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여야 원내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7월 출범이 차질 없도록 했으면 좋겠다"며 야당의 협조를 구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상춘재에서 열린 오찬 회동 말미에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에게 이같이 당부했다고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1년 6개월 만의 회동에서 문 대통령은 '협치'를 강조하면서도 첨예한 쟁점 사안인 공수처 출범을 직접 거론해 향후 여야 간 충돌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법은 지난해 12월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오는 7월 출범을 앞두고 있다. 여당은 사법 개혁 완수를 위해 공수처의 조속한 설치를 고대하고 있다. 반면, 미래통합당 등 야당은 공수처가 정권 유지 수단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공수처를 어느 상임위 소속으로 둘지 등 세부사항이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야당이 강하게 반발할 경우 7월 출범은 장담하기 어렵다.
문 대통령은 이러한 상황을 감안해 공수처에 대해서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을 야당 측에 피력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여러 공개석상에서 사법 개혁에 대한 의중을 드러내왔다.
문 대통령은 "대통령 주변 특수관계자가 측근도 (공수처 수사) 대상인데 검찰 견제수단으로 오히려 부각되고 있다"며 "하지만 원래 뜻은 대통령 주변의 측권 권력형 비리를 막자는 취지"라며 주 원내대표를 설득했다고 청와대는 서면브리핑을 통해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또 "과거 민주화 대 독재 대결 구도는 끝난 지 오래다. 그런데 적대감을 갖고 있고, 상대가 타도 대상이다. 이걸 벗어나자면 이제 한 페이지씩 넘어가야한다"고 했다. 야당 일각에서 5.18 정신을 부정하는 등 서로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일 있던 데 대한 언급이라고 강 대변인은 밝혔다.
문 대통령은 "김 원내대표와 주 원내대표 모두 대화와 협상을 중시하는 분이라 기대가 높다"면서, 특히 주 원내대표가 국민 통합을 위해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과 고 노무현 전 대통령 11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행보를 높게 평가했다. 또 "주 원내대표와는 국회의원 시절 국방위원회 동기였는데 합리적인 면을 많이 봤다"고 말하기도 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지속되고 있고 21대 국회 개원을 앞둔 만남인 만큼, 문 대통령은 협치를 당부하는 데 방점을 뒀다. 문 대통령은 "세계적으로 대공황 이후 처음이라는 지금 같은 위기 국면에선 국회에서 3차 추경안과 고용 관련 법안이 신속하게 통과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현안이 없더라도 정국에 관해 이야기하는 게 중요하다"며 정기적 만남을 제안했다. 이에 주 원내대표가 '정무장관' 신설을 제안하자, 문 대통령은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에게 "의논해 보라"고 지시했다. 청와대 정무수석은 여당과, 정무장관은 야당과 소통해왔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문 대통령은 거듭 협치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면서 "20대 국회도 협치와 통합을 표방했으나 실제론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이번에는 제대로 한번 해보자는 게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다만 여야정 국정 상설협의체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주 원내대표는 "좋은 판결이라도 나쁜 화해보다 나쁘다는 이야기가 있듯이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상생과 협치를 하면 정책의 완성도도 높아지고 정책의 집행력도 높아지고 갈등도 줄어들기 때문에 상생, 협치를 할 자세와 준비가 돼 있으면 저희들도 적극 협조하겠다"고 화답했다.
다만 주 원내대표는 문 대통령이 주문한 재정 확대 정책에 수반되는 재원마련 대책을 구체적으로 요구하는 등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주 원내대표는 "코로나 위기로 어려운데 확장재정 그리고 즉시대응이 필요하다는 대통령 말씀이 있었다"고 전하며 "저는 한 해 들어서 3번이나 추경을 해야 되는 상황을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것인지 그다음에 추경이 필요하다면 어느 항목에 추경이 필요하고 그 효과는 어떤 것이며 재원 대책은 어떤 것인지 국민들이 소상히 알 필요가 있다"고 제동을 걸었다.
이에 문 대통령은 "야당으로서는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사항이고 추경을 하게 되면 그런 점들을 국회에 자세히 보고하겠다"고 답했다.
재정 건전성에 관한 논쟁도 오갔다. 주 원내대표는 "국가부채가 40%를 넘어서면 (국가 재정이) 어렵다는 주장을 (문 대통령이) 당 대표를 하실 때 한 적이 있다"고 지적하며 "지금 3, 4차 추경까지 되면 국가부채비율이 46.5%가 넘어서게 돼 국가신인도에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한편 문 대통령은 21대 국회 전반기 원구성 협상과 관련해 "국회가 법에 정해진 날짜에 정상적 방식으로 개원을 못해왔다"며 "시작이 반이라고, 두 분이 역량을 잘 발휘해달라"고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식사를 마치고 산책을 하던 중 김태년 원내대표에게 "국회가 제때 열리고 법안이 제때 처리되면 제가 업어드리겠다"라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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