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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고 예쁜 가족을 팝니다"...기형적 '펫코노미' 부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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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고 예쁜 가족을 팝니다"...기형적 '펫코노미' 부수기

[프레시안 books] 선택받지 못한 개의 일생

반려동물 인구 천만 시대다. 그 많은 개들은 대체 어디서 왔을까. 매년 약 15만 마리의 개가 입양되지만 동시에 9만 마리의 개가 버려진다. 개가 죽을 때까지 함께하는 반려인들은 고작 12%다.

2018년 기준 1년 동안 매일 200마리가 넘는 개가 버려졌다. 지자체가 운영하는 유기견 보호소부터 사설 보호소까지, 더 이상 개를 수용할 자리가 없어 재입양되지 못한 유기견의 거의 절반이 안락사에 처해진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선택받지 못한 개의 일생>(신소윤·김지숙 지음, 다산북스 펴냄)은 그릇된 반려동물 문화와 이를 움직이는 거대한 산업에 대한 고발서다. <한겨레> 동물 뉴스 팀 애니멀피플의 신소윤·김지숙 두 기자가 90일간의 잠입 취재를 통해 기획 연재한 '사지 마, 팔지 마, 버리지 마 : 반려산업의 슬픈 실체' 르포 기사를 보완해 책으로 엮었다.

취재는 쉽지 않았다. 번식장(개 농장)과 펫숍은 과거 몇 차례 동물보호단체의 폭로와 언론 보도로 그 실상이 알려졌지만 경매장의 경우 관련 사업자등록증 등이 있어야만 현장을 출입할 수 있게 하는 등 일반인의 접근을 엄격하게 막고 있다. 두 기자는 취재를 위해 펫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직접 펫숍을 차리는 등 각고의 노력 끝에 이 '블랙 트라이앵글'을 파헤칠 수 있었다.

이 책은 번식장에서부터 경매장, 펫숍으로 이어지는 반려 산업의 실체를 생생하게 담았다. 그러면서 유기견 문제와 동물학대 문제 등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동물과 관련한 모든 문제의 근본적 원인이 반려 산업 구조에 있다고 지적한다.

책은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됐다. 1장 '번식장 : 절망이 탄생하는 곳'에서는 번식장에 갇혀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는 모견의 실태를 그린다. 2장 '경매장 : 체념을 배우는 곳'은 이 책의 핵심이다. 일찍이 어미와 떨어진 생명체들은 '상품성 있는'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로 나뉘어 다른 운명을 맞이한다.

3장 '펫숍 : 목숨을 걸고 선택받기를 기다리는 곳'에서는 펫숍에서조차 선택받지 못한 강아지들의 운명을 그리며 반려동물을 쉽게 '소비'하는 행태를 지적한다. 마지막 4장 '펫코노미 깨부수기'에서는 이러한 기형적인 반려 산업을 깨부수기 위해 번식장과 경매장이 아닌 전문 브리더를 통한 개인분양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블랙 트라이앵글의 시작, '번식장'

반려 산업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 안에서 애들이 어떻게 착취당하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저자들은 "펫숍의 유리장 또는 소셜미디어 계정에서 수천, 수만의 하트를 받는 귀여운 강아지, 고양이의 사진 이면에는 반려 산업의 기형적인 실상이 있다"고 고발한다.

블랙 트라이앵글의 시작은 번식장이다. 번식장은 동물생산업으로 등록이나 허가를 받은 농장을 말한다. 개 농장이라면 식용견 농장을 떠올리기 쉬운데 실상 식용견 농장과 번식장은 매우 비슷하다. 식용견 농장은 법의 테두리 밖에 있지만 강아지 번식장은 합법화돼있다. 합법과 불법의 차이는 있지만 식용견 농장이나 번식장이나 인간의 이익을 위해 개들이 철장에 갇혀 태어나고 길러진다는 점에서는 같다.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는 모견은 반복된 출산으로 생식기 주변이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있었다. 한번 제왕절개를 한 경우 다시 여는 게 좋지 않은데 이마저도 제대로 수술하지 않아 복막이 덜 아문 채로 피하와 붙어버리는 등 심각한 상태가 많다.

번식장의 사장은 그런 모견을 보여주며 "(상품성 높은 강아지들을) 잘 뽑아주던 애"라고 자랑스레 소개한다. '잘 뽑힌 애'들은 상품성을 더 높이기 위해 먹이를 아주 조금 주고 어미젖도 일찍 뗀다. 작게 만들기 위해서다.

하지만 '잘 뽑아주던 애'도 항상 예쁜 애들만 낳는 건 아니다. 부정교합이 있거나 눈이 사시거나 털 색깔이 고르지 않은 '상품성 떨어지는 애'들을 보며 번식장의 사장은 한숨을 쉰다. 사료값도 못 건질 게 뻔하기 때문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 '경매장'

강아지 경매장은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는다. 철저한 회원제로 운영되며 상호에 '경매장'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 곳도 많다. 번식장에서 태어난 강아지들은 생후 45일을 전후로 경매장으로 향한다. 작고 어린 개를 선호하는 국내 구매자들을 맞추려면 어쩔 수 없다. 국내 동물보호법은 생후 2개월 미만의 개·고양이를 판매·알선 또는 중개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이곳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다.

