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서울시장 비서 업무는 '시장의 기분을 좋게 하는 것'"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서울시장 비서 업무는 '시장의 기분을 좋게 하는 것'"

피해자 지원단체, 서울시 조사단 구성 발표에 "해결 의지 있나"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과 관련해 피해자를 지원하고 있는 단체들이 "서울시장 비서실은 성폭력이 일어나기 쉬운 환경이었다"고 지적했다.

한국여성의전화와 한국성폭력상담소는 16일 입장문을 내고 "서울시장 비서 업무는 성차별적이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이들은 전날 서울시가 발표한 '2차 피해 방지 및 진상조사단 구성'의 내용을 두고도 "사건의 성격과 문제를 제대로 파악했는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이들 단체는 그간 상담한 내용을 바탕으로 "서울시장 비서 업무는 '시장의 기분을 좋게 하는 것'으로 이는 상식적인 업무 수행이 아닌 여성 직원의 왜곡된 성역할 수행으로 달성됐다"며 "사실상 성차별이며 성폭력 발생을 조장·방조·묵인·요구한 것"이라고 밝혔다.

여성 비서는 '기쁨조'..."시장 기분 좋게 하라" 압박도

이들이 밝힌 내용에 따르면 서울시장 비서실은 피해자에게 "시장이 마라톤을 하는데 여성 비서가 오면 기록이 더 잘 나온다. 평소 1시간 넘게 뛰는데 여성 비서가 함께 뛰면 50분 안에 들어온다"며 주말 새벽에 나오도록 요구했다.

여성 비서에게 '특별한' 역할도 요구했다. 비서실은 "시장님 기분 어때요? 기분 좋게 보고 하게"라며 결재 때마다 시장의 기분 상황을 확인했다. 그러면서 여성 비서에게 심기보좌 등의 역할을 요구했다. 또 "시장이 의사 결정을 구두로 긴급하게 하는 경우가 많아 결정을 내리는 그 순간 시장의 기분이 중요하다"며 자신들이 원하는 답을 받기 위해 여성 비서에게 "시장의 기분을 좋게 하라"고 암묵적·명시적으로 요구했다.

'시장의 기분을 좋게 하는 것' 외에도 여성 비서에게는 성차별적인 업무가 주어졌다. 서울시장의 여성 비서는 시장이 운동을 마친 후 시장실에 들어가 샤워할 때 옷장에 잇는 속옷을 근처에 가져다 줘야 했다. 샤워를 마친 시장이 벗어둔 운동복과 속옷은 비서가 봉투에 담아 시장의 집에 보내야 했다.

또 시장이 시장실 내의 내실에서 낮잠을 잘 때 낮잠을 깨우는 일도 전적으로 여성 비서의 일이었다. 일정을 수행하는 수행비서가 깨우는 게 다음 일정 수행에 효율적임에도 "여성 비서가 깨워야 기분 나빠하지 않으신다"며 해당 일이 주어졌다.

이러한 역할 분담은 성희롱으로도 쉽게 이어졌다. 시장에게 결재를 받으러 오는 이들은 여성 비서를 위아래로 훑어보는 일이 잦았다. 시장실을 방문한 국회의원 등이 "여기 비서는 얼굴로 뽑나봐" 등의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시장의 건강 체크를 위해 아침, 저녁으로 혈압을 재는 것도 여성 비서의 일이었다. 피해자는 "가족이나 의료진이 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의견을 냈으나 묵살 당했다고 전했다. 박 전 시장은 "자기(피해자를 지칭)가 재면 내가 혈압이 높게 나와서 기록에 안 좋아"라는 등의 성희롱 발언을 하기도 했다.

문제 해결 의지 없었던 서울시, 조직문화 개선 방안도 비서실은 '예외'

박 전 시장이 만든 조직문화 개선 원칙도 비서실에는 예외였다. 박 전 시장은 승진을 하면 다른 부서로 이동하는 원칙을 천명했음에도 피해자가 원칙에 따라 전보 요청을 하자 "그런 걸 누가 만들었냐", "비서실에는 해당사항이 없다"며 피해자의 전보 요청을 거절했다.

