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비 400만 원 때문에 고소당했고, 벌금 200만 원 문제로 법정에 선다. 피고인은 양육비 안 준 아버지가 아니다. 재판 받겠다고 나선 사람은 돈을 못 받은 엄마다.
누군가는 "고작 400만 원 때문에…"라며 "벌금 200만 원을 못 내 재판을 하느냐"고 하겠지만, 돈 액수가 중요한 게 아니다. 엄마는 자기 존엄과 여러 '돌싱 양육자'를 위해 제대로 다퉈 보기로 했다.
자기 발로 피고인석으로 향하는 엄마의 진짜 싸움은 이제 시작인지도 모른다.
엄마 최수진(가명, 만 45세)은 아들 승준(19세)가 아버지에게 연락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불편하다.
아들이 직접 아버지에게 양육비를 요구하는 게 달가울 리 없다.
재촉하지 않으면 받기 어려운 양육비. 최 씨가 전 남편 강혁민(가명, 만 52세)과 양육비 문제로 다툰 지 1년째다.
최수진-강혁민 부부는 2001년에 결혼해, 2018년 5월 조정 이혼했다. 두 아들 친권과 양육권은 엄마 최 씨가 맡았다. 이혼 당시 첫째 아들 승준은 17세, 둘째 아들 민준(가명)은 15세였다.
양육비는 2018년 6월부터 두 아들이 성년이 될 때까지 각 월 100만원으로 합의했다. 사업가인 강 씨의 소득을 고려해 합의한 결과다.
전 남편 사업장에서 일했던 최 씨는 이혼 후 마땅한 수입이 없었다.
마흔 중반에 새 직업을 구해야 하는 상황. 최 씨는 고민 끝에 ‘아쿠아로빅 강사’를 선택했다. 아쿠아로빅은 수중에서 하는 에어로빅을 뜻한다.
아쿠아로빅 강사는 특수고용노동자다. 시급으로 돈을 받는 노동자면서, 4대 보험-노동 3권-퇴직금 등은 보장받을 수 없는 개인사업자로 여겨진다.
아쿠아로빅 강사는 수업 개수만큼 돈을 번다. 초보강사였던 2017년 당시, 한 수업만 맡았던 최 씨의 월급은 채 50만 원이 안 됐다. 3년차 경력이 쌓일 때쯤, 최 씨는 운동센터 세 곳에서 수업 네 개를 진행했다. 월 수입은 약 200만 원.
수강생 숫자도 곧 최 씨의 생계로 이어진다. 정원을 채우지 못하면, 수업은 폐강된다. 한 수업당 정원은 보통 50~70명이다. 입시를 앞둔 아이들의 교육비를 벌려면, 무엇이든 해야 했다.
그나마 전 남편이 매달 주는 양육비 월 200만 원으로 버텼다. 전 남편은 종종 약속 기한을 어기고 양육비를 지급했다. 이는 미래의 어떤 일을 암시하는 전조 현상이었을까. 그는 2019년 3월부터 양육비를 안 주기 시작했다.
매달 고정 수입을 보장받지 못하는 최 씨는 남편의 양육비 미지급에 마음이 불안했다. 그는 "양육비를 달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전 남편은 "사정이 좋지 않으니 기다려 달라"고 답했다.
최 씨는 언제 양육비를 받을지, 과거에 밀린 것까지 함께 주기는 할지, 답답했다. 얼마 뒤, 최 씨는 '배드파더스' 사이트 링크를 문자로 보내며 양육비 지급을 다시 한 번 촉구했다. 전 남편은 이렇게 답장했다.
사업가인 전 남편이 양육비 줄 돈이 없다는 건 믿기 어려웠다. 전 남편은 맥주 양조장을 운영하는 수제맥주 제조 업체 대표 이사였다. 이혼 소송 당시 전 남편의 사업장은 연 매출 약 10억 원을 웃돌았다.
