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물을 잘 쓰는 자는 밥 한 그릇으로도 굶주린 사람의 인명을 구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썩은 흙과 같다."
이 말은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거상 김만덕이 한 말이다. 조선시대 김만덕은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고아가 되자, 굶어 죽지 않기 위해 양인 신분을 버리고 하는 수 없이 기생이 되었다. 미모와 재능을 타고난 김만덕은 오래지 않아 제주의 삼기 중 한 명으로 유명해졌으나, 불쌍한 이웃을 돕고 가문을 다시 일으키겠다는 신념으로 제주 목사의 허락하에 양인 신분을 회복하였다. 그 후 객주(상거래 주선, 금융, 창고업)로 제법 많은 돈을 모은 그녀는 녹용거래, 고급 옷감, 화장품 등으로 사업영역을 넓혀 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주도에 큰 기근이 들자 그녀는 자신의 사재 대부분을 털어 본토에서 쌀을 구입하여 이를 관아에 모두 기부하였던 바, 그 덕분에 제주도민은 굶주림을 면할 수 있었으며, 미담이 대궐까지 전해져 당시 임금이었던 정조가 크게 칭송하였다.
다행히 조선의 후신인 대한민국은 국민들의 각고의 노력과 희생 덕분에 더 이상 굶주림에 내몰리는 어려움을 겪지 않아도 되며, 따라서 김만덕과 같은 거상(오늘날 재벌기업)의 구제나 구휼은 필요치 않게 되었다. 대신에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오늘의 적이 내일은 우군이 되기도 하고, 때론 우군이 적이 되는 살벌한 적자생존의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 대한민국은 이들 많은 국가 중에서도 일본과 아직 해결하지 못한 역사적 숙제를 안고 있고, 이것이 양국 간의 경제교류에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첨예한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특히 일본은 한때 '발톱의 때' 정도로 여길 만큼 자신들이 무시하던 대한민국의 경제력이 스멀스멀 상승하더니, 급기야 세계무대에서 자신들의 강력한 경쟁자가 되자 한국에 대한 '혐한(嫌韓)'이 일본 내 바이러스처럼 퍼지고 있다(한국인들은 아베 집권 하의 일본이 보수화되고 있음을 우려하지만, 사실은 본인들의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았을 뿐, 일본 정치인들은 본래부터 한국을 혐오하는 보수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일련의 분위기로 인해 국민들은 불매운동을 수단으로 자발적인 대(對)일본 경제전쟁을 치르고 있고, 한국기업이라면 당연히 우리 국민의 편에서 이를 지지하고 도와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인터넷에서 읽은 기사는 필자의 눈을 의심케 하기에 충분했다. 국민들은 힘겹게 일본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을 이어가고 있는 와중에, 롯데그룹은 자회사인 세븐일레븐과 롯데마트의 매대를 통해 일본 맥주인 아사히를 포함하여 삿포로, 기린이치방 등을 판매하고 있으며, 불매운동 영향으로 재고로 남아있던 상품뿐 아니라 올해 3월 제조된 상품까지 할인하여 팔고 있다고 한다.(<UPI뉴스> 6월 16일 자) 롯데 측에선 아사히 맥주 재고의 유통기한이 임박해짐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입장이나, 통상 캔 맥주의 유통기한이 제조일로부터 1년이고, 일부 매장에서 제조 일자가 올해로 표기된 아사히 맥주가 판매되고 있다는 점에서, 재고 소진만이 목적은 아니라는 주장이 일반적이다. 본인들이 주장하고 있듯이 롯데가 일본이 아닌 한국기업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며, 만일 정말 한국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행태를 보인다면 매국기업이 아닌지 의심케 한다.
국가와 사회, 그리고 국민에 대해 기업으로서 마땅히 행해야 하는 기여를 등한시하는 일부 재벌기업의 비애국적이고 부적절한 모습이 과거 조선시대의 의인 김만덕과 비교되면서 씁쓸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일각에서는 이마트조차 아사히 맥주를 팔고 있다는 소문이 있는 바, 만약 사실이라면 이마트 역시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진정성 있게 고민하고 윤리적으로 각성하길 촉구한다. 도리는 무시한 채 비즈니스를 돈벌이의 수단으로만 고려하는 기업은 결국 소비자의 외면을 받을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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