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현지시간)부터 진행 중인 2020년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에 유독 두드러진 장면 중 하나는 공화당원인 유명 정치인들이 직접 연사로 나서서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 지지 입장을 밝히고 있다는 사실이다.
17일에는 존 케이식 전 오하이오 주지사, 18일에는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과 고(故) 존 매케인 전 공화당 대선후보(상원의원) 부인인 신디 매케인이 바이든 지지 연설을 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자당의 대선 후보(대통령, 부통령)와 정강정책을 공식적으로 인준하는 자리인 전당대회는 미국 민주주의에서 매우 중요한 이벤트로 거의 일주일 동안(월-목) 진행된다.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예년에 비해 행사 규모를 축소하고 대부분의 행사를 온라인 상에서 진행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당대회의 성격과 위상이 달라진 건 아니다.
따라서 공화당 정치인이 민주당 전당대회에 참석해 지지 연설을 한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공화당 온건파의 불신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직접 바이든 지지 입장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힌 이들도 다수다. 공화당 출신 전직 대통령인 조지 HW 부시와 그 아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내주(8월 24-27일) 열릴 공화당 전당대회에 참석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동생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도 전당대회에 불참한다. 이들은 2016년 전당대회 때도 불참했다. 고(故)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측은 트럼프 대선캠프에 레이건의 이름과 이미지를 선거에 활용하지 말라는 입장을 전달하기도 했다. 2012년 공화당 대선후보이자 현재 상원의원인 밋 롬니 의원도 2016년에 이어 이번 전당대회 때도 불참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온건 성향의 공화당 유명 정치인들이 노골적으로 정치적 분열과 인종주의를 부추기는 트럼프 대통령의 노선에 대한 반발로 전당대회를 사실상 '보이코트'하자 트럼프 대통령 측은 오히려 더 백인우월주의에 기반한 입장을 강화하는 자리로 전당대회를 활용할 계획이다. 트럼프 캠프는 지난 6월 인종차별 항의시위대에 총을 겨눈 백인 변호사 부부를 이번 전당대회 연설자로 초청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19일(현지시간)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백인 우월주의에 기반한 음모론자들인 '큐어넌(Qanon)'에 대해 "그들은 애국자"라면서 옹호하고 나서면서 이런 공화당의 분열상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콜린 파월, 존 케이식 등 공화당 거물 정치인들이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바이든 지지" 연설
2016년 공화당 대선 경선에도 참여했던 존 케이식 전 오하이오 주지사는 17일 "나는 평생 공화당원이지만 공화당에 대한 애착은 조국에 대한 책임에 앞서지 않는다"며 "평상시 같으면 이런 일은 아마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지만 지금은 정상이 아니다"며 바이든 지지를 선언했다. 케이식은 사전에 녹화된 연설 영상에서 양쪽으로 갈린 갈림길 모서리에 서서 연설을 했다. 현재 미국이 처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연출이다.
콜린 파월 전 장관은 18일 "내가 (뉴욕) 사우스 브롱크스에서 자라면서 배운 가치, 제복을 입고 봉사하며 배운 가치는, 펜실베이니아 스크랜턴에서 조 바이든의 부모가 그에게 불어넣은 가치와 같은 것이었다"며 "우리는 그 가치를 백악관에 복원할 필요가 있다. 그는 첫날부터 미국의 리더십과 도덕적 권위를 복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파월 전 장관은 공화당 정부에서 미국 최초의 흑인 합참의장, 국무장관을 지낸 인사다.
파월은 "우리나라는 자기 가족을 돌보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부대를 돌보는 사령관이 필요하다"며 "바이든에게는 자기 아들을 전쟁에 보낸 뒤 안전하게 집에 오기를 신에게 기도하는, 수백만 군 가족들과 공유하는 경험으로부터 이것이 나온다"고 말했다. 지난 2015년 뇌암으로 세상을 떠난 바이든의 장남 보우 바이든이 이라크 전쟁 때 참전한 사실을 언급한 것이다.
