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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병 미란다 원칙'을 만들어 활용하자

[안종주의 안전사회] 조용한 전파를 막아야 지역 확산의 고리가 끊긴다.

이태원 클럽 발 코로나19 지역 확산이 25일 0시 기준으로 추가 확진자가 16명으로 나흘만에 10명대로 내려왔다. 해외유입을 제외한 지역 사회 내 발생 규모가 지난 20일 24명 이후 5일째 10명대 수준을 보여 그동안 불안해 하던 시민과 방역 당국이 숨을 조금 돌릴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줄어든 이런 숫자만 보고 안심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그 숫자 속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렇다. 젊은층을 중심으로 한 조용한 전파가 문제가 되고 누구로부터 어디에서 감염됐는지 모르는 ‘깜깜이’ 사례도 계속 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생활 속 거리두기로 방역 패러다임을 전환한 뒤 클럽, 뷔페식당, 노래방, 교회 등 지역 사회에서 집단 감염을 증폭시킬 수 있는 곳에서 잇따라 꾸준하게 전파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더 꼼꼼하고 조용한 전파를 막을 수 있는 효과적 방역 대책을 세워 실천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코로나19 감염병이 지닌 고유한 특징은 아니지만 이 감염병은 특히 조용한 전파가 문제가 되고 있다. 대다수 감염병은 대개 기침이나 설사, 고열, 출혈, 근육통 등 뚜렷한 증상이 나타난 뒤 바이러스와 세균 등의 병원체가 감염자나 환자 몸 밖으로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퍼진다. 하지만 이 감염병은 무증상이거나 증상이 매우 미약한 감염 초기에도 숙주를 탈출해 감염을 일으켜 방역 당국과 감염병 전문가조차 힘들게 만든다.

우리는 이를 조용한 전파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대다수 감염병은 환자 상태에서 감염력을 가지지만 코로나19는 환자가 아닌 감염자 상태에서도 감염을 일으킬 수 있는 양의 바이러스를 배출한다. 무증상 감염은 지금까지 결핵이나 장티푸스, 후천성면역결핍증, 즉 에이즈 등 극히 일부 감염병에서 보아온 것이어서 일반인들에게 익숙한 것은 아니다. 증상이 발현된 뒤 감염력을 보이는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이나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다.

지난 6일 시작된 이태원 클럽 발 코로나19 확산은 24일 현재 225명의 감염 확진자를 낳았다. 클럽에서 감염된 사람은 모두 96명이고 이보다 많은 129명은 이들로부터 2차에서부터 5차에 이르기까지 순차적으로 감염된 사람들이다. 20일 동안 5차 감염자까지 나왔으니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감염시키는데 걸린 기간이 평균 5일인 셈이다.

코로나19는 잠복기가 2~14일이며 평균 잠복기가 4~5일인 것을 감안하면 이런 양상은 잘 이해된다. 이태원 클럽 발 코로나19 확산은 애초 우려했던 것보다는 그리 심각하지 않아 다행이다. 하지만 전파 고리가 끊이지 않고 계속 차수가 이어지고 있어 방역 측면에서는 결코 안심할 수 없는 형편이다. 언제 어디서 이태원 클럽 사태와 같은 일이 벌어질지 몰라 정말 불안불안하다.

‘n차 감염’이 위험한 이유-‘방귀가 잦으면 똥 싸기 쉬워’

‘방귀가 잦으면 똥 싸기 쉽다.’는 속담이 있다. 2차, 3차, 4차, 5차 감염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언제 어디서 제2의 이태원 클럽 사태 또는 동시다발로 집단 감염 사건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것을 뜻한다. 이 경우 이태원 클럽 사태보다 더 큰 파장을 낳을 수 있는 사건으로 번질 수도 있다.

이태원 클럽 발 사태에서 눈여겨 볼 또 하나의 지점은 학원 강사라는 자신의 직업을 속이고 ‘무직’으로 대답한 한 청년의 거짓말로 5차 감염자까지 생기면서 무려 50명이나 확진자가 나왔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 청년은 자신의 거짓말이 이렇게까지 심각한 사태로 번질 줄 몰랐을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역학조사관은 감염자의 동선과 접촉자 등을 조사할 때 더 꼼꼼하고 노련하게 다루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깊이 새기고 신속하게 사실을 파악하는데 힘을 쏟아야 한. 감염 확산을 막는 방역의 성패는 시간과의 싸움에 달려 있다.

바이러스는 날개가 있거나 발이 달린 동물이 아니다. 자신 스스로는 아무 곳에도 가지 못한다. 바이러스가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옮겨 다니게 만드는 것은 사람이다. 이는 무엇보다 조사를 벌일 때 조사대상자가 거짓말을 하지 않도록 채찍과 당근 전략을 잘 구사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형사 피의 대상자에게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듯이 코로나19 역학 조사 대상자에게 거짓을 말할 경우 생길 수 있는 파장과 사례를 숙지시키고 문제가 될 경우 엄한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정형화한 말로 고지하는 ‘감염병 미란다 원칙’을 만들어 이야기하는 것이 좋겠다.

‘감염병 미란다 원칙’을 만들어 활용하자

“당신은 범죄자나 가해자가 아니며 피해자입니다. 하지만 묵비권을 행사할 수는 없고, 오로지 진실과 사실만을 말할 책임이 있습니다. 당신의 거짓 발언은 많은 사람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고 만약에 하나 그런 일이 벌어지면 당신에게 무한 책임이 돌아갑니다.”

인천 학원 강사의 거짓말로 인해 감염이 일파만파로 확산된 사태를 계기로 앞으로 이와 유사한 일이 두 번 다시는 벌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감염병이 확산되느냐 않느냐는 방역 당국의 능력이나 기술보다는 실은 시민의 올바른 사고와 그에 따른 행동에 달려 있다.

뛰어난 진단도구를 가지고 훌륭한 검사 인력이 열과 성을 다해 실력을 아무리 발휘하더라도 조사 대상자가 거짓말을 해 제 때 검체를 확보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무증상기 내지 증상 초기에 있는 사람도 상당한 감염력을 지닌 코로나19의 특성 상 조용한 전파는 기정사실이기 때문이다.

언론과 일부 전문가조차 바이러스는 늘 인간을 앞서간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말은 잘못됐다. 바이러스가 앞서가는 것이 아니라 바이러스를 지닌 인간이 감염자와 환자를 진단해내는 과학과 첨단기술보다 더 빨리 움직일 뿐이다. 감염병을 다루는 것은 궁극적으로 인간을 다루는 일이다.

과학기술뿐만 아니라 인간의 심리, 특히 코로나19와 같은 치명적 감염병 유행 때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언행을 얼마나 잘 파악하느냐에 방역의 성패가 달렸다. 역학조사관에게 상담 능력, 상대방의 표정을 읽는 등 비언어 소통의 중요성을 이해하는 자질이 필요하다. 지금 당장 그런 능력이 미흡하다면 앞으로 이런 능력을 키우도록 힘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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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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