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29일, 주택 임대차 3법이 국회에서 전격 통과됐다. 법안에 담긴 전월세 상한제나 임차인의 계약갱신청구권은 오랫동안 진보정당 공약집이나 시민단체 요구 목록 속에서 잠자고 있던 내용이다. 그런 개혁안이 법률로 실현됐으니 뜻깊은 역사적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마땅히 반기고 기뻐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분위기가 꼭 그렇지만은 않다. 환호하는 목소리는 의외로 약하고, 반대의 아우성은 생각보다 거세다. 이런 개혁이 추진될 때면 늘 그랬던 것처럼 극우 언론이 악선전을 거듭한 데다 임대인들의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기에 그러려니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반드시 이런 요인들 탓만은 아닌 것 같다. 주택 임대차 3법의 혜택을 입을 이들 사이에서도 과연 이 조치만으로 집 걱정 없는 세상이 열릴 수 있을지에 대해 미심쩍어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이것은 지나친 패배주의나 쓸데없는 기우만은 아니다. 현 정부 아래에서 이미 유사한 사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추진한 최저임금 인상이 그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이라는 전례 – 부분적 개혁의 한계와 모순
최저임금 인상 역시 저임금 노동자, 불안정 고용층의 숙원이었고, 노동운동과 진보 세력이 양극화 해결 방안의 하나로 적극 주창한 내용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최저임금 인상 요구를 '소득 주도 성장'이라는 거창한 구호 아래 집권 후 첫 개혁 과제로 추진했다. 그런데 결과는 어떠했는가?
최저임금 인상 자체는 소득 격차 완화에 일정하게 기여했다는 조사 결과가 속속 나왔다. 그러나 저임금-불안정 노동자들의 박수 소리보다 더 크게 울린 것은 이들 노동자를 고용하는 자영업자들의 성난 목소리였다. 물론 이때도 자영업자들의 불만을 부추긴 극우 언론의 선동이 있었다. 게다가 최저임금 인상과 자영업 불황의 상관관계는 여전히 연구 과제다. 그러나 최저임금이 인상된 그때에 마침 자영업 불황이 심해진 것만은 엄연한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 정부-여당이 내놓은 답은 최저임금 인상의 중단, 더 나아가 사실상의 무효화였다. 집권 원년과 달리 최저임금 인상 폭이 계속 낮아져 2021년의 경우는 아예 역대 최저 인상률을 기록하기까지 했다. 이제 이 정부에서 최저임금 '인상'은 말도 꺼낼 수 없는 금기가 됐다. 최저임금이 대폭 오르기는커녕 최저임금제도만 잔뜩 상처를 입은 꼴이다.
그러나 문제는 결코 최저임금 인상에 있지 않았다. 최저임금 인상'만' 추진된 게 문제였다.
소득 양극화는 단지 저임금-불안정 노동자와 그들의 사용자 사이에서 발생하는 문제만이 아니다. 저임금-불안정 노동자의 사용자 역시 포함하는 광범한 저소득 부문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 부문 전체가 대기업과 부동산 불로소득층에게 수탈당한다.
따라서 소득 양극화를 완화하기 위해 개혁을 추진하려 했다면, 저임금-불안정 노동자들을 위한 최저임금 인상뿐만 아니라 저소득 부문 내의 다른 집단을 위한 조치를 병행해야 했다. 가령 공격적으로 적자 재정을 운용하면서 밑바닥 경기를 살려야 했다. 또한 대기업과 부동산 부유층이 저소득 부문을 손쉬운 수탈 대상으로 삼지 못하도록 강력히 규제해야 했다.
그러나 이런 조치들은 없었다. 끝내 추진되지 않았다. 오히려 집권 초반기에 문재인 정부는 정부 지출보다 더 많은 세수를 거둬들이는 흑자 재정 기조를 유지해 민간 경기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안 그래도 불안했던 자영업 경기를 더 악화한 꼴이었다. 그러면서 정부-여당은 오직 최저임금 인상 하나만 덩그러니 개혁 성과라 내세웠던 것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확인해야 할 교훈이 있다. 그것은 '부분적' 개혁의 한계와 모순이다. '부분적' 개혁이라? 그럼 개혁이 '부분적'이지 않은 경우가 있는가? 모든 개혁이란 현실을 '부분적'으로 개선하려는 시도가 아닌가? '부분적'이 아닌 변화란 혁명 밖에는 없지 않은가?
아니다. 소득 양극화 같은 현대 자본주의의 심각한 문제에 대해서는 부분적 개혁과는 다른 처방이 필요하다. 소득 양극화를 뜯어보면, 거기에는 여러 사회 집단들이 있고, 이들이 서로 맺는 관계들이 있으며, 이런 관계들을 뒷받침하는 제도들이 있고, 이런 관계들에서 비롯된 관성과 문화가 있다. 이런 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히며 서로를 지탱해주고 재생산을 거듭한다. 말하자면 어떤 '구조'가 존재하며 작동한다.
