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코로나 환자가 발생한 지 세 달을 훌쩍 넘겼다. 코로나 감염위험을 피하기 위한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시작하고 한 달쯤 지나서였을까. 오랜만에 장을 보기 위해 밤늦게 동네 대형마트를 방문했다. 한산한 마트에서 여유 있게 장을 보고 계산을 하러 가서야 알았다. 불과 한 달 사이 계산원들이 앉아 있던 계산대가 대부분 사라지고, 손님이 직접 계산할 수 있는 무인 셀프 계산대로 바뀌어 있는 것이 아닌가. 코로나로 사회가 자가 격리된 틈을 타 고립되어 있던 그들을 조용히 처리해버린 것일까. 손님들은 어느새 능숙하게 기계로 바코드를 비추며 계산을 하고 있었다. 가끔 오류가 나면 주변 어딘가에 비치(배치)되어 있던 직원이 재빠르게 다가와 오류를 잡아주고, 손님들은 계산원들이 있었던 것조차 잊어버린 듯 편안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대형마트의 비정규직 계산원들이 부당한 해고에 맞서 마트를 점거하고 투쟁하는 내용을 담은 영화 <카트>(부지영 감독, 2014)의 한 장면이 생각나는 풍경이었다. 코로나 위기 이후의 세상은 공동체가 회복되는 새로운 세상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누군가 조용히 사라져도 흔적조차 남지 않는 그런 지옥도의 세상이 될 것인가.
비단 우리 동네 마트뿐인가. 여기저기서 해고와 고용불안의 비명 소리가 들린다. 통계청의 '2020년 2월 고용동향' 마이크로데이터에 따르면, 일시 휴직자가 61만 8000명인데 이 중 62. 8%인 38만 8000명이 여성이었다. 3월 한 달간 주로 요양, 돌봄, 급식, 청소, 서비스 분야에서 여성의 해고가 50~60% 이상 급증했고, 11만 5000여 명이 실직했다고 한다. 이는 고용시장에서 여성의 열악한 처지를 나타내고 있다. 우리 동네 마트의 계산원들도 모두 여성이었다. 여성은 비정규직 비율이 높고 저숙련 노동이 많으며 서비스업 비중이 높아 항시적인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는데, 이는 요즘과 같은 위기상황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여성이 정규직 숙련 노동을 수행한다고 해도 남성과 동등한 고용안정을 누리기는 어렵다. 누군가 정리되어야 한다면 여성이 먼저다. 여성의 노동은 언제든 가정으로 돌려보낼 수 있는 보조적인 노동으로 취급된다. 어린이집, 학교, 유치원들이 장기간 문을 닫으면서 자녀 돌봄의 부담이 취업 중인 여성에게 전가되고 있다. 주변의 많은 여성 직장인들이 돌봄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돌봄 휴가, 연차 등등 휴가를 반복하다 휴직을 하고 결국 사직을 택해야 하는 상황이 속출하고 있다. 감염병의 유행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여성들의 돌봄노동은 사회를 지탱해온 중요한 가치로 재인식되고 있음에도, 역설적으로 여성 노동은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여성들의 고용불안은 IMF 구제금융 사태가 일어났던 1997년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책으로 공·사기업을 불문하고 구조조정이 실시되면서 노동자들은 극심한 고용불안을 겪었다. 그중에서도 여성 노동자들의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당시 가깝게 지내던 동료 변호사는 구제금융 사태 이후 대규모로 부당해고된 여성들의 부당해고 사건 변호를 맡고 있었다. 이 사건은 성차별에 따른 부당한 해고임이 명백함에도 2심까지 패소라는 부당한 결과가 나왔고, 이에 시민사회 단체들은 학술대회와 토론회 등을 개최해 판결의 부당성을 성토하며 대법원의 올바른 판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나도 토론자로 참석하여 판결의 문제점을 검토했었다. 그날 토론회에서 남편을 볼모로 삼아 아내 직원을 해고해 버린 회사의 부당함에 대해, 이를 정당하다고 판결한 판결의 몰상식에 대해 차분하게 설명하던 해고 노동자들의 모습이 여전히 눈에 선하다. 