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8일 밤 11시 30분께, 신라공고 기능영재반(기능반) 3학년 학생 이준서 군이 자신의 기숙사 방에서 스스로 목을 매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준서 군은 지난해 전국기능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할 정도로 장래가 촉망받던 학생이었다. 그런 그가 왜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프레시안>에서는 준서 군이 죽음에 이르게 된 원인, 그리고 그가 속해 있던 기능반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지난 4월 8일, 전도유망하던 고3 학생 이준서 군이 학교 기숙사에서 스스로 목을 맸다. 지난해 전국기능대회에서 동메달까지 획득한 인재였다. 그런 그가 극단적 선택을 할 이유가 과연 있었을까? 준서 군 아버지는 아들의 죽음을 두고 기능반 훈련 과정에서 학교가 견디기 어려운 압박을 준 게 아닌지 의심한다. 그러나 학교는 준서 군의 '가정사'를 언급하며 개인 문제로 돌리려는 모양새다.
죽은 자는 말이 없기에 준서 군이 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는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다. 유서는 없었다. 다만 생전 그를 둘러싼 조건들을 미루어 그 이유를 짐작해 볼 뿐이다. 대부분의 극단적 선택은 자신을 둘러싼 반복되고 누적된 고통이 오래 지속할 때 발생한다. 긴 시간 누적된 여러 원인이 최후의 선택으로 이어진다.
씨줄과 날줄로 엮인 과거의 인간 관계와 사건들 속에서 원인을 찾는 일이란 쉽지 않다. 복합적으로 그 관계들을 톺아봐야만 한다. 그런 점에서 지난 6월 23일 '고 이준서 학생 사망사건 진상조사단'에서 발표한 '신라공고 고 이준서 학생 사망사건 진상조사 중간보고서'는 주목할 만 하다.
법률가, 직업계고 교사, 청소년인권단체 등이 참여한 진상조사단은 학교와 유족이 제출한 관련 자료, 경북도교육청 답변자료, 통화기록, SNS문자 대화, 사건진술서 등의 자료와 유족, 준서 군 친구, 신라공고 학생들, 기능반 학부모 등에 대한 인터뷰를 통해 이 보고서를 작성했다.
전도유망한 학생이 기능반을 그만두려 한 이유
진상조사단의 조사내용을 보면 준서 군은 2019년 10월 전국기능대회 메카트로닉스 종목 동메달 수상 이후 기능지도교사에게 수차례 기능반을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실제로 2월 28일과 3월 29일, 두 차례 준서 군은 기능 합숙훈련 중 기숙사를 나와 학교 측에 탈퇴하겠다고 말했다.
전국대회 동메달까지 딴 준서 군이 반복해서 기능반을 그만두려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
준서 군은 2019년 10월, 전국기능대회 메카트로닉스 종목 동메달을 수상한 이후, 자신의 파트너가 동급생인 B군으로 변경되자 다른 파트너로 변경해줄 것을 요구했다. 준서 군 생각에서는 어차피 바뀐 파트너와는 메달 획득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학교 측에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준서 군은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는 것이다. 이는 준서 군이 교사에게 보낸 문자에도 잘 드러난다.
그러나 번번이 준서 군은 기능반을 그만두지 못했다. 진상조사단은 학교 측에서 준서 군에게 무언의 압박을 주었다고 판단했다. 진상조사단은 "학교 측에서는 준서 군이 기능반을 그만두겠다고 하면 (이전에 준서 군이 행했던) 폭행, 흡연 등 약점을 이용해 징계 가능성을 내비치며 압박 수단으로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학교에서 준서 군을 '굳이' 붙잡은 이유는?
몇 차례나 그만두겠다고 한 준서 군을 학교 측이 '굳이' 붙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진상조사단은 준서 군이 메카트로닉스 종목에서 뛰어난 기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작년에 메달을 획득한 준서 군은 올해 기능경기대회 메카트로닉스 종목에서도 메달을 수상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신라공고는 2017년 전국기능경기대회에서 금메달 2개, 은메달 3개, 동메달 2개 등으로 종합 2위인 은탑을 수상했다. 2015년에는 최고상인 금탑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만큼 메달에 학교가 집중한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준서 군은 기능반을 그만두고 싶었지만, 그만둘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괴로워했다는 게 진상조사단의 판단이다.
