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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했단 경찰의 빈약한 자료, 뒷받침한 건 전문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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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했단 경찰의 빈약한 자료, 뒷받침한 건 전문가들"

[아무도 모르는 노동자의 죽음] ⑧ 박지영 상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2014년 4월 26일 오전 11시35분, 울산시 현대중공업 선행도장부 13번 셀장 2626호선에서 작업용 에어호스에 목이 감긴 채 난간에 매달린 노동자가 발견됐다.

목격자 없는 죽음이었다.

하청 노동자 정범식 씨였다.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자연히 그의 죽음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유가족과 동료들은 그가 '사고사'를 당했다고 했으나, 회사 측에서는 '자살'에 무게를 뒀다.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 그 죽음의 실체는 무엇일까. <프레시안>은 한 노동자의 죽음을 추적했다. 경찰 보고서와 재판부 판결문 등을 토대로 하고 증언을 수집했다. 이것은 그의 죽음을 추적하고 톺아보는 르포다.

그 죽음의 진실과 경찰의 '몰아가기' 수사, 그리고 '부화뇌동'하는 전문가들의 허상을 살펴보고자 한다.(편집자)

('아무도 모르는 노동자의 죽음' 연재 바로가기 ☞ : 클릭)

심리부검(psychological autopsy). 자살 사망자의 가족이나 친척, 친구들 인터뷰를 기본으로 사망자 일기, SNS 등 개인 기록 등을 분석해 자살원인과 자살경로 등을 밝히는 연구방법이다. 시신부검 중심인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생소한 용어다.

사람이 자살로 죽었다고 한다면, 자살목적, 자살하기까지 원인이 되는 갈등 내지는 문제, 자살자의 성격 등을 종합해서 살펴봐야 한다. 그래야만 사회적으로 자살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위험요인을 밝혀내고, 대처방안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리부검을 하는 이유다.

이러한 심리부검은 거꾸로 사망원인을 알 수 없는 의문사를 분석할 때, 유용하게 사용된다. 자살사망자의 자살원인 등을 분석하는 방법을 거꾸로 적용하는 식이다. 의문사 사망자의 현장사진, 관계자 진술 등이 통상적인 자살사망자들의 심리‧사회적 특성에 부합하는지를 판단한다. 그러면서 의문사가 자살일 가능성이 있는지 객관적으로 들여다본다.

현대중공업 하청 샌딩공으로 일하다 사망한 정범식 씨. 아무도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지 못했다. 의문사였다. 그러나 사망 바로 다음 날 진행된 부검에서 '자살'이라는 부검의 소견이 나왔다. 근거는 없고 '의견'만 남은 부실 소견서였다. 그런 소견서를 근거로 경찰은 고인의 죽음을 자살로 규정 내렸다.

자살사망자의 자살원인을 전문적으로 분석하는 박지영 상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정범식 씨의 죽음을 두고 "자살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일반적인 자살사망자와 다른 몇 가지 분명한 패턴이 그의 죽음에서 보인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경찰에 의뢰받은 전문가들과는 달리, 사망조사기록, 경찰 수사 기록, 진료기록감정서 및 사망자의 사망 전 여러 정황, 자살 장소와 수단의 특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했다.

아래 그와의 일문일답.

▲ 박지영 교수. ⓒ프레시안

"자살할 만한 고통이나 스트레스가 없었다"

프레시안 : 정범식 씨의 사망 원인은 '사고사'였다. 그런데 경찰은 '자살이라고 단정했고, 여기에 맞춰 전문가들은 근거를 제시했다. '자살'에 확신을 준 것이다. 사실 정 씨의 사망은 아무도 목격하지 못했다. 죽음의 원인을 아무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그가 자살했다고 확정적으로 의견을 냈다.

박지영 : 이 사건 관련해서 누구도 무엇이 '사실이다', '진실이다'라고 단정할 수 없다. 추정만이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전문가들이라 해도 주어진 단서들을 분석적으로 종합해본다 하더라도 가장 사실에 가까운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지 단정적으로 '자살이다', '아니다'를 논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사건기록, 유가족 진술 등을 모두 검토한 입장에서 이 사건을 어떻게 판단했나.

박지영 : 여러 자료들을 종합해볼 때 자살이라고 확신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다. 물론, 자살이 통상적으로 어떤 경향성이나 전형적인 양상을 나타내는 경우도 있는 반면 객관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예외적인 경우가 있기도 하다. 이 사건을 자살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게 된 점은 자살수단과 장소, 그리고 고인의 사망 당시 전 몇 개월 동안의 정황 맥락이었다. 고인의 목에 두께가 2,5센티 정도에 구부러지기 어려운 견고한 성질의 에어호스가 매여 있었다. 내가 받은 조사서에 경찰은 고인이 에어호스에 스스로 목을 매고 자살했다고 주장했다.