그 사건은 여성들이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손쉽게 직장에서 쫓겨나고,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내몰리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A회사(금융기관)는 구제금융 사태 이후인 1998년부터 1999년까지 구조조정을 실시하면서 명예퇴직 요건을 대폭 완화하여 시행하고, 근속 3년 이상의 전 직원을 대상으로 순환명령 휴직 제도를 시행(휴직 기간 동안 고정급의 80%만 지급)하기로 했다. 회사는 순환명령 휴직제도 시행대상자로 고비용, 저효율 인력, 신의성실 근무에 문제가 있는 직원, 경제적·사회적 충격이 덜 심한 직원들을 대상으로 삼았다. 문제는 누가 '경제적·사회적 충격이 덜 심한 직원들'인지였는데, 회사는 '부부 직원'을 그 대상으로 선정했다. 사실 '부부 직원'이 대상이라는 것은 명목이었을 뿐 실제로는 아내 직원들에게 사직을 강요하는 명분이었다. 회사는 아내들이 사직하지 않을 경우 남편들이 순환명령 휴직대상자로 선정될 것이고, 고정급여의 80%(실제 지급받던 임금의 50%)밖에는 지급받지 못하게 될 뿐만 아니라 복직의 보장도 없으며, 결국 부부 직원들은 두 사람 모두 우선순위로 정리해고 대상이 될 것이라며 아내들의 사직을 강요했다. A회사의 이러한 전략은 성공하여 최종적으로 762쌍의 부부 직원 중 10쌍을 제외한 752쌍의 한쪽 배우자가 퇴직하였는데, 그중 688쌍이 아내 직원이 퇴직했다. 또한 A회사에서 주로 여성 직원이 집중되어 있는 직급에서 명예퇴직이 실시되어 직급별로 퇴직한 여성 직원이 남성 직원보다 많게는 10배까지 많았다. 더욱 주목할 것은 결국 퇴직한 여성 근로자 중 63.9%가 그대로 계약직으로 전환하여 기존 업무를 그대로 수행한 것이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더 적은 임금을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로.
소송을 제기한 원고들은 당시 A회사의 강권에 못 이겨 결국 명예퇴직을 한 아내들이었다. 이들은 1차 구조조정에서는 끝까지 사직을 하지 않고 버텼으나, 2차 구조조정에서는 마지막 날까지 버티다가 결국 사직서를 제출하였다. 이후 계약직 근로자로 복귀하여 같은 일을 1년간 하였다. 원고들 입장에서는 생각할수록 억울한 사직이 아닐 수 없었다. 남편이 해고될 수 있다는 압박을 견디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퇴직한 752쌍의 부부 중 688명의 아내 직원이 퇴직한 것을 보라.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원고들은 자신들의 사직이 '강요에 의한 해고'로 사회질서에 반하는 불공정한 행위이고, 헌법, 근로기준법, 남녀고용평등법 등이 정하는 남녀평등과 행복추구권 등에 반하는 것이므로 무효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회사는 법정에서 원고들의 진정한 사직 사유가 '전통적인 여성관에 기하여 육아 등 가정일에 전념하기 위한 것'이라거나, '정리해고라는 심각한 단계에서 어느 가정의 가장이 실직을 하는 경우보다는 부부 직원 중 어느 일방이 대신 정리 해고됨으로써 가정을 구할 수 있다'는 등의 주장을 하였다. 얼핏 보면 부부 직원을 먼저 퇴직 대상자로 선정하는 것이 공정하고 형평에 부합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조금만 생각해봐도 실은 매우 성차별적이고 행정 편의적인 발상일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부부 직원이 가장 '경제적·사회적 충격이 덜 심한 직원들'이라고 어떻게 단정할 수 있단 말인가. 부부 중 한 명만 일하는 경우에도 재산이 많아 안정적일 수 있고, 부부가 각기 다른 회사에 근무하며 맞벌이를 하고 있을 수도 있는데, 같은 회사 부부 직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충격이 덜 심한 가정이라고 단정할 수 있느냐 말이다. 회사는 부부 직원을 선정하면 아내 직원을 압박하기 쉽다는 것을 정확히 알았다. 가부장적 사고방식이 팽배해 있는 한국 사회에서 부부 중 하나가 그만둬야 한다면 누가 그만두게 될지는 뻔한 일 아닌가. 회사는 "여성근로자들을 먼저 사직시키면 차별 문제 소지가 있기 때문에 남편 쪽을 명령 휴직시킬 것이다"라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하였다. 영리하게도 노골적으로 아내직원을 휴직시키거나 퇴직시키는 것의 위험성을 알고 우회적으로 남편 직원의 고용불안 위협으로 아내 직원을 압박하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가장인 남편을 볼모로 잡아두면 아내들은 부당하다고 억울하다고 싸우지 못할 테니까. 뒤탈이 없을 테니까.
