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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산업 성지화…감동의 가치와 혼을 담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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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산업 성지화…감동의 가치와 혼을 담아야

3. ‘태백은 산업화의 성지’로 만들자

지난 5월 25일 태백지역 중요 시민사회단체 중심으로 ‘석탄산업성역화추진위원회(위원장 황상덕)’를 발족한 뒤 ‘태백은 산업화의 성지’라는 테마를 설정했다.

추진위는 여러 차례 회의와 광주 5.18묘역, 제주 4.3공원 등을 벤치마킹하고 전문가들의 자문을 거치는 등 성역화 작업의 그림을 야심차게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해학춤 명인' 박소산씨가 산업전사위령탑에서 산업전사들의 넋을 추모하는 학춤 날갯짓을 펼치고 있다. ⓒ프레시안

추진위는 먼저 석탄생산 과정에서 순직한 탄광 노동자들이 국가유공자로서 예우 받을 수 있도록 가칭 ‘광산 순직자 예우에 관한 법률’ 제정 및 성역화 사업 법안의 발안에 공을 들이고 있다.

추진위가 구상하고 있는 성역화 계획은 ▲순직광부 및 가족 관련 시설에 대한 예우 법제화 ▲국가기념일 선포 ▲산업전사 위령제 국가단위 행사 격상 ▲순직광부의 국가 유공자 인정 ▲산업전사 위령탑의 국가주도 관리시설, 국립공원 묘지 조성 등이다.

황상덕 위원장은 “광주가 민주화의 성지라면 태백은 산업화의 성지”라며 “정부는 과거 국가 산업발전의 원동력인 에너지자원 개발에 나섰다가 순직한 산업전사들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와 보상적 차원의 지원 예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추진위는 현재 4100여 위의 산업전사 위패와 진폐증으로 순직한 위령각 안치된 산업전사위령탑을 현재 면적(9813㎡)보다 3배가량 넓히고 위령탑 주변에 기념관, 역사관, 영상전시실, 및 광부 순례길 등을 설치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석탄산업 성역화의 중심은 산업전사위령탑이다. 그러나 규모의 확대와 걸맞는 시설물 설치도 중요하지만 적정한 콘텐츠와 감동이 있는 스토리가 담겨야 한다는 지적이다.

원기준 광산지역사회연구소장은 “무작정 성스러운 공간이니까 성역화 하자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역화에는 예술적인 승화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단순한 광부 조각상을 설치하는 형식의 성역화는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일본 오키나와 평화박물관의 경우 사람들의 이야기와 민간인들의 다양한 스토리를 통해 감동과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며 “탄광 광부와 탄광촌의 감동적인 스토리가 함께 녹여져야 성역화 사업의 바람직한 방향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원기준 소장은 1985년 태백에 정착해 목회활동을 하면서 10년 이상 탄광노동조합의 민주화운동에 앞장서다가 1989년 국가보안법 등의 위반 혐의로 체포되어 1년 6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그는 김영삼 정권에서 사면, 복권되었다.

▲독일 '포토키나' 국제사진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주동호 작가의 광부. ⓒ주동호

지나치게 엄숙하고 사람들이 찾지 않는 ‘죽음의 공간’ 나아가 ‘혐오 공간’처럼 인식되고 있는 산업전사위령탑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예술적인 관점과 광부들의 삶의 흔적을 찾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황재형 화백은 “산업전사위령탑 성역화는 역사에 길이 남을 작품을 만들어야 진정으로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공감하면서 찾게 될 것”이라며 “탄광에서 나온 경석으로 검정의 아름다움을 표출하면 탄광산업전사의 의미를 예술적으로 부각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태백의 모든 조형물들이 쓰레기 같이 취급받는 것은 예술성이 떨어지면서 천박한 이미지를 주기 때문”이라며 “발상의 전환이 없으면 성역화사업은 실패하고 말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싼 가격, 빨리빨리 타성에 젖어 연구용역 결과를 토대로 업자를 선정하고 (성역화를)토목공사처럼 추진한다면 달랑 시민헌장비 뿐인 태백산 당골광장처럼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며 “성역화 작업을 통해 위령탑 일대가 아름다운 꽃처럼 피어나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중앙대 회화과 출신으로 1983년 태백에 발을 들인 뒤 ‘광부화가’로도 알려진 그는 제7회 민족미술상, 제1회 박수근 미술상을 수상했으며, 탄광촌의 역사와 스토리를 녹여 가치와 작품성 및 예술성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연수 탄전문화연구소장의 지적도 의미심장하다.

