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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가치란 결코 지위의 높낮이에 있지 않다

[기고] 국가가 요구하지 않지만, 국가와 사회에 필요한 일을 하고자

삶의 가치란 결코 지위의 높낮이에 있지 않다

물론 '저항'을 생각하는 공무원이 지나치게 많게 된다면, 그 또한 작은 문제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상명하복과 승진지상주의 그리고 집단이기주의의 조직 분위기만으로 과도하게 충만한 관료사회에서 그 권위와 관행에 '저항'하는, '미움받을 용기'가 있는 공무원들이 존재해야만 조직이 그나마 건강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이 조직 내에서 '왕따' 되지 않고 소금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어야만 우리 공직사회도 비로소 희망이란 게 존재하고 미래가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이제까지 공무원 신분으로 국회에 근무하면서 몇 번이나 징계와 면직 위기를 겪어야 했다. 평소 잘 알고 지내는 한 기자는 필자에게 "걸어 다니는 징계혐의자"라고 농담 삼아 말할 정도였다.

필자가 직면했던 대표적인 징계(면직) 위기는 바로 국회 전문위원 검토보고 제도에 대한 비판 때문이었다. 즉, 국민이 선출하지 않은 국회 공무원들이 헌법이 부여하지 않은 막강한 입법권한을 행사하는 '검토보고' 제도에 위헌 소지가 있으며, 따라서 폐지되어야 한다는 기고문을 신문에 발표했다는 이유였다. 당시 국회사무처가 필자에게 뒤집어씌운 혐의는 '품위 유지 위반' 혐의였다. 그러나 정작 '품위 유지'를 어긴 것은 오직 그들이라는 확신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그 뒤 필자는 양승태 전(前)대법원장이 추진했던 상고법원 추진법안에 국민들이 알지도 못한 상황에서 이미 과반 이상의 의원들이 서명한 사실을 비판하고 상고법원은 절대 도입해서는 안 된다는 기고문을 발표했다는 이유로 다시 징계위기에 몰렸다. 당시 국회 법사위 의원들이 여야를 막론하고 필자를 징계(사실상 면직)하기로 했었다는 믿기 어려운 얘기도 훗날 풍문으로 들었다. 하지만 이 기고문을 계기로 필자는 대한변협의 '상고법원반대 TF 활동'을 하게 되었고, 그래서 마침내 상고법원을 저지시키는 데 힘을 보탤 수 있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보수정당 출신의 어느 국회의장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내 이름을 거론하면서 (기고를 포함한 필자의 활동을) 비난하기도 했다. '아랫것'의 '하극상'에 못마땅해한 것이리라. 봉건성과 비민주성의 뿌리가 깊다. 한편 국회사무처의 한 고위 간부는 언론사에 메일을 보내 필자를 비방하면서 필자의 기고문을 실어주지 말 것을 종용하기도 했고, 공공기관이 주최하는 학술대회는 발표를 불과 며칠 앞두고 알 수 없는 이유로 필자의 발표만 돌연 취소되기도 했다.

나는 이 세상이 그리고 우리들의 마음이 좀 더 바뀌기를 희망한다

필자는 조직 내에서 이른바 '왕따'가 되어 시대를 앞선 '혼밥족'으로 산 지 몇 년이 계속되었고, 또 필자가 조직 내 '왕따'로 지내는 사이에 나이가 상당히 어린 한 직원에게 "당신"이라는 말을 듣는 수모까지 당했다. 하지만 결코 이를 불행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심성을 단련시키는 기회로 받아들이고자 하였다.

사실상 면직의 위기였던 두 차례의 징계위기는 가까스로 넘겼지만, '서면경고'를 피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그 발단은 그 어떤 비판을 하고 기고문을 발표해서 발생한 것이 아니었다. 바로 '공포(公布)'라는 법률 개념을 둘러싼 학술 차원의 논의로 인한 것이었다.

사실 필자의 이 문제 제기는 최소한 입법을 주 업무로 하는 국회로서는 법률적 개념을 혁신적으로 바로잡은 것으로서 상을 받아야 마땅한 문제였다. 하지만 필자는 관련 개념의 정확한 규정을 요구했다고 하여 결국 기관으로부터 징계까지 받았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심지어 기관장으로부터 공식 석상에서 "×××"라는 욕지거리를 들어야 했다. "정신병자"로 지칭되기도 했다.(이 문제를 국가인권위에 진정했지만, 국회는 자신들 소관 밖이라며 접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실 국회의 다른 문제를 국민권익위원회에 제기한 적도 여러 차례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 국회는 소관 업무 외라는 회신만 받아야 했다. 이렇게 하여 국회 조직은 '그들만의 리그', '성역'으로 영역화한다.)

또 그 '서면경고장'을 준 총무과 계장은 필자에게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훈계'까지 하였다. 나아가 이 징계의 부당성을 바로잡고자 요청해 열린 고충처리 소청조차도 "근무한 지 몇 년이나 됐느냐?" 등 조롱 섞인 언사만 들어야 하는 채 기각되었다. 이 소청에서 필자는 중요한 증인이기도 한, 진보진영 출신으로서 훗날 국회의원까지 된 한 당료의 증언을 요청했지만, 그는 귀찮은 탓인지 아니면 문제의식이 결여된 때문인지 출석을 거부했다. 무릇 정치란 타인의 아픔과 고통을 배려하고 공감할 줄 아는 능력이 가장 큰 덕목일 터다. 불행하게도 타인의 아픔에 대해 이렇듯 무관심하고 좀 경시하는 사람들이 정치를 '독점'하고 있는 현실이 우리 정치의 근본적인 폐단이리라.

