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 압록강은 눈감고도 훤하다
어쩌다 보니 약 20년째 압록강변의 도로를 따라 차로 달리기도 하고 한 번 씩 걷기도 하는 경험이 쌓이고 있다. 백두산에서 출발해서 북한 혜산과 삼수갑산 지역을 지나가고 한반도에 가장 춥다고 배웠던 중강(진)이 위치한 압록강 중류에서 70km 넘게 보트를 타곤 한다. 압록강 하류, 단둥 근처에서는 수시로 유람선에서 북한 땅을 가까이서 응시하곤 한다. 그러다 보니 나름 압록강변의 지리와 풍경은 눈감고도 훤하다.
이럴 수 있는 배경은 중국과 북한의 공유·공존·공생하는 지역이 압록강이기 때문이다. 이를 인류학 시각에서 참여관찰하고 있는 나는 "단둥(한국사람 포함)과 신의주 사람들은 압록강, 물안개 그리고 해와 달만을 공유하지 않는다. 그들은 국경을 넘나들면서 삶을 공유하고 있다"를 <나는 오늘도 국경을 만들고 허문다>(글항아리, 2013)에 남겼고 여전히 압록강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의 삶을 기록하고 있다.
나는 한강과 임진강의 분단 그림을 모르고 지냈다
부끄럽지만 그동안 서울에서 출발해서 자유로를 달릴 때마다 궁금증이 발동했지만 무심코 넘어가곤 했다. 어디까지 한강이고 어디서부터 임진강인지 구분을 못했다.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북한 땅을 바라본 경험은 몇 번 했기에 지금 달리고 있는 자유로 옆 임진강 너머가 북한 땅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다보면 개통(1998년) 후 정주영 회장이 소떼를 몰고 처음 넘었다는 통일대교가 눈에 들어오곤 했다.
참, 한강과 임진강변의 철책선이 남방한계선 혹은 민통선을 의미 하는지 아닌지도 알지 못하고 나는 한국에서 살아왔다. 인류학에서 말하는 "낯선 곳, 압록강에서 나(한국사회)를 만나"는 경험만을 하다가 내가 살고 있는 한국 사회, 한강과 임진강은 문자 그대로 낯설고 무지의 공간이 되어버린 모양새다.
세 그림(북한 지역, 비무장지대, 민통 지역)과 중립 지역(수역)을 구분하다
2020년 봄부터 민통(민북) 지역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연으로 통일대교를 자주 넘나들고 있다. T-map에 안내가 되지 않는 파주 쪽 임진강 너머 땅이 처음에는 어색하게 느껴졌고 난감했다. 자유로 주변에는 나의 당황을 풀어줄 단서가 보이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분단의 상징, 철조망만이 나의 상상력 날개를 옭아맬 뿐이었다 하지만 이런저런 자료를 찾고 조금씩 다르게 혹은 틀리게 언급된 문헌들을 퍼즐 맞추듯 읽다 보니 조금씩 눈이 띄기 시작했다. 비록 연구를 막 시작한 단계이지만 지금까지 이해한 내용을 거칠게 정리해본다. 자유로를 따라 펼쳐지는 임진강 너머가 모두 북한 땅이 아니었다.
오두산 통일전망대를 지나치면 한강과 이별하고 임진강을 만나게 된다. 이때부터 헤이리 예술마을로 빠지는 성동 I.C를 조금 지날 때가지 임진강 너머는 통일전망대에서 늘 보았던 북한 지역이다. 그 다음 펼쳐지는 임진강 너머의 지역은 오금리 벌판을 만나면서 바뀐다. 북한 쪽 비무장지대(DMZ)이다. 거기에서 상식적으로 약 2km를 달리다보면 자유로는 만우천을 가로지르게 된다.
모내기가 막 끝난 벌판을 흐르는 만우천이 임진강과 만나는 지점 너머 언저리가 군사분계선, 즉 휴전선의 시작과 끝나는 지역으로 보인다. 거기에서 또 약 2km까지는 한국의 비무장지대이다. 낙하 I.C가 가까이 다가오고 오금리 벌판이 끝나는 지점부터 파주의 임진강변은 한국의 민통 지역이지 북한 산하가 아니다. 이처럼 세 그림(북한 지역, 비무장지대, 민통 지역)을 어설프게나마 구분하기 시작했다. 나의 무지는 이렇게 조금 풀렸다.
궁금증에 대한 해결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실제로 임진강에도 중립 지역이 존재한다. 하지만 정전 협정 문구에는 중립 지역 전체를 포함하지 않는 한강하구라는 단어로만 명시되어 있었다. 이 표현이 여기저기에서 현재(2020년)까지도 반복 사용 되고 있다.