“산업전사위령탑은 개인의 무덤이 아니다. 국립 현충원같은 개념으로 승화시키려면 그곳에 잠들어 있는 산업전사 개개인의 생애가 어느 정도는 복원되어야 한다. 지금 위령탑은 안타깝게도 죽음의 장소로 퇴색했다. 단순하게 위령탑과 위패안치소가 전부인 산업전사위령탑은 산업전사들의 추모공원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국가경제발전에 한 획을 담당했던 산업전사들의 숭고한 넋이 잠든 장소이면서 이들을 기리는 흔적이 남아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이것이 없다. 늦었지만 태백시는 살아 있는 유족들로부터 구술작업을 해야 한다. 4100여 기의 위패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곳에 잠들어 있는 산업전사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를 기록으로 남기어야 위령탑의 본래 역할과 기능을 할 수 있다.”

정연수 탄전문화연구소장은 문학박사이면서 탄광촌의 향토문화와 탄광, 광부들의 삶의 애환 등을 연구해온 탄광촌 전문학자이다.

▲사북항쟁 40주년 기념 행진. ⓒ정선군

사북항쟁의 주모자로 몰려 계엄군에게 끌려가 상상을 초월하는 고초를 겪은 이원갑 사북항쟁동지회 명예회장은 “광부가 탄을 캐다가 죽는 것을 정부와 기업주는 당연한 것으로 인식했다”며 “과거 광부들은 파리 목숨이었고, 탄을 캐는데 필요한 소모품 정도로 취급 받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산업전사위령탑에 석탄협회 등 광업주 명의로 채탄과정에서 안전대책을 소홀히 하는 바람에 많은 광부들이 희생된 사실을 인정하는 비석을 세워야 할 것”이라며 “뒤늦게라도 광업주의 사과가 필요한 이유”라고 부연했다.

그는 태백기계공고 광산과를 다녔으며 장성광업소 채탄감독생활 7년을 거쳐 동원탄좌 사북광업소에서 채탄감독 업무를 보다가 1980년 4월 사북항쟁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성희직 시인은 “광부와 연탄의 기억이 사라지는 시기에 성역화사업은 광부와 탄광촌의 희생과 노력에 대한 재평가 차원에서도 바람직하다”며 “이름만 거창한 것 보다는 내용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또 그는 “1979년 4월 함백광업소 다이너마이트 폭파사고와 그해 10월 27일 은성광업소 갱내화재사고로 광부들이 떼죽음을 당한 기막힌 역사들이 망각되고 있다”며 “말로만 산업전사라 칭송하지 말고 산업전사에 합당한 추모와 예우공간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삼척탄좌 해고광부를 거쳐 광부시인, 3선 강원도의회 의원, 강원랜드복지재단 상임이사 등을 역임한 뒤 사북에서 진폐상담소장으로 과거 산업전사들의 아픔을 덜어주고 있다.

조관일 창의경영연구소장(전 대한석탄공사 사장)은 “석탄산업은 대한민국 산업화 과정에서 핵심역할을 했다”며 “6.25전쟁 이후 절대절명의 위기에서 국가경제발전과 국민연료 공급의 중심에 탄광촌 태백과 광부들의 헌신과 희생을 결코 잊어선 안 될 것”이라고 전했다.

성역화와 성지화를 위해 그는 ▲스쳐 가는 곳이 아니라 외지에서 꼭 찾아가고 싶은 수준의 내용 ▲운영비로 애물단지가 되어서는 안 되는 시설 ▲감동과 긍정의 이미지 등을 당부했다.

그는 “서울 지하철1호선 설계 당시 장성광업소 터널굴착(굴진) 기술이 상당한 기여를 하였고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의 구조현장에도 장성광업소 베테랑 구조요원들이 출동해 구조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며 “막장에서 희망을 캤던 광부들의 삶의 터전이 탄광촌”이라고 덧붙였다.

