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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아직도 서부시대? "흑인 청년, 4분 이상 쫓기다 살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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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아직도 서부시대? "흑인 청년, 4분 이상 쫓기다 살해됐다"

중세 시대 '시민 체포법', 21세기에 여전히 존재

미국 조지아주에서 조깅하던 흑인 청년이 백인 아버지와 아들에 의해 살해된 사건과 관련해 이 장면을 촬영한 이웃도 '공범'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살해된 아머드 알버리 가족의 변호사는 18일(현지시간) 알버리가 자신의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그레고리 맥마이클과 트레비스 맥마이클 부자 뿐 아니라 이 장면을 촬영한 윌리엄 브라이언에게 4분 이상 추격당하다가 살해됐다고 주장했다고 <폭스뉴스>가 보도했다.

25세의 흑인 청년 알버리는 지난 2월 23일 낮 조지아주 브런즈윅에서 동네를 조깅하던 중에 근처 공사 현장을 발견하고 호기심이 생겨 잠시 들렀다가 다시 조깅을 하다가 그를 강도라고 생각하고 총을 갖고 픽업트럭을 타고 쫓아온 맥마이클 부자와 실랑이를 벌이다가 맥마이클 부자가 쏜 총에 맞아 현장에서 바로 숨졌다.

전직 검찰 수사관 출신인 아버지 그레고리와 그의 아들은 알버리가 공사 현장을 들렀다는 이유로 그를 강도라고 생각해 체포하려 했다고 주장했고, 조지아주 검찰은 '시민 체포권'을 근거로 이들 부자를 풀어줬다.

이런 조지아주 검찰의 수사는 알버리 변호사에 의해 사건 당시를 촬영한 동영상이 새롭게 공개되면서 극적인 반전이 일어났다. 우연히 사건을 목격하게 돼서 영상을 찍게 됐다고 주장한 브라이언이 찍은 영상에는 총으로 무장한 맥마이클 부자가 운동복 차림인 알버리를 쏘는 끔찍한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 영상이 공개되고 전국적인 이슈로 이 문제가 커지면서 맥마이클 부자는 사건 발생 74일 만인 지난 8일 가중 폭행·살인 혐의로 체포됐다.

알버리를 저격한 아버지가 전직 검찰 수사관 출신이므로 알버리 가족과 변호사는 검찰이 사건을 은폐했다고 주장하고 있고, 조지아주 법무부 장관은 지난 10일 성명을 통해 연방 검찰이 이 사건을 재검토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알버리 가족의 변호인단은 이에 대해 "우리는 사건 초기부터 연방 법무부가 나서줄 것으로 요구했다"며 "두 명의 살인범이 왜 74일이나 지나서야 체포됐는지를 비롯한 많은 의문점이 밝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상 촬영한 이웃, 왜 살인을 지켜보기만 했나"

또 알버리 가족의 변호사 리 메리트는 사건 당시 영상을 찍은 브라이언이 "자신은 선량한 사마리아인이라고 주장하지만 거짓말이다"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메리트는 새로운 영상을 보면 그가 맥마이클 부자와 마찬가지로 4분 이상 알버리를 추격했다면서 "만일 브라이언이 착한 사마리아인이었다면 (맥마이클 부자의 총격을 막기 위해) 경적을 울렸을 것이다. 영상에서는 그는 총격이 연달아 일어나는데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모든 것을 받아 들인다"고 지적했다.

알버리의 어머니도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 브라이언의 주장에 대해 "그가 왜 영상을 이 장면을 찍었을까? 촬영 직후에 왜 아무 도움을 주지 않고 있다가 영상이 유출된 뒤에서야 나섰겠냐"면서 그도 수사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CNN은 알버리가 들렸던 공사 현장의 집 주인으로부터 CCTV 영상을 제공 받아 그즈음 공사 현장을 들러 구경한 주민이 알버리 이외에도 여러 명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이들 중 누구도 도둑으로 오인받아 추격을 당하는 일을 겪지 않았다. 오로지 흑인 청년인 알버리만 도둑으로 오인 받았던 것이다.

중세시대의 '시민 체포법', 21세기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미국

이번 사건에서 흑인 청년을 살해한 백인 부자를 처음에 풀어줬던 근거가 된 법은 '시민 체포법(citizen's arrest law)이다. 미국은 조지아주 뿐 아니라 거의 모든 주에서 어떤 형태로든 시민이 범죄자를 체포할 수 있는 권한을 인정하는 법안을 갖고 있다.

'시민 체포법'이 각 주마다 처음 만들어진 시기는 남북전쟁 때이지만, 그 시초는 13세기 중세시대 유럽국가들의 법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한다. 당시 국왕들이 전국의 치안을 유지할 만큼의 충분한 경찰력을 확보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시민들에게 법을 직접 집행할 권한까지 주어졌다.

'시민 체포법'이 미국에서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이유는 총기 소유 문제와 연관이 있다. 미국은 개인이 총기를 소유할 수 있는 권한을 헌법(수정헌법 2조)으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총을 든) 범죄자로부터 시민이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권한을 보장하기 위한 차원이다.

버밍엄의 변호사 데니스 판탄지스는 18일 <알라바마닷컴>과 인터뷰에서 "수백 건의 시민 체포 사건을 검토했다"며 실제 '시민 체포법'이 사문화된 법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이제까지 아무도 살해된 적이 없어서 그렇지 오랫동안 수면 아래에서 끓어오르던 문제"라며 과거와 달리 충분한 경찰력을 확보하고 있는 현 시점에 맞게 법을 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처럼 인종적 편견이 전혀 완화되지 않고 있고 증오 범죄와 정치적 갈등이 증가하고 있는 현실에서 시민 체포법은 불길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 수도 있다"면서 민간인에 의한 범죄자 체포가 사설 경호원에게만 허용되는 등 협소하게 정의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지난 8일 사건 발생 74일이 지나서야 살인 등 혐의로 체포된 맥마이클 부자.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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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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