그 결과 오금리 벌판 너머 파주 임진강을 중립 지역으로 불러주는 사람도 인식하는 사람도 드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파주 임진강과 자유로를 따라 이어지는 대부분의 철조망은 군사분계선도 아니고 남방한계선도 아니고 단지 민통선을 상징하는 철조망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사실 확인이 여기까지 이르다보니 오두산 통일전망대를 지나 나타나는 자유로 바로 옆의 민통선 철조망이 없는 상황을 상상하게 되었다. 그러면 넓게 펼쳐진 벌판을 가로질러 임진강변에 도착해서 분단과 관련된 세 그림과 중립 지역을 더 가까이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아쉬움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알기로 민통선은 고정된 것이 아니고 연천과 철원 쪽은 점점 북쪽으로 움직여왔다.
2020년 또 다른 철조망이 있던 속초 해변에는 그 흔적만이 남아있고 그 옆에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고 있다. 그러기에 더 아쉽다. 한편으로 내가 이해한 내용이 맞는지 아닌지 자꾸만 주저하게 만드는 몇 가지가 있다. 다음의 오류, 편견, 분단사고가 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임진강과 한강에 잘못 그려져 있는 군사분계선
정전협정문에 첨부된 지도에는 한강하구와 파주 임진강에 군사분계선이 그어져 있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중립 지역이기 때문에 군사분계선, 그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하구와 강 중앙을 따라 군사분계선을 연장한 지도는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곳곳에 있다. 분단에 민감하고 주목하는 한국 사회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군사분계선이 잘못 표시된 지도가 유통되고 있다.
예전에 출판된 책과 신문기사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2020년 통일촌 입구의 파주 관광 안내 지도에도 도라산 전망대에 있는 지도에도 심지어 구글 지도에도 하구와 강 중앙을 따라 군사분계선이 그어져 있다. 이런 지도는 분명 개인이 만든 지도가 아니다. 한국 사회는 국가와 회사가 만든 그런 지도를 의심 없이 그냥 소비하고 반복해서 재생산 한다. 여기에서 문제는 단순 오류에만 그치지 않고 이 지역에 대한 편견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강하구가 공유할 수 있는 중립 지역이라는 사실은 한 번씩 알려졌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곳의 중립지역의 특징과 성격을 비무장지대(DMZ)와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글과 기사들도 여전히 접하게 된다. 이는 다시 하구와 강에 잘못 표시된 군사분계선과 겹치면서 말 그대로 남북의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지역으로 자연스럽게 인식하는 경향이 엿보인다.
남북 평화와 공존의 꿈을 파주 임진강 중립 지역에서도
2020년 한국 사회는 남북을 나누고 있는 비무장지대와 민통 지역을 평화 공간으로 바꾸고자 노력하고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를 위해서는 남북의 협상 이외에도 개인 소유권 문제 또는 지뢰 제거 등등 넘어야 하는 산들이 많은 것으로 안다. 그러나 파주 임진강의 일부분과 한강하구는 원래부터 남북의 중립지역이다. 즉 이 지역은 "남북이 공유"라는 근거도 있다. 또한 2018년 남북의 군사합의에 따라 공동수로 조사를 마쳤다.
관심이 모이고 알아야 해결되는 일들이 있다. 한강하구와 더불어 파주 임진강(오금리 벌판 주변)에 세 그림과 중립 지역이 있음을 한국 사회가 많이 인지하고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우선 중립 지역에 군사분계선이 그어진 지도의 오류를 바로 잡고 정확한 위치에 대한 인식과 특징을 이해하는 것이 어쩌면 남북 평화 즉 남북이 공유하고 공생하고 공존하는 삶을 살아가는 터전을 만들어가는 또 하나의 길이자 지름길이라는 생각을 자꾸만 하게 된다.
일부러 큰 마음먹고 오두산 통일전망대나 도라산 전망대에 가서 북한과 비무장지대를 바라보는 것도 의미 있지만 일상에서 우연히 자유로를 달리다가 모내기가 끝난 오금리 벌판의 끝자락 임진강변에 잠시 멈추는 장면을 상상해본다.
"아 저기가 언젠가 사라질 것이고 허물어져야 되는 분단의 상징, 북방한계선과 군사분계선과 남방한계선의 출발점이구나, 바로 앞 임진강은 중립 지역이고 내가 배를 탈 수 있고 낚시도 수영도 할 수 있는 강이구나"를 사람들이 알아가고 말하기 시작할 때, 분단은 좀 더 빨리 허물어질 것 같다.
압록강에서 기대어 사는 사람들의 삶의 양상들을 인류학자로서 글과 사진으로 남기고 있다. 나는 한강하구와 더불어 파주 임진강에서도 꾸준히 기록할 수 있는 날이 다가오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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