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상황이 될 때 우리 군의 작전권은 한미연합사 사령관에게 있다. 미군 대장이 우리 군의 전시작전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1950년 7월 14일 이승만 대통령이 맥아더 유엔사령관에게 편지를 써 전작권을 이양했는데, 그 상태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70년이 넘었다. 독립국가가 이렇게 오랫동안 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타국에 맡기고 있는 경우가 또 있는지 의문이다. 주권은 대내적으로 영토와 국민에 대한 관할권을 완전하게 가지는 것이고, 대외적으로는 완전한 독립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군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는 것은 완전한 주권에 대한 흠결이 아닐 수 없다.
한미 군사 훈련을 축소·중단하는 것은 주권의 문제이니 그러면 안 된다는 분들이 주권의 주요 부분인 전작권을 환수하자는 얘기는 왜 안 하는지 모르겠다. 오히려 이런 분들은 전작권은 그대로 미국에 계속 맡기자고 한다. 모순이다.
주권 운운할 것도 없다. 상식이다. 나라가 존재하면 영토가 있고, 국민이 있어야 한다. 영토와 국민을 지키려면 군대가 있어야 한다. 이걸 남의 손에 맡기는 것은 상식에 어긋나도 많이 어긋난다.
미국 독립전쟁 당시 미국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준 소책자가 토마스 페인의 'Common Sense'(상식)이다. 미국의 분리·독립 요구는 너무 자연스러운 것이고, 미국이 스스로의 제도를 만들어 직접 장악하는 것이 훨씬 지혜롭고 안전한 것이며, 스스로를 보호하는 일을 스스로 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임을 새삼 상기시켜 미국인들의 독립 의식을 일깨웠다.
사람이 자유를 원하는 것처럼 국가도 자율성을 추구한다. 경제력도 군사력도 자율성 없이는 공허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배는 부른 데 시간 통제를 자기 마음대로 못하는 사람이 행복을 느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전작권은 이미 노무현 정부가 미국과 협상해 환수하기로 결정했었다. 물론 많은 논란과 논쟁이 있었다. 환수일은 2012년 4월 17일이었다. 그대로 진행됐더라면 8년 전 이미 환수된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슬그머니 미국에 요청해 2015년 12월 1일로 연기했다.
박근혜 정부는 이를 다시 연기했다. 환수날짜를 정한 것도 아니었다. 무기한 연기였다. 당시 합의해놓은 환수의 조건이 세 가지이다. 첫째는 한국군의 연합작전 능력, 둘째는 초기 북핵·미사일 위협 대응 능력, 셋째는 한반도 주변정세이다. 그에 따라 한미는 연합작전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연합훈련을 해왔다. 전작권이 환수되면 한미연합사가 해체되고 미래연합사가 생기는데, 이 미래연합사의 작전 능력을 향상시키는 훈련을 해온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3단계 검증평가를 실시하는 방식이다. 1단계로 기초운용 능력, 2단계로 완전 운용 능력, 3단계로는 완전 임무 수행 능력에 대한 평가를 실시해 미래연합사의 작전 능력이 인정되면 환수 절차를 진행한다는 것이다.
이 중 기초운용 능력에 대한 평가는 작년이 이미 끝났고, 완전 운용 능력은 올해 평가할 계획이었다. 내년에 완전 임무 수행 능력을 평가할 계획이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전작권을 환수한다는 것인데, 임기 내 환수는 문재인 정부의 공약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계획이 어그러져 임기 내 환수가 어렵게 돼 가는 모양새다. 올해 한미 연합 연습이 8월 16~28일로 예정돼 있는데, 코로나 19 때문에 최소 규모로 진행된다. 미래 연합사의 완전 운용 능력에 대한 평가가 부분적으로만 이뤄지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내년에 다시 이 부분에 대한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고 한다. 그렇게 평가가 순연되면 문재인 정부 내 환수는 어렵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내용의 언론 보도들을 보면 의문스럽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다. 평가 스케줄이라는 게 수학 공식처럼 정해진 것인가? 한미가 논의하면서 정해가면 되는 것 아닌가? 세상을 바꾸는 일도 사람이 하는 건데 훈련, 평가 이런 것은 한 번 논의 됐다고 해서 변경될 수 없는 것인가?
