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창원시는 1970년대 초 대한민국 최초의 계획도시로 건설됐다. 2010년에는 주변의 마산시, 진해시를 끌어안고 인구 100만 명의 전국 최대 규모의 기초자치단체가 됐다. '창원'이란 지명은 조선 초기 태종이 대마도 왜구를 막는 군영 설치를 위해 의창(義昌)현과 회원(檜原)현을 합쳐 창원부를 만든 데서 유래한다.
창원공단은 주로 창원시 성산구 일대에 자리 잡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노동자 인구가 어느 지역보다 밀집해 있어서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이 일찍부터 활발했다. 이러한 창원에 노회찬이 등장한 사연은 다른 편에서도 몇 번 언급했었다.
그러나 실제 선거 국면은 험난한 길의 연속이었다. 노회찬이 정의당 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민주노총 조합원의 지지를 먼저 얻어야 했다. 이 고비를 넘기면 민주당 후보와의 후보단일화라는 두 번째 고비가 있고, 세 번째는 당시 여당의 지지세력인 보수 표심의 벽을 넘어야 했다. 노회찬은 이 세 고비를 차례로 극복했다. 노회찬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단언해도 좋다.
2.
2016년 2월 출사표를 던지고 창원에 내려온 노회찬 사람들은 당시 여영국 전 의원(당시 경남도의원)이 운영하는 창원미래연구소에 방을 하나 얻어 비공식 선거사무실로 사용했다. 이들은 하루 일과를 마치면 근처 식당을 찾아 저녁 끼니와 한잔 술을 해결하곤 했는데, 그 집 중의 하나가 성산구 상남동의 '오동동부엉이집'(마디미로3번길 8 2층)이다. 오동동은 구(舊) 마산의 번화한 동네. 이 집이 오동동에서 시작해 현재의 상남동 자리로 옮겨온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다른 동네로 이사 오면서 원래 동네 이름까지 그대로 썼다면 그만큼 그 이름으로 많이 알려진 집이란 뜻 일 게다.
노회찬은 이 오동동부엉이집 생선국을 무척이나 좋아했다고 한다. 여기 생선국은 비린내 하나 없이 시원한 맛이라 술꾼에게는 해장용으로 딱인데, 특히 오동동부엉이집이 유명했다. 술을 좋아했고 또 술자리가 많을 수밖에 없는 노회찬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음식이었을 것이다. 기자도 이런 생선국을 처음 먹어보았는데, 단연 가성비 최고의 해장 국물이었다.
마산의 대표 향토음식이라고 할 만한 생선국은 바다에서 막 잡은 살아있는 자연산 생선(주로 도다리, 물메기, 명태. 제철 다른 잡어들도 생선국 재료로 쓴다고 한다)을 토막 쳐 다시마와 무로만 낸 육수에 넣고 마늘과 소금, 국간장 등으로 살짝 간을 한 다음 열전도가 높은 양은냄비에서 센 불에 미나리와 몰이(모자반)를 얹어 한소끔 끓인 뒤 바로 손님상에 내놓는 국이다. 산 생선을 쓰는 만큼 비린내가 전혀 나지 않는다. 국이 식어도 비린내가 올라오지 않으니 시원한 맛에 식어도 자꾸 손이 간다.
오동동부엉이집 생선국만의 비결이라면 국을 끓일 때 해초(모자반)와 이 집에서 직접 만든 막걸리 식초를 가미하는 것. 양은냄비에서 생선국이 마지막으로 끓을 때쯤, 창원 특산의 북면막걸리로 만든 식초를 반 큰술 넣는 게 핵심이라고. 모자반은 생산량이 많지 않아 전남 완도 등지에서 직접 사 온다. 이 모자반 역시 부엉이집 생선국의 차별성을 자랑하는 한편 국물 맛을 잡아주는 미묘한 역할도 하는 것 같다.
마산에는 탱수(삼세기의 경남 사투리)탕도 유명한데, 이 탱수탕이나 봄철 도다리쑥국도 넓은 의미에서 생선국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밖에 부엉이집의 호래기(꼴뚜기의 창원 사투리)회는 제철에만 먹을 수 있는 별미 중의 별미이다. 반찬 하나하나도 모두 허투루 하는 솜씨가 아니다.
오동동부엉이집은 50년 전 마산 합포구 바닷가 오동동 6번지 아들 넷 있는 집의 큰 며느리(이계순)가 처음 문을 열었다. 큰며느리의 생선국 식당은 곧 마산 일대에서 손꼽히는 유명한 생선국집으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나머지 손아랫동서 세 명도 '큰행님'을 따라 각자 생선국집을 열어 모두 성업을 이뤘다고. 나중에 큰며느리가 시댁인 오동동에서 이곳 상남동으로 옮긴 것이 지금의 오동동부엉이집이다. 현재는 셋째 이남숙(68) 씨가 운영 중이다. "큰 형님이 나이가 드시고 다리가 아파 병원에 다니게 되면서 식당을 대신 맡고 있다"고 설명한다. 2000년대 초 인기 아이돌그룹 '인피니티'의 호야가 큰 집의 손자라고 한다. 식당 카운터에도 손자의 사진이 자랑스레 붙어있다.
