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이 수도권 그린벨트 해제를 부동산 가격 상승 문제의 '최종 대책'으로 검토하는 분위기였으나, 여권 유력 인사들이 줄줄이 반대 의견을 공개적으로 천명하는 등 흐름이 반전되고 있다. 청와대도 '결정된 바 없다'고 나서서 정리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19일 기자들과 만나, 그린벨트 문제에 대해 "그 이슈는 테이블에 올려놓고 논의하자는 입장"이라며 "결론은 나지 않았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그 조치(해제)가 갖게 되는 효과나 그에 따른 비용을 종합적으로 봐야 할 문제"라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 17일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그것(그린벨트 관련)은 정부가 이미 당정 간에 의견을 정리했다"며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의 이견을 조정하고 지역 주민의 반발을 완화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면 못 하는 것이고, (해법은) 그것을 만들어 가느냐 여부"라고 말했었다.
'이미 당정 간 의견이 정리됐다'는 김 실장의 언급은, 이날 청와대가 내놓은 '아직 결론나지 않았다'는 입장과 다소 어긋난다. 때문에 당정이 지난주까지는 실제로 그린벨트 해제 문제를 긍정 검토하다가 부정적 여론에 부딪혀 재고 수순에 들어간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지난 15일 열린 당정 간 부동산 협의에서는 "그린벨트 해제까지 포함해 주택공급 방안에 대해 범정부적으로 논의할 것"(조응천 민주당 국토위 간사, 15일 당정 직후)이라는 말이 나왔다.
14일에는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MBC <뉴스데스크>에 출연해 "현재 (부동산 대책 관련) 1차적으로 5~6가지 과제를 검토하고 있는데, 이 검토가 끝나고 나서 필요하다면 그린벨트 문제를 점검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주말을 거치며 나온 여권 내 유력 인사들의 발언을 보면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가 감지된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19일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그린벨트는 한번 훼손하면 복원이 안 되기 때문에 매우 신중하게 접근하는 게 옳다"고 했다. 정 총리는 '김상조 실장이 이미 당정 간 의견이 정리됐다고 했는데?'라는 질문이 나오자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며 "(현재는) 모든 가능성을 검토하는 단계다. 가능한 빠른 시간 안에 정제된 대책을 발표하겠다"고 답했다.
정 총리는 '서울시가 반대해도 국토부가 밀어붙일 수도 있지 않느냐'는 질문이 나오자 "법적으로 가능할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정책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아직 (대책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인데, 책임 있는 당국자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국민을 혼란하게 하고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보낼 수 있어 적절치 않다"고 행정부 내 관료들을 다잡았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같은날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그린벨트 훼손을 통한 공급확대 방식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며 "서울 핵심 요지의 그린벨트를 훼손하는 방식보다 도심 재개발, 도심 용적률 상향, 경기도 일원 신규 택지개발 등을 통해 공급을 늘리는 방법으로 해결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이 지사는 "주택 공급의 핵심은 '어떤 주택을 공급하느냐'다. 투기 수단이 아니라 공공임대주택 등 주거 수단으로(만) 사용될 수 있는 것을 (공급)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서울 강남 요지의 그린벨트를 해제하면 그곳은 투기 자산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지적했다. "분양가 상한제에 따라 그린벨트를 해제해서 지은 주택은 주변 시세보다 분양가가 크게 낮은 '로또'가 될 가능성이 크고, (그러면) 집값은 못 잡고 오히려 전국적으로 '분양 광풍'만 일어날 것"이라는 얘기다.
여당 대표 출신인 추미애 법무장관도 지난 18일 돌연 SNS에 쓴 글에서 "그린벨트를 풀어 서울과 수도권이 '전국의 돈이 몰리는 투기판'으로 가게 해서는 안 된다"며 "한정된 자원인 땅에 돈이 몰리게 하면 국가의 비전도 경쟁력도 놓칠 것"이라고 했다.
추 장관은 당 대표 시절 '토지 공개념'을 자신의 브랜드 정책으로 삼았던 바 있다. 그는 글에서 "(집값이 잡히지 않는) 근본 원인은 금융과 부동산이 한 몸인 것에 있다"며 "금융의 산업지배를 막기 위해 20세기 금산분리 제도를 고안했듯이 이제 금융의 부동산 지배를 막기 위해 21세기 금부(금융-부동산) 분리 정책을 제안한다"고 했다.
지난 17일에는 차기 당권 도전에 나선 김부겸 전 의원이 "그린벨트 해제는 신중해야 한다"고 했었다. 김 전 의원은 불교방송(B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이명박 대통령 때부터 그린벨트를 수도권에만 300만 평을 해제했다. (그래서) 집값을 잡았나? 아니다"라며 "오히려 그린벨트를 해제하면서 보상금 들어간 것 중에 반 정도가 다시 부동산 시장으로 와서, 이른바 투기판에 (돈을) 끌어들이는 효과를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김 전 의원은 "이제는 우리가 명확하게 주의를 해야 한다"며 "그린벨트 문제는 우리 세대만 향유해야 될 권리가 아니고 다음 세대 배려도 있어야 한다. 정말 최후의 수단이 되기 전까지는 그린벨트 문제를 그렇게 너무 쉽게 풀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유력 당권주자로 꼽히는 이낙연 의원은 지난 7일 출마선언 당시 "공급 규제 완화 방안을 서울시와 협의할 필요가 있다. (…) 유휴 부지 등을 잘 활용해 주택 부지를 늘리는 방안이 가능하다"고 해 그린벨트 해제에 긍정적 입장을 밝힌 것으로 풀이됐으나, 이틀 후 KBS 라디오에 나와 "그린벨트와 재건축 완화 문제는 가장 신중해야 될 문제"라며 "그것은 맨 나중에, 다른 것이 없다면 그것도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했는데 (언론이) 제목으로 그것을 뽑았더라"고 해명했다.
이 의원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제가 말씀드린 것은 일단 유휴부지 활용, 공급 확대 제약 규제 완화 등을 먼저 생각해보고 근린생활지역·준주거지역 일부를 주거지역화(化)할 수 있는가를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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