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코로나19 집단면역 수준을 가늠해볼 수 있는 국민 항체 형성률을 놓고 언론이 오보를 하거나 부실한 보도를 쏟아내고 있어 국민의 정확한 코로나19 인식에 걸림돌 구실을 하고 있다. 이는 단독 내지 특종에 눈이 멀어 방역 당국이 공식 발표를 하기 전에 성급하게 추측성 기사를 사실처럼 포장해 보도하거나 정부 공식 발표를 잘못 해석해 빚어진 일이다.
방역 당국은 9일 코로나19 국민 항체 형성률이 0.03%라는 조사 중간 결과를 발표했다. 이를 보면 지난 4월 이후 국민건강영양조사에서 모아진 1555명 분 그리고 서울 서남권, 즉 구로, 양천, 관악 등 5개 구 병원을 찾은 환자 1500명 분의 혈청 등 모두 3055건 가운데 단 한 건에서 항체를 확인했다. 국민건강영양조사에서는 항체 보유자가 아예 없었고, 서울 서남권 병원에서 확보된 딱 한 명의 검체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몸에 들어온 흔적에 해당하는 ‘중화항체’가 확인됐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인구가 5100만 명 가량이므로 0.03%는 국민 가운데 대략 1만5300명 정도가 감염된 적이 있다는 뜻이다. 9일 현재 1만3000여 명의 확진자가 나왔고 한 달 전에는 1만2000명 안팎이었기 때문에 0.03%를 기준으로 한다면 우리가 찾아낼 수 있는 대부분의 환자는 찾아냈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한데 이 중간 결과 발표를 언론이 일제히 보도하면서 “물 건너간 '집단 면역'...거리두기 만이 답”(MBC) “속도 더딘 코로나19 ‘집단면역' 이대로면 2차 대유행 온다.”(동아사이언스) “ ‘한국인 코로나19 항체 보유율’을 조사했더니 매우 당황스러운 결과가 나왔다.”(위키트리) “국민 3055명 검사하니 코로나 감염자 1명… ‘집단면역 기대 불능, 백신 기다려야’”(한국일보) 등 조사 결과에 대한 해석을 덧붙여 다루었다.
하지만 이 조사 결과가 지닌 한계 등에 대해 상세하고 매우 적확하게 지적해 다룬 보도는 거의 없었다. 방역 당국은 이번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한계가 많음을 덧붙였다. 대다수 언론은 코로나19가 크게 유행한 대구·경북 지역이 빠졌다는 것 등에만 주목했다.
이것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조사 설계에 매우 심각한 문제들이 많이 있어 이것이 실제 우리 사회의 항체 형성률을 대표하기에는 적절치 못하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이번 조사 결과가 언론 내지는 국민에게 잘못 인식되는 것을 우려했는데 언론 보도를 보면 그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정부, 조사 설계에 심각한 결함 있는 항체 형성률 발표 강행
우리 사회의 실제 코로나19 항체 형성률을 알아보려면 몇 가지 점이 충족돼야 한다. 성(性), 연령, 지역 등에서 표본, 즉 조사 대상자의 대표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어느 특정 지역이 많거나 특정 연령대가 많으면 안 된다. 따라서 국민건강영양조사 대상자와 서울 서남권 병원을 찾은 환자만을 대상으로 한 조사는 이런 대표성이 없다.
표본수도 충분해야 한다. 항체 형성률이 20~30% 등 매우 높을 것으로 예상될 때는 표본수가 1000개나 2000개면 충분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항체 형성률이 0.03%정도로 매우 낮을 때는 적어도 수만 내지 수십만 명이 되어야 표본에서 오는 오차를 낮출 수 있다. 1000명을 조사했더니 단 한명도 나오지 않았다면 이를 대한민국에는 감염자가 단 한명도 없다고 해석할 수는 없지 않은가.
만약에 이번에 3000명가량을 조사했더니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면 방역 당국은 어떻게 발표했겠는가. 0%이니 발표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가령 100명을 조사했는데 한 명이 항체를 지니고 있었다면 우리나라 국민 가운데 1%가 항체를 보유하고 있다고 발표할 것인가.
이런 점 등을 고려한다면 방역 당국이 차라리 이번 발표를 하지 않는 것이 좋았다. 만약에 발표를 하려고 마음먹었다면 언론이 이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미리 예견해 이렇고 이런 해석은 절대 하지 말도록 강하게 이야기했어야 한다.