3.
창원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곳을 더 들렀다. 노회찬의 창원 발걸음이 마지막으로 멈춘 집이라고 해서 찾아간 성산구 중앙동의 '구구바다장어구이'집(외동 반림로 126번 길 57-1)이다. 창원은 '장어거리'가 따로 있을 만큼 장어요리가 유명하다. 마산 앞바다에서 바닷장어가 많이 잡히고, 또 양식도 많이 하기 때문에 싱싱한 장어를 제때 공급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구구바다장어구이집은 일행의 소개에 따르면, 창원의 많은 '짱어집' 중에서도 가격 대비 맛이 좋기로 소문난 집이라고 한다.
타계 열흘 전인 2018년 7월 13일 노회찬은 이 집에서 그해 6월 치러진 전국동시지방선거 경남도의원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여영국 전 의원 등을 초대해 '소맥(소주+맥주)'을 나누며 아쉬움을 달랬다. 노회찬은 "여 의원을 더 크게 쓰이게 하려고 창원시민들이 이번에 잠깐 쉬게 하는 것"이라며 몇 시간 사이로 천국과 지옥을 오간 여영국을 위로했다.(여영국은 개표 초기 계속 이겼다가 새벽 부재자 투표 개표에서 아슬아슬하게 졌다.) 이번 여행에 여 전 의원을 초대해 노회찬과의 창원 시절을 돌아볼 기회를 가져보려 했으나, 정의당 중앙당 일정과 겹치는 바람에 자리가 이뤄지지 못했다.
처음 온 사람들에게 이 집은 '구구'라는 특이한 옥호가 먼저 눈길을 끌 것 같다. 보통은 잘 쓰지 않는 한자를 한글과 병기해가며 간판에 쓰고 있는데, 금테 두를 '구(釦)'에 공 '구(球)' 자를 쓴 '구구(釦球)'이다. 직역하면, 둥근 공에 금을 씌운 것이니 황금빛 여의주를 연상시킬 의도의 작명임이 분명하다. 유래를 물어보니, 아는 스님이 식당 주인의 생일이 9월 9일인 데서 착안해 지어주었다고 한다. 이름 덕분인지 가게가 성업을 이루고 있다니 축하할 일이다.
구구집에는 금속노조 경남지부장을 지낸 신천섭(S&T중공업근무) '동지'도 함께 했다. 노회찬이 창원에 올 즈음의 사정을 잘 아는 분들이 많이 모였으니 선거 때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봤다.
결국 노회찬 진영은 민주노총 산하 지부장들에게 내부의 진영 논리를 뛰어넘어야 후보 단일화도 있고 본선 승리도 있음을 강조하며 현실적 대안으로서 노회찬을 지지해 줄 것을 호소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분위기만으로는 1000표 이상의 여유 있는 승리가 점쳐졌음에도 막상 개표 결과는 박빙이었다. 2위 후보와의 표차는 279표 차. 자칫했으면 질 수도 있었던 선거였다. 그만큼 진영 논리는 뿌리 깊고 고질적인 병폐였다.
4.
구구바다장어구이집은 기자에게 장어는 기름기 때문에 많이 먹지 못하고 쉽게 물린다는 건 잘못된 고정관념이었음을 일깨워주었다. 장어는 스테미너 식으로 인기가 높지만, 기름진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겐 호감도가 그리 높지 않은데, 바닷장어는 그게 아니었다. 민물장어와 달리 기름기와 느끼함이 적고, 육질도 고소하고 바삭한 식감도 좋다. 굽기가 바쁘게 젓가락이 나간다. 오후 들어서만 벌써 세 번째 식당인데도 그렇다.
이곳 분들은 장어를 꼭 '짱어'라고 발음하신다.
한 분이 기자에게 "서울에도 짱어집이 있지예?"라고 묻자, 다른 분이 "서울에 없는 게 어딨어? 그래 묻지 말고, 이래 물어야제. 서울에도 이래 맛있는 짱어집이 있습니까?" 아무래도 오늘은 앉은 자리에서 구운 장어를 가장 많이 먹은 날이 될 것만 같다.
기차 시간이 다가와 슬슬 일어설 때가 되었는데도 이야기가 끝이 없다.
떡전어는 가을철에 마산만에서 잡히는 전어를 가리킨다. 창원지역에서는 떡처럼 살이 통통하고 크다고 하여 떡전어라고 부른다고. 보통 전어보다 크기 때문에 큼직하게 토막 쳐서 구워 먹기도 하고 뱃살의 잔가시를 빼고 회를 쳐 먹거나 무쳐 먹기도 하는데, 어느 쪽이나 모두 별미로 친다.
약 8시간 동안 세 군데 식당을 들렀다. 속도전 하듯 창원의 '삼시세끼'를 마치고 그만 헤어지려니, 그새 창원에 정이 들었는지 KTX가 있는 게 오히려 야속하다. 귀한 시간을 내어 음식과 이야기 베풀어주신 분들에게 감사를…. 살아서 좋은 사람들을 가교로 만들어주신 천국의 노회찬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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