "의사 단체가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내려놓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집단휴진이라는 비윤리적인 행동을 한 것으로도 모자라, 자신들의 이권을 지키기 위해 의료 공공성 확대의 발목을 잡고 개혁 논의를 좌초시킨 의협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시민의 건강과 안전에 직결된 공공의료 정책을 논의하면서 정작 시민을 배제하고 이익단체인 의사 단체의 요구대로 사실상 공공의료 포기 선언한 것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정부와 의협의 합의안을 두고 "밀실야합"이라고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이보라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는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시민의 일상이 파괴되고 취약계층은 더욱 힘든 시기에 의협은 2주 넘게 명분 없는 파업으로 공공의료 정책을 무력화하는 합의안을 도출해냈다"며 "시민의 건강과 직결된 문제는 시민이 함께 논의하고 합의해야지 이권단체인 의사 단체와 정부가 결정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이 대표는 지난 1일 의협 산하 의료정책연구소의 페이스북 홍보물도 비판했다. 해당 홍보물은 "전교 1등한 의사와 공공의대 출신 의사"등을 비교하는 내용으로 "의사들의 엘리트주의를 보여줬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 대표는 "현재의 입시제도, 사립의대 민간중심 의료시스템은 의사들의 엘리트주의와 피해의식만을 양산한다"며 "이는 민간 중심의 의료 시스템을 방조하며 공공의료 정책에 손 놓은 정부의 책임이 크다"고 했다.
그는 "정부가 그동안 의료 서비스를 민간에 맡기고 건강보험으로 관리만 하려고 한 결과 오늘날 코로나19 위기에도 의사들이 당당히 파업을 선언하고 반정부투쟁하도록 만들었다"며 "매년 수조원의 이익을 내는 26개 사립병원들은 코로나19 팬데믹에 공공의료원의 병상이 부족하다고 매일같이 호소해도 병상을 내놓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민간 의료 강화는 결국 의사 개인과 사립 병원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방향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의료문제는 어렵고 전문적인 영역이지만 의사 집단이 원하는 대로 의정협의체로 정책을 결정하게 해서는 안된다. 의료는 공공재이며 환자와 일반 시민 입장을 대변하는 목소리가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했다.
공공의료의 현실에 대한 문제제기도 이어졌다. 이찬진 참여연대 집행위원장은 "한국의 공공의료 체계는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공공의료원 이후 사실상 제자리걸음"이라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공공의료의 필요성을 하루하루 절감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의 공공의료는 박정희 정부가 의료보험을 제도화할 당시의 30% 수준에서 더 이상 확대되지 못해 현재 의료서비스의 90% 이상을 민간 의료가 담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경제협력기구(OECD) 국가의 경우 평균적으로 의료서비스의 73%를 공공의료가 담당하고 있다. 의사 수도 마찬가지다. OECD 평균 수준의 의사 1인당 환자 수를 맞추려면 약 5만 명의 의사가 더 필요한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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