가뜩이나 코로나 19라는 지구적 전염병은 사정변경의 주요 근거가 될 수 있는 것인데, 정해놓은 훈련 스케줄이 헌법이라도 되는 양 지켜야 한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2012년에도 환수할 수 있었던 것을 어떤 연합훈련을 거쳐야 되고 그 훈련에서 평가가 괜찮아야 환수할 수 있는 것으로 얘기한다는 것 자체도 어불성설이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1949년 6월에서 1950년 6월까지 1년 간의 공백을 제외하고는 74년 동안 주한미군이 주둔해왔는데 한미 연합 작전 능력이 부족해 전작권 전환을 못한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얘기다. 그 많은 한미 연합 훈련은 뭐였고, 왜 또 3단계 검증평가가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정작 전작권이 한국으로 전환되는 상황을 상정한 것이니 훈련이 좀 다르긴 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그동안 축적한 능력과 자료는 의미 없는 것이고, 새로운 3단계 훈련과 평가는 하늘이 무너져도 지켜야 하는 것인지 의아하기 그지없다.
지금까지 전작권 환수 관련 논의를 보면, 한미가 합의만 하면 당장이라고 환수할 수 있다. 노무현 정부 당시에는 상대인 부시 행정부와 이해관계가 맞았다. 노무현 정부는 전작권을 환수하려 했고, 부시 행정부는 9·11테러 이후 세계 주요 지역에 주둔하는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높여 지구 곳곳에서 발생하는 테러에 대응하려 했다. 전작권도 한국에 넘겨주고 몸을 가볍게 해 유연성을 강화하려 했다.
그렇지만 한쪽이 반대하면 환수가 어렵다. 지금은 우리는 환수하려 하지만 미국은 꺼린다. 미중 전략 경쟁이 심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미 연합사의 해체와 미국의 영향력 약화를 가져올 전작권 전환을 달가워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정해놓은 절차를 지키자고 하는 것이다. 코로나 19로 연합연습을 못하는 게 미국에게는 전작권 전환 연기의 좋은 구실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관건은 문재인 정부의 의지이다. 임기가 2022년 5월 9일까지이니 시간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한국군의 연합작전 능력, 초기 북핵·미사일 위협 대응 능력, 한반도 주변 정세라는 전작권 환수의 조건도 박근혜 정부에서 합의해 놓은 것이다. 미래연합사의 작전 능력이라는 것도 3단계로 평가해야 한다는 법도 없다. 문재인 정부가 어떤 생각을 가지느냐에 따라 미국과 얼마든 조정해나갈 수 있는 문제이다.
노무현 정부도 '아직 때가 아니다'라고 판단했더라면 미국에 전작권 전환 요구를 못했을 것이다. 반대로 '이제 확실히 가져올 때가 됐다'라고 판단하고 미국에 강력 요구했기 때문에 환수 합의가 이뤄질 수 있었다. 지금도 '코로나 19 때문에 연합훈련을 못했으니 다음에 더 훈련한 다음 논의해보자' 이런 생각이라면 부지 하세월이다. 다음엔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른다. 반대로 '임기 내 환수 반드시 지킨다'라고 생각하면 절차는 얼마든 단축시킬 수 있다.
어느 나라 군대든 완벽할 수는 없다. 세계최강 미군도 첨단무기, 풍부한 자원으로 무장하고 있지만, 규율과 사기 측면은 부침이 많다. 한국군도 강하다. 장비, 사기, 작전 능력 등 여러 면에서 특장이 있다. 정찰과 정보 능력 면에서는 아직 갖추어야 할 것이 많다. 하지만 지난달 첫 군용 통신위성도 발사했고, 2023년에는 정찰위성도 발사할 계획이다.
완벽한 상태가 돼야 전작권을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가져오지 말자는 얘기가 된다. 전작권 환수를 언제 하든 더 개선하고 발전시켜야 할 부분은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결국 의지의 문제, 관점의 문제, 선택의 문제이다. 문재인 정부가 '임기 내 환수'라는 공약을 내걸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길 바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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