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총선을 앞두고 소방청이 간부 공무원들을 동원해 소방 관련 직능단체을 상대로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 비례대표 선출 건의를 위한 서명작업을 직접 주도하고 개입한 정황이 12일 포착됐다.
이 과정에서 행정안전부 외청인 소방청 간부 공무원이 공무상 출장을 내고, 지방까지 내려와 소방 관련 직능단체 대표들을 일일이 직접 만나면서 비례대표 국회의원 선출 건의 문건에 서명 날인까지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관련해 <프레시안>은 미래통합당(2020년 2월 17일 창당)으로 당명을 바꾸기 전인 자유한국당 비례대표 추천 관련 문건을 확보했지만, 취재 결과 소방청 간부들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추천에도 간여했을 가능성도 포착했다.
소방 직능단체가 자발적인 활동을 벌인 게 아니라, 이처럼 현직 간부급 공무원들이 여야 정당 비례대표 추천을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였다면 공무원의 선거 중립 의무 위반 등 논란이 불가피하다.
소방청의 간부공무원들의 이같은 서명 작업 주도는 총선을 5개월 가량 앞둔 지난해 11월 중순과 말께 집중적으로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프레시안> 취재 결과 실제로 당시 부이사관급인 소방청 A과장(현재 광역자치단체 소방본부장, 소방준감)은 지난해 11월 22일 공무상 출장를 낸 뒤 광주를 찾았다.
당시 A 과장이 방문한 곳은 소방 관련 직능단체로 이날 오후 대표자를 만난 A 과장은 자유한국당 '소방전문가 21대 국회 비례대표 선출 건의'라는 문건과 함께 서명지를 내밀었다.
이 문건에는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소방공무원을 비롯한 관련 단체 등 종사자 130만여 명은 어려운 여건에서도 묵묵히 소임을 다해 오면서 국민으로부터 신뢰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진·태풍·화재 등 예측불허의 재난사고가 갈수록 대형화되고 있어 국민의 안전보호 입법정책에 대한 기대수준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 국민의 안전주권 시대를 열어가는 자유한국당의 정책이념에 맞게 국민들께서 보다 체감할 수 있는 안전정책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재난현장 경험이 많은 소방전문가를 직능대표로 선출해 주시길 간곡히 건의드립니다"라는 내용이 담겼다.
A 과장은 이같은 문건을 설명한 뒤 관련 직능단체 대표로부터 서명을 결국 받아냈다.
당시 A 과장이 갖고 있던 서명지에는 한국소방산업협회와 한국소방정책학회, 한국위험물학회, 소방기술인협회, 소방시설관리사협회, 소방산업공제조합, 대한소방공제회, 한국응급구조학회 등 다수의 소방 관련 직능단체 대표들의 서명이 날인돼 있기도 했다.
이에 대해 현재 한 광역자치단체 본부장으로 있는 A 당시 과장은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기억이 안나는데 갔겠죠"라고 말했지만, 곧바로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그거(문건)를 제가 전체를 다 만들어서 건의서를 만들고 주고 이것이 아니라 다 돼 있는 것이었다"며 "제가 평상시 알고 지내는 직능 단체를 분을 만나 그 부분을 다 받아가지고 그것만 한 것이기 때문에 전체 그림은 잘 모른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여러단체가 있는데 제가 사실은 아는 사람은 딱 두 사람 밖에 없다. 그 사람은 내가 맡아서 받아온건데, 문건을 누가 만들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인을 다 받아왔는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문건을)소방청이 만들었는지, 저한테 전달한 것은 누군지 확정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다. 막연하게는 추정하지만, 구체적으로 누가 어떻게 언제 (문건을 기획했는지) 상세하게 확인할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소방청 '윗선'이 개입이 있었을 수 있다는 개연성을 부인하지 않은 것이다.
특히 그는 "추가로 의사분들도 (서명을)하고 응급구조사 교수들도 (서명에)참여하면 어떻겠냐 해서 마지막에 제가 받아가지고 추가로 그분들을 만난 것이다"고 덧붙여누군가의 '지시'가 있었음을 시사했다.
문건에 나와 있는 특정 정당명에 대해서 그는 "당시 문건은 (당시)자유한국당 뿐만 아니라, 각 정당에다 건의서를 보내는 내용으로 기억한다"라며 "당시 (문건의 종류는 더불어민주당·자유한국당)양당 버전만 기억한다. 자유한국당만 받을 일도 없었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내부적으로 국회들어갔으면 좋겠다했는데, 당시 가능성은 민주당쪽에서 공천(비례대표)에 적극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이런 이유로) 자유한국당 버전(문건)만 갖고 가지는 않았다. 기억도 하지만 상식적으로 이(자유한국당) 버전만 갖고 갈일이 없다"고 거듭 주장했다.
공무원 등의 선거 관여 등 금지에 대한 공직선거법 위반 소지 논란 부분에 대해서 그는 "소방분야에 전문가가 의회에 진출할수 있도록 그 해달라고 하는 건의는 특정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부당하거나 어떤 금지행위를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또 그는 "소방분야에 누가 됐든지 의회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하는 건의를 소방 관련된 분들이 전부 의견을 모아서 각 정당에 전달하자는 취지이기 때문에 선거운동이라고 하는 인식을 한 것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소방 관련 한 직능단체 관계자가 이 문제와 관련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민원을 신청 결과, 중앙선관위는 지난해 12월 23일 공직선거법에 위반될 소지가 있다는 의견으로 답변한 것으로 전해졌다.
단순하게 공직 후보자를 구두로 추천하거나 하는 활동을 넘어, 문서를 만들고 업무시간 공무상 출장 등까지 동원해 정당 공천 관련 활동을 한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직능단체의 자발적 비례 추천 활동이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현직 간부급 공무원이 이와 관련된 서명 작업을 주도했다면 논란이 될 수밖에 없다. 나아가 소방청 '윗선'이 조직적으로 관련돼 있다면 논란의 소지는 더 크다.
이처럼 A과장이 소방 관련 직능단체 서명에 직접 관여한 것과 관련, 직능단체 관계자들은 "직능단체들이 사실상 소방청 눈치를 보는 단체들이 대다수이고, 소방청 소속 사단법인의 관리감독 권한을 갖고 있는 소방청 고위 간부가 서명을 해달라는 것에 어떻게 거부를 할 수 있겠느냐"라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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