항체 보유율 낮은 것을 당황스런 결과로 여기는 황당한 보도
이런 세세한 소통에 신경을 쓰지 않다보니 잘 모르는 기자들은 “속도 더딘 코로나19 ‘집단면역' 이대로면 2차 대유행 온다.”거나 “ ‘한국인 코로나19 항체 보유율’을 조사했더니 매우 당황스러운 결과가 나왔다.”는 둥 정말 황당한 보도를 하게 된 것이다.
‘속도가 더딘 코로나19 집단 면역’이라고 우려하는 보도는 한마디로 ‘집단면역을 이루기 위한 속도가 더 빨라야 된다’는 뜻이다. 우리 사회에서 감염자가 대거 나왔어야 한다는 것과 같은 지적이다. 항체 보유율을 조사했더니 매우 당황스러운 결과, 즉 0.03%밖에 나오지 않았다는 보도 또한 언론의 자질이 의심스러운 보도다.
전문가들과 방역 당국은 이미 매우 낮게 나올 것으로 예상한 일이었다. 예상한대로 나왔는데 당황스러울 하등의 이유가 없다. 집단면역을 높이기 위해, 즉 항체 보유율을 높이기 위해 지금보다 수백, 수천 배의 확진자가 더 나와야 된다는 식의 보도를 대다수 언론들이 하고 있는 것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 정말 난감하다.
물론 일부 언론은 ‘국내 항체 조사 첫 중간 결과는 불완전했다’(동아사이언스)며 제목에서까지 ‘불완전’을 강조했다. 앞으로 정부는 불완전한 조사 설계 자체를 하지 말아야 한다. 정말 지역 사회의 코로나19 항체 형성률을 정확하게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많은 비용과 인력을 투입해서라도 정확하게 하는 것이 마땅하다.
일부 언론은 “왜 유독 우리나라만 이렇게 낮은 항체 형성률이 나왔을까?”라고 말한다. 우리나라보다 항체 형성률이 훨씬 더 낮게 나온 나라도 많다. 유독 우리나라만 항체 형성률이 낮게 나왔다는 보도는 오보다. 전 세계에서 코로나19가 어떤 나라에서 어떻게 유행하고 있는가에 대한 관심이 없거나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아 이런 부실 보도가 나온 것이다.
SBS 의학전문기자 숨은 감염자 4만 명 대형 오보
국내 코로나19 항체 형성률 보도와 관련해 SBS는 대형 오보를 했다. 이 방송은 지난 6월30일 “‘나도 모르게 감염’ 숨은 감염자 4만여 명 더 있었다.”는 제목으로 “국내 첫 국민건강영양조사, 즉 일반인 1500명 대상 조사에서 국내 항체 보유율은 약 0.1%로 나타났습니다. 인구 5000여만 명에 적용하면 5만여 명이 코로나19에 걸렸다가 나아서 항체를 보유하고 있다는 건데 현재 확진 환자 1만2000여 명의 4배에 달하는 숫자입니다.”라고 보도한 바 있다.
하지만 그 뒤 방역 당국이 이번에 공식 발표한 내용에는 국민건강영양조사 대상 1555명에서는 단 한 명의 항체 보유자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0.1%가 아니라 0%였던 것이다. 감염자 4만 명 더 있다는 등 모든 내용이 엉터리가 되어버렸다.
이 기사를 쓴 기자는 의사 출신의 의학전문기자였다. 전문기자라고 해서 오보를 하지 않거나 덜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당시 보도를 들은 사람은 의학전문기자가 하는 보도여서 이를 사실로 받아들였을 개연성이 높다.
아마 정부가 공식 발표를 하기 전에 먼저 취재한 내용(나중에 엉터리로 판명)을 단독 내지는 특종이라는 이유로 성급하게 기사화했을 가능성이 높다. 감염병 등 재난 보도 시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성이다. 그리고 이런 내용은 시간을 다투어 보도해야 할 만큼 화급한 것도 아니다.
감염병 보도에는 정확성이 생명이다. 예단하거나 지레짐작으로 해석하는 것은 금물이다. 그리고 언론인은 늘 공부를 해야 한다. 잘 모르면 전문가들의 머리를 빌려야 한다. 부지런하고 성실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보를 내거나 황당한 내용의 보도를 하게 된다. 그것이 이번 우리나라 코로나19 항체 형성률 보도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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