어처구니없게도 대법원(2002다35379판결)까지 A회사의 손을 들어 주었다. 회사가 위와 같은 경로도 원고들에게 사직서를 제출하게 하였음을 인정하면서도 '사회경제적 관점에서 보아 합리성을 결하는 것이 아니고, 남녀평등에 반하여 여성을 차별한 것이라고도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회사나 법원이 주장하고 인정한 '사회경제적 관점에서의 합리성'이란 무엇인가. 가부장의 부양을 받으며 조신하게 육아와 살림에 전념하며 가정을 수호하는 역할. 그것이 바로 법원이, 회사가, 사회가 바라는 사회경제적 관점에서 합리적인 아내의 역할 아니었겠는가. 아내 직원들이 '전통적인 여성관'에 따라 살림에 전념하기 위해 퇴직하였다는 회사의 주장과 달리 원고들을 비롯 해고되었던 아내직원들은 대부분 회사에서 같은 일을 하였다. 신분은 정규직에서 비정규 계약직으로 바뀐 채 말이다.
2020년의 코로나 위기에서 여성들의 노동은 1999년보다 가치 있게 취급되고 있는가. 여성들의 노동은 훨씬 더 비정규적인 것이 되어 언제든 더욱 손쉽게 집으로 보낼 수 있게 되었고, 노동환경은 더욱 열악해졌다. 열악한 비정규직 노동의 환경에서 감염병의 위험에 노출되기도 더 쉬워져 전원 여성이었던 콜센터 직원들이 집단 감염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하였고, 요양보호사 등 돌봄노동에 종사하는 비정규직 여성(돌봄노동 종사자의 90%가 여성이다)이 감염되어 돌봄대상자와 함께 사망하기도 하였다. 바이러스는 우리에게 바이러스조차 평등하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바이러스는 가장 약한 곳을 가장 먼저 파고들어 집단적으로 쓰러뜨렸다. 바이러스는 말하고 있다. 평등한 위기는 없다고.
직장 내 성희롱, 고용에서의 차별, 여성 노동의 비정규직화, 남녀 임금격차를 알려주는 각종 통계치들은 노동에서의 젠더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지만, 남녀평등고용법, 여성발전기본법, 그리고 각종 노동법제의 제도화는 노동 영역에서 젠더 평등이 실현되고 있는 것 같은 착시를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착시라도 얻어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싸워왔던가. 코로나 위기는 여성 노동의 젠더 불평등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더 이상 법과 제도가 주는 착시로 세상이 나아졌다고, 살만해졌다고 퉁 칠 수 없게 된 것이다. 감염병 위기는 여성들이 주로 담당해오던 돌봄노동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해줬다. 돌봄노동의 주된 당사자가 여성이라는 사실은 전통적 여성관과 맞물려 돌봄노동 자체의 저평가는 물론, 여성이 수행하는 노동을 보조적인 노동(언제든 집으로 돌아가게 할 수 있는)으로 취급하여 여성 노동을 차별하는 근거가 되었다. 우리 사회가 돌봄노동의 금전적 가치를 재평가해주거나 가정 내 돌봄노동을 사회화하는 수준의 논의에 머무른다면, 위기가 반복될 때마다 돌봄노동은 더욱더 여성에게로 귀속될 것이며 노동에서의 성차별적 구조를 극복하기는 요원한 일이 되고 말 것이다.
감염병의 위기는 공동체가 협력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지만, 역설적으로 차별과 배제의 실상도 낱낱이 보여주었다. 감염병 이후의 세상에 대해 낙관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나는 두렵다. 마트의 계산원들처럼 위기상황을 이용하여 조용히 치워지는 사람들 그리고 '집단 감염'이라는 공포심에 포획된 채 누군가 치워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 그런 위장된 평화에 길들여지는 것이 감염병 위기 이후의 세상일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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