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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차별하지 말자? 실천이 어렵다"

[대담] 이종걸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X희정 작가 上

지난달, 천신만고 끝에 정의당이 차별금지법을 발의했다. 이어 국가인권위원회는 '평등법'이라는 이름으로 국회에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입법을 권고했다. 차별금지법은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은 물론 성별과 종교, 장애,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지역, 출신국가, 출신민족, 용모, 인종,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등을 이유로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시한 법이다. 발의조차 되지 못했던 지난 국회에 비하면 이번 국회 발의와 입법 권고는 의미 있는 한걸음이다.

여전히 갈 길은 멀다. '동성애 옹호법', '동성애 조장법'이라는 오염된 이야기 속에 정작 '어떤 차별금지법이 필요한가'에 관한 논의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우리 사회의 비가시화된 노동 문제를 환기해오던 기록노동자 희정이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에 앞장서 온 이종걸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와 만나 대담을 진행했다. 희정 작가는 저서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를 통해 일터의 성소수자들이 처한 차별구조를 드러냈다. 이 대표는 성소수자 당사자로서 20여 년 간 성소수자 인권운동에 목소리를 내 왔다. 이 대표는 게이인권단체인 친구사이의 사무국장으로 성소수자에 대한 오해와 차별을 불식시키려 노력해왔을 뿐 아니라 학생인권조례를 지지했으며 군대 내 성소수자 차별 반대운동 등을 펼쳐왔다. 대담은 두 회에 거쳐 싣는다.

이하 일문일답.

▲지난 20일 서울 마포구 프레시안에서 이종걸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와 희정 작가가 차별금지법을 둘러싼 논의의 방향에 대해 이야기했다. ⓒ프레시안(최형락)

희정 : 20일 오전에 국회에서 차별금지법 관련 토론회가 있었다. 차별금지법이 발의되고 이루어진 첫 토론회였다.

이종걸 : 긴장이 좀 됐다. 혐오세력이 와서 난동을 일으키거나 하지 않을까 해서. 큰 탈 없이 이뤄져서 다행이었다. 그동안 차별금지법에 대해 성적지향이나 성별정체성이 과잉대표 됐었기에 불필요한 논란이 과도하게 일었다. 그러다보니 차별금지법 제정 필요성이나 법안의 구체적인 내용에 토론을 하지 못했다. 이번 토론회는 그런 불필요한 논란을 넘어서 정의당의 차별금지법과 인권위의 평등법 시안을 분석하고 앞으로 어떤 논의가 이뤄져야 하는지 잘 짚어줬다. 좋은 시작이었다고 생각한다.

희정 : 말한대로 그동안 '성적지향'이나 '성별정체성'이 소모적인 형태로 과잉 부각됐다. 그러나 이것이 차별금지법이 등장해야 하는 현실 상황이기도 하다. 지금 이 시점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한 이유가 뭔가.

이종걸 : 인권위가 2007년 처음 정부에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하고 14년이 됐다는 거 자체가 의미라고 생각한다. 그 때 보수 기독교계나 재계에서 문제제기가 강하게 있었다. 그래서 성적지향을 포함한 7가지 사유를 삭제하고서라도 법이 통과돼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그 후로도 차별금지법은 국회에 올라갈 때 제대로 논의가 안 되고 사회적 논란만 무성했다.

성적지향 논란도 있었지만 구조적인 차별을 해소하고 실질적인 평등의 기반을 만들라는 사회의 요구를 국회와 정부가 '사회적 합의'를 이유로 피해왔다. 그러는 사이에 우리 사회에서 혐오나 차별로 인한 문제가 더 드러났다. 성소수자뿐 아니라 2010년 이주민, 2016년 여성, 2018년 난민 등 차별구조로 인한 사건들이 있었다.

노동 현장도 차별이 심하다. 비정규직 차별이 존재하고 최근엔 플랫폼 노동자가 많아졌다. 이 모든 차별구조는 연결돼있다. 정치권이 사회적 합의를 이유로 무시하고 묵인해온 결과다.

그런 일들이 지금 차별금지법에 대한 공감대를 넓혀온 것 같다. 인권위 조사에서 10명 중 9명이 차별금지법에 찬성한다고 나왔다. '모두를 위한 차별금지법'이라고 한다. 사회 구성원들이 어떤 형태로든 크고 작게 느껴온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기본적인 토대를 마련해야 할 때다.

희정 : 14년 동안 차별로 인한 사건도 많았다. 대중이 '차별이 무엇인지' 눈으로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90%에 가까운 사람들이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한다는 것도 굉장히 큰 인식 변화다. 그런데 사람들 사이에 '차별은 안 돼'라는 인식은 강해졌다만, '차별금지법 제정이 내 문제다'라는 인식은 14년 사이 얼마나 늘어났는지 의문이다.