막다른 길에 내몰리면, 넘지 말아야 할 선도 넘기 마련이다. 진상조사단 조사에 따르면 준서 군은 기능반을 그만두기 위한 마지막 방법으로 기능반 후배를 불러내 약점을 잡은 후, 그 후배로 하여금 준서 군 파트너의 비위행위를 학교에 제보토록 했다.
준서 군이 다루는 메카트로닉스 종목은 2인1조로 출전하는 경기로, 팀을 이루지 못하면 출전이 불가능해진다. 파트너가 징계 등을 받아 기능반을 그만두면 출전 불가 상황이 되므로, 이런 상황을 만들어 자신도 기능반에서 나오려 했다는 게 진상조사단 판단이다. 기능반을 나가고 싶어 했던 준서 군이 마지막으로 택한 극단적인 선택이었다.
그러나 시도는 불발에 그친다. 준서 군 후배가 스스로 비위행위를 실토하면서 기능반을 그만뒀기 때문이다. 그리고 후배가 그만둔 지 이틀이 지난 8일, 준서 군은 기숙사 방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다
선후배 구조 속에서 대물림되는 폭력
주목할 점은 준서 군은 3학년이 되기 이전에도 기능반을 여러 차례 그만두려 했다는 점이다. 준서 군이 속해 있었던 기능반이라는 공간이 매우 폭력적이었고 비인간적이었기 때문이라고 진상조사단은 판단했다.
준서 군이 다니는 신라공고 기능반 학생들은 모두가 기숙사에 합숙하며 오전부터 밤늦게까지 기능경기대회에 필요한 훈련을 반복적으로 되풀이했다. 진상조사단이 접촉한 준서 군 친구들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지난 2년 동안 준서 군은 기능반 선배들로부터 지속적인 폭행과 괴롭힘을 당해왔다.
'엎드려뻗쳐'를 1시간 동안 한 적도 있었고, 선배 담배 심부름을 거절했다가 뺨을 맞기도 했다. 선배들 졸업선물과 생일선물을 강제적으로 줘야 했고, 선배들이 팔과 젖꼭지를 꼬집어 자주 멍이 들었다. 심지어 선배의 정액이 담긴 율무차를 먹어야 하기도 했다.
이러한 잦은 괴롭힘과 폭력 속에서 준서 군은 피해자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선배가 후배를 지도하는 도제식 기능반 훈련이 진행되다 보니, 군대식 폭력이 선후배 사이에서 대물림되고 있었다. 폭력의 피해자였던 준서 군도 예외는 아니었다. 2학년 때, 후배들에게 폭언과 폭력을 행사한 바 있다.
문제는 이러한 폭력과 괴롭힘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지만 학교 측에서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피해 학생이 신고를 해도 유야무야 넘어가는 식이었다.
일례로 준서 군은 자신이 마신 음료에 선배들이 정액을 넣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학교에 이를 신고했다. 그러나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가해자인 선배는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관련해서 학교에 진술서를 쓰고 기능실에 들어온 가해자 선배는 보란 듯이 "아, X될뻔 했네"라며 웃었다고 한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아이들은 기로에 놓이게 된다. 체제에 순응할 것인가, 체제를 벗어날 것인가. 준서 군은 후자를 선택한 것은 아닐까?
학교 측 "강요나 강압을 가한 사실 없다"
준서 군의 죽음을 두고 학교 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기능반 운영에서 강요나 물리적인 강압을 가한 사실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준서 군이 몇 차례 기능반을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을 두고도 "1학년 때부터 몇 차례 그만두겠다고 했다가도 이내 열심히 기능반에서 훈련을 했던 학생"이라며 "이번에도 그런 과정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준서 군이 복귀할 때, 학교 측에서는 강요가 아닌 '지도'를 했다는 입장이다.
준서 군의 가족사를 언급한 부분에서는 "학생의 기록을 보니, 그런 부분이 적혀 있어서, 사실 관계 확인 차원에서 (유가족에게) 물어본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기능반 학생들의 비위행위 관련해서는 "학교에서 이를 인지했다면, 개선을 위해 지도했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담배 등이 발각될 경우, 무조건 처벌을 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학교 측은 "학교라는 곳은 학생을 무조건 처벌하는 게 아니라, 교화하고 대화로 설득도 해야 한다"며 "이는 기능반 학생들만이 아니라 전체 학생들에게 적용된다"고 주장했다.
준서 군이 자신이 당했던 일을 학교 측에 알린 사건 관련해서는 "조사를 했으나, 증거가 없어서 넘어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학교 측은 "우리도 학생의 죽음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현재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니, 결과를 기다려 달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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