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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인종 차별의 역사: 빨간 주택지와 인종 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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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인종 차별의 역사: 빨간 주택지와 인종 차별

[좋은 도시를 위하여] 프로비던스

2020년 들어 미국에는 연달아 '별일'이 많다. 트럼프 대통령 탄핵 심판이 끝나자 코로나19 가 폭발적으로 확산, 이를 막기 위해 거의 모든 사회적 활동이 멈춰 섰다. 그런가 싶더니 이번에는 미니애폴리스의 흑인 남성이 경찰관의 폭력적 진압으로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일어났고, 이는 곧 전국적인 항의 시위로 이어졌다. 뉴욕이나 워싱턴 D.C. 같은 상징적인 도시에서 일어나는 시위는 낯설지 않다. 그러나 이 시위는 미국 전역 중소도시로까지 확산했다. 이를 계기로 미국 내 인종 차별에 대한 논의가 예전에 비해 훨씬 활발해졌다.

미국의 인종 차별 문제는 매우 구조적이며 심각하다. 거의 모든 도시의 주거 현황만 살펴도 그 문제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미국 대부분의 도시에는 소위 '흑인 동네(Black neighborhood)'가 있다. 부동산 거래와 관련한 인종 차별을 법적으로 없앤 것은 1960년대 흑인 인권 운동의 가장 큰 성과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러나 흑인들이 밀집해 사는 동네는 여전히 존재한다. 왜 그럴까. 내가 사는 로드아일랜드 주 프로비던스 역시 예외가 아닌데, 이 지역의 역사를 살피면 그 원인을 가늠할 수 있다.

프로비던스는 1636년 영국 식민지 시대에 형성됐다. 1790년 미국에서 치른 첫 번째 인구 조사에 따르면 당시 아홉 번째로 큰 도시였다. 1764년 명문 브라운 대학교가 이 도시에 들어섰고, 1793년경 시작한 미국 산업혁명의 영향을 일찌감치 받아 19세기에는 이미 중요한 공업도시였다. 오래된 도시인만큼 역사적 자산이 많다. 작은 강을 중심으로 동서부로 나뉘는데 원도심이라 할 수 있는 지역은 오늘날 '이스트사이드'로 불리는 동쪽에, 19세기 초 산업혁명으로 도시가 커지면서 형성된 상업 중심지는 서쪽에 자리한다.

19세기 말에 접어들면서 수많은 이민자가 원도심이라 할 수 있는, 상대적으로 오래된 이스트사이드로 유입되기 시작했다. 이 가운데는 흑인들도 있었다. 19세기 이후 흑인들이 모여 살던 작은 동네는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남부에서 이동해온 흑인들의 수가 더 늘어남에 따라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대공황을 거치며 공업이 쇠퇴하면서 프로비던스 전체 인구는 줄어들었고, 이스트사이드의 오래된 주택은 대부분 저소득층 임대 주택으로 전용되었다. 이곳에는 값싼 주거지를 선택해야 하는 흑인들이 주로 살았다.

한편, 1930년대 대공황을 겪으며 주택 융자를 갚지 못하는 사람이 전국적으로 급격히 늘어났다. 연방 정부는 폭발적인 압류 사태를 막기 위해 '주택 소유자 융자 공사(Home Owners' Loan Corporation)'를 설립했다. 아울러 전국의 5만 명 이상 거주하는 도시를 대상으로 이른바 '주택 융자 안전성 관련 지도'를 만들었다.

▲'주택 소유자 융자 공사' 1936년 프로비던스 지도. ⓒ프로비던스 시

지도는 네 구역으로 구분했다. 가장 '위험한' 지역은 빨간색, 그 다음으로 노란색, 파란색, 녹색 순이었다. 당연하게도 녹색 지역은 안전성이 좋은, 곧 부유한 지역을 뜻했다. 파란색 지역은 중산층 거주지, 노란색 지역은 빨간색 인근에 위치한, 점차 쇠퇴해가는 지역을 의미했다. 지도 설명을 보고 있자면 주택, 거주지와 관련한 인종 차별의 징후를 역력히 발견할 수 있다. 빨간색 지역 관련해서는 "흑인이 주로 사는 슬럼가"라는 설명이 자주 나오는 반면, 녹색 지역의 설명문에 '백인'이라는 단어는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주택 거래와 관련하여 "제한이 엄격한 우수한 지역"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이 지도는 오늘날까지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오랫동안 빨간색과 노란색 지역의 주택은 융자가 불가능했다. 융자 없이 매매가 순조로울 리 없었다. 이 지역의 거의 모든 집은 어느덧 임대주택이 되어 있었다. 게다가 1968년 공평주거권리법(Fair Housing Act)이 등장하기 전까지 흑인은 융자를 받는 것조차 어려웠고, 심지어 주택을 임차할 때도 많은 차별을 받았다. 1950~1960년대는 중산층 주택 보급의 황금시대로 일컬어지기도 했지만, 흑인들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였다. 제도적으로 이들을 엄격하게 배척했기 때문이다.

프로비던스 주택지를 그린 지도에도 이러한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1950년대 이스트사이드에 위치한 브라운 대학교는 인접 지역 환경이 매우 큰 고민이었다. 빨간색, 노란색 지역이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해결책으로 미국 몇몇 도시에서 이미 도입한 바 있던 '역사적 경관 보존 사업' 지원 방안이 대두되었다. 대학 바로 인근에 남아 있는 18세기 미국 건국 시기에 지어진 집들을 보존하겠다는 것이 지원의 명분이었다. 지원이 결정된 뒤 오래된 집을 조사하고, 보존 지역 지정에 따라 집수리 지원이 시작되었다. 이스트사이드의 많은 집은 단순한 수리로 해결될 상태가 아니었다. 대수선을 거쳐야 하는 집이 대부분이었다. 집을 고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그동안 살고 있던 사람은 어디론가 떠나 있어야 한다. 살던 사람들은 이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임대주택이 되어 있던 이 집에 사는 이들은 대부분 저소득층, 그 가운데 흑인들이었다. 상당수가 카보베르데(Cabo Verde)에서 온 이민자들이었던 이들은 살던 집을 떠나 어디론가 흩어져 떠났다. 집수리가 끝난 뒤 떠난 사람들은 돌아왔을까? 집의 가치가 올라가자 부유한 백인들이 들어왔다.

