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는 창원공단이 있는 곳이다. 선거 때가 되면 흔히 '진보정치 1번지'로 호명되기도 한다. 2016년 4월부터 2018년 여름까지 국회의원 노회찬의 지역구였다. 노회찬은 창원과 특별한 연고가 없었으나, 2016년 4.13총선에서 영남 진보정치의 교두보를 되찾아오기 위한 노동운동 진영의 부름을 받아 구원투수로 투입돼 우여곡절 끝에 높은 지지율로 당선했다. 노회찬의 창원 등판은 이 지역 열혈 진보정치 활동가·지지자들에게는 진군의 북소리였다. 원대한 희망의 재출발이었다. 그런 만큼 노회찬의 타계는 믿을 수 없는 청천벽력이었다.
노회찬의 부재를 떠올리게 하는 뉴스나 사건을 접할 때, 그들의 가슴 속은 사무친다.
진짜 미워서 용서를 못하는 게 아니다. 원망이 사무쳐서다. 그런 이들의 붉은 눈시울엔 희망의 근거를 잃어버린 사람의 비통함이 화살처럼 박혀 있다.
그러므로 '음식천국 노회찬' 일행이 창원에서 보낸 하루는 '웃픈' 시간이었다. 맛있는 음식에 웃고, 그리운 추억에 슬픈. 일행 모두가 사실 그런 기분이었다는 것을 알리고 이야기를 시작하는 게 도리일 것이다. 노회찬의 발길이 머문 곳에서 여전히 그를 사랑하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 오후 1시의 짬뽕, 오후 4시의 생선국, 오후 7시의 장어구이. 고량주, 막걸리, 소맥의 추임새. 창원의 '짠한' 하루를 정성을 다해 이끌어 주신 분들은 정의당 도당위원장이자 창원시의회 부의장 노창섭, 정의당 경남도당 사무처장 김순희, 20대 총선 노회찬선거본부 자원봉사단장 배정란, 노회찬선본의 열성 운동원 신천섭 전 금속노조 경남지부장 등이시다. 환대해 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노회찬재단에선 김형탁 사무총장과 박규님 운영실장이 먼 길 동행해주셨다. 사실 이분들이야말로 봉 잡은 거다. 멀다고 그 기막힌 맛의 기회를 내친 재단 직원들은 두고두고 후회하리라.
2.
KTX 창원중앙역에 내려 택시로 이동한 곳은 창원시청 부근 중국집 '백년옛날짬뽕'이다. 창원에서 흰짬뽕(백짬뽕) 맛있기로 소문나 있다. 노회찬도 지역구에 내려오면 거의 빼놓지 않고 들른다. 일정이 밀려 들르지 못할라 치면, 공항 가는 시간을 쪼개어서라도 유산슬에 옌타이꾸냥 한잔하고 흰짬뽕 먹고 가는 집이다. 현재의 자리에 문을 연 지는 11년째, 중국집 업력은 30년이다. 남편 최대성 씨가 주방을 맡고 있고, 아내 황금령 씨가 지배인 격이다. 해병대 제대한 지 8개월 되었다는 아들이 아버지 밑에서 열심히 주방 보조를 하고 있다.
서울서 노회찬 때문에 왔다고 하니 '황 지배인'이 노회찬한테처럼 유산슬과 옌타이 한 병을 내온다. 유산슬은 몇 젓가락에 이미 판단이 선다. 역시 맛있군요. 노회찬 선생!
잠시 후 주방에서 나온 '최 주방장'. 생김새가 부인이 미리 예고해준대로 "시커먼 나무꾼"이다. 요리를 잘할 것처럼 생기지 않았는데, 음식 맛은 좋다고 칭찬인지 아닌지 헷갈릴만 한 인사를 건넸더니, 지배인이 대신 대답하신다. "그래도 뭐, 지금은 좀 나아요. 얼마 전까진 노숙자, 그랬죠."
최 씨의 말에 따르면 단골손님들은 주방에 있어도 누가 왔는지 목소리로, 신호로 대강 알게 되는데, 주문을 받으면 그 손님의 입맛과 취향을 생각하며 조리를 시작한단다. 같은 음식이라도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기에 조금 더 그 사람 입에 맞게 신경을 써서 음식하는 게 맛의 비결이라는 것. 똑같은 라면도 누가 어떻게 끓이느냐에 따라 다른 걸 생각하면 역시 얼마나 정성을 기울이느냐에 차이가 있다는 말씀이시다. 듣고 보면 지극히 당연한, 간단한 맛의 비밀이다.
이 집의 대표 메뉴인 흰짬뽕은 국물맛이 특히 시원하고 담백하다. 짬뽕 속 야채와 해물의 신선도도 남다르다는 걸 금세 느낄 수 있다. 흰짬뽕 국물맛의 비결을 물었더니 부인께서 남편에게 "기자님이 자꾸 우리 육수비법을 묻네요. 서울 가서 하나 차릴라꼬 그랑가보네."
역시 같은 대답이다. 조금 더, 한번 더, 몇 분 더 신경을 더 쓰는 것.