따라서 소득 양극화를 해결하고 싶다면, 이러한 구조를 염두에 두고 이를 이루는 여러 요소들에 대응하는 다양한 정책들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한, 두 요소를 손보는 개별 정책이 아니라 소득 양극화 구조의 여러 요소들을 함께 공략하는 정책 '보따리'가 필요하다. 그래야 소득 양극화 구조 전체가 변형되기 시작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추진되는 개혁을 우리는 '부분적' 개혁과 대비해 '구조적' 개혁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이 실패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득 양극화를 해결하고 싶었다면, 정부는 부분적 개혁이 아닌 구조적 개혁을 추진했어야 했다. 최저임금만 인상할 게 아니라 소득 양극화를 둘러싼 여러 사회 관계와 관성, 제도 전반을 공략했어야 했다. 그러지 않고 최저임금 인상이라는 '부분적' 개혁만 추진한 결과는 결코 '부분적' 성공이 아니었다. 개혁은 그저 실패한 채 중단됐을 뿐이며 상황은 어쩌면 이전보다 더 나빠졌다.
부동산 문제에서 최저임금 인상의 실패를 반복할 것인가?
한국 사회의 자산 격차에는 소득 격차 이상으로 복잡하고 단단한 '구조'가 존재하며 작동한다. 그렇기에 '부분적' 개혁으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다. 이 문제야말로 '구조적' 개혁을 요구한다. 부동산 문제를 구성하는 주요 요소들을 빠짐없이 한꺼번에 공략해야만 한다. 그러지 않으면 어떤 특정한 부분적 정책도 애초에 기대했던 현실 개선 효과를 낼 수 없다.
최근 20여 년간 우리는 역사적 경험을 통해 이미 이를 확인했다. 너무나 강렬한 경험이어서 굳이 이론적 논증을 더할 필요도 없을 정도다. 한국 사회의 부동산/주거 문제를 해결하려면, 최소한 다음 네 가지 굵직한 조치가 동시에 추진돼야 한다.
첫째, 수도권 집중을 완화해야 한다. 수도권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을 둘러싼 온갖 병리적 현상의 토대에는 수도권 인구의 지속적인 증가가 있다. 또한 온 국토가 서울 강남을 정점으로 한 지역 간 위계의 피라미드로 편제된 탓에 이 피라미드가 계급-계층 간 추격전의 또 다른 무대가 된다. 이러한 근본 구조가 지속되는 한, 어떤 국가 정책도 애초 기대와는 다른 왜곡된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둘째, 자산세를 강화해 부동산 불로소득을 환수해야 한다. 부동산 부유층은 수십 년째 불로소득을 누리며 한국 사회의 핵심 지배 집단으로 군림하고 있다. 그리고 중산층은 이런 부유층의 성공 신화에 근접하려고 모방 경쟁을 벌인다. 이제는 이러한 부동산 불패 행진을 일단 중지시켜야 하며, 그 간명한 처방이 바로 조세를 통해 불로소득의 사회적 한계를 명확히 규정하는 것이다.
셋째, 임차인 등 주거 약자의 주거권을 보장해야 한다. 주거 문제에서 가장 시급한 사안은 언제나, 강남 집값 상승이 아니라 부동산 소유 피라미드의 밑 부분에 자리한 이들의 주거 불안이다. 이번에 통과된 주택 임대차 3법을 비롯해, 이런 주거 불안을 해소할 여러 조치들이 필요하다.
넷째, 공공/사회주택을 늘려 부동산 소유 구조를 바꿔야 한다. 현재 한국 사회처럼 공적 소유나 다양한 사회적 소유 형태의 주택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다면, 주택은 좀처럼 상품의 성격에서 벗어날 수 없다. 주택이 상품의 성격을 강하게 띠는 사회에서 부동산 투기 시장이 열리는 것은 어쩌면 필연이다. '투기' 시장을 막고 싶다면, '시장' 자체를 줄여야 한다.
이 중 어느 한 정책이라도 빠지면, 나머지 정책도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겠다는 신호가 없으면, 다른 어떤 정책도 부동산 문제의 진원지인 수도권에서는 기대 효과를 낼 수 없다. 물론 수도권 집중을 단기간에 손쉽게 해결할 방안은 없다. '혁명이 일어나도' 그런 방안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앞으로 수도권 집중이 결코 더 심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신호는 충분히 줄 수 있다. 개헌을 통한 수도 이전 결정도 한 방안이고, 권역별 거점 도시 육성도 또 다른 방안이 될 수 있다.