이종걸 : 지금도 개별적 차별금지법이 있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한다. 법이나 제도가 사회 구성원들과 잘 연결되려면 만드는 과정에서 구성원들이 함께 참여하는 논의의 과정이 필요하다. 지금 차별금지법 같은 경우는 갈등을 야기 시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인지 그런 과정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아쉽다.

차별금지법 제정 이후에도 갈등은 있을 수밖에 없다. 이 갈등은 없던 문제를 일으키는 게 아니라 기존에 우리 사회 안에 내재돼 있던 거다. 국가와 사회가 구조적으로 소수자를 배제해온 역사 속에서 응축된 갈등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차별의 경험이 있다. 차별에 관한 인식 조사에서 90%의 사람들이 차별을 당한 적 있다고 답했다. 갈등을 피할 것이 아니라 드러내고 마주할 때 차별을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다. 차별금지법은 그런 계기다. 우리 사회가 형식적인 평등을 넘어 실질적인 평등을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다.

희정 : 차별을 드러낼 수 있는 장치로서 차별금지법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서 기고한 글(<괴롭힘은 어떻게 차별로 규율될 수 있는가>, 한희, 오마이뉴스, 2019.9.4.)에서 차별금지법이 '차별의 대상이 되는 구조를 분석하기 위한 도구'로 기능할 수 있다는 말을 보았다. 인상 깊었다.

이종걸 : 누구나 '사람을 차별하지 말자'는 말에 동의한다. 그렇지만 구체적인 상황 안에서는 이를 실천하기가 어려웠다. 헌법에 모든 사람이 행복과 평등을 추구해야 한다는 내용이 명시됐지만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장치가 없었다. 차별금지법은 그런 장치를 현실적인 조건 아래서 규율할 수 있는 기본적인 내용은 담는 거다. 차별금지법을 통해 좀 더 현실적인 차별의 상황을 들여다보고 우리 사회에서 배제되고 보이지 않던 소수자들이 목소리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기존의 법으로는 이게 어려웠다.

희정 : 기존의 법으로 어려웠다고 했을 때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차별금지법으로는 사회에 만연한 차별을 해결하기 어렵다는 의미인가.

이종걸 : 차별과 상관없어 보이는 법이나 제도도 차별적이다. 가령 가족 제도 같은 경우는 너무 혈연 중심, 혼인 중심이다. 노동 체계도 마찬가지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활동 중 기존의 법과 제도 안에서 무엇이 차별적이었는지 조사하는 TF가 있다. 처음 주제가 가족 제도였다.

가족 제도 같은 경우는 우리 사회가 이성애 중심의 혼인과 혈연 중심으로 이뤄져 있어 여기 포섭되지 못하는 다양한 사람들,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장애인도 사실 가족을 구성하기 어렵다. 결혼 이주 여성의 경우에는 만약 이혼하게 되면 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성소수자 같은 경우는 가족을 구성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 가족 제도 자체가 차별을 양산하는 상황이다. 이런 차별적인 상황이나 양상을 드러낼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차별금지법은 그런 장치 중 하나라 생각한다.

희정 :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필요한 이유로 '복합차별' 이야기를 많이 한다.

이종걸 : 사람의 정체성은 단일하게 존재하지 않고 복합적일 수 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필요한 이유다. 가령 노인인 장애 여성의 경우가 있다. 이 사람이 차별을 당했다 했을 때 남녀고용평등법이 적용될 수도, 장애인차별금지법이나 연령차별금지법이 적용될 수도 있다. 이걸 각각 적용해서 대응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희정 : 아까 언급한 TF에서 두 번째 주제가 노동이었다. <노동/일의 세계> 보고서를 읽으면서 일터에서 일어나는 차별을 더 세밀하게 알 수 있었다. 또 장애 여성 노인을 말했는데, 여성 차별, 장애인 차별, 노인 차별이라 따로 규정지어서는 설명되지 않는 복합 형태의 차별이 존재한다는 것도 알았다.

한 사람이 가진 정체성은 다양하다. 취업을 예로 들 때, 취업 과정에서 차별을 금한다고 하지만 이미 직장을 선택하는 순간부터 차별이 존재한다. 취업 과정이 아무로 공정해도 장애인이 선택할 수 있는 직종부터 제한적이다. 정체성은 취업조건이라 불리는 학력, 스펙, 체력, 외모꾸밈 등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친다. 차별금지법은 차별이 복합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계속 이야기하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차별이 무엇인지 모른다. 차제연의 설명 중 "'차별을 알아차리기' 위한 법으로서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는 문구에 공감한다.

