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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대의 마지막 목격자가 될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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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대의 마지막 목격자가 될 당신에게

[프레시안 books] 늘 그랬듯이 길을 찾아낼 것이다

페미니즘의 대중화는 한국 사회를 뒤집어놓았다. 지난 5년여 간 페미니즘이 새로운 상식으로 부흥하는 사이, 안티페미니즘으로 결집한 남성 세력이 출몰하는가 하면 페미니스트 사이에서도 첨예한 견해 차이가 발생했다. 대중운동으로서의 페미니즘은 어디쯤에 와 있나.

1990년대 영페미니스트이자,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권김현영이 책 <늘 그랬듯이 길을 찾아낼 것이다>(휴머니스트 펴냄)를 통해 해답의 실마리를 찾아왔다. 지난해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이후 두 번째 단독저서다. 지난 저서에서 현상을 분석한 짧은 칼럼 60개를 엮어냈다면 이번에는 현상의 이면을 깊게 분석하며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제안하는 9편의 긴 글을 담아냈다. 저자는 미투운동과 '장학썬' 사건, 텔레그램 n번방 성착취 사건 등 페미니즘 이슈를 들여다보고 젠더, 성착취, 피해자중심주의, 여성정치 등 논점을 확대해나간다.

책은 현재 페미니즘 운동 앞에 던져진 여러 개의 질문에서 시작한다. '빨간 마후라'에서 '텔레그램 n번방'까지 여성을 향한 폭력은 어떻게 해서 남성연대의 산물이 되었는가. 극단적으로 유해한 '특권층' 남성들은 어쩌다 이 시대의 '억압받는 남자'들을 대변하게 됐는가.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자원이거나 약점으로만 존재해야 하나.

나아가 가부장제의 피해자인 여성이 피해자로서만이 아니라 시민으로서 능동적으로 발화하기 시작한다면 어떤 변화를 끌어낼 수 있나. 미투가 그런 혁명적인 순간이었다면 그 이후는 어떻게 될 것인가. 저자는 그 물음에 페미니즘의 언어로 응답한다.

책은 3부, 9편의 글로 구성됐다. 1부 '극단적으로 유해한 남성들로부터 우리 모두를 구하는 길'에서는 성착취의 역사를 짚으며 그동안 여성을 착취한 남성들이 남성 사회의 '낙오자'라는 가설을 뒤엎는다. 2부 '미투혁명이 돌파한 길, 멈춰 선 길'에서는 기존의 반성폭력 운동의 방식을 바꾼 미투운동의 의의를 짚는다. 마지막 3부 '어제의 여성에서 내일의 여성으로 나아가는 길'에서는 대중운동으로 자리 잡은 페미니즘의 방향을 정치에서 찾는다. 현실의 이야기에서 시작해 점점 관념의 층위가 높아진다.

최고위층 남성문화의 특권 '성착취'

저자가 말하는 '극단적으로 유해한 남성들'은 최고위층 권력의 남성들이다. 이들 세계에서 여성의 몸은 접대의 매개다. 저자는 주류 남성 사회가 여성에게 가하는 폭력과 착취를 '정상적인 남성 문화'로 승인하고 누려왔기 때문에 주류에 속하지 않은 남성들도 이를 적극적으로 욕망한다고 분석한다. 장학썬(고 장자연 사건과 김학의 별장 성접대 사건, 버닝썬 사건)은 그러한 최고위층 남성들의 강간문화를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이러한 남성 지배문화에서 성접대(라고 표현하지만 사실상 성착취)는 언제나 사소한 문제로 취급된다. 사법부부터 여기에 관용적이다. 특권층 남성들은 자신들에게 그런 불법을 저지를 특권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현실이 남성 집단 전체에 매우 나쁜 신호를 보낸다.

미투운동을 혁명이라 평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투운동은 주류 남성문화의 중심에 있는 강간문화를 고발한다. 그리고 그 목적은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보호 이상에 있다. 일상적인 성폭력 가해행위가 정상적인 문화로서 오랫동안 지속되었는지 반성하며 위계를 이용한 젠더 기반 폭력의 구조를 바꾸자고 말한다. 미투는 안전을 넘어 권력구조에 문제를 제기한다.

미투운동은 기존 페미니즘 운동이면서 동시에 기존의 반성폭력 운동과는 다른 새로운 방식의 운동이 됐다. 그러면서 '피해자중심주의'에의 명확한 정의를 요구한다. 피해자중심주의는 본래 반성폭력 운동에서 피해자의 말을 듣지 않고 가해자의 일방적인 변명만 수용하는 현실을 비판하는 언어였다.

