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노동자가 일하다 죽었다는 소식은 끊이지 않는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4월까지 잠정 집계한 산재 사망자는 315명이다. 여기에는 4월 29일, 이천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중대재해로 사망한 38명은 포함되지 않았다. 5월에도 목재소 파쇄기에 끼여 숨진 청년 노동자, 일하다 쓰러져 죽은 쿠팡 물류센터 계약직 노동자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죽음의 행렬을 막기 위한 시민사회의 움직임도 계속되고 있다. 노동건강연대, 민주노총 등 노동시민사회단체는 21대 국회 개원에 즈음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를 구성하고 '노동자가 일하다 죽거나 다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법 제도 정비'를 요구하고 있다.
'위험의 외주화 금지 대책위원회'에서 위와 같은 활동의 일환으로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일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다섯 편의 글을 <프레시안>에 보내왔다.
2017년 7월 3일, 50번째 맞이하는 산업안전보건의 날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위험의 외주화'를 비롯한 중대재해 산재사고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사회적 인식의 변화를 촉구하며 이같이 말했다.
'안전이 확보됐는지 반드시 현장 근로자의 의견을 듣겠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내 귀를 의심했다. 그동안 '기업의 이윤'을 먼저 들이밀던 역대 정부와는 다른 정부가 탄생한 것일까.
이어서 '산재가 발생할 경우 원청업자는 물론 발주자에게도 책임을 묻겠다',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사고원인을 철저하게 조사하겠다'는 대통령의 구체적인 해법이 제시되었다. 추상적인 '생명'과 '안전'은 구체적인 방법들 속에서 노동자들의 실질적인 생명안전보장으로 다시 태어나는 듯했다.
네 개의 사고조사보고서는 노동자 사망의 구조적 원인을 말해왔다
이로부터 만들어진 것이 총 4종의 보고서다. 2017년 '조선업 중대산업재해 국민참여 조사위원회', 2018년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 기획 추진단', 2019년 '서울의료원 간호사 사망사건 관련 진상대책위원회', 2019년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가 제출한 보고서는 각각의 노동자들의 죽음에 대한 구조적 원인을 규명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대책을 정부에 권고했다.
조선업과 김용균 사망사고를 조사한 조사위원회는 기업이 외주화로 털어낸 것이 고용만이 아니라 안전에 대한 책임임을 말하고자 했다. 이러한 사태를 오랜 기간 법과 제도가 방치하면서 법의 공백, 책임의 광범위한 사회적 공백을 만들어왔으며, 이러한 법의 침묵은 기업으로 하여금 '그래도 된다'는 시그널로 받아들이게 했다.
집배원과 서울의료원 간호사의 죽음에 대한 조사는 효율적 경영이 곧 인력감축으로, 인력감축이 곧 상시적인 '일의 폭증'을 견뎌내야 하는 문제로 노동자에게 할당되며, 노동자들 사이에 '일의 폭증'을 둘러싸고 서로 부대끼는 동료들을 미워하게 만드는 '겸배'나 '태움'이라는 기괴한 관행들이 결국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는 것을 밝히고자 했다.
조사위원회가 법의 공백과 경영 관행, 죽음의 구조적인 원인 사이의 고리들을 찾아내고 이어서 밝히고자 했던 것은 순간적인 사고이든, 오랜 시간 축적된 노동의 결과이든 이 죽음의 책임이 동료 노동자나 가족, 그리고 죽음의 당사자에게 있지 않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오랫동안 자신과 동료들의 사고에 대한 구조적 원인을 말해왔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 이전에, 각종 사고조사위원회에 참여한 전문가들의 보고서 이전에, 외주화와 겸배, 태움의 문제에 대해 말했고, 수많은 안전조치가 위험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떠넘기는 방식들에 대해 말했다. 이러한 노동자의 말들이 작업장 안에 가둬지는 한에서 노동자들은 '피해자'가 되고, 또 그런 한에서 '가해자'가 된다.