▲탄광 붕락사고로 매몰됐던 광부가 동료 광부에 의해 구조되고 있다. ⓒ태백문화원

박인규 태백시현안대책위원장은 “월남전 참전 용사들 가운데 무려 5000여 명이 고귀한 생명을 잃었는데 탄광에서 순직한 광부 5000여 명과 진폐 순직자를 포함하면 그 수가 1만 5000명을 넘는 사실을 정부는 알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1만 5000명이 넘는 광부들이 목숨을 바친 대가로 대한민국은 산업화와 민주화에 성공할 수 있었다”며 “늦었지만 산업전사에 걸맞는 성역화를 위해 국가와 정치권이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원면식 전 광해공단 지역진흥본부장은 “성역화가 성공하자면 시민과 의회, 공무원 등이 모두 하나로 뜻을 모아야 할 것”이라며 “전국에서 유일하게 도시 전체가 탄광도시인 태백시는 탄광촌 성역화라는 도시재생의 새로운 모델로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고 전했다.

전직 중앙부처 공무원출신은 성역화 사업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김광식 전 석탄산업합리화사업단 이사장은 1967년 상공부시절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뒤 동력자원부, 산업부에서 석탄산업과와 광산보안, 탄광지역개발 등의 업무를 맡다가 석탄산업합리화사업단이 발족되면서 본부장, 이사장을 역임했다.

이후 그는 강원랜드 2대 사장으로 부임해 스몰카지노의 성공 개장 등 강원랜드 성공신화의 일등 공신 역할을 했다.

김 전 이사장은 “석탄산업과 탄광촌 태백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이 산업화와 산림녹화는 불가능했다. 산업화 시대 광부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탄을 캤고 급여와 보상 등에서 무조건적인 희생만 강요당했다. 산업화 시절 너무도 많은 광부들이 순직하거나 불구가 됐지만 보상이 미미했던 것을 반성해 정부는 태백의 석탄산업 성역화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광부들의 희생으로 이 땅에 산업화와 민주화가 가능했기에 정부지원은 당연하다.”

성역화에도 기록은 반드시 남겨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종기 전 태백시장은 “탄광촌 태백에 대한 성역화를 진행하면서 태백시개청 40주년 백서와 성역화 백서를 만들기를 희망한다”며 “백서에는 태백의 과거와 현재는 물론 미래의 청사진도 담겨져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아울러 산업전사위령탑 성역화로 공원이 확장되면 공원 내부에 탄광촌과 탄광의 애환과 기구한 사연에 얽힌 광부들의 조각상을 예술적인 작품으로 설치하면서 스토리를 첨부하는 방안도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정연수 탄전문화연구소장은 “성역화 사업에는 산업전사위령탑에 안치된 순직광부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스토리를 발굴하는 것은 물론 기적 같은 탄광사고 생환의 스토리나 남편과 아들을 탄광사고로 잃은 여인의 기구한 사연 등의 광부조각상들도 감동요인이 될 것”이라며 “망자의 이름만 적힌 위패안치소를 뛰어넘는 작업이 진정한 성역화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태백시는 산업전사위령탑 성역화 관련 연구용역을 정선에 본사를 둔 K엔지니어링(주 사무소 경기 성남)에 지난 5월 29일부터 9월 25일까지 의뢰해 용역이 진행 중이다.

▲2018년 7월 태백석탄박물관에서 열린 '생환 그 345시간의 기록' 특별전시회에 탄광 출수사고로 14일만에 기적적으로 구출된 배대창씨(작고)의 생환기를 다룬 전시관에서 미망인 문순기씨가 감회어린 표정으로 살펴보고 있다. ⓒ프레시안

그러나 탄광촌 태백의 정체성 회복과 산업전사위령탑을 중심으로 한 성역화 또는 성지화 사업을 ‘설계, 측량/기술용역 등 도시계획 및 조경설계 서비스업체’에 맡긴 것은 우려스럽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 최고 탄광도시의 정체성과 성역화의 밑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태백에 대한 역사성과 탄광 및 광부들에 대한 이해가 기초가 되어야 하지만 연구용역을 맡은 회사는 도시계획과 조경설계의 전문기업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태백시와 민간단체가 기대했던 성역화와 동 떨어진 그림이 그려지거나 기대와 다른 내용이 나올 경우 시간과 예산만 낭비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아울러 탄광촌 성역화사업에 산업전사위령탑 중심으로 진행되지만 석탄박물관에 대한 정체성 확립도 함께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연수 탄전문화연구소장은 “석탄박물관도 성역화에 맞춰 기존의 전시공간의 틀을 바꿔 명칭에 걸맞도록 탄광 중심의 역사와 감동을 녹여야 할 것”이라며 “탄광유산관리사업소는 탄광유산 만을 체계적으로 유지, 관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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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춘봉

강원취재본부 홍춘봉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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