이종걸 : 차별을 오랫동안 경험하면 점점 차별에 둔감해진다. 나 같은 경우는 성소수자다. 어렸을 때부터 나와 같은 사람들을 알아보기도 힘들고 알 수도 없어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과 걱정을 많이 했다. 결혼 제도는 이성애자를 전제로 한다. 나는 동성애자니까 결혼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아주 어렸을 때부터 결혼 제도는 나와 상관이 없는 제도라고 생각했다. 아예 생각을 안 하게 됐다. 가족을 만드는 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권리임에도.

또 다른 하나는 대학교 때 그런 상황이 있었다. 철학 수업이었는데, 동성애와 관련된 이슈를 토론하는 상황이었다. 내가 찬성의 이야기를 계속 할수록 '쟤는 왜 저러지' 이렇게 쳐다보는 거다. '쟤는 그 쪽인가' 그런 식으로. 우리 사회가 그렇다. 소수자를 지지하면 '왜 그 사람들을 지지하느냐'는 식으로 바라본다. 차별에 대해 더 말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래도 누군가는 계속 차별에 대해 이야기하고 문제 삼고 공감대를 형성해나가야 한다. 작년에 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서 '차별잇수다'라는 기획프로그램을 했다. 사회적 소수자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각자가 겪은 차별의 경험을 나누는 자리였다.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서로 '이렇게 대응하면 좋겠다'며 차별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었다. 작년에 그런 모임을 50번 정도 가진 것 같은데 하고나서 힘을 받았다는 분들이 많았다. 그런 공간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희정 : 혐오표현도 그렇지만 차별금지법이 당장 무언가를 규제하거나 처벌하는 법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차별금지법이 있다 해도 크게 변하는 건 없다, 차별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말도 많이 나온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우리 사회에 어떤 변화를 줄 것이라 기대하나.

이종걸 : 혐오발언이나 선동 같은 부분은 정말 아쉽다. 소수자들 입장에서는 직접적인 혐오표현이나 행위에 대해 당장 규제할 수 있는 법이나 제도가 필요하다. 그래서 차별금지법이 너무 약한 법 아닌가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혐오표현 자체를 규제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인권위의 평등법에서는 혐오표현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차별적이고 폭력적인 분위기를 조성한다면 이를 하나의 괴롭힘의 형태로 본다. 그런 식으로 혐오와 차별에 대한 구제 조치가 만들어질 거라 본다.

차별금지법 이전에는 지자체의 인권조례가 논란이 됐다. 지역 혐오세력이 '동성애 반대'를 외치면서 폭력을 행사하는 등 문제적인 행동을 했다. 그런 행동에 문제제기가 이뤄져야 한다. 동성애가 문제가 아니라 그런 행동이 문제라는 걸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

희정 :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를 쓰려고 취재를 할 때 당사자들에게 "어떻게 해야 당신이 일터가 좀 더 나아질 수 있겠냐"고 물었을 때 적지 않은 분들이 "차별금지법? 그런데 그건 현장에서 효력이 없을 거 같다"고 이야기했다. 어떻게 보나. 실제로 이렇게 말하는 성소수자들에게 어떻게 대답하나.

이종걸 : 법과 제도가 모든 걸 해결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에 못지않게 나 스스로 대응할 수 힘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다. 이건 차별이다, 차별하지 말라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한다. 소수자 운동 의 과제이기도 하다.

차별금지법을 통해서는 각각의 조직들이 평등을 증진하는 계획을 마련하게 된다. 이에 따라 조직 구성원들이 차별에 관한 교육을 받게 되고 그럼 조직 내에서 차별하지 않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이런 과정이 일터의 소수자들을 보호할 것이다.

희정 : 대응력이라고 했는데 그 부분이 중요한 거 같다. 반복된 얘긴데 차별금지법은 소수자들에게 언어를 준다는 생각이 든다. 차별에 맞설 수 있는 언어다. 소수자들은 내 정체성이 이래서, 내가 달라서, 내가 부족해서 차별당한다고 여기게 된다.

차별금지법은 "내가 성소수자라 차별받는다"는 인식을 "이 사회가 이성애 중심적이고, 성별이분법을공고하게 유지하려 하기에 나에게 차별을 가한다"고 전환하게끔 한다.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구조를 차별금지법은 문제제기하고 드러낸다.

이종걸 : 말할 수 있는 게 정말 중요하다. 말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야 한다. 그리고 그 공간 안에서 각자가 동료가 돼 주어야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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