김용균은 처음 한국서부발전 관계자들에 의해 '가해자'가 되었다. 그리고 김용균의 동료들은 '용균이 책임이 아닙니다'라고 김미숙 어머님에게 말했다. 용균이 책임이 아니라는 말은 곧 김용균이 사고의 피해자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죽음의 책임을 묻는 것이었다. 책임을 묻지 않는 애도는, 그리고 사회적 슬픔은 노동자들을 피해자로 가둔다.
정부가 네 개의 사고조사보고서를 곁에 두고 참고했다면
'이천 물류화재 참사'가 '한익스프레스 남이천 물류창고 신축현장 산재사망' 사고로 재명명되어야 할 필요는 사고의 원인을 어떻게 볼 것인가, 사고의 책임을 어떻게 지울 것인가와 관련이 있다. 이천 물류화재 참사에서 사망자들을 일용직으로, 이주노동자들로 각자의 애달픈 사연들이 보도되는 것만큼 한익스프레스라는 발주처가 져야할 책임에 대해 우리 사회가, 언론이 얼마만큼 끈질기게 묻고 있는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민주노총에서 처음 사고 현장을 찾아갔을 때, 유가족의 첫 마디는 "왜 이런 사고가 반복됩니까"였다. 한익스프레스는 '우리는 몰랐다. 그래서 법적 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정부의 긴급하고 신속한 대응의 과정에서 유가족들이나 건설현장의 노동자들은 여전히 배제되어 있고, 정부 합동사고조사반의 조사결과는 6월 중 나올 예정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번에는 국민참여 조사위원회도 구성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앞서 작성된 4종의 사고조사보고서는 낮잠을 자고 있다.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다'는 비판과 함께 '이행점검위원회'를 구성하라는 요구도 거부했던 정부이니만큼, 애초에 시끄러운 분란만 만드는 국민참여 사고조사위는 휴지통에 넣어버린 것이 아닐까.
만약 문재인 정부가 '안전이 확보되었는지 반드시 현장 근로자의 의견을 듣기' 위한 렌즈로 사고조사보고서를 곁에 두고 참고했더라면 어땠을까? 안전이 확보되었는지 현장노동자의 의견을 듣기 위해 굳이 전문가 중심의 조사위를 파견하지 않아도, 현장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작업장 밖으로 나오게 할 수는 있었을 것이다. 장담컨대 실은 이들이 피해자가 아니라 안전을 위한 해결의 주체라는 것을 우리 사회가 깨달을 만큼 구체적인 해법을 가진 목소리들이 넘쳐났을 것이다.
그러나 4월 10일 서천발전소 건설장소에서는 전기 검사 중 변압기가 터져 4명이 심하게 다쳤고, 하청노동자 1명이 사망했다. 또 열흘 후 태안 발전소에서는 얼마 전 일용직 노동자가 10미터 아래로 추락해 26세 이후의 삶을 하반신 마비로 살게 되었다. 또 열흘 후 한익스프레스의 하청 일용노동자들이 사망했다. 조사보고서들이 낮잠을 자는 동안, 그저 안타까운 죽음으로만 기억될 죽음들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의 한익스프레스 사고조사보고서는 어떤 내용을 담을까
그래서 6월에 발표될 예정인 정부합동 한익스프레스 산재사고 조사보고서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불꽃이 어디에서 튀었는지와 관련된 화재의 원인이 아니라, 산재의 원인으로서 발주처의 책임이 없는지, 불법 다단계 하도급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지, 사고가 날 때마다 검찰이 원청 기업들에 무죄방면해 준 불기소와 무협의 처분이 이번에도 반복될 것인지를 우리 사회가 매우 꼼꼼하게 들여다보아야 한다.
이번 참에 정부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한 논의를 서두른다고 한다. 하지만 법을 제정하는 것과 한익스프레스의 사고원인을 밝혀내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오히려 법을 제정하기 위해서라도 사고의 원인을 제대로 밝혀내야 한다. 그래야만 '안타까운 죽음'이나 '화재사고'가 아니라 산재사고로 한익스프레스 사망사고를 이름 붙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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