원래 짬뽕은 일본 규슈의 중국화교가 시작한 요리. 이런저런 재료를 섞어서 만든 중국 전통음식(차오마멘)인데 일본인들이 "재료가 섞였다"는 의미의 일본말 '잔폰(ちゃんぽん)'으로 부르면서 하나의 요리로 자리를 잡았다. 우리나라도 처음엔 중국을 통해 차오마멘으로 들어와 개항기에 일본식 잔폰과 만나 지금 같은 한국식 짬뽕이 되었다. 말하자면, 흰짬뽕은 한국식 짬뽕이 탄생하기 이전 짬뽕 본래의 조리법에 기원을 두고 있다.
최 씨는 흰짬뽕을 "어깨너머로 배웠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손님들이 모두 실험대상이었죠. 죄송하지만…." 이렇게도 먹여보고 저렇게도 먹여보면서 흰짬뽕만의 맛의 본질을 찾아보고, 즐겨 찾는 손님의 입맛에 맞춰도 보면서 조금씩 최 씨만의 흰짬뽕으로 발전해 갔을 것이다. 중국집을 하게 된 계기를 물어보니, "묵고 살라다 보니…"라는 대답이 돌아왔지만, 20대 초반에 직업을 요리사로 바꾼 것으로 보아 적어도 자신은 본인의 요리지능을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27살 아들이 자발적으로 아버지 밑에서 가업승계를 준비하는 것도 어쩌면 DNA의 부름에 응한 것일 수도 있다. 아들의 여자친구는 음대를 나와 피아노 학원을 운영 중인데 가끔 요리를 만들어 보낸다고 한다. 여자친구가 전하는 말에 따르면, 부모님이 요리를 들어보시곤 그랬단다. "요리사 사위도 괜찮을 것 같네."
3.
최 씨는 본래 부산의 공장노동자였다. 고무공장에 다니면서 노동운동에 눈을 떴다. 그 공장에서 잘리고, 현대차 부품 납품업체에 다시 들어갔다가 또 잘렸다. 블랙리스트에 올랐는지, 더는 취직이 안 돼 놀고 있던 중에 아는 사람의 소개로 중국집에 발을 들여놓았다. 1991년경이라고 하니 23살 때였다. 중국집을 시작하고 지금의 지배인과 결혼했다. 두 사람은 부산에서 공장을 다니며 노동운동을 하다가 연분이 난 사이였다. "그때 마, 가투(가두투쟁)할 때 보도블록 깨갖고 마, 쐐리 남자들한테 날랐다아이가. ㅎㅎ" 비유 같기도 하고 사실 같기도 하다. 동석한 분들이 놀린다.
그런데 지배인 황 씨가 주방장 최 씨보다 다섯 살이나 많다. 지인들 사이에선 이미 비밀도 아닌지, '나무꾼과 선녀'라고들 부른다. 먼저 옷을 훔친 쪽은 나무꾼일까, 선녀일까. 최 씨에게 나이를 알고 만났냐고 물어보니, "남녀가 뭐 나이 물어보고 만나나요?" 그러신다. 한창의 남녀가 데모대 속에서 함께 시위를 하다가 땀투성이 손을 부여잡고 최루탄 속을 달음박질치는데, 어떻게 사랑이 싹트지 않고 배기랴.
노회찬이 유시민, 진중권 등과 팟캐스트 <노유진의 정치카페>를 할 때였다. 열렬한 애청자였던 황 씨가 모처럼 들른 노회찬에게 슬쩍 민원을 넣는다. 노회찬이 그걸 잊지 않고, 어느 날 방송에서 창원시청 앞 흰짬뽕집을 대놓고 홍보했다. 옆의 유시민은 "이 집 사장님, 참 저렴하게 광고하신다"며 놀리고. 아무튼 창원 용호동의 백년옛날짬뽕집은 그날로 전국구가 되었다.
부부는 창원에서 봉사활동도 많이 하는 사람으로도 칭송을 받는다. 노동절에 무료로 짜장면을 돌리고, 수익금 일부를 해고노동자 생계지원금으로 보태기도 했다. 노동자 출신 부부의 아름다운 이력이 노회찬에게도 '동지적' 감동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살아서는 노회찬의 열렬한 지지자, 그가 없는 지금은 노회찬재단의 뜨거운 후원자이시다.
4.
백년옛날짬뽕집 벽에는 작년부터 시 한 편이 걸려 있다. 2019년 6월 6일 개업 10주년을 맞아 이 지역 시인(김유철)이 쓴 헌시이다.(김유철 시인은 노회찬 1주기 창원추모문화제에서 헌시를 낭독했다.) 한갓 중국집이 무슨 덕을 어떻게 얼마나 쌓았길래 지역의 명망 있는 시인으로부터 이런 헌시를 받을까. 궁금한 분들을 위해 기록으로 남기는 의미에서 전문을 옮긴다. 구구한 설명보다 시 한편 읽는 게 깔끔하다. 최대성·황금령의 흰짬뽕 맛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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