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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인권 운동가에서 최장수 서울시장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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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인권 운동가에서 최장수 서울시장까지

3180일 시정...최장수 서울시장으로 기록 남아

박원순 서울시장이 3180일의 역사상 최장수 서울시장 시정을 비극적으로 마쳤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갑작스러운 사망이 시정 마감의 원인이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9일 오후 5시 17분경 112를 통해 박 시장의 실종 신고를 접수한 후, 약 7시간여에 걸쳐 수색을 진행해 10일 오전 12시 1분경 박 시장의 시신을 서울 북악산 숙정문 인근에서 발견했다.

이날 새벽 2시경 경찰은 현장 브리핑을 열어 "현재로서는 특별한 타살 정황이 없다"며 "향후 변사사건 절차에 따라 수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수색견이 등산로에서 수십 미터 떨어진 곳에서 박 시장의 시신을 확인됐다. 이후 소방대원과 경찰 기동대원이 함께 박 시장의 시신을 확인했다.

현장에서는 박 시장의 것으로 추정되는 휴대폰과 배낭, 명함, 필기도구 등의 소지품이 발견됐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일부 언론이 유서와 관련한 보도를 했으나, 경찰이 직접 유서 정보를 확인한 사항은 없다"고 전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의 시신 이동 동선 협의가 마무리되면서, 박 시장의 빈소는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 마련되게 됐다. 이 시각 현재 경찰은 시신 발견 장소에서 현장 감식을 진행하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 ⓒ프레시안(최형락)

박 시장은 한국 시민운동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참여연대를 설립했고, 아름다운재단과 아름다운가게를 운영했다. 역사문제연구소 초대 이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박 시장은 2011년 10월 서울시장 재보선에서 안철수 당시 교수와 단일화를 이뤄 정계에 입문했다. 박 시장은 당시 선거에서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를 꺾고 같은 달 27일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이후 2014년 지방선거에서는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을 꺾었고 2018년 제7회 지방선거에서는 김문수 자유한국당 후보와 안철수 바른미래당 후보를 꺾고 사상 최초로 민선 3선 서울시장이 됐다.

그러나 2022년 6월 30일까지 남은 임기를 약 2년 앞두고 갑작스럽게 숨졌다. 박 시장의 서울시장 재임 시기는 총 3180일이다.

서울시장 재임 시절 박 시장의 가장 큰 업적으로는 무상급식이 꼽힌다. 당장 박 시장이 정계에 입문한 계기가 전임인 오세훈 전 시장의 무상급식 반대였다. 박 시장은 선도적으로 무상급식을 밀어붙여 현재 한국 학교의 표준적인 무상급식 체제 안착을 이끌었다.

수익성 논란, 민영화 논란이 컸던 메트로9(서울 지하철 9호선)의 공영화 역시 박 시장의 결단이 통한 사례로 꼽힌다.

박 시장은 그 외에도 노후한 서울역 고가를 시민에게 개방한다는 취지로 공원화했고, MICE복합단지 조성에 나섰다. 청년 지원 정책 등의 복지 강화 정책을 취하면서도 서울시 재정을 더 건전화하는 데 공헌했다는 찬사도 받았다.

박 시장은 다른 한편 서울 둘레길 조성, 서울 성곽 복원, 광화문과 풍납토성 복원 등 서울의 과거를 복원하는 사업에도 큰 관심을 기울였다.

박 시장의 갑작스러운 사고 소식에 서울시도 충격에 휩싸였다. 비상 대기중이던 서울시 공무원들은 참담한 심경을 언론에 내비쳤다.

박 시장은 재임 시절 '일벌레'로 통했다. 박 시장의 열정은 때로 누리꾼의 농담 거리로 소비되기도 했다.

박 시장은 숨지기 직전 성추행 피소를 받았다. 그가 변호사이던 시절 한국의 여성 인권을 위해 활동한 경력과 대비된다. 박 시장이 사망함에 따라 관련 피소건의 경찰 수사도 종결됐다.

1980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박 시장은 1982년 대구지방검찰청 검사에 임용됐다. 그러나 1년 만에 검사직을 관두고 인권변호사로 나서 한국의 인권 증진을 위한 중요한 사건을 변호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이다. 1986년 6월 5일 경찰관 문귀동이 학생운동가 권인숙(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을 성폭행한 사건으로, 박 시장은 2년에 걸친 재판의 변호인단에 참석해 가해자 처벌에 큰 역할을 했다. 박 시장은 총 3권으로 구성된 <야만시대의 기록>(역사비평사 펴냄)을 통해 변호 당시의 한국 현대사를 전하기도 했다.

박원순 시장은 1998년 서울대 우 조교 성희롱 사건에서도 피해자 우희정 조교의 변호인으로 나서 가해자인 서울대 화학과 신정휴 교수 패소 판결을 이끌어냈다. 이 사건은 한국에서 최초로 제기된 성희롱 소송이다.

박 시장은 일본군 '위안부' 사건을 비판하기 위해 2000년 12월 일본 도쿄에서 세워진 여성국제전범법정에 참여하기도 했다. 당시 남북공동 검사단의 일원으로 재판에 참여한 박 시장은 일본 천황을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이 재판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민간 행사였다.

▲10일 오전 1시경 박 시장의 빈소가 마련될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 직원들이 대기하고 있다. ⓒ프레시안(조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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