내게 서면경고를 '부여'한 기관 측은 서면경고가 징계도 아니고 아무런 효력도 없는 것이라고 강변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징계도 아닌 것"을 그토록 한사코 '부여'하고자 했을까? 필자가 서면경고를 받은 바로 그날부터 알고 지내던 동료 직원들이 복도에서 지나치면서도 아는 체 하지 않게 되었다. 결국 그 날로부터 완전히 '왕따'가 되었고, '혼밥족'이 되어야 했다. 확실한 사실은 그것은 '주홍글씨'로서 곧 조직 내 '왕따'의 분명한 신호라는 점이었다.

언젠가 이 '법률 문제'에 대해 내가 발표를 하고 기관에서 관련 전문가를 초청하여 학술토론회를 연 적이 있었다. 당시 토론회가 끝나고 저녁 식사를 할 때 한 법대 교수가 내 직함인 '해외자료조사관'이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동석했던 과장은 "번역하는 사람이다"라고 답하는 것이었다. 이건 예를 들어 방호과 직원을 앞에 두고 "문지기"라고 지칭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최소한 '조사관'이란 명칭 그대로 조사를 담당한다고 하면 될 일을 굳이 번역하는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 예의 차원만이 아니라 인격 모독, 인권 유린이기도 했다. 나아가 "번역하는 사람"이 발표하는 자리에 토론하기 위해 참석한 교수들도 모독하는 행위이기도 했다. 그 과장은 이후 사과하라는 내 요구를 들은 척하지도 않았다. 더구나 그 과장은 이른바 '운동권 출신'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가 공무원으로 된 후 기관에서 개혁적 발언이나 행동을 했던 것을 보거나 들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징계를 받던 당시 나는 갈릴레오처럼 탄식했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모두가 막무가내 1+1=3이라 강변하면서 1+1=2라는 나의 정답을 처벌하는 상황이었다.

한 가지 부연해야 할 특징적인 사실은 필자에 대한 징계 사안이 묘하게도 모두 교수 출신의 기관장 시기에 발생했다는 점이었다. 여당이 파견한 인물이든 야당이 파견한 인물이든, 또 그들이 입으로 진보를 내세우는가 보수를 내세우는가와 전혀 무관했다.

2019년 11월, 청천벽력과 같은 아내의 췌장암 4기 확진으로 근무가 불가능해졌고 끝내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러나 내가 소속된 과의 과장이라는 사람은 단 한 마디의 위로의 말이나 문자도 없었다. 알고 지내던 한 국회사무처 고위 간부는 필자의 후임 채용에 자기 아는 사람을 도와준다며 정말 1초의 경황조차 없는 필자에게 전화해 일언반구의 위로도 없이 필자가 수행했던 업무 내용 좀 보내줄 수 있냐는 어이없는 부탁을 하였다. 또 내가 가슴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사연으로 직장을 떠났건만 국회도서관 노조 게시판에는 필자 후임 채용을 언급하는 가운데 필자를 "문제아"라고 표현하면서 '조롱'과 '적대적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아이러니하게도 이 노조가 내세우는 캐치프레이즈는 '사랑과 화목이 가득한 직장'이다.)

물론 필자를 진심으로 위로하고 응원해준 국회 직원들도 적지 않았지만, 참으로 몰인성화(沒人性化)된 조직의 성격이 그대로 투영된, 어이없게도 슬프고 이기적이며 비인간적 행태가 아닐 수 없다.

마음이, 정말 아프다.

국가가 요구하지 않지만, 국가와 사회에 필요한 일을 하고자

필자는 결코 비정상적인 압박이나 상황에 굴복하여 무릎 꿇고 살 수 없었다. 필자는 매일같이 어둠 속 새벽 출근길에 국회 정문을 들어서면서 다짐했다. '오늘도 최선을 다해서 '저항'하고 '투쟁'하자. 그리고 '연구'하자.' 그러면서 감히 이순신 장군을 떠올렸다.

국가가 요구하지 않지만, 오늘도 국가 그리고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일을 한다는 마음으로 전심전력, 실천하고자 하였다.

진리는 그리고 희망은 멀리 '추상'의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가까운 곳에 '구체'로 존재한다.

모름지기 지행합일(知行合一)이 실천되어야 한다. 안타까운 사실은 입으로 진보를 주창하는 인사일수록 정작 그 일터에서 진보의 가치를 실천하는 경우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공적 가치와 사적 이익 추구의 주관적 등치가 빈발한다. 자기의 삶터와 일터라는 가까운 곳에서는 전혀 실천하지 않으면서 침묵하고 방관, 동조하면서 오로지 멀리 '열매'와 '자리'만 추구했기 때문에 결국 오늘의 모순과 혼돈이 초래된 것이리라.

이제 이 세상이 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들의 마음도 좀 인간적으로 따뜻하게 바뀌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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