피해자 지원 단체들은 "피해자는 2016년 1월부터 매 반기별 인사이동을 요청했다. 번번이 좌절된 끝에 2019년 7월 근무지를 이동했으나 2020년 2월 다시 비서 업무 요청이 왔다"며 "피해자가 인사담당자에게 '성적 스캔들 등의 시선이 있을 수 있으므로 고사하겠다'고 이야기했으나 인사 담당자는 문제 상황을 파악하려고 하지도 않았다"고 했다.

피해자 지원 단체들은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행정1부시장), 더불어민주당 허영 의원, 김주명 서울특별시평생교육원장 등 전 서울시장 비서실장들이 "성추행 의혹을 몰랐다"거나 "이상한 낌새를 채지 못했다"고 입장을 발표한 것도 비판했다. 이들은 "시장실과 비서실은 성차별이 일상적이었고 성폭력이 발생하기 쉬운 업무 환경이었다"면서 "무엇을 몰랐단 거냐"고 되물었다.

이들은 "서울시는 성폭력 발생 시 '원 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를 도입했으나 지난 4월 행정직 비서관에 의한 성폭력 사건에는 이를 적용하지 않았다"면서 성폭력 사안에 대한 서울시의 안일한 대처를 지적했다.

이들은 "인권침해 신고처리, 성희롱·성폭력 사안 대응 등에 관해 앞서 있는 정책과 매뉴얼을 확보하고 있는 서울시에서도 이런 피해가 발생했다"며 "그런 서울시가 노동권 침해, 성차별적 성역할과 성폭력을 어떻게 조사하고 개선할 수 있을지 심히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성추행 의혹과 관련 경찰 수사가 지속돼야 하고 △서울시와 더불어민주당 등 책임있는 기관은 이중적인 태도를 멈추고 성폭력 문제해결과 성폭력적 문화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 등을 요구했다.

▲13일 열린 피해자 측의 기자회견 ⓒ공동취재단

"2차 가해 멈춰라" 피해자 연대 이어져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으로 지칭하거나 '공7과3' 등 피해 사실을 축소·은폐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고 피해자 신상털이, '가짜 미투' 의혹 제기 등 심각한 2차 가해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피해자를 향한 연대의 움직임도 확산되고 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등 60여 개 인권·시민단체들은 이날 공동성명을 내고 경찰과 서울시의 철저한 수사와 2차 가해 방지를 촉구하며 "피해자와 연대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박 전 시장에 대한 대대적이고 공식적인 추모가 그동안 피해자를 짓누른 위력을 다시 확인하게 했다"며 "피해자가 이 위력 앞에서 얼마나 두렵고 절망했을지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이들은 "피해자의 목소리가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이 사회의 힘을 가진 목소리들은 그의 생전 업적을 기리며 그를 애도했다. 피해자의 호소는 마치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듯 했다"며 "그들이 피해자를 외면하고 추모에 열중한 동안 피해자에게는 모욕과 비난이 쏟아졌고 피해자는 보호받지 못했다"고 했다.

이들은 "박 전 시장의 죽음이 사건의 진실을 덮는 것으로 이어져서는 안된다"며 서울시와 수사기관에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이들은 수사기관에서 피고소인에게 고소사실을 전달했다는 의혹 등에 대해서도 "각종 의혹을 포함해 경찰과 검찰이 철저히 진상규명을 다해야 한다"고도 했다.

이어 "이번 사건은 박 전 시장과 피해자 간에 발생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며 "공무원 사회라는 공고한 위계적 조직구조에서 발생한 공적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왜 그동안 피해자의 호소를 누구도 들어주지 않았는지, 피해가 4년간 지속됐는지 공무원 사회 전반을 돌아봐야 한다"며 "서울시는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의식에서 진상조사 및 피해자 지원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했다.

이들은 피해자를 모욕하고 비난하는 2차 가해도 멈출 것을 호소했다. 이들은 "성폭력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2차 가해가 유사한 형태로 반복된다"며 "사실관계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거나, 왜 이제 와서 폭로하느냐는 수준을 넘어 박 전 시장 사망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돌리는 등 2차 가해로 피해자를 궁지에 몰고 있다"고 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