저자는 피해자중심주의를 '피해자가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선을 그으면서 그렇게 됐을 경우 '피해자에게 부담을 지울 뿐 아니라 성폭력을 사회적인 문제로 접근하지 못하게 한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반성폭력운동이 피해자중심주의에서 벗어나 피해자의 경험을 존중하며 동시에 피해자의 주체성이 변화하는 과정에 관심을 둬야 한다고 강조한다.

페미니즘 운동의 실현, 소수자를 위한 정치로 나아가야

페미니즘 운동은 지난 100여 년 동안 여성 억압적 권력과 싸워왔고 여성도 보편적 인간이며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동등하게 가진다고 주장해왔다. 또 노동시장에서의 차별, 재생산과 가사노동이라는 이중부담, 성적 폭력과 착취 등이 여성을 동등한 인간으로 만들지 못하고 차별을 지속시켜왔다고 비판했다. 저자는 '인간은 모두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이라는 근대 민주주의의 약점이 바로 '여성 정치'라고 지적한다.

한국은 2012년 최초로 여성 대통령을 맞이했다. 그러나 저자는 박근혜를 '여성 대통령'으로 호명하는 데 부정적이다. 선거 전반에서 여성이 핵심 이슈로 떠오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공식적인 대선후보로 선출되기 전까지도 여성을 대변하는 어떤 정치적 행보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는 특권적 지위를 가진 아버지의 딸이었고 스스로 그 아버지의 대리자를 자처했다.

그런 그가 여성 정치인으로 호명되기 시작한 시점은 우습게도 탄핵정국에 들어서면서였다. 임신 및 출산설을 비롯한 각종 스캔들과 여성혐오적인 욕설 등에 노출되면서야 비로소 '여성'으로 재현되기 시작했다.

저자는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여성을 대표할 수 없으며 최초의 여성이 등장했다고 해서 이것이 여성 집단 전체의 권한이 강화되는 증거라고 보기도 어렵다'고 말한다. 여성으로서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성적 타자이자 사회적 약자라는 여성의 처지에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해야 비로소 '여성 정치인'으로서의 대표성을 확보한다.

여성 정치인 스스로 여성으로서의 경험을 사회적·정치적 맥락에서 역사적 기억으로 만들어가야 하며 동시에 각각의 여성들은 서로 다른 경험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음을 기억하는 것. 저자는 여성 정치인이 여성이자 인간 전체의 일원으로서 대표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이 두 가지가 모두 필요하다고 말한다.

새로운 대안 '모성 정치'

그러나 아직 여성 정치인의 수는 턱없이 부족하다. 비례대표 성평등할당제 이후 크게 늘어나기는 했지만 국회 전체에서 15%내외로 2004년 이후 거의 제자리걸음이다. 저자는 진검승부는 지역구 의원이라고 말한다. 지역구 선출직 의원은 여성이 '보통 인간'의 범주에서 보편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척도다. 그러나 지역에서 여성 정치인이 넘어야 할 벽은 여전히 높다. 공천 과정부터 유리천장이 공고하다.

여성의 과소대표성을 해결하자는 움직임은 여성도 정치에 평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자유주의 권리뿐만 아니라 정치의 남성 중심성을 해체하겠다는 선언이어야 한다.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의 대표는 자신의 지위를 소수자 정체성으로만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소수자의 관점에서 사회가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 수 있을지에 관한 전망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저자는 여기서 '모성 정치'를 꺼내든다. 모성신화를 떠오르게 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저자는 모성을 강조하는 것이 반페미니즘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모성적 가치, 즉 돌봄·상생·살림은 신자유주의가 실패한 새로운 시대에 대안적 가치로 떠오르고 있다. 따라서 모성 정치는 여성 정치의 또 다른 가능성이기도 하다. 여성 정치는 성차의 작동 방식을 끊임없이 의심스러워하면서 '미래의 여성'으로 나아가는 움직임을 통해 가능하다.

후반부로 갈수록 관념적인 이야기를 하며 내용이 어려워진다. 어쩌면 지금 페미니즘이 마주한 상황, 그리고 나아가고 있는 방향이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길이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이 책의 마지막 장인 '여성주의적 안보기획'은 한 편의 글로 풀어내기에 힘든 주제이지 않았나 싶다. '안보'야 말로 페미니즘 운동의 최후의 전선일 테니 말이다.

저자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한다. 페미니즘이 마주한 문제는 산적해있고 백래시는 결코 만만치 않다. 하지만 책의 제목처럼 늘 그랬듯, 페미니즘은 어떻게든 길을 찾아낼 것이다. 구시대의 마지막 목격자가 되어줄 당신과 함께.

▲<늘 그랬듯이 길을 찾아낼 것이다>(권김현영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값 1만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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