나는 자살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전문가이지만, 사고가 발생한 조선소 현장은 잘 알지 못했다. 전혀 감이 안 잡혔다. 목에 맨 에어호스 두께가 2.5cm라고 하는데, 이 호스가 얼마나 유연한지, 당시 작업장 밝기는 어느 정도였는지 등. 그래서 추가로 경찰 자료를 보내달라고 해서 참고인 진술서, 현장 사진 등을 받아 살펴보았다. 그래도 감이 잘 오지 않았다. 그래서 철물점에 가서 고인의 목에 매어진 에어호스를 찾아서 확인했다.

프레시안 : 왜 그렇게까지 하나하나 확인했나.

박지영 : 발품을 팔 수밖에 없었다. 주어진 자료만으로 판단하기는 어려웠다. 유가족에게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알 권리가 있다. 더욱이 명확한 이유도 없이 자살로 귀결될 경우, 가족이 받을 상처도 그렇고, 노동현장에서 노동자들의 죽음이 명확하게 규명되는 것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것저것 다 따져보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정도에서 당시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시도를 했다. 그랬더니 고인의 목에 걸린 에어호스는 쉽사리 꺾이지 않았다. 에어호스 두께가 엄청 두껍다. 뻣뻣해서 쉬이 꺾이지 않았다. 이 호스를 보면서, '자살을 했다면, 왜 이렇게 빳빳한 호스를 택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 다음으로 확신이 필요했던 부분은 자살이 발생한 장소였다. 만약 가족이나 직장, 사회에 불만이 있었다면 그러한 불만과 관련된 장소에서 자살을 시도할 확률이 높다. 그런데 고인은 자신의 작업장에서 목을 맸다. 그것도 한창 작업이 진행 중인 곳이었다. 그리고 작업하는 당일 날 정범식 씨는 팀장에게 '리모컨에 문제가 있다'고 '수리하겠다'는 의지도 보였다. 그렇게까지 말했는데, 고인이 자살했다는 게 설득되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하나 정황을 살펴보기로 했다.

프레시안 : 어떤 정황을 살펴보았나.

박지영 : 경찰이 이야기하는 자살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한 객관적 판단을 해보았다. 경찰 주장에서 제시된 자살원인과 관련된 정황내용들을 하나하나 분석하고 시간흐름에 따라 정범식 씨의 행동이나 그에게 통제하기 어려운 고통이나 스트레스가 될 만한 사건들을 재검토했다. 그러고 나서야 자살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최종 판단을 했다.

프레시안 : 왜 그렇게 했는지 궁금하다.

박지영 : 사람의 행동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특정 행동의 전후 맥락을 봐야 하고, 특정 행동을 촉발하거나 초래한 정황적 맥락을 함께 확인해야 한다. 사람의 성향도 중요하다. 직장 동료들의 진술에 따르면 정범식 씨는 평소 적극적이고 밝고 성실했다. 이런 성향을 가진 사람이 자살하기 위해서는 이런 긍정적인 특성을 압도할만한 일이 있어야 한다. 또는 이 사람에게 어떤 사건이나, 심리적 위태로움을 주는 내면적 취약성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게 없었다.

▲ 정범식 씨가 떨어진 난간.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경찰 제시한 자살 원인들은 충분치 않은 증거들이다"

프레시안 : 세부적으로 들어가서 이야기해보자. 경찰은 고인이 망상장애로 진료를 받았다는 점과 신용카드비 미납 등으로 생활경제가 어려웠다는 점을 이유로 자살했다고 규정했다. 그런데 망상장애로 진료받은 시기가 2013년 12월이다. 죽기 4개월 전이었다. 2007년에도 같은 이유로 진료를 받았는데, 이를 두고 망상장애로 힘들어해서 자살로 이어졌다고 말하는 건, 과잉해석인 듯싶다.

박지영 : 주목할 점은 당시 정신과전문의 소견서에서 고인의 망상장애 관련, 중요한 내용이 나온다. '환자는 부인이 바람을 피우지 않는 것을 이성적으로 인지하고 있으나, 갑자기 감정적으로 의심하는 마음이 들어서 힘들어한다'. 이는 매우 중요한 소견이다. 망상이 심한 사람들은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인지보다 왜곡된 신념을 신뢰한다. 머리로는 한편 '바람을 피우지 않았다'라고 생각하더라도, 이내 자신의 왜곡된 신념을 확신하고 배우자에게 공격적이거나 고통을 주는 행동을 한다. 그런데 정범식 씨는 자신의 상황을 잘 이해하고 이성을 놓치지 않으려고 스스로 노력했다. 그리고 치료도 받고 약도 잘 먹었다.