이곳만 그런 게 아니다. 브라운 대학교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도 19세기 중반부터 형성한 흑인 동네가 있었다. 프로비던스 시 차원에서 이 지역은 별다른 보존 가치가 없다고 판단, 전면 철거 후 재개발을 추진했다. 사라진 주택가에는 대신 상가가 들어섰다. 고급 슈퍼마켓, 스타벅스 등이 차례차례 자리를 차지했다. 이곳에 살던 흑인들은 또다시 살던 곳을 떠나야 했다. 그나마 인근에 남아 있던 흑인 동네는 2000년대 들어 젠트리피케이션이 시작됐다. 흑인들은 또다시 떠나야 했다. 프로비던스 이스트사이드에 있던 빨간색과 노란색 지역은 오늘날 거의 다 사라졌다.

프로비던스 이스트사이드의 변화를 놓고 보면 브라운 대학이 지역의 재개발과 깊은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브라운 대학교가 독자적으로 주도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이미 다른 지역에서 나타났던 역사 보존 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브라운 대학교가 이러한 개발의 협력적 동인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전면 철거를 반대하는 대신 역사적 경관 보존을 지원한 것 역시 대학의 이익을 위함이었다. 결과적으로 고민의 대상이었던 빨간색, 노란색 지역은 이제 경관이 예쁜 부유한 지역으로 변화했다. 1930년대 이미 백인들이 살고 있던 녹색과 파란색은 어떻게 되었을까. 여전히 백인들이 주로 살고 있다.

서쪽 지역은 다를까? 프로비던스 전체 면적으로 볼 때 이스트사이드보다 서쪽 지역이 훨씬 넓고 인구도 많다. 넓기 때문에 각각의 동네 명칭이 따로 있을 정도다. 1930년대 주택 지도를 보면 서쪽에는 노란색이 많고, 빨간색과 파란색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이 당시만 해도 값싼 임대주택에 백인들도 많이 살았지만, 1980년대 이민이 확대하면서 점점 변화가 이루어졌다. 남미 출신을 비롯해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등에서 온 이민자들이 싼 주거지를 찾아 노란색과 빨간색 지역으로 더 많이 유입되었다. 파란색 지역은 한 군데를 제외하고,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백인들이 주로 살고 있다.

▲강으로 나눈 프로비던스 시내 전경. ⓒ로버트 파우저

여기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1930년대 녹색과 파란색이었던 곳에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백인들이 압도적으로 많이 살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임대주택이 많은 빨간색과 노란색 지역에는 여전히 흑인과 이민자가 주로 모여 살고 있다는 점 또한 확인할 수 있는 사실 중 하나다. 물론 보존 사업으로 인해 과거 빨간색과 노란색 지역이 부촌으로 변화한 브라운 대학교 인근의 사례가 있긴 하지만, 이는 예외적인 것일 뿐 다른 지역은 대부분 85년여 전과 비슷한 상황이다.

어느 지역에 누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들여다보기만 해도, 인종 차별의 역사가 이렇게 한눈에 드러난다. 오랫동안 구조적으로 이어져온 인종 차별의 승자는 역시 화이트칼라 계층의 백인이며, 패자는 역시 흑인이다. 1960년대 말까지 노골적인 인종 차별로 인해 재생 가능성을 가진 주택 시장에 흑인들은 거의 참여하기가 불가능했고, 무슨 이유가 생기면 가장 먼저 살던 곳에서 쫓겨나야 했다. 1970년대부터 그나마 법적인 여건이 좋아지긴 했으나, 2000년대 들어서 세계 전역에서 불기 시작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에 의해 흑인은 역시 쫓겨나기 일쑤다.

경찰관의 폭력 진압에 의한 흑인 남성의 사망으로 촉발된 시위가 온 나라를 휩싸고 있다. 이러한 시위가 분노의 표출로만 그치지 않고, 구조적으로 사회 전반에 뿌리를 내린 인종 차별의 종식으로까지 나아가길 바란다. 그것이 먼 길이라면, 적어도 이번 기회에 매우 현실적인 문제인 주택을 둘러싼 인종 차별이라도 해결이 된다면 조금은 진일보한 셈이 되지 않을까.

필자 소개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를 역임하고, 지금은 미국에서 독립학자로 활동하고 있는 로버트 파우저가 <프레시안>에 '좋은 도시를 위하여'라는 연재를 시작한다. 그는 <미래 시민의 조건>, <서촌 홀릭>, <외국어 전파담>, <로버트 파우저의 도시탐구기> 등 인문사회 분야 베스트셀러를 쓴 작가이기도 하다. 현재는 외국어 학습에 대한 책을 집필 중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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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파우저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를 역임하고, 지금은 미국에서 독립학자로 활동하고 있는 로버트 파우저가 <프레시안>에 '좋은 도시를 위하여'라는 연재를 시작한다. 그는 <미래 시민의 조건>, <서촌 홀릭>, <외국어 전파담>과 <외국어 전파담 개정판>, <로버트 파우저의 도시탐구기>, <외국어 학습담> 등 인문사회 분야 베스트셀러를 쓴 작가이기도 하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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