그는 이어 "조 바이든이 백악관에 있으면 여러분은 그가 우리 친구들과 함께하고, 우리 적에게 맞설 것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라며 "독재자나 폭군의 아첨이 아니라 우리 외교관과 정보 공동체를 신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인종주의 음모론자들 '큐어넌'에 대해 공식적으로 지지 입장 밝혀
전직 대선후보, 전직 대통령 등 통상 전당대회에서 지지 연설을 할만한 인사들에게 외면 당한 트럼프 대통령 측은 대신 이번 전당대회를 노골적인 백인 인종주의자들의 '잔치'로 만들 계획이다. 트럼프 캠프는 지난 6월 미주리주에서 인종차별 항의 시위대에게 총을 겨누면서 위협해 논란을 일으킨 마크와 페트리샤 맥크로스키 부부를 이번 전당대회 연사로 초대했다고 18일 <비즈니스 인사이더>가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9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큐어넌'에 대한 질문을 받고 "이들은 우리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고 들었다"고 옹호하고 나섰다. 트럼프가 이 문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트럼프 지지자들 사이에 마치 '사이비 종교'처럼 번지고 있는 '큐어넌'은 그 실체가 불분명한 백인 인종주의에 기반한 음모론이다. 2017년 'Q'라는 '익명(anonymous)'의 고위관료(라고 주장하는 인물)가 올리는 글들이 트럼프 지지자들 사이에서 확산되면서, 이 내용을 믿는 사람들이 일종의 정치 집단이 됐다. 이 내용은 '딥 스테이트(Deep-State, 미국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주류 정치집단으로 트럼프를 반대하는 사람들)'와 관련된 '비밀 단서'라면서 '트럼프가 사탄을 찬양하고 아동 성매매를 옹호하는 '딥 스테이트'에 맞서 싸우고 있다'는 전혀 근거도 없는 음모론들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트럼프 지지자들 사이에서 빠르게 유통되고 정설처럼 여겨지고 있다. 이들은 '딥 스테이트'에서 트럼프를 암살하기 위해 '에어포스 원'(대통령 전용기)를 저격하려 했다고 믿고, 러시아 스캔들, 탄핵 사태 등 트럼프에게 불리했던 모든 정치적 사건은 '딥 스테이트'에서 조작한 일이라고 믿는다. 최근 트럼프 캠페인에 가면 'Q', 'Qanon' 등이 쓰여진 피켓을 들거나 티셔츠를 입고 있는 지지자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지난 5월 FBI 내부 게시판에는 음모론에 기반한 극단주의자들인 '큐어넌' 세력의 확산이 국내 테러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보고가 올라오기도 했다.
트럼프 정권 아래에서 이들이 정치세력화 됐다는 것은 얼마전 조지아주의 하원의원 예비경선에서는 '큐어넌' 지지자가 공화당 후보로 확정됐다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큐어넌' 신봉자인 머조리 테일러 그린은 조지아 14선거구 경선에서 승리해 공화당 후보로 11월 선거에 출마할 예정이다. 이 지역은 공화당 우세 지역으로 당선이 거의 확실시 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큐어넌'에 대해 "그들이 나를 매우 좋아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것 외에는 별로 듣지 못했다"고 약간의 거리를 두었지만 "애국자"라면서 이들을 옹호하고 나선 것은 공화당 분열의 궁극적인 책임이 트럼프에게 있음을 보여준다.
트럼프 대통령이 6월 인종차별 항의시위를 '극렬 좌파'가 주도한 것이라면서 강경 진압을 예고한 뒤 뜬금없이 백악관 앞의 교회를 찾아 성경책을 들고 기념 사진을 찍은 일, 최근 천주교 신자인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에 대해 느닷없이 "하나님을 반대한다", "종교가 없다"고 주장하고 나선 일 등 모두 '큐어넌'들의 눈높이에 맞춘 행태로 해석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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