다른 세 정책들도 마찬가지다. 임차인 권리를 대폭 신장하는 조치가 없다면, 자산세 강화는 주택 소유주가 과세 부담을 임차인에게 전가하는 엉뚱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공공/사회주택을 지속적으로 대량 공급하지 않는다면, 임차인 권리 보장책이 오히려 임대 주택 공급 총량만 줄이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 또한 부동산 가격 상승에 대항 요소로 작동하는 자산세 제도가 없다면, 토지, 주택 가격이 너무 높아져서 공공/사회주택을 대량 보급하기가 불가능해질 것이다.
이렇게 네 가지 정책은 서로를 뒷받침하며 상승 작용을 일으킨다. 이 네 정책이 함께 추진되기만 한다면, 그리고 오직 그럴 때에만, 한국 사회의 자산 격차 '구조'는 결정적인 균열을 일으키며 요동치기 시작할 것이다. 또한 이 네 정책이 결합해 상호 작용을 일으키게 된다면, 새로운 사회 관계, 제도, 관성, 문화가 파생되면서 전에 없던 어떤 '구조'가 태동하고 진화해나갈 것이다.
특히나 중요한 것은 이 네 정책이 동시에 힘 있게 추진될 때에만 현재 한국 사회에서 부동산/주거 정책이 수행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를 완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 부동산/주거 정책이 맡아야 할 가장 중대한 임무는 '땅'과 '땀'의 대립에서 늘 '땅'이 승리하던 한 시대가 끝났다고 선포하는 일이다. 대중이 일단 이 메시지를 수용하고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는 순간, 실제로 그 시대는 끝나게 된다. 그러나 노태우 정부가 한때 추진한 '토지 공개념' 이후에 이런 임무를 제대로 자각하며 실행하려 한 부동산/주거 정책은 하나도 없었다.
불행히도 현 정부 정책 역시 마찬가지다. 주택 임대차 3법을 통과시켰다고 하지만, 종합부동산세를 현실에 맞게 올리려는 움직임은 없다. 재개발이나 신도시 개발에 공공주택 신축을 끼워 넣는 수준을 넘어서 민간 소유 주택들을 적극 매입해 공공주택을 공격적으로 확대하려는 전략 역시 보이지 않는다.
단지, 여론이 안 좋아지자 갑자기 '행정수도' 이전 카드를 꺼냈을 뿐이다. 비어 있던 중요한 한 고리를 꺼낸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다분히 즉흥적인 대응으로만 보인다. 이게 단순한 임기응변이 아니라면, 수도권 집중 완화 계획 자체를 더 구체화하고 몇몇 조치를 당장 추진해야 할 뿐만 아니라, 부동산/주거 정책의 또 다른 비어 있는 고리들 역시 채워 넣어야 한다. 자산세를 강화하고, 공공/사회주택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하지만 그럴 조짐은 없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말이다. 이것이 주택 임대차 3법에서 최저임금 인상의 어두운 기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부분적' 개혁보다 '구조적' 개혁이 더 현실적인 시대
얼핏 듣기에는 '부분적' 개혁이 '구조적' 개혁보다 더 현실적인 것 같다. 한 가지 정책도 관철하기 쉽지 않은데 어찌 정책 '보따리'를 동시에 추진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여러 조치를 병행할수록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집단이 더 많이 생기며 대립 전선은 더 넓고 복잡해지지 않겠는가. 물론 그렇다. 그래서 '구조적' 개혁은 어렵다.
그러나 '부분적' 개혁은 불가능하다. '구조적' 개혁은 어렵더라도 작동할 수 있지만, '부분적' 개혁은 역효과만 낳는다. 그만큼 우리 시대 자본주의가 복잡해지고 단단해졌기 때문이다. 지배 질서는 더욱더 다양한 사회 관계들을 서로 엮으며 존립하고, 이들 관계가 서로 의존하는 정도도 강해진다. 그래서 개혁과 혁명이라는 두 개념이 처음 나뉘던 무렵에 '개혁'에 씌워진 소박하고 단조로운 이미지는 이제 더는 유효하지 않다.
한국 사회의 부동산/주거 문제에서 이 진실은 더욱 도드라진다. 그리고 이 진실에 한사코 등을 돌리려는 이들이 현 집권 세력, 리버럴 세력이다. 이들에 맞서 우리가 촉구해야 할 것은 이제부터라도 부동산/주거 정책의 남은 고리들을 빨리 채워 넣으라는 것이다. 부동산 문제에서도 최저임금 인상의 실책이 반복되게 놔둘 수는 없다.
주택 임대차 3법 통과에 박수만 치고 있지 못할 또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것은 정말 시작의 시작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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