양육비를 못 받은 최 씨의 타격은 컸다. 고등학생인 두 아들의 교육비와 세 식구의 생활비를 혼자 감당하기 어려웠다. 최 씨는 장녀로서 노령인 친정 부모 생활비도 마련해야 했다. 결국 그는 마이너스 통장을 썼다.
최 씨는 2019년 5월, 여성가족부 산하 기관인 양육비이행관리원에 양육비 이행명령 소송을 제기했다.
'배드파더스' 사이트에 전 남편의 얼굴 사진과 신상(이름, 나이, 지역, 학교, 직장)이 공개됐다. '배드파더스'는 양육비를 고의로 안 주는 부모의 신상을 공개하는 온라인 사이트다.
전 남편은 신상 공개에도 약 두 달간 아무 반응이 없었다. 최 씨는 '배드파더스' 사이트 주소를 링크한 카카오톡 메시지를 전 남편의 가족과 지인에게 보냈다.
최 씨는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전 남편의 실명과 얼굴이 담긴 이미지를 올려 양육비 지급을 촉구하기도 했다.
최 씨의 온라인 활동에 전 남편은 빠르게 반응했다. 강 씨는 곧바로 명예훼손 혐의로 최 씨를 대전 둔산경찰서에 고소했다.
강 씨는 고소와 동시에 2개월간 안 준 양육비 총 400만 원을 최 씨에게 보냈다. 최 씨에겐 '배드파더스' 신상 공개와 주변 공유로 이뤄낼 일종의 수확(?)이었다.
밀린 양육비를 받은 최 씨는 곧바로 페이스북 게시글을 내리고, 양육비이행관리원에 제기한 소송을 취하했다.
하지만 대전지방검찰청은 올해 2월 양육비 미지급 피해자 최 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벌금 200만 원에 약식기소했다. 검찰이 기자에게 밝힌 기소 이유는 이렇다.
대전지방법원은 검찰의 약식기소대로 최 씨에게 벌금 200만 원의 약식명령을 지난 4월에 내렸다.
이혼 조정조서에 따라 줘야 하는 양육비를 안 준 가해자가 명예훼손 피해자가 되고, 양육비를 못 받은 피해자가 가해자로 뒤바뀐 상황.
벌금형의 약식명령을 받은 최 씨는 억울함에 최근 밤잠을 설치고 있다.
최 씨는 법원의 명령에 불복해 재판을 청구했다. 최 씨의 첫 공판 6월 18일 오전 11시 대전지방법원에서 열린다.
최 씨는 근래 세 달 동안 벌금형과 더불어 악재가 겹쳤다. 코로나 사태로 최 씨가 근무한 운동센터 대부분이 휴업에 들어갔다. 수입은 당연히 0원. 그는 쉬는 동안 식품 공장에서 하루 8시간씩 일용직 아르바이트를 하며 버텼다.
현재 운동센터가 열린 곳은 딱 하나다. 그의 현재 월급은 약 50만 원이다.
양육비 두 달치를 안 준 사실을 주변에 알리자, 고소로 대응한 전 남편. 빚을 내 고등학생 두 아들을 양육하다 재판에 넘겨진 최 씨. 양육자에게만 책임을 묻는 국가에게 최 씨는 재판을 통해 잘못을 가리고자 한다.
한편, 전 배우자의 직장 사무실 앞에서 양육비 지급 촉구 시위를 했다가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한 양육자 A씨에 대해 인천지방검찰청은 지난 5월 무혐의(증거불충분) 처분을 내렸다.
인천지검은 불기소결정서에서 "'정OO 씨(고소인 지칭) 당신의 아이를 위한 양육비 지급을 촉구합니다'라는 내용은 의견표현을 넘어 사실의 적시에 이르렀다고 보기 어렵고, 당시 고소인이 피의자 A씨에게 양육비를 정상적으로 지급하지 않았던 점을 고려하면 명예훼손의 고의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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