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발로 뛰는 동네 의사 야옹 선생입니다. 저는 지금 지역사회에서 아픈 분들을 직접 찾아가는 왕진과 방문 진료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 화에서 장애로 인해 죽음까지 생각하시다가 민들레 의료사협과 지역사회, 그리고 본인의 노력으로 극복하신 분의 이야기를 보시고 여러분들이 의견을 주셨습니다. (관련기사 바로가기 : '집에서 죽고싶다'는 환자, 이젠 재활 의지에 불타 오르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이 무엇이냐, 장애인 활동지원사업은 또 어떤 것이냐 하는 문의가 주된 내용이었고, 한 분은 장문의 메일로 민들레 의료사협에서 하는 일에 감동을 받으셨다며 왕진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보시기도 했습니다.
노인장기 요양보험제도는 만65세 이상의 노인 혹인 나이가 만65세 미만이더라도 치매나 파킨슨병, 뇌경색 등 노인성 질병 때문에 일상생활을 혼자서 수행하기 어려운 어르신들에게 요양급여를 제공하여 본인과 가족의 부담을 덜어주는 사회보험제도입니다. 건강보험제도와 별개의 제도지만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집에 어르신이 계신데 거동이 불편하다면 이 제도를 통해 요양서비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노인장기요양보험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는 요양보호사가 집으로 와서 돌봄을 제공하는 것, 시설에 입소하여 돌봄을 받는 것, 주간보호센터에서 낮 동안에만 돌봄을 받고 저녁과 밤에는 집에서 지내는 것, 방문 목욕과 방문 간호 등이 있고, 건강보험공단에 문의를 하면 안내를 받고 신청도 하실 수 있습니다. (관련 내용 바로가기 : 클릭)
장애인활동지원사업은 장애인복지법에 근거하여 혼자서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운 장애인에게 활동지원급여를 제공하여 장애인과 가족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사업입니다. 활동지원사가 장애인의 신체활동이나 가사활동, 사회활동을 도와주고 필요에 따라 방문목욕, 방문간호도 받을 수 있습니다. 만6세에서 65세 미만의 등록장애인을 대상으로 하고 방문조사와 심의를 통해 장애 정도를 평가하여 지원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중증장애인분들이나 보호자분들이 도움이 필요하다면 주소지의 주민센터로 문의하여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관련 내용 바로 가기 : 클릭)
왕진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의료기관을 찾기 원하시면 거주지역의 건강보험공단으로 문의를 하시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왕진은 현재 시범사업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지속될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필요성을 느끼고 찾는 분들이 많아진다면 지속가능성이 높아지지요.
사실 제가 이런 돌봄 서비스나 제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오래지 않습니다. 의사들은 보통 환자의 질병과 신체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중점을 두지요. 환자가 어떤 질병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약을 먹고 있는지, 현재 나타나는 증상은 어떤 것인지 등등 말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였고요. 그런데 방문진료와 왕진을 하면서부터 건강이란 신체의 질병만 다루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크게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4월, 외래 진료를 하고 있는데 한 어르신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원래 고혈압, 당뇨, 부정맥으로 저희 병원에서 약을 드시던 분인데 갑자기 가슴이 너무 답답하고 숨을 쉬기가 힘들다며 제발 집으로 와 달라고 하시는 겁니다. 깜짝 놀라 왕진을 나가게 되었고, 어르신을 진찰한 결과 폐에 물이 차 호흡곤란이 생긴 상황이라 큰 병원으로 가셔야 했습니다. 가까운 가족이나 보호자가 있었다면 제가 바로 연락을 해서 보호자와 동반하여 보내 드렸겠지만 이분은 슬하에 자녀도 없고 근처에 친척도 없는 상황이어서 저도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외래진료 중에 갑자기 나온 것이라 저도 동행하기가 어렵고, 그렇다고 숨이 불편한 어르신을 혼자 보낼 수는 없으니까요. 결국 어르신이 꾸준히 다니시던 절의 총무님께 연락을 드렸고, 다행히 총무님이 바로 오셔서 어르신을 모시고 갔습니다.
몇일 전 퇴원을 하신 어르신을 총무님이 모시고 내원하셨는데, 총무님이 그동안 어르신을 간병하느라 얼마나 힘드셨던지 이제는 도저히 모시지 못하겠다며 하소연을 하십니다. 어르신은 오랜 입원생활로 쇠약해 제대로 걷지도 못하시고, 사람을 알아보기도 힘들어 하셨습니다. 이런 분이 혼자 집에 계신다면 건강이 어떻게 될지 뻔한 상황이었죠. 그래서 노인장기요양서비스 신청을 위한 의사소견서 작성을 하였고, 요양보호사가 나와 어르신을 도울 수 있게 하였습니다.
세계보건기구에서 정의하는 건강이란 ‘단지 질병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안녕한 상태’입니다. 건강을 이루는 요소에는 신체적인 것뿐 아니라 정신과 경제적, 사회적 문제도 포함되는 것이죠.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은 이런 의미에서 취약합니다. 이 어르신은 신체적 건강문제도 있지만 사회적 건강문제도 있었고, 적절한 개입으로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지난 주에도 말기암으로 투병중인 어르신을 뵈러 왕진을 나갔다가 항암치료 부작용, 암에 의한 통증과 불편 증상으로 누워만 계시는 어르신을 모시느라 자녀들이 수개월간 직장도 제대로 못 다니는 모습을 보고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를 소개했습니다.
대부분이 이런 제도가 있다는 것을 잘 모르십니다. 그래서 꼭 필요한 상황에도 도움을 받지 못하고 힘들어하고 계시죠. 환자의 건강을 위해서는 보호자나 가족들이 지치지 않도록 지지를 해줘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도움과 개입이 필요합니다. 그 누군가가 환자를 잘 아는 의사라면 더 좋겠지요.
치매와 같은 인지기능 장애가 있거나 지적장애가 있는 분들에게 약물만 처방하는 것은 무의미하거나 위험할 수 있습니다. 옆에서 정확하게 약을 챙겨주는 사람이 없다면 이분들은 약을 빠뜨리거나 과하게 드시거나 해서 오히려 부작용이 크게 생기기도 하니까요. 예전의 저라면 돌봄의 부재로 약을 제대로 먹지 않아 치료가 제대로 안되는 환자를 만났을 때 환자를 비난하거나 안타까워하고 말았겠지요. 하지만 지금의 저는 돌봄이 필요한데 받지 못하고 있는지, 필요한 돌봄을 제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할 것입니다. 그러려면 가족 상황이 어떤지, 장애등급이 있는지, 노인요양대상자인지를 알아봐야 하지요. 지난번에 말씀드린 장애인 어르신도 마찬가지죠. 아무리 의사가 뇌경색 재발을 막는 약을 처방하고 욕창을 항생제로 치료해도 그분의 삶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그분에게 필요한 것은 옆에서 거동을 도와줄 사람이었으니까요.
솔직히 저도 모든 제도나 자원들을 알지는 못합니다. 그래도 환자의 건강이 신체적 문제만 다루어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실제 사례를 통해 보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관심을 가지고 조금씩 배우려 합니다. 방문진료와 왕진은 환자에게도 꼭 필요한 제도이지만 의사를 성장시키는 제도이기도 합니다. 환자를 질병의 관점으로만 보지 않고 그분의 삶 속에서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진정한 의미의 건강에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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