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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 재현이 아니라 공화제 대한민국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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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 재현이 아니라 공화제 대한민국을 그렸다"

일제 강제 병합된 1910년부터 1945년 해방까지...독립운동사 다룬 <35년>

일본에 강제 병합된 1910년부터 1945년 해방까지 일제강점기 우리의 역사를 다룬 만화 <35년>이 광복 75주년을 앞둔 이날 마지막 7권이 발행되며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특히 이번 7권에서는 일제의 만주침공과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등의 승승장구에 많은 공산주의자, 민족주의자가 친일파로 전향한 과정과 행위 들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주로 사회지도층으로 귀족, 관리, 군인, 예술계, 종교계, 재계 등 다양한 분야에 포진된 친일파들은 전쟁 협력과 내선일체를 선전하는 일에 적극 나섰다. 이들은 해방 이후에도 사회 곳곳에서 활약하며 우리 사회의 지도층으로 자리 잡았다.

10일 서울 영등포구 광복회에서 <35년>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35년>은 박시백 화백의 전작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의 후속작이다. 민족주의적·국가적 시각에서 벗어나 세계사적 맥락을 고려해 일제강점시 독립운동의 역사를 풀어냈다는 점을 특징으로 한다.

▲ 박시백 화백의 <35년> 완간 기념 기자간담회가 10일 서울 영등포구 광복회관에서 열렸다. 박 화백은 "독립운동가들의 치열했던 싸움과 기개를 기억하는 게 후손된 도리"라고 강조했다. ⓒ프레시안(최형락)

이를테면 1917년 러시아혁명이 일어나 볼셰비키 정권이 들어서가 조선 독립운동 진영에서도 이에 발맞춰 이동휘가 한인사회당을 조직한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제창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는 내재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식민지 국가에서 독립을 염원하는 민중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고, 여운형은 급변하는 정세를 주시하며 신한청년당을 조직해 대대적 독립운동을 준비한다.

저자 박 화백은 <35년>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독립이 막연하게 원자 폭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독립운동가들의 치열한 싸움이 없었다면 카이로선언에서 한국을 콕 찝어서 '적당한 시기에 독립시킨다'는 구절이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짚었다.

"이런 선조들의 노고를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하는 게 이 책의 메시지라 생각합니다. 그 시절에 독립을 위해 모든 걸 헌신한 분들이 어떤 혜택도 못 받고 세상을 뜨고 그 후손들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또 그 반대편에 있는 친일 부역자들에 대해서도 알아야 합니다. 불행하게도 그들은 해방 후에도 사실상 수십 년 동안 우리 사회의 주류로 살아왔고 그 후손들도 마찬가지니까요. 그걸 기억하는 게 후손된 도리입니다. 제 책이 작은 기여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앞서 1권에서는 1910년 강제 병합 이후 연해주와 상해 등 국외를 중심으로 전개된 독립운동의 역사를 살피고 2권에서는 3·1'혁명'으로의 만세운동의 의의를 짚었다. 3권에서는 일제의 문화통치와 독립운동가 사이의 분화과정을 섬세하게 그리고 4권에서는 3·1혁명 이후의 학생운동과 민족운동 등을 통해 변화한 대중의 모습을 보여줬다. 5권에서는 전 세계를 강타한 대공황과 그로인한 일본 식민지 정책의 변화, 그에 맞춘 독립운동의 전개 등을 그렸다.

마지막 6, 7권에서는 우리 현대사에서 청산하지 못한 과거, 친일파의 탄생과 인물 면면에 대한 묘사를 중점으로 이야기를 풀었다.

박 화백은 <35년>을 "독립운동의 현장을 찾아 국내외를 답사했고 각종 자료 수집과 공부에 매진한 지 5년여 만에 완성한 결과물"이라면서도 "맨땅에 헤딩"하면서 만들었다고 했다. 자료가 충분하지 않았던 탓이다.

"전작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왕조실록이라는 기본 텍스트가 있었습니다. 반면 <35년>은 기본 텍스트 없이 관련된 여러 자료들, 단행본들을 찾아서 서로 상충되는 부분을 확인하며 공부해야 해서 쉽지 않았어요. 특히 사회주의운동, 공산주의운동이 뒤섞여 있던 국내 독립운동에 관한 정리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어요."

