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현아, 엄마가 아빠 신상을 <배드파더스> 사이트에 공개해도 될까?"
둘째 아들 성현(가명. 17세)은 담담하게 말했다.
10년간 양육비를 안 주고 얼굴도 비추지 않았던 사람. 그렇다고 마음껏 미워할 수도 영원히 잊을 수도 없던 아버지를 아들은 '그 사람'이라고 불렀다.
엄마 이다도시(방송인, 69년생)는 성현에게 아버지 사진을 보여줬다.
이다도시는 둘째 아들과 나눈 이야기를 두고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다도시는 결혼 15년만인 2008년 한국인 남편 서성호(가명, 62년생) 씨에게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첫째 성준(가명)은 12살, 둘째 성현은 5살이었다.
소송 2년 후인 2010년, 부부는 조정 이혼했다. 두 아들에 대한 친권과 양육권은 아내 이다도시에게 돌아갔다. 비양육자의 면접교섭은 매월 둘째, 넷째 주말로 결정됐다. 명절이나 제사 때도 아이들은 아버지와 교류가 가능했다.
두 아들에 대한 양육비는 2012년 1월부터 2013년 12월까지는 매월 120만 원, 그 다음날부터 2017년 4월까지는 매월 140만 원, 그 다음날부터 2023년 11월까지는 매월 70만 원으로 합의했다.
이다도시는 이혼 후 경제 활동에 전념했다. 이혼 탓인지 방송 출연 섭외는 이전에 비해 줄었다. 그래도 잡히는 대로 최선을 다해 방송 일정을 소화했다.
2010년 당시 이다도시는 프리랜서 강사여서 고정 수업이 없었다. 외부 강연은 한 달에 많아야 3~4번. 불안정한 경제 활동에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다.
이다도시는 2012년부터 숙명여대 프랑스언어문화학과에서 전임교수로 일하기 시작했다.
안정된 일자리를 마련해도 생활은 넉넉하지 않았다. 재산분할로 받은 돈은 이혼 소송 때 선임한 변호사 비용으로 거의 다 썼다. 외국인 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 교육비로 많은 돈이 들어갔다.
전 남편 서 씨는 이혼 이후 양육비를 한푼도 지급하지 않았다. 아이들의 생일, 졸업식, 수능날 등에도 연락 한 번 안 했다. 두 아들이 외면당한 기간만 약 10년.
아버지의 공백은 두 아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아이들은 아버지 이야기를 잘 꺼내지 않았다. 매년 6월 중순 찾아오는 아버지의 날(Father’s Day) 때도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은 척 넘어갔다. 옆에서 지켜보는 엄마 이다도시의 마음은 무거웠다.
아이들이 자랄수록 이다도시는 양육비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결국 이다도시는 국가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는 2015년, 여성가족부 산하에 양육비이행관리원이 신설되자마자 양육비 ‘이행명령’ 소송을 제기했다. 양육비이행관리원은 양육비를 제대로 받을 수 있도록 상담부터 재판까지 도와주는 기구다.
2015년 당시, 이다도시가 5년간 전 남편에게 못 받은 양육비는 약 4500만 원. 전 남편과는 연락이 끊겨 그의 소득 파악도 어려웠다.
개인 SNS을 통해 비춰진 전 남편의 모습은 경제적으로 여유로워 보였다. 베트남으로 출국한 그는 골프 등 취미 활동을 즐겼다.
이다도시가 진행한 5년 간의 소송은 빛을 보지 못했다. 양육비를 받아낼 법적 강제력이 없다 보니, 재판에 이겨도 소용이 없었다. 전 남편은 밀린 양육비를 지급하라는 법원의 판결에도 막무가내로 버텼다.
법원은 그에게 가장 강력한 제재인 '감치' 집행을 명령했다. 하지만 경찰은 해외에 거주 중인 전 남편을 구인하지 못했다. 결국 전 남편의 감치 명령은 집행 유효기간 3개월이 지나 기각됐다.
법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절차를 밟자, 기댈 수 있는 수단이 없었다. 이다도시는 배드파더스 신상공개는 명예훼손으로 보기 어렵다는 일명 ‘배드파더스 사건’ 1심 판결을 보고 용기를 냈다.
그는 6월 27일, 전 남편 서 씨의 신상을 <배드파더스> 사이트에 올렸다.
실제 <배드파더스> 신상공개 효과는 상당하다. 배드파더스 사이트에 등재로 해결된 ‘양육비 미지급 건수‘는 113명에서 현재 162명으로 늘어났다. 지난 1월에 이뤄진 '배드파더스 사건' 1심 판결 이후 6개월 만이다.
사이트에 등재하기 전, 양육비 미지급자에게 '배드파더스 사이트에 신상공개될 것'이라는 사전 통보만으로 해결된 사례가 약 340건이다.
2020년 6월 기준, 이다도시의 전 남편이 약 10년간 밀린 양육비는 약 1억1000만 원. 기자는 해외에 거주 중인 그의 전 남편의 견해를 듣고자 이메일을 보냈다. 그는 이메일을 확인했지만,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대신 전 남편 서 씨는 <배드파더스> 신상공개 사실을 알린 자원봉사자 구본창 씨에게 이메일로 이런 답장을 보냈다.
프랑스에서 태어난 이다도시는 한국에서도 양육비 미지급자 제재가 강해지길 원하고 있다.
프랑스에서 양육비 미지급자는 형사처벌 대상이다. 양육비 불이행 시 먼저 양육비 집행관이 배정되거나, 미지급자 은행계좌에서 급여를 징수하는 조치가 이뤄진다. 그럼에도 양육비가 지급되지 않으면, 한화로 따졌을 때 약 1900만 원의 벌금과 징역형이 선고될 수 있다.
프랑스는 '양육비 대지급 제도'를 운영한다. 양육비 책임자가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았을 때, 국가가 양육비를 우선 지급한 후 양육비 채무자로부터 해당금액을 회수하는 제도다. 아동에게 최소한의 생계비를 보장하는 데 중점을 둔 방법이다.
한국에서도 양육비 이행을 강화하는 법안이 지난 5월 국회에서 통과됐다. 양육비 미지급자의 운전면허를 정지하거나, 양육비를 못 받아 위기에 처한 가정을 국가가 한시적으로 지원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전보다 분명 나아졌지만,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전 남편이 두 아들을 10년간 외면한 동안, 이다도시의 첫째 아들은 성인이 됐다. 24살 성준은 대학을 졸업한 후, 내년 초 입대할 예정이다. 엄마 이 씨는 군 입대 문제로 얼마전 첫째 아들과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이다도시는 인터뷰 말미에 이 말도 덧붙였다.
프랑스 출신으로 한국 국적을 취득한 방송인이자, 대학 교수인 이다도시. 그런 그도 한국에서 양육비 미지급 문제로 고통을 겪었다. 두 아들은 10년간 아버지 얼굴을 못 봤다.
더는 국가의 보호와 법에 기댈 수 없는 상황이 이다도시를 <배드파더스>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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