일찍 경매장으로 내몰린 강아지들의 문제는 나중에 터진다. 어미로부터 일찍 떨어진 강아지들은 면역력이 약할 뿐 아니라 사회화도 덜 된다. 어린 강아지를 귀엽다고 구매해놓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몸이 약하거나 성격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버리는 일은 예견된 셈이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등록된 강아지 경매장은 모두 18곳이다. 매주 전국에서 출하되는 반려동물의 수는 약 5000 마리에 이른다. 농촌경제연구원은 이 가운데 약 80%가 낙찰을 받아 거래된다고 파악하고 있다. 이를 환산하면 강아지는 1년에 약 20만 마리가 경매장을 통해 유통되는 셈이다.

저자들이 본 경매장에서는 강아지들이 철저히 상품으로 대해지고 있었다. 생명에 대한 존중은 찾아보기 힘들다. 강아지들은 초록색 플라스틱 우유 상자에 담겨 쌓여있었다. 그중 '예쁜' 강아지 몇몇은 경매장 직원이 미리 엄선해 조명이 환하게 밝혀진 유리 진열장에 놓인다.

경매가 이어지는 동안 경매사들은 쉬지 않고 강아지를 치켜들어 가격을 부른다. 컨베이어 벨트에 강아지들이 투명 플라스틱 상자를 타고 순서대로 등장하기도 한다. 물건을 사고파는 과정과 다를 게 없다.

이때 견종마다 충족돼야 하는 기준이 있다. 치와와는 짱구처럼 이마와 뒤통수가 동그래야하고 포메라니안은 주둥이가 짧고 모량이 많아야 한다. 비숑은 주둥이가 딱 붙어 있어야한다. 견종 구분 없이 모두에게 적용되는 미적 기준도 있다. 아이라인이 있고 털이 풍성하고 치아의 아래위가 잘 맞고 코 색깔이 어떤지 등이다.

이런 기준으로 낙찰된 강아지는 종이 상자에 담겨 구매자에게 전달된다. 꼭 펫숍으로만 가는 건 아니다. 다른 농장에서 모견으로 사가는 경우도 있다. 그럼 그 어미가 그랬듯 10년 가까이 '새끼를 빼다가' 죽는다.

낙찰되지 못하고 유찰된 강아지들은 다른 경매장으로 향한다. 혹은 미리 유찰을 피하기 위해 팔리지 않을 것 같은 개를 다른 개와 1+1로 파는 경우도 있다. 농장 측에서도 안 팔린 강아지를 '재고품'으로 쌓아둘 수는 없기 때문에 무료로 넘기기도 한다.

가치가 떨어진 개들을 '창고 정리 세일' 하듯 식용으로 팔아넘기는 경매장도 있다. 폐업하는 펫숍에서 '떨이'로 내놓은 개, 몸이 약하고 '하자'가 있는 개, 가정에 입양되지 못하고 농장에서 커버린 개 등. '폐견'이라 불리는 애들이다.

펫숍에서 '간택'되도 안심할 수 없는 '싸고 예쁜 가족'

이 모든 과정을 거쳐 강아지들은 펫숍에 진열된다. 펫숍에서는 작고 어린 견종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의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해 사료 양을 극단적으로 줄인다. 면역력이 약한 탓에 병에 걸린다거나 유리장에서 떨어진다거나 해서 죽은 강아지들은 신문지에 싸 비닐봉지에 넣어 냉동실에 얼려 일반 쓰레기로 버린다.

반려인을 찾지 못하고 두세 달 사이에 커버린 아이들은 펫숍의 골칫덩이다. 그런 아이들은 '책임분양'된다. 본래 책임분양은 보호자가 동물을 분양받으면서 '책임비' 명목으로 일정 금액을 지불하는 것이다. 하지만 펫숍에서는 분양이 잘 되지 않는 동물을 저렴한 가격으로 팔면서 분양 뒤 질병이나 폐사가 발생할 시에도 펫숍에서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계약조건을 뜻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반려인을 찾은 강아지들도 안심하기엔 이르다. 2018년 한해동안 새로 등록된 반려견은 14만 마리였다. 그 해 전국 동물보호센터에서 구조한 개는 9만 마리였다. 한때 유행했던 품종이 몇 년 뒤 유기되는 추세는 확연하다. 2010년 399건에 불과했던 포메라니안 유기견 수는 2018년 2217건으로 늘어났다.

브리더를 통한 직분양제 도입해야

동물권 선진국들은 동물을 사고파는 일을 규제하는 추세다. 독일은 '동물헌법'에 따라 반려동물 매매를 완전히 금지하고 있다. 펫숍이 아예 없다. 반려동물을 키우려면 유기동물을 입양해야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2019년부터 비영리 동물구조단체가 구조한 유기동물만 펫숍에서 거래하도록 했다.

영국은 2016년 구조된 모견의 이름을 딴 '루시 법'에 따라 모든 강아지 고양이가 이상적인 환경에서 태어나 생후 6개월까지 어미와 함께 지내며 반드시 출생한 곳에서만 분양, 판매돼야 한다.

한국의 동물보호단체도 번식장과 펫숍 등을 없애고 개인 간 분양으로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들은 "허가받은 브리더(전문 번식업자)와 소비자간 직분양해야 유기동물 문제 등 반려동물과 관련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저 '귀엽다'는 이유로 충동구매하고 '생각보다 키우기 힘들다'는 이유로 버리는 악순환은 끊어져야 한다. 이 책은 이 땅의 반려동물이 처한 현실과 고통을 마주하자는 반성이자 당부다.

▲<선택받지 못한 개의 일생>(신소윤·김지숙 지음, 다산북스 펴냄, 값 1만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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