그는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가 간행한 <한국독립운동의 역사>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의 <친일인명사전>을 기본 텍스트로 삼고 이밖에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국사편찬위원회 등의 연구 자료와 100여 권 가량 되는 단행본을 참고해 공부하며 스토리를 짜는 데만 4년여가 걸렸다고 밝혔다.

또한 9명의 현직 역사 교사가 편집에 참여하여 역사적 사실관계를 바로잡았고, 밀도 있는 작품을 독자에게 전하기 위한 교정과 정리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한 정교함은 4권에 나오는 윤봉길 의사의 홍커우공원 의거 장면에서 찾을 수 있다. 윤봉길 의사는 흔히 알려진 '도시락 폭탄'이 아닌 '수통 폭탄'을 단상의 일본군사령관에게 던진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윤봉길 의사는 당시 '도시락 폭탄'과 '수통 폭탄' 2개를 준비했고, 의거에는 '수통 폭탄'을 사용했다는 점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작가는 "가급적 더 많은 독립운동가들과 친일부역자들을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작업에 매진했다고 말한다. 그 결과 7권까지 약 1000여 명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일제강점기는 대개 유관순의 3‧1만세운동과 윤봉길의 의거, 김좌진의 청산리전투 등 일부 영웅적 인물과 사건에만 치중해 각인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식민지를 살아가며 독립을 위해 애쓴 수많은 민중들과 그들이 남긴 유산은 훨씬 광범위하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김알렉산드라라는 여성 독립 운동가는 연해주에서 출생해 볼셰비키혁명에 참여했던 사람이에요. 러시아혁명과정에 헌신했던 사람임에도 조선의 독립 문제에 대단한 관심과 애정을 가졌어요. 마지막에 총살당하는 모습에서는 철저히 조선 사람임을 보여줍니다.

유사한 사례로 최재형 운동가도 연해주에서 활동하신 분인데, 이분은 출생 자체가 조선의 노비였습니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와 연해주로 이주했는데 아버지도 가정을 돌보지 않아 어렸을 때부터 집을 나와 해외를 돌았어요. 이분 입장에서는 조선이라는 나라에 좋은 기억이 없었을 겁니다. 그래도 조선의 독립운동을 위해 끝까지 헌신합니다.

한 분 더 얘기하면, 마라토너 손기정 선생님 같은 경우는 사람들이 올림픽 시상식에서 월계수로 일장기를 가린 모습만을 기억합니다. 그분은 해방 직전, 건국동맹을 만들면서 군대를 조직하려 할 때 연락원 역할을 합니다. 여운형 선생님이 세상을 뜨고 나서는 오열을 하며 운구하는 모습이 영상으로도 남아있어요. 금메달을 따서 우리 민족에게 자긍심을 준 마라토너 이상의 뜨거운 애국자였습니다."

민중의 들끓는 저항이 폭발했던 3‧1혁명의 순간들과 그 이후의 대중운동,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분열, 식민지 경성에서 벗어나 간도․연해주․상하이․하와이를 넘나들며 해외에서 독립의 가능성을 모색했던 이들. 사회주의자와 민족주의자가 때로는 갈등하고, 때로는 협력하는 얽히고설킨 관계를 생생하게 그려냈다.

"3·1운동을 어떻게 명명할 것인가 고민을 했습니다. 3·1운동이라 하면 간단하지만 공부하면서 그보다 훨씬 치열하고 깊고 전 민족적인 항전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회과학적으로 보면 혁명이라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을 수 있는데 이 혁명을 통해 조선인들이 변했다고 생각합니다. 봉건제의 백성에서 근대적인 시민으로요. 3·1운동 이후의 각종 학생운동·시민운동·노동운동 등등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실제 3·1혁명의 정신에 기반에서 상해 임시정부가 설립하기도 하고요. 그 과정에서도 왕조재현이 아니라 공화제를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은 3·1혁명의 힘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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