그리고 아내에게 자신의 편집적인 망상에 대해 미안하다는 문자를 보낸다. 스스로 병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망상증을 가진 사람이 이 정도 자기 병식(病識)을 갖고 치료자를 찾아가 꾸준히 약을 먹었다는 건, 병식이 있을 뿐 아니라 자기 증상을 관리할 정도로 양호했다고 볼 수 있다. 정범식 씨는 일상생활에도 심각한 문제가 없었다. 의처증이 심했다면, 이분은 아내와 떨어져서 일을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매일 같이 아내에게 전화해서 '어디야'를 반복한다거나 아내의 행동이나 이동을 확인하고 통제하려는 양상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행동이 없었다.

문제는 질병의 유무가 아니라, 질병의 강도다. 질병이 이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느냐다. 의사소견대로 망상증이 있었으나, 부인에 대한 의심을 계속 내려놓으려 했고, 치료도 받으려 했다. 떨어져 있어도 아내를 협박하거나 감시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런 점으로 보면 이 사람은 아내를 병적으로 의심했다고 보기 어렵다.

프레시안 : 그런데 경찰은 왜 이런 이유를 들어 자살이라고 했을까 싶다. 또 하나 짚고 싶은 건, 경찰은 자살의 원인으로 경제적 어려움도 제시했다. 근거는 신용카드 비용과 보험료, 통신료 등이 연체됐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심리적 압박을 느껴서 자살했다는 게 경찰 주장이다.

박지영 : 만약 연체가 자살의 원인이 되려면, 몇 가지 패턴이 있어야 한다. 연체가 계속 반복되어서 연체 스트레스가 쌓이는 거다. 이때 중요한 전제는 연체당사자가 연체금을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없어야한다는 것이다. 1억을 빚져도 3년 뒤에는 갚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사람들은 자살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100만 원 빚을 져도 앞으로 갚을 길이 없다고 하면 사람들은 자살을 생각할 만큼 심리적인 압박감을 느낄 수 있다.

정범식 씨는 연체 비용(카드미납금 210여만 원, 통신요금 30여만 원 등, 보험료 약 20만 원)도 많지 않았고, 정 씨와 부인의 월수입 볼 때, 당시 연체금은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이 연체가 자살로 이어질 치명적 스트레스로 느껴지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또한, 카드연체 등과 관련해서 괴롭다는 이야기를 어디에도 하지 않았다. 연체로 인한 부부간 갈등이나 고민한 흔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자살에 영향을 줄 위험요인으로 확신하기 어려웠다. 자살에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엔 충분하지 않은 증거였다.

▲ 조선소 도크에서 제작 중인 선박.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프레시안 :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경찰이 제시한 증거들은 빈약했던 듯하다. 그런데 그런 증거들로 내린 '자살'이라는 결론은 전문가들이 뒷받침해줬다.

박지영 : (경찰에 의견서를 낸) 전문가분들에 대해서는 자료가 없어 판단하기가 어렵지만, 이들 역시 정범식 씨 사건을 설명할 수 있는 여러 관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자세히 이야기해 달라.

박지영 : 어느 사건이든 죽음과 관련된 사건에서 자살이냐, 아니냐를 쉽게 단정 지으면 안 된다는 것만 이야기하고 싶다. 적어도 사회적으로 판단해야 할 때, 전문가 의견은 책임성을 가지고 내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나와 다른 해석을 했다고 해서 상대편의 해석을 쉽게 판단할 수 없다. 단순하게 사건자문을 요청한 곳에서 보내준 제한된 자료들만으로 판단하고 의견을 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왜냐하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제한된 자료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자료에 대한 선입견과 특정 정보가 어떻게든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것을 완전히 통제하기는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박지영 : 법의학처럼 심리‧사회적 부검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법정에서 정범식 씨 같은 사건을 다룰 경우, 정신의학이나 병리적 진단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이고 관계적 맥락을 함께 고려해야한다. 쉽게 이야기하면 어떤 사람에게는 전혀 문제되지 않는 상황이 다른 특성이 있는 사람에게는 상당히 스트레스를 초래하기도 한다. 특히나 자살에 있어서 절대적인 위험수준이라는 것은 정의하기 어렵다. 앞서 이야기했듯 자살 행위 역시 많은 연구에서 비롯된 이론적이고 실증적인 전형성이 있다. 그러나 인간의 죽음을 어떤 전형적이고 표준화된 틀 안에서 해석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 양상이라는 것은 개별적인 특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도구이지 이 전형성이 모든 사람의 죽음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누군가의 죽음 앞에 선행된 여러 상황들이 어떻게 개인과 상호작용했는가를 논리적이고 과학적으로 드러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것이 심리‧사회적 부검이다.

또 하나 말하고 싶은 것은 정범식 씨와 같이 설명하기 어려운 죽음이 벌어졌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어떤 게 진실이냐'를 논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최선의 진실을 밝혀나가는 과정에서의 공정성'이다. 누구도 죽음 앞에 억울한 마음이 없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어떤 결과에 도출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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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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