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최순실 사태가 터지기 전에 지금의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은 연이은 선거 패배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무력한 정당이었다. 비록 20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123석을 차지함으로써 122석의 새누리당에 앞섰으나 한국사회의 지배적 경향인 보수 우위의 구도와 맞물리면서 진보의 집권은 정치적 상상의 영역에서만 존재하는 신기루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헌정사상 전무후무한 국정농단에 정치는 요동쳤고 민심은 하루아침에 민주당 지지로 돌아섰다. 민주당이 가시적이고 민생에 조응하는 정책을 내놓아서가 아니었다. 지난 총선의 민주당 압승이 코로나 방역에 기인한 것이라고 하지만 미래통합당의 냉전 수구적 행태와 박근혜 탄핵에 반성하지 못하고 극우 강성 세력에 기댄 구태에 대한 심판으로 보는 게 더 정확한 분석이다.
정당과 정치인 지지도에 대한 여론조사는 가변적이지만 추세와 지지율이 갖는 정치적 의미조차 무시할 수는 없다. 통합당이 민주당을 앞선 일부 여론조사와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평가에서 부정이 긍정을 앞선 결과는 자못 의미심장하다. 이러한 결과는 박근혜 국정농단 이래 처음이거니와 그동안 누적됐던 부정적 요인들이 집적된 결과라고 보아야 한다. '일시적 현상'일 수 있겠지만 여당이 할 얘기는 아니다.
우선 부동산 정책 실패를 들 수 있겠으나 이것 하나만으로 설명될 수는 없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것이다. 수적 우세를 바탕으로 입법과정에서 보여준 행태에 대한 시민들의 견제, 과도하게 인식될 수 있는 법무부 장관과 일부 민주당 친문 의원들의 윤석열 검찰총장 압박 등이 겹친 결과이다. 무엇보다도 신뢰의 추락과 청와대 측근들의 도덕적 해이 등이 지지율을 하락시켰다. 어제 리얼미터 조사에선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상승하긴 했다. 그러나 최근의 추세를 적신호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지지율은 더욱 하락할 수 있다.
관건은 확산일로에 있는 코로나19 추세를 여하히 완화·저지하느냐에 달렸고, 여당 새 지도부가 구성되면 독식한 국회 상임위원장 재분배와 부동산 정책의 보완 등 디테일에서 정책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느냐이다.
역대 정권들은 집권 4년차에 예외없이 대통령 레임덕을 피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대통령 지지율이 정당지지율보다 낮아지면 이를 레임덕의 전조로 본다. 권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권력누수 현상은 차기 여권 대선 후보들이 집권세력을 비판하고 미래권력으로서의 정체성 확보를 위한 행보 등의 정치공학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권력의 집중력이 떨어지는 현상으로 보아야 한다. 집권초기의 개혁마인드와 변화에 대한 국민 열망을 장기적인 로드맵을 가지고 추진하면서 민심의 소재에 항상 조응한다면 레임덕은 피할 수 없는 블랙홀이 아닐 수 있다.
민주주의의 요체는 대표성·책임성·반응성이다. 이 세 가지가 유기적인 연관과 인과관계를 맺고 있지만 유권자에 대한 반응성은 민의에 대한 집중과 선택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최근 민주당 등 여권의 발언 중 민심과 동떨어진 정치적 언어들도 정권에 대한 불신을 키우는 중대한 원인이었다.
박근혜 정권 때 '콘크리트 지지층'은 박 정권을 지탱하는 열성지지층을 의미했다. 태극기 집회를 그들이 이어가고 있는지 모를 일이지만 극우논리에 찌든 이들을 보면 극렬 지지층이 정치적으로 유의미한 존재가 아님이 입증됐다.
문재인 정권에도 강한 지지층이 존재한다. 소위 친문으로 지칭되는 세력이다. 한국정치에서 스윙보터 또는 중도 유권자의 향배는 선거 승패를 좌우하지만 한국정치에서 중도정당으로 인식되는 제3정당이 집권한 적은 없다. 20대 총선 때 안철수의 국민의당이 호남에서의 돌풍에 힘입어 38석을 얻었지만 안철수 후보는 대선에서 패배했다.
그러나 최근의 정당지지도 변화에서 알 수 있듯이 중도층은 더 이상 무당층이나 진보나 보수 중 강한 흐름에 쏠리는 소극적 방관자가 아니다. 진영에 관계없이 실용적 관점과 보편상식에 입각하여 판단을 하는 적극적 참여자로 바뀌고 있다. 이들이 권력의 향배를 결정하는 요인으로 등장하고 있다. 중도층의 다양한 정치사회적 이슈에 대한 인식을 정확히 파악해 나간다면 레임덕은 더 이상 대통령제의 숙명이 아니다. 민의에 부응하는 것, 그것이 정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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